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전

 


1. 한국 명인전
1.1. 바둑대회
1.1.1. 대회 연혁
1.2. 장기대회
2. 일본 명인전
2.1. 바둑 기전
2.2. 쇼기 기전
3. 중국 명인전
4. 대만 명인전
5. 여담


1. 한국 명인전



1.1. 바둑대회



1969년 출범한 한국의 프로바둑기전. 주최는 한국일보이며, 폐지 직전에는 하이원 리조트가 후원하여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이 공식 명칭이었다.[1]
역대 우승자를 살펴보면 조남철, 김인, 서봉수,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8명으로, 그야말로 본좌급 기사들이 거쳐간 대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봉수의 경우 프로 입단 후 불과 1년 8개월만에 조남철 九단(당시 八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이후 5연패, 현재까지도 '서 명인'으로 자주 불린다. 이후 조훈현이 최초로 서봉수에 도전했다 패배한 기전이 명인전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서봉수에게는 인생 기전인 셈.
참고로, 우승 횟수로만 따지면 조훈현과 이창호가 훨씬 많긴 한데, 이들은 중국과 한국에서 오래전부터 바둑 고수에 대한 존칭으로 쓰였던 국수로 불리는 사람들인지라 큰 논란은 없다.
2000년대 이후 왕위전, 패왕전 등 역사가 오래된 기전들이 문을 닫는 가운데 국수전과 함께 명맥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유서 깊은 대회...일 줄 알았으나 2016년 국수전과 함께 명인전도 폐지되었다.[2] 우승상금 8000만원의 렛츠런파크배도 폐지 예정이라 이렇게 되면 본격기전은 GS칼텍스배와 KBS 바둑왕전 밖에 남지 않게 된다.
2016년 초에 끝난 2015시즌 명인전 시상식 날 하이원 리조트 측에서 "우리는 더 이상 명인전을 열지 않겠다."고 대놓고 선포해 시상식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고 결국 중단됐으나, 한국기원이 한국일보와 협약을 맺고, SG그룹의 후원으로 5년 만에 부활한다.# 5년 만에 부활한 명인전은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를 채택했다.

1.1.1. 대회 연혁


년도
명인
준우승자
1969
조남철
김인
1970
김인
조남철
1971
조남철
김인
1972
서봉수
조남철
1973
서봉수
정창현
1974
서봉수
조훈현
1975
서봉수
조남철
1976
서봉수
윤기현
1978
조훈현
서봉수
1979
서봉수
조훈현
1980
조훈현
서봉수
1981
조훈현
서봉수
1982
조훈현
서봉수
1983
서봉수
조훈현
1984
조훈현
서봉수
1985
조훈현
김수장
1986
조훈현
서봉수
1987
조훈현
장두진
1988
조훈현
서봉수
1989
조훈현
서봉수
1990
조훈현
이창호
1991
이창호
조훈현
1992
이창호
양재호
1993
이창호
유창혁
1994
이창호
임선근
1995
이창호
양재호
1996
이창호
최명훈
1997
조훈현
이창호
1998
이창호
조훈현
1999
이창호
최명훈
2000
이창호
조훈현
2001
이창호
유창혁
2002
이창호
안조영
2004
이창호
조훈현
2007
이세돌
조한승
2008
이세돌
강동윤
2009
이창호
원성진
2010
박영훈
원성진
2011
박영훈
백홍석
2012
이세돌
백홍석
2013
최철한
이세돌
2014
박영훈
이동훈
2015
이세돌
박정환
2021



1.2. 장기대회


1990년 출범한 한국의 프로장기기전. 일간스포츠가 주최하였고, 초창기에는 '장기왕좌전'이었다가 명칭을 바꾸었다. 장기협회나 위키백과의 정보에는 2007년 15회까지의 정보만 존재한다. 아마 이 때를 기점으로 장기협회의 악재정의 영향이 본격화되어 명인전 등이 중단되어 지금까지 장기협회 주관 대회는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장기협회의 현 회장 전만황은 대놓고 원로 회의 명목으로 선거불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에 사람들이 관심이 적은 게 현실이라서... 앞으로도 한동안 열리는 걸 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1993년 한국장기협회가 사라지고 대한장기협회가 출범할 즈음부터 국가 스포츠에서 장기가 제외되어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한장기협회의 회장들 대부분 사고를(선거불복/선수 디스 등) 터뜨리고 선수에게 강제 회원비 상납 요구하는 등 보면 평생 안 열릴 듯할 정도로 장기협회가 쓰레기 같이 돌아간다.

2. 일본 명인전



2.1. 바둑 기전


'''항목 참조.'''

