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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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 / Kyoto City
[image]
[image]
시기(市旗)
시장(市章)

시청 소재지
나카교구 우에혼노지마에마치 488
도도부현
교토부
면적
827.83km²
인구
1,465,701명[1]
시장

카도카와 다이사쿠
(門川大作, 4선)
시의회
(67석)


21석

18석

10석

4석

4석

3석

5석

2석
상징
시화
동백나무(ツバキ)
철쭉(ツツジ)
사토벚나무(サトザクラ)
시목
수양버들(シダレヤナギ)
단풍나무(タカオカエデ)
계수나무(カツラ)

[image]
도지의 목탑과 교토역

1. 개요
2. 역사
3. 자연 환경
4. 경제
5. 문화
5.1. 미디어
5.2. 그래 교토에 가자
6. 스포츠
7. 정치
8. 관광
8.1. 세계유산과 명소
8.2. 역사적인 장소
9. 교통
10. 기타
11. 출신 인물
12. 둘러보기


1. 개요


일본 교토부 중남부에 위치한 시. 교토부청 소재지이자 교토부 최대도시이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1075년 간 일본의 수도였다.
일반적으로 '교토'라고 하면 '교토시와 그 주변 지역'을 일컬으나, 시보다 큰 행정 지역인 '교토부'는 북쪽의 마이즈루(舞鶴)까지 포함하므로 바다에 접해 있다. 드물지만 교토가 아닌 '경도'라고 읽는 사람들도 있는데, 뜻도 쓰임새도 한국말의 서울(수도, capital city)과 같다. 서울처럼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사례.
일본의 고도(古都)라는 점, 단골 수학여행지[2]라는 점에서 한국의 경주시와 비슷하며, 로컬라이징에서도 경주로 자주 나온다. 단, 교토는 일본 열도 중앙에 위치해 전통 기업과 산업이 몇 백년의 역사를 두고 이어진다. 창업 백 년 정도는 오래된 느낌이 없다고. 경주가 개성특별시 천도 후 급속히 쇠락[3]한 것과는 달랐다.

2. 역사



3. 자연 환경


비교적 일본 대도시 중에서는 지진 빈도가 낮고 위험이 적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교토의 지하는 화강암지대가 많아 도쿄같은 간척도시보다 지반 액상화 등이 적고, 도쿄 같이 지각판이 3개 겹치는 지역보다야 유의미하게 낮기 때문이다.[4] 물론 그래봤자 일본 아니랄까봐[5] 교토 분지 역시 여러 활단층이 지나고 여러 차례 지진 피해를 받은 건 마찬가지다. 피해기록도 구체적이다. 각종 일본 사서에 등장하는 천황들마다 지진 피해로 정권 유지의 위협을 받는 사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159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설 중이던 후시미 성의 천수각과 돌담 등이 무너져 성 안에서만 6백 명이 죽었다. 1662년에는 건물이 1천 채 이상 무너지고 사망자 2백 명이 발생했다. 1830년에도 큰 지진이 발생해 니조 성교토고쇼 등이 피해를 입었다.
교토 분지는 한여름이 매우 덥고 습하기로 유명하다. 한여름 낮 최고 기온 평균이 28℃. 오키나와보다 높으며 더 올라가는 경우도 많다. 대구 같은 분지 지형이라 여름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로 난다. 여름의 교토 여행은 그야말로 수행을 하러 가는 것. 더구나 신사이 많아서 숲이 많기 때문에 모기 떼가 작렬한다.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로 들어감은 모기에게 인신공양을 하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여기서 나오는 모기들은 일반 모기들이 아니라 국내에 아디다스모기로 잘 알려진 악랄한 흰줄숲모기종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8월 평균기온 28.2℃, 평균최고기온 33.3℃로 대구(각각 26.4℃, 31.0℃)보다 2℃ 가량 높다. 그냥 여름에는 안 가야 된다. 만약 간다면 저 엄청난 더위를 견딜 각오와 자외선 차단제를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볼거리들이 대부분 다 밖에 있는지라, 돌아다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살이 자동 선탠된다. 심지어 하늘도 한국보단 매우 맑아서 자외선이 매우 강렬하니 주의. 더군다나 2010년에는 나고야와 함께 9월까지 38℃ 이상 기록한 적이 있었다.
겨울에는 따뜻한 편(1월 평균 기온 4.6℃)이지만 바람이 불어 체감 기온은 그리 높지 않다. 오사카보다 조금 더 추운 정도이다. 강수량이 적어 함박눈이 내리는 광경은 보기 힘들다. 2015년 1월, 61년 만에 20 cm 정도의 폭설이 왔는데, 교통이 마비되고 전국적으로 뉴스에 방송되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부산에 오는 폭설급.

4. 경제


경제 활동 종류
생산액(100만 엔)
구성비
전년비 증감
농림수산업
9,151
0.2%
△ 3.3%
광업
139
0.0%
33.7%
제조업
1,044,258
17.4%
△ 15.2%
건설업
251,672
4.2%
14.2%
전기·가스·수도업
89,744
1.5%
10.9%
도소매업
807,029
13.4%
2.3%
금융·보험업
260,721
4.3%
△ 2.5%
부동산업
1,017,157
16.9%
0.2%
운수업
247,009
4.1%
△ 2.3%
정보통신업
239,780
4.0%
3.5%
서비스업
1,342,337
22.3%
2.2%
정부 서비스[6]
494,425
8.2%
△ 2.9%
민간 비영리 서비스
208,921
3.5%
△ 0.6%
소계
6,012,343

