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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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吳章煥)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시인이다. 1918년 5월 5일 충북 보은군 출생이며 1951년 사망.[1]
식민지 시절에 상당수의 시인들이 절필하거나 친일활동을 했을 때 절필하지도 않았고 친일적인 작품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을 좋아하였으며 신장이 좋지않아 8.15 광복때도 투병생활 중이었다고 한다. 1946년 임화, 김남천과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중 월북하였으며 이후 1951년에 신장 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서정주와는 서로 시를 주고 받고 자신의 서점에서 자기 시집은 수수하게 만들면서 서정주 처녀시집은 호화판으로 만들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으나 서정주가 변절한 이후로는 관계를 끊고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다.
월북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이후 그가 태어난 고향 충북 보은군에 문학관이 세워졌다.
아래는 시 병든 서울의 한 부분.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씰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씰개를 잡어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1] 사망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48년에 사망했다는 설과 1951년에 사망했다는 설, 1953년에 사망했다는 설 등이 있으나, 1950년에 그가 소련을 다녀온 후 쓴 시집이 발견되어 1948년 사망한 것은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현재는 1951년 사망설이 가장 유력한데 1953년 그의 절친이던 임화가 처형당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일체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