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

 


1. 개요
2. 상세
3. 번역


1. 개요


[image]
Übermensch
Overman
구 명칭: '''초인()''' / 신 명칭: '''극복인()'''
위버멘쉬란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의 근본 개념이다. 탈아의 도덕을 뛰어넘어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2. 상세


위버멘쉬란 어원으로 볼 때 넘어선(über) + 사람(mensch)을 뜻한다.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사람을 낙타, 사자, 어린이의 세 단계로 분류했는데, 위버멘쉬는 어린아이와 같은, 끊임없는 긍정을 통하여 삶을 긍정하고 즐기는 인물이라 한다. 이는 기존의 사상이나 견해들, 성聖과 속俗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사람을 뜻한다. 그 예로서 니체는 자신의 저서 《우상의 황혼》에서 나폴레옹을 위버멘쉬로 서술한다.[1] 니체 자신은 플라톤의 존재론이나 인식론 그리고 윤리론에 반대하고 있으며 칸트의 미학적 관점에서도 반대한다.
다시 말해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경외를 잃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산출해내는 천재를 뜻한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는 이른바, 도덕군자가 아닌, 나폴레옹, 체사레 보르자와 같이 윤리도덕에도 얽매이지 않는 결단력과 과격한 행동을 갖춘 존재로 볼 수 있다. "비극적 상황에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고 기존의 가치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사람.
덧붙여서 선악의 근거나 절대성이 없다고 파악한다 해서 모두 위버멘쉬는 아니다.[2] 아무리 선악의 절대성을 부정하더라도 자신의 독자적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지 않는 이상, 니체가 그토록 우려한 허무주의자밖에 못 미친다.

3. 번역


“니체는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이념과 신앙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생의 의미’는 이 땅 위에 있다고 했죠. 그런데 ‘초인’(超人)이란 번역어는 그 본래의 뜻을 왜곡하고 말았죠. 니체는 초월적 존재를 반대했는데 말이죠. 독일어 ‘위버멘시’는 형이상학적 미몽에 쌓인 지금의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도 미국에선 ‘수퍼맨’, ‘오버맨’으로, 우리말에선 초인으로 바뀌었어요.” #

일본에서는 이 개념을 초인(超人)으로 번역하여 한자문화권에서는 오랫동안 초인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초인하면 대부분 '슈퍼맨' 같이 엄청난 힘을 지닌 초능력자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형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에선 독일어 독음 그대로 '위버멘쉬'라고 번역하는 추세다.
그러나 위버멘쉬로 번역할 경우, 니체 사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학문적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어도, 독일어를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지 않는 일반인에게는 낯선 개념일 뿐만 아니라 철학하기의 생활화나 대중화라는 취지에 다소 멀어지는 측면이 있다.[3] 니체 편집 위원 중 한 명인 김정현 교수도 역시 이를 염려하여 위버멘쉬를 '극복인'으로 번역했다.[4][5] 그럼에도 '초인'이라는 번역이 워낙 강렬하기도 하고, 음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 초인으로 번역하는 걸 고수하기도 한다.
결국 어떤 번역이든 간에 니체 철학에서 말하는 '초인(Übermensch)'이 흔히 생각하는 '초인'과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유의하며 읽는 것이 중요하다.
[1] 《우상의 황혼》, '나의 천재 개념'[2] 예를 들어 조조가 선악에 상관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서주 대학살을 일으킨 자행이 위버멘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핏빛 자오선판사 홀든도 역자 후기에 니체적 초인이라 병기하나 이 역시 같은 사례다.[3] 전성택, 「니체의 극복인(Übermensch)과 삶의 예술 」, 2010[4] "니체의“Übermensch”는 지금까지 ‘초인’으로 번역되어왔다. 그러나 초인이라고 번역할 경우, 신의 죽음 뒤에 신의 자리를 대신할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로 이해될수도 있다. 영미권에서도 카우프만은 이와 같은 오해 가능성 때문에 이를 'superman'에서 'overman'으로 바꾸어 번역했다. 국내에서는 이 용어를 그대로 음역하여 ‘위버멘쉬’로 사용한다. 이는 니체의 철학 개념을 이해할 때 원어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독일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 의미 내용이 전달되기 어려운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 이 용어 번역의 타당성은 니체의 인간학 전체에 대한 포괄적이고 상세한 논의를 통해 앞으로 밝혀져야 할 과제인데,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 용어를 ‘극복인’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5] 김정현,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책세상, 2010, 39-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