△ 1.9%
1차 산업
9,151
0.2%
△ 3.3%
2차 산업
1,296,069
21.6%
△ 10.7%
3차 산업
4,707,123
78.3%
0.8%
2013년 교토시 시내총생산
간사이 지역에서 지역중심지 역할을 하는 오사카가 다방면에 걸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교토는 서비스업과 함께 주로 전기, 전자부품 계통의 제조업 비중이 높다. 대부분의 GRDP가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편중되어 있는데, 한국의 울산광역시와 비슷하다.
일본 최고의 관광도시로, 시내 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은 10% 이상으로 추산되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관광업은 특성상 농림수산업, 운수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의 다방면에 걸쳐 막대한 파급 효과를 가진다. 위의 통계에 해당하는 2013년 교토시를 찾은 관광객들의 관광소비액은 7,002억 엔에 달했다. 이 수치는 2015년에 9,704억 엔으로 늘었다.# 2018년에는 1조 3,082억 엔에 달한다.
흔히 전통의 도시 이미지가 매우 강하고 실제 보수적인 도시이지만 산업계에서 유명한 기업들이 꽤 있다. 2000년대 중반을 전후로 교토 기업들의 경쟁력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나왔는데 이 책들에 따르면 교토에는 장인정신을 잘 살려 훌륭한 물건들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 정신[7]에 의해 좋은 상품들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이 많이 있고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가 좋다는 점, 또 이름있는 대기업에 하청관계로 종속되는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에 국내시장에서 힘을 못 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중심으로 기업이 운영된 덕분에 이것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점, 기업의 회계적인 운영 면에서도 무차입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기업이 많으며 경기가 좋을 때에 기업 내부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가 경기가 어려워졌을 때 이를 쓰거나, 아니면 반대로 투자를 확대하는 보수적인 운영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한다.[8]
사실 이들 중 소비자 시장에 나오는 기업은 닌텐도, 교세라와 와코루, 군제[9] 정도이지만, 버블 붕괴 이후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아메바 경영론' 등이 부각되면서 교토 기업이 크게 지명도를 얻게 되었다. 반대급부로는 일본전산과 교세라[10], 사가와규빈의 영향으로 블랙기업이 많은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도 있다.
대표적인 교토 기업에는 교세라[11], 로옴, 닌텐도, 시마즈 제작소[12], 무라타제작소[13], 옴론[14], 호리바 제작소, 와코루(Wacoal)[15], 일본전산[16], 토세(Tose), 삼코(SUMCO), 니치콘, 타카시마야[17], 교토은행[18], 교토 애니메이션 등이 있다. 재일교포 기업으로 유명한 MK택시와 마루한도 역시 교토 소재 기업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중국인들이 교토의 부동산, 호텔 등을 사거나 세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 호텔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5. 문화


