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

 

성명
오정은(吳正殷)
생몰
1891년 2월 14일 ~ 1953년 7월 20일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군 대목면
사망지
서울특별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오정은은 1891년 2월 14일 평안북도 선천군 대목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선천군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15일간 선천경찰서에서 구금되었다. 이후 중국 지린성 안동현으로 피신한 그는 김하원(金河源) 등과 함께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대한국민신보라는 신문을 제작·인쇄하여 신의주에 배포했다. 1919년 6월, 그는 안동현에서 장자일(張子一)·장재건(張在建) 등이 주도한 대한독립청년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1월에는 주현칙(朱賢則)·차균상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 선천군 조사원으로 활동하면서 그 지역의 유력자·재산가·학교·종교 등을 조사하여 보고했다.
이후 오정은은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1923년 봄 귀국하는 도중 로스엔젤레스에서 흥사단에 가입하였다. 1926년 1월 7일 수양동우회가 성립하자 장이욱(張利郁)의 권유로 가입하였다. 선천군에서는 오정은·이영학(李英學)·박춘근(朴春根) 등이 중심이 되어,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사 이인수(李寅洙)를 반장으로 하여 수양동우회 제6반에 속하였다. 1927년 3월 개편된 수양동우회에서, 오정은은 다시 이영학·박춘근·차균상 등과 함께 흥사단 일반회원인 주현칙을 반장으로 하는 제1반에 속하였다. 1931년 봄 무렵, 오랫동안 정간되고 있었던 동우회의 기관지 <동광(東光)>의 속간 비용으로 금 1백 원을 지출하였다.
1936년 10월 17일 선천군 선천읍 천북동의 오순애(吳順愛)의 거처에서 안창호·이영학·장이욱·주현칙·이광수(李光洙) 등과 회합하고 안창호에게서 동지 획득을 통한 동우회의 확대와 강화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수양동우회 사건에 휘말려 1937년 6월 19일 구속되었고, 1941년 11월 17일 고등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3년 7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오정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