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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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살해자 중의 살해자인 우리는...
― 즐거운 학문(1882) 中
19세기에 활동했던 독일 철학자, 시인, 음악가[2] , 문헌학자, 문화 비평가, 심리학자, 계보학자. 그가 주장한 주요 철학적 사상에는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3][4] , 신은 죽었다[5] , 운명을 사랑하라[6] , 영원 회귀[7][8] 등이 있다.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의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의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니체가 원했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제1장 中
특유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대륙철학,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대륙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9] 마르크스,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와 더불어 현대 인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 시대 지식인들이 얼마나 정직한지를 확인하려면 그들이 마르크스와 니체의 이론적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마르크스와 니체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학자는 진실되지 못하다는 말로, 니체가 당대에 끼친 지성사적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발언이었다.[10][11]
특유의 공격적 비판으로 인해 오인되기도 하지만,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며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12] 그러한 까닭 중 하나는 니체 특유의 서술 방식이다. 그의 저작은 대부분 압축적이고 강렬한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지며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13] 하지만 실제 성격은 온화하고 유머를 좋아했으며 사교성이 있었다고 한다.
2. 생애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프로이센 왕국의 뢰켄에서 태어났다.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와 생일이 똑같다는 이유로 '프리드리히 빌헬름'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다만, 니체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니체는 프로이센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를 끔찍하게 여겼기 때문에 프로이센 왕가에 대한 감정도 그다지 좋은적이 없다."나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생일에 태어났다. 이 때문에 나에게는 한없는 슬픔을 안겨준 사건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나에게 '프리드리히' 라는 이름을 안겨준 일이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면 생일이 휴일이었다는 점뿐이다."
니체의 가정사는 좀 불운했다. 어려서 그는 루터교 목사였던 아버지와 역시 목사 집안 출신이었던 어머니, 여동생 엘리자베스, 어린 남동생 요제프, 할머니, 미혼인 두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니체가 5살 때 뇌연화증으로 죽었고, 몇달 후 동생 요제프까지 병으로 사망했다. 이 두 죽음은 니체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니체는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다. 니체가 알기로 그의 아버지는 매우 지적이면서, 열정적이고, 가볍기도한 니체 본인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의 집안 여성들은 하나 같이 매우 진지하고, 무겁고, 절제하며, 엄격한 전형적인 북독일 루터교인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자라다보니 니체는 마음대로 생각할 자유로움이 없었다며 강한 원망을 품었다. 이러한 경험은 니체의 철학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작곡 활동이나 시를 짓는 등 음악과 언어에 재능이 있었다. 청년이 된 니체는 1864년, 본 대학교에 진학해 신학과 그리스 고전 문헌학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본 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게 된다. 2학기가 지난 1869년, 학생신분이었던 그는, 불과 24세의 나이에 바젤 대학교 문헌학 교수가 되었는데, 심지어 이 때의 니체에게는 아무런 학위도 없었다. 바젤 대학교는 이례적으로 학위 논문 심사를 거치지도 않고 라이프치히 대학을 통해 니체에게 박사학위를 주었고, 바로 한 달 뒤 니체는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서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니체는 그 대학의 최연소 교수가 되었다. 바젤 대학교 문서에 따르면, 리츨(F. W. Ritschl) 교수의 추천과 니체의 문헌학에 대한 특출난 재능 때문에 이러한 이례적인 결단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가 바젤대 교수가 되면서부터 니체는 인근에 거주하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깊은 친분을 맺으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바그너와 니체는 쇼펜하우어에 대한 토론으로 날을 지새우기도 했다.[14] 바그너와의 교류는 그가 문헌학자에서 철학자로 전환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니체는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깊게 반영하여 작곡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크게 감복한다. 니체는 1870년부터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구상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발전시켜 1872년 "비극의 탄생"을 완성했다. 그는 이 "비극의 탄생"을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의무병으로 종군했다. 그러나 병으로 귀환했고, 이후 죽을 때까지 병에 시달렸다. 다만 이 때 얻은 병 때문에 니체는 보다 치열하게 고민을 할 수가 있었고, 니체 본인도 자신의 병환을 하나의 축복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1870년대 중반 즈음에 바그너가 점차 데카당스, 독일 제국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여긴 니체는 1876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보고 회의를 더해갔다. 니체는 사실상 이때부터 바그너와 정신적으로 결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그너 부부에게 부모와도 같은 정을 느꼈던 니체는 결별 선언을 미루었다. 결국 1882년 바그너 최후의 작품인 파르지팔을 보고 니체는 바그너가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여기고,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던 바그너 부부를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결별을 선언한다.