약 1천 년간 일본의 실질적인 수도였기에 일본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정신적 수도'로 여겨지는 곳.
도쿄 천도 전까지 교토벤이 표준어였고 우아하게 여겨졌다. 그 때문인지 일본 내에서도 교토인은 다테마에로써 혼네를 감추는 표현, 즉 완곡표현을 유난히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를 부은 음식인 오차즈케는 교토 사투리로는 부부즈케(ぶぶづけ)로 부르는데, 교토에서 '부부즈케 한 그릇 어떠세요?'라는 말은 '되도록 집에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뜻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정중히 사양하고 집에 돌아가는 게 예의. 오차즈케는 식사 마지막에 먹는 음식이므로, 오차즈케를 먹는 것은 '머무름을 끝내다'라는 뜻이기 때문. 간혹 손님이 눈치없이 응낙해서 굳이 부부즈케를 내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최대한 빨리 눈치 까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사회생활에 좋다. 안그러면 민폐꾼이란 인상이 박혀서 다시는 초대 못 받을 수도 있다.
비슷한 이야기로 '슬슬 스키야키를 먹을 시간이네요'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도쿄 출신 일본인이 교토 지인을 찾아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지인 집에서 머물던 도중 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당연히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말로 받아들였지만 사실은 '슬슬 돌아가 주셨으면 한다'는 뜻이었다는 듯. 그 까닭인 즉 스키야키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기에 "그런 수고를 내게 끼치겠느냐, 그러니 (그런 수고를 하는 폐를 내게 끼치기 싫다면) 돌아가 달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케즈 문서 참조.
A: 아휴 모처럼 귀하신 분께서 누옥에 왕림해 주셨는데, 아내에게 저녁 식사로 스키야키라도 준비하라 할 걸 그랬나 봅니다.
→ 지금 당신을 접대하는 것이 스키야키 만드는 것만큼이나 부담스러우니 저녁 좀 편하게 먹게 이제 그만 꺼져라
B: 이런, 기차 시간이 가까워오는군요. 댁의 스키야키를 맛보는 영광을 누리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아내에게 스키야키 준비시킬 만큼이나 당신이 날 부담스러워한다니 식욕이 확 달아나 밥 생각도 없고 기꺼이 꺼져 주겠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는 일본인 중에서도 교토 문화는 그야말로 돌려 돌려 말하기이기에, 겉으로는 친절하면서도 속은 검다는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칸사이에서 보는 교토인 아예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인 전체의 모습은 사실 타 지방의 일본인들이 교토 사람들을 생각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 특히 이런 점을 같은 간사이권이면서도 오사카인들이나 저 멀리 규슈의 후쿠오카현 주민들이 극히 싫어한다. 오사카 시민들이나 후쿠오카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직설적인 편.
헌데 이런 얘기가 일본에서는 상식처럼 알려져 있지만, 정작 교토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일종의 굳어진 이미지인 듯.
상인 기질이 강해서 뭐든지 속 시원하게 말하는 오사카 사람과, 귀족 문화의 영향으로 엄청 돌려 말하는 교토 사람은 엄청나게 상반되는 생각 방식이라 매우 궁합이 안 맞는다. 교토 사람을 보는 오사카 사람의 생각. 이러안 교토 시민의 특성 상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인이나 외국인이 교토에서 알바할때 교토 주민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설명해주고 칭찬해줬다고 하지만, 뒤에선 엄청나게 욕하며 뒷담을 깠다는걸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19] 원래 싫은 티를 잘 안 내는 일본인이지만 특히 교토는 더욱 심하다.
명물 간식으로 야쯔하시가 있다. 교토의 유명한 시장인 니시키 시장에서 살 수 있다. 굽지 않은 반죽에 팥소를 넣은 음식으로, 미묘하게 찹쌀떡 같은 맛. 시장에 들를 시간이 모자라다면, 기요미즈데라에 오가는 길에서도 살 수 있다.
아마 도시마로(阿滿利麿, 1939-)라는 교토 출신 학자가 저서에게 회고하기를, 교토의 존댓말이 도쿄의 반말이라, 자기가 도쿄에 처음 갔을 무렵에 택시에 타서 교토식으로 존대하여 말하면 택시 기사 얼굴이 찌푸려지더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는 경상도 내에서도 '~요'를 평대할 때 쓰는 부울경 기준으로는 존댓말인 '교, 겨'를 '기요'로 발음하는 경북 칠곡 사투리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비슷하다.[20]
로컬 대중문화가 잘 발달된 일본답게, 간사이 포크의 중심지로 1960~70년대 내내 훌륭한 뮤지션들을 많이 배출했다. 영화 박치기에 나오는 임진강을 부른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도 교토 출신이다. 사실상 이들로부터 간사이 포크 붐이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업적인 포크 음악은 존재했지만, 메시지성이 강하고 언더그라운드적인 참신한 곡 구성이 등장한것은 간사이 포크 시대 이후부터다. 타카이시 토모야,[21] 나카가와 고로, 타카다 와타루, 엔도 켄지, 와카바야시 노부야스등 일본 포크를 이끈 뮤지션들이 모두 간사이 포크 씬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당시 전공투 시대와 맞물려서 메시지가 강한 간사이 포크 음악은 일본 각지로 퍼져나갔고, 교토 포크 캠프가 개최된 것을 필두로 기후현에서 전일본 포크 잼버리, 오사카에서 하루이치방이 개최되었다. 이 당시의 간사이 포크 음악의 영향력은 엄청나서, 도쿄신주쿠역 서쪽 출구에서는 연일 포크 게릴라[22]의 반전집회가 열렸다. 간사이 포크는 붐이 가라앉자 메이저 음악으로 자리잡았고 아직도 일본의 1960년대 정서를 표현할 때 종종 쓰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간사이 포크 이후 뮤지션으로는 쿠루리the brilliant green이 있다.
교토는 그 면적에 비해서 대학교들이 놀라울 만큼 많다. 그 때문에 인구 중 학생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아 '학생의 도시'라고 불린다. 일본 유수의 국립대인 교토대학을 필두로 간사이 4대 사립 명문대학을 일컫는 말인 칸칸도리츠[23] 중 도리츠에 해당하는 도시샤대학[24]리츠메이칸대학이 있으며,일본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 대학 인 교토시립예술대학(Kyōtogeidai) 이있다. 그 외에도 류코쿠대학, 교토산업대학[25], 도시샤여자대학, 교토부립대학, 교토여자대학, 만화 관련 학과가 유명한 세이카 대학 등 수많은 대학들이 교토시 내에 존재하고 있다. 덧으로 도시샤대학리츠메이칸대학은 사립대 중에서도 분위기가 워낙 자유로운 까닭에 부속고등학교도 사복을 입고 등교한다. 도시샤는 부속중학교도 사복을 입는다.[26]
교토의 전통요리는 '쿄료리(京料理)'로 불리며, 재료 그대로의 담백한 맛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채소를 이용한 요리가 많이 발달한 편이며, 사찰요리인 '정진요리', 교토식 두부요리인 유도후[27], 가정식 백반인 '오반자이'가 유명하다.[28]
그런데 의외로 교토 사람들은 전통요리들보다는 '교자의 오쇼'를 사랑하는데,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을 모토로 일본의 일본식 중화요리계를 평정한 전국체인 교자의 오쇼(餃子の王将) 본점이 교토에 있기 때문이다. 정통 중국집보다는 백반집 혹은 대중식당 분위기. 저렴한 가격과 준수한 맛으로 교토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심지어 TV아사히 인기 토크쇼 '아메토크'에서는 '오쇼를 사랑하는 코미디언'이라는 테마로 본사 관계자까지 나온 특집을 보낼 정도. 정말 오쇼야말로 교토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국 학생과 여행자의 벗. 유사품으로 오사카 오쇼가 있으니 주의하자. (사실 오사카 오쇼도 교자의 오쇼 관계자가 나와서 세운 회사이다.)
또한 교토는 전통 음식을 좋아한다는 통념과는 다르게 일본 총무성 가계조사에 따르면 1가구당 커피, 소비량 전국 1위이기도 한데[29], 정작 교토가 대표음식으로 미는 녹차를 비롯한 차음료 소비량은 전국 41위다.[30] 기사
서양에서 중화요리처럼 알려진 포춘쿠키도 원형은 이 곳이다. '쓰지우라센베이'(辻占煎餅)라 하며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란 신사 근처에서 맛 볼 수 있다.
2010년 교토부 인구조사 포스터가 열도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 아무래도 지역 회사에서 만든 것이다 보니 활용한 듯. 라디오 CM도 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의정서는 1997년 기후변화 협약 총회의 개회도시였던 이 곳의 이름을 빌려 도입되었다.
교토 자체가 수백 년 전통의 수도였던 도시이자 전통의 끝판왕 자리를 차지하는 도시이기에,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은은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맥도날드의 간판이 붉은색과 노란색이 아니다(!), 편의점인 로손도 마찬가지[31]. 역사유적지구에는 흑백 세븐일레븐도 있을 정도. 유니클로도 흰 바탕에 갈색 글씨다. 또한, 고도제한이 상당히 엄격해 교토타워를 제외한 제일 높은 건물이 약 10층 안팎에 불과하다. 고도제한은 가장 높은 목탑인 도지의 오층탑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교토 시내 외곽을 가보면 원색이 은근히 보인다.
굉장히 의외일 수도 있으나, 일본 최대의 IT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닌텐도의 본사가 교토에 있다. 이는 100여년전 닌텐도가 가내 수공업 화투 제조 업체로 시작한 까닭이 크다. 직원 평가를 보면 사내 직원들이 교토 특성상 놀거리가 적어 불평이 많다.