2.2. 쇼기 기전


마이니치 신문아사히 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쇼기 기전이다.
쇼기 8대 기전 중에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기전으로, 용왕전과 더불어 '''2대 메이저 타이틀'''이다.[3] 참고로 용왕과 명인은 호칭 면에서도 특별대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어떤 쇼기 기사가 여러 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타이틀 수에 맞게 N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기사가 용왕이나 명인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그냥 '용왕', '명인'이라고 호칭한다. 다만 용왕과 명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해당 기사를 '용왕명인'이라고 부른다.[4]
1937년에 첫 대회가 열렸고, 2020년 명인전은 제78기째이다. 2021년 현재 명인 타이틀 홀더는 와타나베 아키라 九단.
그리고 명인전 타이틀 도전자를 가리는 예선 리그를 '''『순위전(順位戦)』'''이라 부르는데 쇼기 프로기사들에겐 '''7대 타이틀전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라 불릴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5] '''A급''', '''B급 1조''', '''B급 2조''', '''C급 1조''', '''C급 2조'''의 5등급으로 나뉘며, '''연간 10국'''을 둬서 상위 성적자는 승급 / 하위 성적자는 강급된다. 이중 '''A급에 속한 10명의 기사중 최상위 성적자가 명인전 도전자가 되는 방식이다.
각 등급마다 속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 달라 승급 혹은 강급되는 규칙도 조금씩 다른데, 최대 10명이 속하게 되는 A급&B급 1조는 성적이 가장 안좋은 기사 2명이 강급된다. B급 2조부터는 최하위 성적자 중 일정 비율에게 강등점에 매겨지고 이걸 2년 연속 받으면 하위 클래스로 강급/강급점을 지우려면 다음해 순위전에서 최소 5승 5패를 이뤄서 균형을 맞춰야하며, 6패 이상을 기록하면 강급된다. 승급은 최상위 성적자 2명이 하게 되는데, 동수가 3명 이상 나오면 각 등급 순위를 따져서 하위자가 떨어진다. 순위전의 승강급 시스템이 꽤나 복잡하니 정확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
그리고 승급하면 일본쇼기연맹의 승단 규정에 따라 승단하게 된다. 예를들어 C급 1조에 오르면 四단 → 五단 / B급 2조에 오르면 五단 → 六단 / B급 1조에 오르면 六단 → 七단 / A급에 오르면 七단 → 八단으로 승단하게 된다.
대충 정리하자면 최하등급인 C급 2조 소속의 프로기사가 명인 타이틀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A급에 들어갈 필요가 있으니 해마다 승급한다고 가정해도 최소 5년이 걸린다. 극단적인 경우긴 하지만, 프로 데뷔 첫 해에 타이틀을 딸 가능성이 있는 용왕전[6]이나 다른 기전과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명인전 타이틀을 획득한 기사는 승단 규정에 따라 九단으로 승단하게 되며, 명인이라는 칭호가 주어진다.[7]

3. 중국 명인전


1988년 출범한 중국의 프로 바둑 기전. 2017년 현재 30기가 진행 중이다. 30기 우승자는 롄샤오.
1989년 제2기 대회부터 14기까지 마샤오춘 九단이 '''13연패'''를 한 바 있다.[8]

4. 대만 명인전


2020년에 출범한 대만의 프로 바둑 기전. 정식 명칭은 '명인관군' (名人冠軍) 대회이다.
32명이 출전하고 결승은 7번기이다.

5. 여담


  • 한중일 삼국에 바둑 명인전이 모두 존재하다보니, 삼국의 명인전 우승자들을 초청하여 '한중일 명인전'을 열고 있다.
  • 삼국 모두 여성기사를 대상으로 한 '여류명인전'이 함께 존재한다.
[1] 그 이전에는 SK가 후원해 '유공배 명인전', 'SK엔크린배 명인전', 'SK가스배 명인전'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2] 당시 상금은 우승 5000만원, 준우승 1500만원[3] 기전 서열 자체는 우승 상금이 가장 많은 용왕전이 1위지만, 타이틀 홀더로서의 서열은 용왕과 명인이 동격(同格)이다. 이는 용왕전 창설 당시 명인전보다 격이 높은 기전의 창설에 반대한 역대 명인들의 승낙을 받기 위해 그런 식으로 절충했기 때문이다.#[4] 그렇다고 해서 용왕이 명인보다 서열이 높은 것은 아니다. 상술했듯이, 명인과 용왕의 서열(同格)은 동격이고, 일본쇼기연맹에서 아마추어들에게 발급하는 단증에 서명할 때의 서명 순서는 오히려 명인이 용왕보다 앞서기 때문이다.(연맹 회장, 명인, 용왕 순) 게다가 용왕 타이틀은 2회 획득해야 九단에 승단할 수 있는 반면, 명인 타이틀은 1번만 획득해도 九단으로 승단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용왕은 실질적으로 명인과 동격(同格)의 대우조차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5] 사실상 프로기사들의 서열을 정하는 데다가 1국을 둘 때마다 공식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6] 갓 데뷔한 프로기사는 용왕전 6조에 배정되는데, 일단 6조 토너먼트에서 이기면 용왕전 본선에 나갈 수 있으니 타이틀 획득 가능성이 0인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 6조 우승자가 용왕 타이틀을 획득한 적은 없다. 픽션에서는 시라토리 시로쇼기 라이트 노벨, 용왕이 하는 일!의 주인공 쿠즈류 야이치가 이 사례.[7] 참고로 九단으로 승단하는 다른 방법은 용왕위 타이틀 2기 획득or왕위&왕좌&기왕&왕장&기성 중 아무거나 통산 3기 획득or八단 승단 후 공식전 250승 달성이 있다.[8] 한국에서는 조훈현 九단이 패왕전(覇王戰) 에서 세계기록인 '''16연패'''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