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야놉스크급 항공모함
1. 개요
소련 해군의 항공모함 설계안 '''울리야놉스크급 항공모함(Aтомный Tяжёлый Aвианесущий Kрейсер «Ульяновск»)'''.
냉전 당시 미국 해군의 해양지배력에 도전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그러나 소련 붕괴로 인해 프로젝트 자체가 날아가버린 8만톤급 대형 항공모함 프로젝트이다. 함명은 소련의 국부 블라디미르 레닌의 고향인 울리야놉스크에서 따왔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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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렐(Orel)급 항공모함
핵만능론에 입각해서 군비확충에 회의적이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재래식전력 확대론을 주장하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이후 소련도 본격적으로 해양전력의 건설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열세인 항공모함 전력의 확보를 위해 소련은 1975년 프로젝트 1153 오렐(OREL)을 준비했다. 이는 1972년 취역한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에 자극받은 것으로 오렐은 초기에는 85,000톤급의 대형 함체에 핵추진을 기반으로 하고 캐터펄트방식이며 함재기는 약 70여 기를 운용하므로 항공모함 기준으로 보면 본격적인 대형 항공모함으로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함미사일 24발도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비용 문제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계획은 제대로 건조도 못한 채 취소되었다.
이후 80년대 초, 냉전이 심각해지면서 소련군은 다시 한 번 미 해군에 맞설 슈퍼 캐리어의 확보 필요성을 절감하여 과거 폐기했던 프로젝트 1153의 구상을 기반으로 한 소련군 최초의 슈퍼 캐리어를 건조하기로 했으니 그것이 바로 울리야놉스크급이다.
3. 스펙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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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점프 방식의 발진 포인트 2곳과. 캐터펄트 방식의 발진 포인트 2곳 등 도합 4곳의 발진 포인트가 보인다.
울리야놉스크급은 특이하게도 스키점프대와 캐터펄트를 모두 운영하도록 설계되었다.[1] 캐터펄트의 신뢰성 문제 때문으로 보이고,예정대로 추진했으면 사실상 소련 해군이 갖게 될 최초의 제대로 된 항공모함이었다. 규모는 여전히 85,000톤급으로 니미츠급보다 작지만 당시 아직 현역이었던 포레스탈급 항공모함보다 컸다.
하지만 미 해군의 항모전단을 결성할 능력이 없었던 소련 해군은 이를 커버하기 위해 자체적인 무장을 갖출 예정이었다.[2] 쿠즈네초프에 채워진 그라니트 미사일(똑같이 12발)은 물론, 함 가장자리에 다수의 원형 VLS(개당 8셀)이 장착되었다. 그래도 크기 자체가 쿠즈네초프보다 거대하여, 함재기 총량은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함재기로는 Su-33과 MiG-29K 합쳐 44기, Ka-27 대잠헬기 16기, Ka-27의 해상수색정찰형 2기, 그리고 Yak-44 조기경보기 6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특히 Yak-44는 소련군이 울리아노프스크급 운용을 위해 새로이 개발을 시작한 함상 조기경보기였는데(외형은 미국의 E-2와 매우 닮았다), 그 전의 소련군의 항공모함과 항공순양함들은 헬기를 조기경보기로 운용하고 있었다.
이들 항공기의 운용을 위해 50톤급의 항공기용 엘리베이터 3기가 함 내부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어디까지나 소련에 유리한 대체역사를 구상한다면 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 여러 척과 편제한다면 미 해군에 대적할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러나…
4. 역사속에 잠들다
1번함은 1988년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건조를 시작했으나, 이미 소련의 재정은 무리한 군비경쟁 및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여파로 박살난 상태여서 제대로 건조가 될 리 없었다. 결국 몇 년 뒤 소련이 자멸하면서 1991년 11월 1일 건조가 중단, 프로젝트는 취소되었고[3] 선체는 스크랩 처리되었다. 예정대로였다면 1995년 진수되었을 것이다.
소련군은 일단 한 척을 건조한 다음 동형함의 추가건조냐 혹은 새로운 항공모함의 설계냐를 결정하려 했으나 일설에 따르면 소련이 망하지 않았다면 최대 8척을 건조하려 했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군 지휘부의 희망사항일 뿐이라 그냥 1척만 끝내고 쫑했을 수도 있다. 물론 스키점프대 방식이 아니라 캐터펄트 방식이라면 제대로 된 항공모함 효과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연습용 항공모함으로의 역할로서 끝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