5.1. 미디어


교토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만화에서 수학여행 에피소드에 돌입하는 경우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대가 되는 지방이기도 하다. (나라는 덤으로 붙는다?) 역시 위에 적혀 있는 대로, 헤이안 신궁, 은각사/금각사 등 문화재와 관광지가 많기 때문.
아예 대놓고 이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된 애니메이션도 있다.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인 미궁의 십자로진홍의 연가가 교토를 배경으로 했고, 소설이자 애니메이션인 교토탐정 홈즈의 무대이기도 하다. 《러키☆스타》에서는 관광지에 추가로 그곳에 위치한 제작사의 본사까지 등장했다. [32] 교토대학 출신이기도 한 소설가 모리미 토미히코가 쓴 소설도 거의 다 교토를 배경으로 한다. 자동적으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들도 교토 배경.
그 외, 많은 노래들에서도 모티프가 되는 등 미디어에 많이 등장한다. 미국덥스텝 DJ 스크릴렉스의 노래 중 Kyoto라는 노래가 있기도 하고 영국 일렉트로니카 그룹 Clean Bandit의 노래 중 하나인 Rather Be에도 교토가 언급된다.
영화 박치기를 여기서 촬영했는데, 재일교포 영화제작자 이봉우의 말에 따르면 교토 사람들은 (본인 생각에는) 영화 촬영도 많고, 관광객도 많아서인지 타인에 대해 무뚝뚝한 편이라고 한다.[33] 하지만 관광객들의 무례한 태도도 교토 현지인들의 무뚝뚝한 태도에 일조한다고 봐야 한다. 역사적인 건축물은 그렇다 쳐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일반 가정집, 현지인들 사진까지 팍팍 찍어대는 통에...
아이돌을 생각보다 많이 배출한 곳이다. 교토부는 AKB48요코야마 유이, 칸쟈니∞마루야마 류헤이[34], 모닝구 무스메나카자와 유코를 낳았다. TWICE의 멤버 모모도 교토 출신.[35]
교토시 사쿄구, 카메오카시, 나가오카쿄시, 오오야마자키쵸, 야와타시를 제외한 지역은 TV 도쿄의 계열국인 TV 오사카의 직접수신이 힘들어서 TV 오사카를 보려면 케이블TV에 가입해 디지털 재전송을 받아야 한다. TV 오사카가 방송구역을 확대하려 해도 효고현의 지리적인 문제로 인한 중계국 설치 비용 문제, TV 세토우치와의 전파 혼선 문제, TV 도쿄 프로그램을 받아오는 인근 독립방송국[36]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

5.2. 그래 교토에 가자


일본인들이 교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것이 JR 도카이에서 만든 광고시리즈 "그래 교토에 가자(そうだ京都行こう)"다.

본래 1993년에 헤이안쿄 천도 1200주년을 앞둔 기념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시작한 광고시리즈였는데, 광고에 드러난 교토의 영상미, 그리고 배경음악[37]의 절묘한 조화 덕에 호평을 받아 2010년대에도 계속 새로운 광고 시리즈가 제작되고 있다.
2018년 캠페인 25주년을 맞이하였다. 2018년 가을 편부터 캠페인 로고 및 포스터 디자인을 변경하였다.
여담으로 논산천안고속도로 광고에서 "그래 백제로 가자"라는 문구로 변형되어 차용된 바가 있다.

6. 스포츠


유일한 프로스포츠팀으로는 J리그교토 상가 FC가 있는데, 교토 퍼플상가 시절 박지성이 하위권이었던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었고, 계약기간이 천황배 결승전 전날 끝났는데도 무보수로 뛰어 1골 1도움으로 천황배(일본의 FA컵) 우승(그것도 팀의 유일한 우승)을 안겨 주었기 때문에 박지성은 교토에서 레전드 취급받는다. 실제로 당시 퍼플상가 구단주는 박지성이 PSV로 떠날 때 후에 돌아온다면 다리가 부러져도 받아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야구팀은 간사이권이 그렇듯 당연히 한신 타이거스가 인기가 많다. 교토 연고 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데, 쇼치쿠 로빈스가 1952년 연고지로 삼았다가 캐삭빵에 패해 사라진 후 다이요 쇼치쿠 로빈스가 2년 잠시 머물고 갔다.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는 안 좋은 의미로 기억될 수도 있는데, 전 감독이었던 이시야마 카즈히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7. 정치



