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니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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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요안니스 4세(Ιωάννης Δ΄)
'''휘'''
요안니스 바타지스 라스카리스(Ιωάννης Βατάτζης Λάσκαρις)
'''생몰년도'''
1250년 12월 25일 ~ 1305년
'''재위기간'''
1258년 8월 18일 ~ 1261년 12월 25일
1. 소개
2. 생애
2.1. 부황의 요절과 어린나이 즉위 그리고 섭정
2.2. 무잘론 형제의 피살과 미하일의 찬탈
2.3. 폐위와 그 이후의 여파
3. 참고
4. 현실 매체에서


1. 소개


니케아 제국(동로마 제국)의 황제. 라스카리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2. 생애



2.1. 부황의 요절과 어린나이 즉위 그리고 섭정


요안니스 3세의 적손이자, 테오도로스 2세의 외아들이다. 1250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하지만 1258년 8월 18일 테오도로스 2세가 간질로 인하여 요절을 하게 되자. 겨우 8세 나이에 즉위를 한다. 모후 불가리아의 이레네는 어린황제의 섭정을 위해서 요르요스 무잘론을 비롯한 무잘론 가문의 인사(요르요스스의 형제)를 섭정에 임명한다.

2.2. 무잘론 형제의 피살과 미하일의 찬탈


하지만 테오도로스 2세가 붕어하고 요안니스 4세가 즉위한지 겨우 9일만에 요르요스 무잘론과 형제들은 의문사를 당하고 만다. 이는 배후에 미하일 팔레올로고스(Michael viii Palaiolgos, Μιχαήλ Η' Παλαιολόγος, 1224~1282)가 관여하였다. 당시 미하일은 테오도로스 2세 치세 때 황제의 미움을 받아 견제를 받고있었다. 미하일은 요안니스 4세의 섭정단을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하고 만다. 그래서 요안니스 4세는 얼마 못 가서 같은 해 12월에 미하일을 공동황제로 임명을 하게된다. 미하일은 미하일 8세로 즉위를 하여 1259년 주변 국가들인 에페이로스 전제공국의 미하일 2세와 시칠리아 왕국 그리고 아케아-아시나 공국, 테살리아, 세르비아 왕국의 연합군대를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니케아의 공동황제인 미하일 8세가 대승을 거두고 만다. 그 뒤 1261년 8월 15일에 미하일 8세는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고 라틴제국을 멸망시켰다. 이에 미하일 8세는 선임황제의 지위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니케아에 있는 요안니스 4세를 찬탈을 하려고 했다.

2.3. 폐위와 그 이후의 여파


정통황제인 요안니스 4세는 결국 1261년 12월 25일에 미하일 8세에 의해서 실명의 형벌을 받고[1] 폐위를 당하여 비티니아의 마르마라 해 다키비제 요새에 감금되었다. 그러나 비록 죽음은 면하였지만 실명당한 채 40여년간을 유폐된 상태로 보낸 요안니스 4세는 안드로니코스 2세의 치세가 한창인 1305년에 사망하고 만다. 이는 미하일 8세에 반발한 기존의 니케아 지역의 민심 이탈과 라스카리스 왕조의 지지자들에게도 반감을 사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요안니스 4세로 참칭한 반란들도 일어났다. 결국 요안니스 4세의 폐위가 미하일 8세의 치세에 큰 결점 중 하나로 남기게 되어 외부적인 혼란뿐 만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되는 역사적 사건이 된다.

3. 참고


이탈리아 모데나 에스턴스 장서고(위키피디아 영문사전)

4. 현실 매체에서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동로마 황제로 플레이할 수 있다. 폐위된 뒤에는 눈을 잃고[2] 영지도 빼앗긴 채로 동로마 궁정의 가신으로 있는데 플레이어의 재량에 따라 다시 동로마 황제로 앉히려면 수도사(Monk) 칭호(Trait)을 치트로 떼고 영지를 분봉한 뒤 요안니스로 바꿔서 플레이하거나, 플레이할 생각은 없어도 다시 황제로 세우고 싶다면 초청이나 콘솔로 궁정에 초대한 뒤에 황위 요구 전쟁을 미하일에게 걸어서 이기면 된다. 그것도 싫다면 그냥 찬탈당하기 이전 시간대로 플레이하면 그만이다.
동로마의 황제로 회귀하다의 주인공이다. 여기서는 미래의 모든 일을 보고 온 요안니스가 다시 8살의 자신에 빙의되어 소산드라 쿠데타를 막아내고 니케아로 천도하며 훗날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오스만 제국의 시초인 부족을 각종 특별 대우를 해주며 제국에 편입시키는 등[3] 제국을 부흥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 그러니까 미하일 8세가 11살 아이의 두 눈을 파버린 거다.[2] 시각장애 트레잇 때문에 건강 수치 -1 패널티가 있다.[3] 이때 오스만 1세는 아직 어린 아이였기에 그 아버지인 에르투으룰을 대호군 직위에 임명하고(제국 관작의 35번째 서열로 원로원 출입이 가능한 가장 낮은 직급이다. 중앙 관작으로는 낮은 계급이지만 생판 인연도 없는 유목민에게 원로원 출입권, 즉 중앙 정계 진출권을 준 것이다.)그를 통해 유목민들의 정착 사업 및 제국군 입대사업을 추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