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1. 개요
오스만 베이국의 2대 통치자. 오르한 가지(Orhan Gazi)라고도 불리며, 국가보다는 전사 집단에 가까웠던 오스만의 국가 체계를 확립한 인물이다.
왜 '오르한 1세'가 아니냐면, 후대에 오르한이라는 이름을 쓴 황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2. 생애
오스만 베이국의 창건자인 오스만 1세의 아들로, 오스만 1세 사후 오스만 베이국의 베이(Bey) 직위를 물려받았다. 1326년에 오스만 1세의 명령으로 부르사를 함락했으며, 공방전 도중이나 그 직후에 부왕이 서거하자 갓 함락한 도시를 새 수도로 삼았다. 1340년대에는 동로마 제국의 요안니스 6세의 재위를 도와, 요안니스 6세의 딸인 테오도라와 결혼했다.
오스만 베이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1354년에는 아들인 쉴레이만 파샤의 활약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를 잇는 갈리폴리를 점령하고 그 후 발칸 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후에 오스만 제국이 유럽으로 진출할 발판을 마련했다.
내정에서는 이슬람 법관의 제도를 정비하고 교육기관인 마드라사를 설립해 교육제도를 확립하였으며, 1327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독자적인 화폐인 악체 은화를 처음 도입하여 룸 술탄국의 신하국이 아니라 독자적인 국가임을 더욱 분명히 했다.
3. 여담
형제간의 사이가 돈독했다고 한다. 오르한은 동생에게 나라를 나누자는걸 권유했는데[3] 동생은 거절하고 오히려 형제끼리 손잡고 나라를 하나로 합치고 부강하게 만들자고 권유했고 여기에 감동받은 오르한은 동생을 재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것이 오스만 제국 최초의 재상제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