일본에서 모든 시정촌 중 좌파 성향 지지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장기간 혁신 계열이 시장직과 의회를 차지한 적도 있고, 지금도 일본 공산당이 가장 선전하는 도시이다. 게다가 기본 지지자와 대도시 버프가 있어서 유일하게 자민당 계열과의 1:1 대결이 가능한 곳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가 교토 내 대학교에서의 혁신 기풍과 2 ~ 8대 교토부지사 니나가와 토라조우의 영향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원래 도쿄 이전에 수도였는데, 도쿄로 수도를 옮김에 따라 교토 주민들이 교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민당과 다른 당을 주목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에서 도쿄대학 다음가는 명문대 취급을 받는 교토대학이 위치해 있어 좌파 계열 학생들이 수시로 대학가에서 선전 연설을 하고 있다.[38] 때문에 교토대는 넷 우익들에게 소위 '빨갱이 학교'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상대적인 것이라 중의원 선거에선 1990년대 소선거구제 개편 이후 민주당에 지지층을 내줘 자민당민주당이 의석을 독차지해 왔다. 그나마 참의원 선거는 공산당이 선전해 70-80년대 당시에는[39] 자민당과 차지하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민주당이 대신 차지하다가 현재는 공산당, 자민당, 입헌민주당이 같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의원에서 중소기업, 리츠메이칸 대학[40]과 도시샤대학이 있는 교토부 제1구는 교토 중심부를 커버하기 때문에 자민당과 공산당이 선거 대결이 치열하게 펼치지만 공산당이 항상 석패율제를 통해 구제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상황이다.[41] 동부 교토를 커버치고 있는 교토부 제2구도 전통적으로는 혁신 계열이 강하지만, 소선거구제 이후에는 마에하라 세이지가 꽉 잡고 있다. 3구는 자민당, 입헌민주당, 공산당 지지층들이 혼재되고 있다. 4구는 그런 것도 없이 자민당이 차지하고 있다.

8. 관광


교토는 오사카, 고베, 나라, 가끔 와카야마현과 함께 엮어서 간사이권 여행패키지가 만들어지는 동네고, 일본 내에서도 전통 건물이 잘 살아남은 동네라서[42] 관광하기 좋다. 도시로서 규모도 제법 되는 편이라, 게임센터나 전자제품 쇼핑도 어떻게든 되는 편.
일본 내에서 사찰과 신사와 같은 종교 문화재 관광하기에는 교토만큼 좋은 곳이 없다. 개인 사찰 포함 1천여개의 사찰과 신사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교토의 예스런 분위기에 푹 빠진 여행객도 상당하다. 교토 사람들도 평생 동안 교토시 내 사찰과 문화재를 다 못 본다.[43]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관광지라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모노를 입고 돌아다니는 걸 유명 관광지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특히 기온마치 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자연 액티비티의 경우 분지 지형이다보니 동서남북으로 시를 둘러싼 산악 액티비티나 계곡, 호수가 주를 이룬다. 보통 서쪽의 아라시야마나 북동쪽의 히에이 산, 시 동쪽 시가현의 비와호 같은 것들이 자연 액티비티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벚꽃철(3~5월)이 유명하고, 단풍철(11월 중후반)도 쌍벽을 이룬다. 특히나 5월의 골든위크라면 각오를 다지는 게 좋은 편. 사람이 정말 많긴 하지만, 그런 인구밀도를 감수하고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할 만큼 정말 좋은 여행철이기도 하다. 물론 그 시기에 방을 잡으려면 호텔 체인별 회원 전용 예약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정상가로는 예약이 절대 불가능하고, 2인실 기준 최소 15만원의 숙박비를 감당해야 한다. 심지어 혹서기에도 기온마츠리와 같은 시그니처 축제들이 즐비한지라 교토의 하드코어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벚꽃의 경우는 서쪽의 아라시야마부터 동쪽의 철학의 길과 케아게 인클라인[44], 그 외 교토 전역에 넓게 분포한 사찰들과 카모 강 유역, 심지어 카츠라 강, 우지 강, 키즈 강의 합류지점인 시 남서쪽 세와리테이까지 벚꽃이 정말 넓게 분포해있어서, 관광객 밀도는 석촌 호수나 여의도 윤중로보다 오히려 적은 수준이다.
오타쿠 관광에 있어서는 조금 미묘하다. 오사카덴덴타운 수준에 못 미치는 건 아쉽지만, 애니 성지 등 나름의 유니크함을 가지고 있어 아예 무시할수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쿄애니 본사와 쿄애니샵은 교토에 없고 JR 나라선을 타고 20분 거리에 위치한 우지 시라는 곳에 있다.
철도 동호인 관광하기에는 좋은 편. 증기 기관차를 원없이 볼 수 있는 교토철도박물관이 있고, 토롯코열차가 다니는 사가노 관광철도도 교토에 있다. 토롯코 열차를 이용하면 토롯코사가역에 전시된 디오라마를 100엔 할인하여 관람할 수 있다. 교토 시내에도 란덴 같은 노면전차가 다니는 등 철도 동호인이 좋아할 만한 것이 많다. 특히 우타노역 ~ 나루타키역 사이의 벚꽃터널이 굉장히 유명하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객차에 사람이 꽉 들어찬다. 철도 동호인이 간사이권에 놀러갔다면 철도박물관 때문에라도 들르는 곳.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하여 해외여행, 수학여행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며 2020년 교토 시내 관광업 종사자들의 실업률, 생활보호 신청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교토상공회의소 회장이 버블붕괴 후보다 코로나19의 임팩트가 더 심각하다고 할 정도. 심지어 올림픽, 관광수요의 증가로 건설한 호텔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을 맞지 못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서 교토부 지사가 조성금기한의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8.1. 세계유산과 명소



교토에 있는 유적 중 아래에 개별 문서가 있는 유적들을 포함해 일부가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이라는 유산군에 묶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개별 문서가 없는 명소에 대해서는 교토시/관광 문서 참조.

