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케 히데오

 

'''오타케 히데오
大竹英雄 / Otake Hideo
'''
[image]
'''직업'''
바둑기사
''' 생몰년도'''
1942년 5월 12일(78세)
''' 국적'''
[image] 일본
''' 출신지'''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시
''' 입단'''
1956년
''' 단급'''
九단
'''문하'''
기타니 미노루 九단
'''누적우승경력'''
48회

1. 개요
2. 상세


1. 개요


일본의 프로 바둑 기사. 기타니 미노루 九단 문하이다. 메이저 세계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만 50세 3개월)을 보유하고 있다.#[1]

2. 상세


'''미학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바둑을 두면서 모양을 굉장히 따지고 아름답게 두기 때문. 비록 지더라도 모양이 참혹한 수는 두기 싫어한다.
국내에서는 뭔가 화초 바둑 이미지가 강한데, '미학자'라는 별명도 그렇고 제2회 응씨배 결승에서 잡초 바둑으로 불렸던 서봉수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의 결과를 두고 '한국의 실리 바둑이 일본의 형을 중시하는 바둑을 이겼다'라는 평이 나왔다.[2][3]
기성전(碁聖)에서 6연패하며 명예 기성 칭호를 획득했다. NHK배 우승 5회 등 속기에 뛰어나 '속기의 신', 명인전 도전기에 통산 12회 출장하며 '명인전의 사나이'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같은 세대의 라이벌 린하이펑과 함께 '죽림(竹林)'이라고 불렸다.[4]

[1] 1992년 8월 1일 제5회 후지쯔배 결승에서 왕리청 9단을 꺾고 우승했다.[2] 당시 서봉수와의 응씨배 결승 제 5국은 초반 완착으로 굉장히 유리했었던 바둑을 형세를 뒤집기 위해 서봉수는 강수 일변도로 두었는데 이에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면서 화초 바둑이란 인상이 상당히 강하게 남게 되었다.[3] 그런데 서봉수도 비슷한 이미지였는지 잡초류라고 불리던 실전적 기풍의 그로서는 미학이니 우주류니 말도 안되는 소리처럼 느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대국을 두면서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4] 통산 우승 횟수는 오타케가 48회로 린하이펑의 35회보다 많지만 상대전적은 린하이펑이 47승 43패로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