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륜
1. 북송 말기의 도적
원래는 경동로의 호익군이라는 부대의 군졸이었지만 1043년에 동료들과 군사를 조직해서 반란을 일으켜 장관인 기주의 순검을 죽이고 연호를 지으며 관직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몇 개 주를 초토화시켰으며 이 때문에 싸울 힘이 없었던 고우군의 장관과 지방 관민이 당황하여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술과 양식을 내어서 대접하였다고 한다.
2. 수호지의 등장인물
1의 인물의 이름을 차용했다. 별호는 백의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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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양산박의 원래 주인. 산적이 되기 이전에는 선비였으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끝에 산적이 되었다고 한다.
두천, 송만, 주귀와 함께 양산박을 점거하고 있었으며 고구에게 미움받아 도망다니는 임충이 양산박으로 들어오자 받아주긴 했으나 시기심 강한 왕륜은 임충을 내쫓기 위해 '나가서 아무놈이나 한놈 죽여서 목을 보여주면 받아주겠다'라는 흠좀무한 명령을 내린다. 임충은 하는 수 없이 길가에서 한 사내를 습격하는데 이 사람이 하필이면 양지. 둘이 신나게 검을 맞대는 걸 보고 양지와 임충을 동시에 등용하려고 했으나[1] 양지는 당시 뇌물을 바쳐 벼슬자리를 다시 되찾으려는 열망이 너무 강했던지라 그냥 가버리고 이 정도로 수고한 임충을 내치기도 뭣하니 받아준다. 그러나 역시 그다지 중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조개 일당이 들어오자 자신보다 재능있는 애들이 자꾸 들어오면 자리 뺏길까봐 열폭해서 노잣돈만 조금 주고 내쫓으려다가 옆에서 보고 있던 임충이 그 쪼잔함에 열 받아서 왕륜을 죽인다. 그리고 양산박은 조개가 접수. 같이 살고 있던 두천, 송만은 막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조개의 일당이 두천과 송만을 막아선 사이에 임충이 왕륜을 처치해버린 거지만.
그냥 '조개가 텅빈 양산박에 들어갔다'라고 쓰면 뭐하니까 집어넣은 인물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인물로 보이지만 그가 선비였다는 점을 통해서 임충이 말한 그에 대한 묘사를 보면, 당대의 지식인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임을 알 수 있다.
3.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王淪
(233 ~ 257)
자는 태충(太沖). 왕혼의 동생.
사마소의 수춘 정벌에 참군으로 종군했다가 병으로 사망했으며, 당시 사람들이 애석해했다.
왕혼이 처인 종염과 함께 앉아있을 때 아들인 왕제가 뜰 앞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왕혼이 종염에게 낳은 아들이 이와 같으니 마음이 든든하다고 하니, 종염이 만약 이 몸이 참군(왕륜)과 부부가 될 수 있었더라면, 낳은 아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씨보에 따르면 왕륜은 노장 사상에 능했고 20여 세에 효렴으로 꼽혔지만 가지 않고 대장군의 참군을 역임했으며, 25세에 사망해 사마소가 슬퍼했다고 한다.
[1] 이는 왕륜이 양지를 통해 임충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신의 그릇으로는 임충을 컨트롤하기 힘드니 양지를 이용하려 했다는 이야기. 연회 자리에서 양지를 상석에, 임충을 하석에 앉힌 것만 봐도 의도가 빤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