8.2. 역사적인 장소



9. 교통


인구 150만 전후의 일본 유수의 관광도시인 건 확실한데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교통 상황은 눈물이 날 정도로 열악하다.
교토에서 이용하는 주요 교통 수단은 크게 시영버스와 시영 지하철, JR 서일본, 사철[45]과 노면전차[46], 그리고 택시이다.
교통 상황을 좀 적어 두자면,
  • 길은 좁은데 차는 많다. 서울로 치면 종로 급의 도로인 시조(四条)는 왕복 2차로[47], 주요 산업도로 중 하나인 고죠(五条)[48]와 호리카와 도리(堀川通), 오이케 도리(御池通) 정도나 왕복 6차로지, 교토에서 유서깊은 도로인 니조(二条)나 산조(三条)의 경우 몇몇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왕복 2차로다. 종축으로 중요한 도로에 속하는 카와라마치 도리(河原町通)나 카라스마 도리(烏丸通)도 4차선. 교토 시가지의 중심인 시조-산조 카와라마치-카라스마는 항상 교통지옥이라고 보면 된다. 시 차원에서 차 좀 끌고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 더 심한 건 버스도 가축수송이다. 특히 3대 절 가는 라쿠버스.
  • 도시 고속도로 같은 건 하나도 없다. 이런 주제에 차는 많다. 하술할 관광을 극력 피할 시기에 교토에 갈 경우 정류장에 적혀 있는 버스 배차표는 꼭 참고로 하자. 시내 중심을 제외하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남쪽 한정으로 하치죠(교토역이 있는 곳) 북쪽으로는 그런 도로가 없다. 시내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 다른 대도시와 다르게 도심 내부의 철도 교통이 미비하다. 오사카 쪽을 잇는 JR과 케이한, 한큐의 경우 교토 시 동부와 남서부를 '매우 한정적으로' 커버한다. 교토 서부나 북부의 경우 철도로 시내나 오사카 쪽으로 나오기가 매우 불편하고[52][53], 야사카 신사 등지의 동부 쪽이 그나마 나은 편. 이렇게 된 큰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교토는 예전 물 속에 잠겨 있는 지역이었으며 교토시내를 포함하여 청수사가 있는 높이까지 전부 물로 가득찬 지역이었으나 지각변동으로 인해 교토 부근이 위로 치솟으면서 물이 빠지고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지금도 교토의 지하에는 방대한 물이 매장되어 있으며[49] 도심에서도 지하수[50]가 펑펑 나온다.
    • 문화재 굴착 등의 문제 때문에 한큐를 제외한 다른 철도교통들의 경우 기본 요율과 비교해 교토 경유 시 km당 요금이 미묘하게 혹은 티나게 비싸다. 물론 스룻토간사이 패스 등을 이용한다면야 이건 별 문제가 없겠지만.[51]
  • 교토 관광 시 무조건 피해야 하는 시기는 벚꽃철과 단풍철. 그리고 여름철. 여름철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밖에 돌아다니기가 고통스러울 만큼 덥기 때문이다. 벚꽃철과 단풍철 시즌이 되면 교토 시내는 말 그대로 터져 나간다.[54] 사찰이나 신사 쪽으로 연결된 버스 노선[55]은 증차를 해도 미어터지고 JR은 가을에 임시 열차까지 굴리며 한큐는 쾌속특급이라는 주말 한정 관광 열차를 배 이상으로 증편하고 케이한과 킨테츠는 구간 한정으로 서로의 승차권까지 통용시켜서 굴린다. 여름과 겨울도 날씨가 만만하지는 않아, 날씨에 민감하다면 교토는 매우 난감한 관광지다. 카훈[56]도 굉장히 심한 도시다!
  • 관광지가 집중되어 있는 아라시아마에서 교토 시가지로 나오는 마루타마치 도리와 산죠 도리, 기온과 헤이안 신궁을 잇는 히가시오지 도리는 특히 오후에 집중적으로 막힌다. 이 지역을 보고 교토 시가지나 오사카 등지로 돌아가려는 관광객들이 몰리기 때문. 그나마 아라시야마는 산인 본선이나 한큐 아라시야마선 등 우회노선이 많지만, 기온은 답이 없다. 그래서 시에서 지하철 히가시야마 역에서 토자이선-카라스마선을 이용하도록 교통분산을 유도하며, 교통경찰들이 버스에 승차하여 교토역까지 가는 무료 환승권을 나눠줄 때도 있다.
  • 도시 고도차가 은근히 있는 편인데, 란덴을 타고 료안지 등으로 가보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교토는 오사카에서 철도로 통학하기 매우 편리한 곳이다. 상술한 사철들을 이용하면 아주 쉽게 갈 수 있다.[57] 단지 도로 사정이 엄청나게 열악하니 그건 고려할 것. 교토시 교통국(한국어) 홈페이지 참고 바람 교토에서 오사카로 갈 때도 마찬가지.
[image]
드디어 2014년 12월 24일부터 시영 버스에서의 Suica, ICOCA 등의 IC카드사용이 가능해졌다. [58] 교토시 교통국 항목 참고.
2015년 7월 18일 교토 종관 자동차도의 미완성부분(탄고IC 에서 교탄바와치IC 까지)이 완공되어 마이즈루나 아마노하시다테를 포함한 교토 북부지역 접근성이 나아질 예정.
일본 대도시 중에서는 보기 드문 내륙도시라서 항구가 없다.[59] 차라리 바다보다 호수가 더 가까운 동네. 일본의 도시들 가운데 인구 백만을 넘기는 도시 중에 내륙도시는 삿포로시와 사이타마시, 그리고 교토시 셋 뿐이다.

