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균상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차균상은 1894년 12월 15일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정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군 신성고등보통학교를 재학하던 중 신민회에 가입했다가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만주 안동으로 피신했다. 그 후 1914년 12월에는 하와이로 망명해 이승만이 경영하는 중앙학원(中央學院)에서 2년 동안 영어를 공부했지만 병에 걸리자 귀국했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서울에서 시위에 참여했고, 당국의 수사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했다.
1919년 7월 임시정부에서 설립한 사료편찬위원회의 조역(助役)으로 근무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오정은, 주현칙(朱賢則)과 함께 평안북도 선천군 조사원으로 임명되어 그 일대의 유력자, 재산가, 학교, 종교 실태 등을 조사해 임시정부에 보고했다. 뒤이어 임시정부 재무부 주계국에 근무하면서 임시정부의 재정관리에 힘을 기울였고, 1920년 4월에는 흥사단에 입단해 원동위원부에서 활동했다. 이후 임시정부와 함께 행보를 같이하던 그는 1945년 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되었다가 그곳에서 8.15 광복을 목도했다.
해방 후 서울로 귀환한 차균상은 1946년 12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했으나 1947년 12월에 탈당했고, 1948년 12월에 대한민국 재무부특임행정촉탄위원에 선임되었다. 1952년 12월에 자유당에 입당해 전임위원을 맡았지만 1955년 12월에 탈당했고, 1956년 6월 한국독립당에 복당하여 1959년에 최고위원에 선임되었다. 1961년 2월 한국독립당 전임고문에 선임되었지만 1967년 탈당했고, 1970년 1월 7일 서울에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차균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