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봉해상록

 

1. 개요
2. 내용
3. 구성
4. 의의


1. 개요


月峯海上錄.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던 정희득(鄭希得)이 지은 일기.

2. 내용


전라남도 함평 사람이던 정희득은 1597년 일본의 침략 때 가족과 친척이 함께 뱃길로 피난을 떠났다가 1597년 9월 27일에 일본군에게 잡혔다. 잡힐 때, 어머니형수, 아내와 누이동생이 바다에 빠져 자결하였는데 정희득 형제 등은 왜군에게 먼저 제압당해 묶여있는 상태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함께 잡혔던 아버지와 두 아이는 왜군이 놓아 보내 주고, 정희득은 형 정경득(鄭慶得), 집안 사람인 정호인(鄭好仁) 등과 함께 일본 아파주(阿波州) 도쿠시마성(德島城)으로 납치되었다.
이후 1598년 11월 22일에 도쿠시마성을 출발하여 귀국길에 올라 12월 22일에 대마도에 도착한다. 그러나 대마도주의 허락을 받지 못해 6개월 가량을 억류 당한 끝에 1599년 6월 17일에 대마도를 출발하여 6월 29일에 부산에 도착하고, 고향인 함평에는 7월 20일에 도착했다.

3. 구성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1에는 소(疏), 풍토기(風土記), 일록(日錄)이 실려 있고 권2에는 시(詩)가 실려 있다. 소는 자적왜중환박부산일봉소(自賊倭中還泊釜山日封疏)와 진하소(陳賀疏)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자적왜중환박부산일봉소는 일본에서 부산에 도착한 후 조정에 올리기 위해 쓴 상소문으로 작자가 납치되었을 때부터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상황을 요약하고, 일본의 정세 등을 서술한 것이다. 풍토기는 부일본총도(附日本總圖)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일본의 지리, 역사, 풍속 등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일록과 시는 중요한 문학작품으로, 일기 형식으로 기록된 실기인 해상일록(海上日錄)은 피난을 떠나던 날인 1597년 8월 12일부터 고향에 돌아와 장모님을 뵙고 아이를 만나던 날인 1599년 7월 28일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분량적인 면에서도 풍부하고, 체험과 정서가 잘 드러나 있으며 모든 기록이 산문으로, 그날그날의 체험이 감정을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특히 간양록에는 피란을 떠나는 과정이 많이 요약되어 있고, 금계일기는 앞과 뒤가 전해지지 않은 채 4개월 여의 기록만 남아 있다. 이에 반해 월봉해상록의 해상일록은 피난을 떠나는 날부터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어 피난의 시작부터 상세히 볼 수가 있다.
권2에는 정희득의 시 오언절구, 칠언절구, 배율, 장편 등 460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시들이 실려 있다. 해외체험 동안의 심정을 표현한 시가 대부분으로, 금계일기를 지은 금계 노인 및 함께 생활했던 형 정경득, 동료들과의 차운시도 실려 있으며, 일본인에게 준 시도 실려 있다. 일기에 기록된 일이 시로 표현되어 있어 어느 날의 일이 시로 표현 된 건지 확인할 수 있다.

4. 의의


정희득은 일기 내내 슬퍼하고 우는 등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어, 다른 작품과 다른 특성을 지닌다. 또한 월봉해상록에는 피난을 떠나는 날부터 고향에 돌아오기까지의 전 과정이 담겨 있어, 해외체험과 관련한 전체 노정을 모두 다 볼 수가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정희득의 형 정경득, 집안 사람 정호인도 각각 해외체험 포로실기 만사록(萬死錄)과 정유피란기(丁酉避亂記)를 남겼으며, 이 셋을 서로 대조해 당시 일본에서의 포로 생활을 더욱 생생하고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임진왜란기에 조선에서 만들어진 해외체험 포로실기의 대표 5대 작품인 간양록, 금계일기, 만사록, 월봉해상록, 정유피란기 중 하나로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도 그 모든 것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소중한 기록유산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