10. 기타


  • 2020년 9월 1일부터 동성 파트너쉽 제도를 실시한다.#

11. 출신 인물



12. 둘러보기





[1] 추계인구 2020년 1월 1일 기준[2]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포함한 창작물에서 수학여행 에피소드가 나오면 열에 대여섯은 여기가 배경이다. 간혹 가야 오키나와, 홋카이도오사카시도 간혹 간다. 현대 일본 학생들은 해외로도 많이 가는 편.[3] 생각보다 그렇게 급속하지는 않았다. 이미 통일 신라말 혼란한 정국에 전성기에 비해 쇠락한 상태였고 고려시대에도 몽골침입으로 초토화되기 이전에는 황룡사 9층 목탑 같은 목조 유적들 또한 그대로 남아있었다.[4] 실제로 지질학적 관점에선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한건 최악의 수였다. 쉽게 말하면 활단층만 많은 교토에서 활단층은 물론이고 아예 3개의 판이 층을 이루는 도쿄로 수도를 옮긴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토 역시 지진에서 안전하진 않다지만 그래봤자 내륙도시라 쓰나미는 경계할 필요도 없고 지진 역시 M7정도가 수백년 주기로 한번씩 내려치는거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쿄는 100년마다 M7, M8이 로테로 번갈아 일어나며 도쿄권역(특히 치바현 보소반도나 가나가와현 남부)의 태평양을 바라보는 지역은 대놓고 쓰나미를 기다리는 지형이나 마찬가지이다.[5] 한국에서 지진 위험이 가장 큰 지역은 경상도이고 일본에서 가장 지진 위험이 적은 지역은 보통 주고쿠 일대나 규슈 북부 지역을 꼽지만 당연히 주고쿠나 규슈 북부가 경상도보다 지진 위험도가 훨씬 크다. 애초에 한국에서 경상도가 가장 지진이 많은 이유는 그냥 경상도가 일본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6] 전기·가스·수도업, 서비스업, 공무[7] 교토대학 스에마쓰 치히로 교수는 이를 교요식 경영이라 칭하기도 했다.[8] 이는 이전에 교토 기업들에게는 돈을 잘 빌려주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9] 한국에서는 프라모델용 도료 쪽이 유명하지만 본업은 속옷 등 섬유, 의류이다. 의외로 전자부품 쪽에도 손을 대고 있다. [10] 이쪽은 쥐어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회사 철학의 강조가 신흥종교와도 같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11] 교토+세라믹의 합성어다. 원래 교토세라믹으로 출발했지만 도쿄증권거래소 상장과 더불어 이름을 축약한 것이다.[12] 바로 그 샐러리맨 노벨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를 배출한 곳인데, 창업주가 가고시마의 유력 가문인 시마즈 집안이다.[13] 전자부품을 만드는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다. 근데 이름은 동네공장삘.[14] 세계 최초로 자동 개찰기를 개발한 곳으로, 당뇨병 의료 관련 키트로도 유명하다.[15] 한국에는 비너스라는 브랜드에 대해 인지도가 높은 신영과 합작하여 신영와코루라는 이름을 세웠고 신영와코루의 계열사는 신영스타킹이 대표적이다.[16] 일본 제일의 노동자 탄압 기업이자 블랙 기업으로 유명하다. 젊은이들이 입사하고 싶지 않은 회사 1위.[17] 등기상 본사는 오사카에 있으나 창업은 교토에서 했다.[18] 간사이 지역에서 유력 지방은행들이 버블 이후 죄다 썰려나가는 동안에도 굳게 '교토은행'이란 이름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19] 심지어 이 정도면 교토 내에서도 꽤나 직설적인 편이다. 심지어는 뒤에서도 뒷담을 안까는 무서운 경우도 있다. 즉, 이 말은 같이 지낸 사람들 앞에서도 믿지 않아서 돌려 말한다는 의미이다.[20] 이만기의 고등학교 씨름부 시절 실제 경험담이다.[21] 홋카이도 출신이고 도쿄로 대학교를 진학해서 도쿄를 근거지로 삼았지만 아무래도 포크의 중심지가 교토이다 보니 교토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22] 당시 거리에서 공연을 하던 포크 뮤지션들을 위주로 한 집회. 처음에는 자연발생적인 거리 공연에 지나지 않았지만 점점 인원이 불어나서 경찰 기동대가 투입되어 폭력으로 해산시키는 사태도 벌어졌다. 경찰이 해산시키면 그 자리를 피해서 이곳저곳 도망다니며 공연을 해서 포크 게릴라라는 이름이 붙었다.[23] '칸칸'은 칸사이대학과 칸세이가쿠인대학으로, 각각 오사카부 스이타시와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본캠퍼스가 있다. 네 학교 모두 도쿄의 MARCH와 동급의 입시 난이도를 자랑하며, 리츠메이칸대학의 경우 도시샤대학과 라이벌 대학이다. 또한 매년 한국의 연고전, 도쿄의 소케이전처럼 매년 도시샤대학과의 도리츠전을 하는걸로도 유명하며, 간사이권 기업에서도 알아주는 명문학교이다.[24] 윤동주가 일본에서 다녔던 학교 중 하나(다른 하나는 릿쿄대학).[25] 파나소닉의 창업자가 설립에 관여하였다.[26] 교토의 물가는 도쿄와 맞먹을 정도로 비싸다. 그래서 교토에서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들은 교토에서 가까운 오사카부 북부, 특히 한큐 연선에 방을 두는 경우가 많다.[27] 두부를 두유에 넣고 데운 것[28] 오반자이도 비싼 가게는 비싸다. 가격이 부담되는 사람은 오반자이 바이킹을 이용해 보자.[29] 실제로 교토를 커피, 빵 맛집 순례를 위해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커피맛집 구글 리뷰 보면 한국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30] 참고로 차음료 소비량 1위는 홋카이도, 2위는 아오모리현, 3위는 이와테현이다.