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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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서주 시대 제후국 위(衛)나라의 초대 군주. 주문왕의 삼남. 무왕(주)의 친동생. 그는 삼감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위(衛)나라의 백작이 되어 위나라를 잘 다스렸다고 전해진다.[1] 위강백의 아버지.
2. 생애
2.1. 초기
그는 주 문왕과 태사 사이에서 난 9번째 아들이다. 주 문왕이 죽고 백읍고 또한 상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차남인 주 무왕이 뒤를 이었다.
주 무왕 원년(기원전 1046년), 주 무왕이 목야전투에서 상나라를 이겨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워 천하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정권 안정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신하들과[2] 종실 선현의 후손들을 분봉했다. 그리고 강숙을 강(康) 땅에 봉해 봉지를 내렸다. 그리하여 강숙이라 불리는 것이다. 당시에 주 무왕이 채숙도, 곽숙 처, 관숙 선을 삼감에 봉해 주왕의 아들인 무경을 감시하게 했다.
2.2. 삼감의 난을 진압하다
주 무왕이 죽고 성왕(주)가 즉위했는데, 주 성왕은 나이가 어려 정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으므로 주공단(周公旦)이 섭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감이 이에 반발해 주공 단을 모함하고 끝내는 이들이 무경과 짜고 반란을 일으키니 이것을 삼감의 난이라고 한다. 이것이 주 성왕 2년의 일이었다.
주 성왕 4년, 주 성왕의 명령으로 삼감의 난을 주공 단이 진압할 때[3] 강숙 봉이 거기에 참여했다. 그 결과 무경과 관숙 선은 처형당하고, 채숙 도는 유배되었으며, 곽숙 처는 서민으로 강등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주공 단은 주 성왕을 대신해 강숙 봉을 위(衛)나라에 봉했다. 그 땅은 상나라 수도 조가 일대였다. 그리고 그에게 상나라 유민을 감시하는 책임을 맡겼고, 영역은 대력 삼국지의 연주, 기주, 예주의 일부 정도로 제법 크게 봉해졌다.
2.3. 위나라에 분봉받은 뒤
주 성왕 7년, 주 성왕이 성인이 되자 주공 단은 섭정이 아닌 신하로서 정사를 돌보게 되었다. 주 성왕은 위 강숙을 사구로 임명해 법을 집행하니 범죄율이 줄어들고, 선한 행실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주나라 정치는 안정되었다. 그리고 위나라 국내에서는 백성들을 화합시키고 안정시키니 백성들이 기뻐했다고 한다. 그가 죽고 그 뒤를 아들인 공자 무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 강백이다.[4]
[1] 훗날 그 자손인 위무공이 강숙의 정치를 해서 나라를 강하게 했다는 말이 있다.[2] 대표적인 사례가 제(齊)나라의 시조인 강태공이다.[3] 그러나 주 성왕이 어리므로 사실상 주공 단의 뜻이라고 봐야 한다.[4] 위 숙봉이 강 땅에 봉해져서 강백이고, 위 강백은 시호가 강이라서 강백이라 불리는 것이니 헷갈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