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송

 

虞松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숙무(叔茂). 변양의 외손자.
진류 사람으로 20세에 재능으로 소문이 나고 238년에 사마의의 요동 정벌에 참전해 사마의의 명령으로 격문을 만들었으며, 공손연을 토벌하자 승전보를 알리고 귀환한 후에는 사마의로부터 연에 벽소되었다. 24세에 중서랑을 지내다가 여러 차례 옮겨서 태수까지 지냈다.
중서령을 지내 사마사의 명을 받고 상소를 만들었지만 번번이 사마사의 뜻에 맞지 않아 근심하다가 종회의 도움을 받았는데, 사마사가 상소를 받고 누가 한 것이냐 묻자 종회가 한 것임을 알려주고 사마사가 종회의 능력에 대해 묻자 박학하면서 식견에 밝고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칭찬했다.
252년 봄 정월에 사마사가 대장군, 시중, 도독중외제군, 녹상서사 등에 임명되면서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는 일이나 백성을 구제했으며,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관직에 쫓겨난 것을 바로잡고 여러 장수들을 도독으로 삼고 인재를 뽑는 일을 맡도록 했다. 또한 계책을 논의하는 일을 마련하자 우송은 부하와 함께 계책을 논의하는 일에 참여했다.
253년 여름 5월에 오나라의 제갈각이 합비신성을 포위하고 촉나라의 강유가 출격해 북쪽의 길을 포위하면서 사마사가 계책에 대해 물었는데, 우송은 제갈각에 대해서는 정예로 공격하고 있지만 결국 성을 얻지 못하고 피로해서 패주할 것이라 했다. 강유에 대해서는 많은 군사가 있지만 제갈각에게 호응해 보리를 빼앗으려는 것일 뿐이고 동쪽에서 힘을 모으면 서쪽이 텅빌 것이라 생각해 지름길로 나아간 것이며, 관중의 여러 군대에게 그 곳으로 가게 하면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달아날 것이라 했다.
사마사가 우송의 말대로 대응하기 위해 서쪽에는 곽회, 진태 등을 보내 강유를 농서로 물러나게 했으며, 제갈각이 장특에게 합비신성에서 막히면서 오나라의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정묵에게 고전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 원전과 후세에 붙여진 것이 구분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들로는 우준이 있고 자는 현홍으로 진나라에서 정위를 지냈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청의 엑소시스트메피스토 펠레스로 패러디 되었는데, 사마사오쿠무라 린으로 패러디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오군, 촉군에게는 약점이 있다면서 사마사가 그들이 제대로 된 준비를 하고 있지 못 한것을 깨닫게 했으며, 사마사가 오군은 동흥 전투 이후에 반 년이 지나지 않아 수십 만의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이라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자 우송은 촉군도 마찬가지라면서 비의가 사망한 후에 제갈각의 진군에 맞춰서 서둘러 움직인 것이라 했다. 사마사가 저들이 바라는 것은 속전속결이라 하자 우송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된다면서 장기전을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