[31] 시내, 특히 기온 거리 한정[32] 정작 그 본사는 '교토시'에는 없다. 즉, 인증샷 찍으러 전철 타고 시내에서 30분 이상 걸리는 곳까지 갔다는 것. 사실 교토 애니메이션이 교토 애니메이션인 이유는 본사가 교토에 있어서라기 보다는 창업주가 교토에 살았기 때문.[33] <인생은 박치기다!> 中[34] 쟈니스에게는 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 교토이다. 그 이유인 즉슨, 사장이 무턱대고 KYO TO KYO라는 이름으로 쥬니어들을 모아 놓고 공연을 열었다가 조트망해 이 공연에 참여했던 쥬니어들이 나중에 회사를 나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라시오노 사토시는 이 힘든 시기를 거쳐서 살아남은 주니어 멤버 중에 하나로, 쟈니스 갤러리에서는 그를 '교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리고 있다.[35] 아버지가 후시미구의 모모야마고료마에역 근처에서 접골원을 하신다.[36] TV 도쿄로부터 프로그램을 사와서 공급하는 TV 와카야마(WTV,) 나라 TV(TVN)는 방송구역 확대 이후부터 반발하고 있었고, 독자프로그램으로 굴러가는 선테레비, KBS 교토는 이전부터 반발하고 있었다.[37] 사운드 오브 뮤직 OST의 "My Favorite Things"[38] 이 외에도 이들의 입장을 표명한 간판이 교문 바로 옆에 서 있고, 이들이 운영한다고 알려진 카페도 있다. [39] 1950-60년대엔 참의원 선거에서 혁신 진영은 사회당 의원들이 많이 당선되었지만, 60년대 후반 이후 공산당이 급성장하면서 사회당이 밀려났다.[40] 일본 공산당의 청년 조직 일본민주청년동맹(민청)의 거점지었다.[41] 공산당 소속 고쿠타 게이지(穀田惠二) 중의원이 항상 부활하기 때문에 '부활전문 의원'이라 불릴 정도이다.[42]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교토는 단 한 번도 폭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이는 고의에 의한 것. 어쨌든 덕분에 교토시에는 많은 문화재와 전통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43] 이는 실제로 승려들이 수행중인 절도 있어서 그렇다. 관광객의 입장이 가능한 곳에서도 승려 외 출입금지 구역이 있으니 이 주변에서는 가급적 소음에 유의할 것.[44] 교토의 생활용수 공급을 위한 비와호 ~ 교토간 인공수로이며, 이 인공수로의 건너편 도로에는 정수장도 있다. 비와호 항목 참조.[45] 간사이 5대 대형 사철 중 난카이와 한신만 빼고 다 들어온다. 킨테츠는 시가지 접근의 경우 교토 역에 쬐끔 걸쳐있긴 하지만 교토 시 남부 지역(타케다 등)의 경우는 케이한과 함께 아주 꽉 잡고 있다. 난카이도 사카이스지선이 개통되었을 때 들어올 뻔했으나 궤간과 전압차로 인해 무산되었으며 대신에 한큐와 합작해 패스를 내고 있다. 사쿄 구에서는 에이잔 전철도 운행되고 있는데, 케이온!에서 코토부키 츠무기가 타고 다니는 바로 그 전철이다.[46] 케이후쿠 전철. '란덴(嵐電)'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하다.[47] 원래 4차선이었지만 인도를 늘리는 공사로 도로를 줄여버려 결국 2차선이 되었다. 4차선일 때에도 택시 자가용 버스가 뒤섞여서 700m를 10분이나 소요하였는데 이 공사로 인해 더욱 느려졌다. 그래서 시 곳곳마다 시조는 제발 우회해 달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48] 고조의 일부는 1번국도로 도쿄-오사카 간인 도카이도다.[49] 교토의 별명은 水の都 즉 물의 도시다.[50] 이런 지하수를 이용한 두부장사가 옛날부터 전해져 왔으며 지금도 교토의 두부요리가 많이 발달해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51] 오사카에서 교토까지 거리와 요금을 비교해 볼 때 한큐는 특급 42분에 390엔, JR은 신쾌속 29분에 540엔이다.[52] 지하철은 요금과 배차가 안습, 란덴은 환승역 2개가 하나같이 보통급 정차역이라 안습. 설상가상으로 서부 쪽은 하나조노 이서로는 버스도 더럽게 안 온다.[53] 단, 교토 서북부에 있는 아라시야마 지역은 예외. 여기는 한큐 아라시야마 지선이 들어오고, 발품을 조금 팔면 JR 사가아라시야마역도 이용 가능하다.[54] 오사카부 지역에 집이 있는 교토대생이라면 이때쯤 집에 가기가 힘들다고 보면 되며, 주요 행사가 있을 시 사대문 안이나 성저십리 안에서 대학을 다니는 경기도 거주 대학생같이 된다.[55] 대표적으로 주황205번. 교토 유학생들에게 205번 버스 물어보면 교토대생 빼고 다 안다. 교토역-사이인-금각사-아오이바시-가와라마치-교토역을 잇는 그야말로 황금 노선. 봄에는 히라노 신사(平野神社), 가을에는 토지(東寺) 하차 승객 때문에 미친 듯이 붐빈다.[56] 꽃가루가 날리는 철을 뜻하는 말[57] 북부에서는 한큐, 남부에서는 킨테츠, 동부에서는 케이한으로 통학할 수 있다.[58] 포스터는 賀茂川育ち(가모가와소다치)작. 처음엔 두세 명이더니 친구나 누나가 포함되는 등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교토시 교통국이나 교토시 관련 관공서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늘어나 기어이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도 시작되었다고 한다.[59] 교토 시는 내륙이지만 교토부 전체로 보면 북쪽은 동해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교토부 북부에는 마이즈루(舞鶴) 같은 항구도시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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