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나라

 


1. 소개
2. 역사
3. 여담


1. 소개



중국서주 시대와 춘추시대에 존재했던 나라.

2. 역사


무왕(주)은 할아버지(주문왕의 아버지 계력)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떠난 큰할아버지 태백(太伯)과 작은할아버지 중옹(仲雍)의 자손을 찾아다녔다. 마침 당시 (吳)나라 군주였던 주장(周章)을 찾아내서 그의 동생 우중(虞仲)을 봉해 우나라가 되었다. 작위는 공작이었는데 지금의 산서성 평륙현에 있었다. 주나라 초기에 (芮)나라와 영토를 두고 싸우기도 했다.
춘추시대에는 (晉)과 괵(虢)[1] 사이에 위치한 소국이었는데, 인접한 소국 괵(虢)과 가까웠지만, 기원전 655년 진(晉)의 가도멸괵 작전으로 멸망했다. 진나라가 우나라에 사자를 보내 단지 괵나라만 칠 뿐이니 길을 열어달라며 재물을 가득 보낸 것이다. 우나라 공은 재물에 눈이 멀어 기꺼이 길을 열어주려고 했는데, 궁지기(宮之奇)라는 신하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간언을 하며 결사반대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먼 우공은 결국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주었고 궁지기는 식솔을 데리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그리고 궁지기의 예측대로,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면서 우나라를 통과하던 진나라 군은 갑자기 우나라마저 공격하여 이 나라를 멸망시켰다. 재물에 눈이 멀었던 우나라 공은 포로가 되어 거지 꼴로 진나라로 압송되어 머나먼 한지로 유배됐고 거기에서 비참하게 죽었다고 한다.

3. 여담


당시 우나라에서 진(晉)의 속셈을 알아챈 신하는 궁지기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는데, 그 신하는 자기가 간해도 임금이 듣지 않을 줄 알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우나라가 멸망한 뒤 우여곡절 끝에 진(秦)에 들어가 벼슬을 했는데, 그가 바로 진목공을 도와 패업을 달성하고 그 이후부터 진나라는 확고한 강국으로 자리잡게 한 오고대부 백리해(百里奚)다. 결국 우나라가 멸망한 덕택에 진(晉)이 가장 이익을 본 듯하지만, 사실은 (秦)이었던 셈.
[1] 서괵(西虢)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