오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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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토성.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란으로 어수선해진 교토를 정비하기 위해 벌인 여러 사업의 대단원이었다. 남북으로 길쭉한 성벽의 총 길이는 약 22.5km였고 완공에는 1591년 중 대략 2개월에서 4개월 정도가 걸렸다.
오도이 공사에는 동쪽을 흐르는 가모가와(鴨川)의 범람을 막고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도이를 기준으로 안쪽을 낙중(落中)으로, 바깥쪽을 낙외(落外)로 구분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자를 파는 등 방어 시설로 구색은 갖추었으나 가장 높은 부분도 높이가 5m 가량에 불과했고 윗부분에는 토양 유실을 방지하고자 대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요새로 활용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듯하다.
성벽에는 수십 개의 출입구가 설치되었다. 에도 시대에 이르면 도시의 팽창에 따라 출입구가 늘어났고, 해자와 성벽이 방해가 되자 아예 오도이를 철거하기까지 했다. 특히 도심화가 진행된 동쪽은 일찍이 오도이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현재는 북서쪽 아홉 군데의 성벽이 남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부 구간은 기타노덴만구 경내로 편입되었다. 잔존 구간은 토성이라기보다는 수풀이 무성한 둔덕의 느낌이 나는 곳이 많다. 교토 시 기타 구의 오미야도이쵸(大宮土居町), 나카교 구의 미부도이노우치쵸(壬生土居ノ内町) 등의 지명에도 오도이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러 곳에서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에도 시대 초기의 주민들이 오도이 해자에 버리거나 빠뜨린 다양한 물건들이 출토되었다. 토기, 도자기 등 생활용품이 주를 이루는 한편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꼬리표나 서국 33개소[1] 순례에 관한 물건도 나왔다.
교토의 코에츠도(光悦堂)라는 화과자 가게에서는 오도이를 본따 만든 찹쌀떡을 판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