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악

 


王山岳 (? ~ ?)
고구려의 인물. 삼국사기에는 본기가 아닌 잡지에 언급되며, 동국통감에는 양원왕 8년에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문고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그 내용이 나온다.

玄琴之作也 新羅古記云 初晉人以七絃琴送高句麗 麗人雖知其爲樂器 而不知其聲音及鼓之之法 購國人能識其音而鼓之者厚賞 時第二相王山岳存其本樣 頗改易其法制而造之 兼製一百餘曲以奏之 於時玄鶴來舞 遂名玄鶴琴 後但云玄琴

거문고의 제작에 상관하여 『신라고기』[1]

에서 이르기를, 처음 진(晉)나라[2] 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내니 고구려인이 비록 그것이 악기임을 알아도 그 성음과 연주하는 법을 몰라 능히 그 음을 알아 타는 자에게 후상한다 하므로 때에 두 번째 재상[3]인 왕산악이 그 본래의 모양을 두고 자못 그 법제를 고치고 겸하여 백여 곡을 만들어 연주하니 이에 검은 학이 와서 춤추어 드디어 현학금이라 이름하고 뒤에 다만 거문고(玄琴)라 일렀다.

삼국사기 권제32 6장 뒤쪽 잡지 1악

문제는 기록이 이것뿐이라 이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낸 진(晉) 나라를 동진(東晉; 316년~419년)으로 볼 경우 왕산악은 약 4세기경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악 3호분·무용총·장천1호분 등의 벽화에서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참고한 사서이다. 전하지 않아 내용, 편찬 시기, 편찬자 등은 알 수 없다.[2] 서진 또는 동진일 것으로 보인다.[3] 기록에는 '第二相'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 이것이 관직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호칭인지도 적실치 않다. 관직이라고 해도 기록이 적어 어떠한 관직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