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후한)

 

1. 개요
2. 생애
4. 미디어 믹스


1. 개요


吳碩
(? ~ 200)
후한 말의 인물.

2. 생애


의랑으로 동승의 조조 제거 모의에 참여했다.
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후한기에 따르면 193년 가을 7월에 상서랑을 지냈는데, 이 때 장안을 도읍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궁인들이 옷이 별로 없자 헌제이각에게 비단을 줄 것을 요청했다가 이각이 궁중의 의복을 어째서 다시 만들지 않냐고 했다. 오석은 관동이 평정되지 않아 쓸 것이 부족하니, 총애하는 신하의 의복을 위해 동료들을 업신여겼다고 했으며, 이로 인해 양소로부터 이각에게 아첨한다고 탄핵되었지만 헌제는 이각이 오석을 총애했기에 그만두었다.
왕자복이 조조를 죽이는 것을 논의하면서 동승이 믿을만한 자로 장수교위 충집과 함께 추천했으며,[1] 장군 오자란과 좌장군 유비 등도 끌어들이게 되면서 이들과 조조를 죽이는 것에 공모했지만 실행하기 전에 원술을 토벌하기 위해 유비가 출병하게 되어 실행하지 못하다가 후에 일이 발각되면서 처형되었다.

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동승이 왕자복을 병풍 뒤에 숨겨두면서 동승은 오석을 충집과 함께 자신의 집에 오도록 불렀는데, 반드시 이 도적(조조) 놈을 죽이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한스럽다는 얘기를 했다. 왕자복이 속을 떠보기 위해 병풍에서 나와 너희 둘이 조 승상(조조)를 죽이려 한다면서 자신이 고발하겠다는 얘기를 해서 분노했다.
결국 동승이 조서를 꺼내 보여주자 조조 암살 계획에 가담했는데, 발각되어 조조에게 붙잡히면서 동승과 무슨 일을 의논했냐고 추궁하자 아무 일도 없다고 잡아뗐지만 동승의 집을 수색해 조서를 찾아내자 죽임을 당했다.

4. 미디어 믹스


[image]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도 자신들을 밀고하겠다는 왕자복을 당당하게 마주한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 등장한다.

[1] 정사 촉서 선주전에 주석으로 실린 헌제기거주獻帝起居注에서 동승이 왕자복과 의논하면서 충집과 오석을 자신의 복심(腹心=심복)으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