1879년 건강 악화로 교수직을 사임했다. 이후 10년간 유럽을 떠돌며 자신의 주요 작품을 집필했다. 그는 1889년 1월 3일[15] 을 기점으로 정신이 나갔는데, 마부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보고는 울면서 그 말을 감싸안다가 넘어졌다.[16] 이날 작성된 편지[17][18] 를 보면 그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 날은 니체가 제정신을 가진 마지막 날로 사실상 그의 기일이다. 그의 정신착란을 두고 한 때 매독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었던 때가 있었다. [19] 하지만 최근에는 의학적 고찰을 통해 나온 많은 논문에서, 뇌종양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20]
말년엔 정신 발작으로 몸과 마음이 더 쇠약해져 10년 동안 부모님과 여동생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었다. [21] 그 뒤 병이 악화되어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니체는 평생 독신이었다. 1882년 친구의 소개로 루 살로메라는 지적인 여자와 친분을 맺고 청혼했으나 차였다. 그녀는 그저 니체의 철학을 사랑했을 뿐이었다. 루 살로메의 회고에 의하면 니체는 자신보다 17살이나 연상이었다고...
3. 사상
>사람은 압도적인 힘[22] 을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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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놀》 中
- 자기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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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학문
여기서 쓰인 긍정(Bejahung)이란 부정의 반댓말이다. 즉 확인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귀족주의자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의미의 귀족주의가 아니라 "정신의 귀족주의"를 말한다. 본인도 '어떤 사람이 귀족인가 아닌가'는 '어디에서 왔는가'(=혈통)가 아니고, '어디로 가는가'로 분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귀족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달리 말해 자기 자신의 의욕을 긍정하는 인간이며, 또 자신의 의욕을 이루기 위해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는 인간과 도덕을 두 부류; 노예와 귀족으로 나눈다. 노예는 사랑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아서, 되도록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주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다. 반면에 귀족은 자신의 욕망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챙긴다. 또한 노예는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노예의 주인이다. 귀족은 노예와는 다르게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잘못되더라도 기꺼이 책임을 진다. 따라서 니체는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마음껏 드러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려는 사람을, '정신의 귀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 #2 안티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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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랑 속에서 모든 것이 협력해 선을 이루게 하는 신, 행복과 마찬가지로 덕을 우리에게 주거나 빼앗으면서 전체적으로는 항상 올바르고 선하게 진행되게 하고 우리가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비난할 아무런 근거가 없게 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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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신성으로까지 높여진 체념과 겸손ㅡ 이것이 여전히 기독교에 남아 있는 최상의 것이자 가장 생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는 기독교가 부드러운 도덕주의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 자유, 불사'가 아니라, 오히려 호의와 절도 있는 법도, 그리고 호의와 절도 있는 법도가 세계 전체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남게 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안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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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놀, '기독교가 죽어가는 침대에서'
독수리가 토끼를 사냥하는 상황을 보자. 토끼는 자신을 죽이는 독수리를 '악'으로 보고 그것을 감내하는 자신을 '선'으로 볼 것이지만, 독수리는 토끼를 선과 악으로 보지 않고 단지 좋아하는 음식으로 볼 것이다. 여기서 선악을 구분하는 토끼의 마음은 '노예도덕'이고, 선악의 구분없이 단지 호불호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독수리의 마음은 '주인도덕'이다. 즉, 토끼와 같은 약자는 자신의 감정을 '사랑과 희생'으로 몰아넣고, 이를 '선한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독수리와 같은 강자는 굳이 '선'해지려고 마음을 먹지 않으며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행할 뿐이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는 노예도덕이다. 현세가 아닌 죽음 이후의 천국과 종말론에 의지하여 도덕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지상에서의 삶을 희생시키고 금욕주의적인 삶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욕망의 긍정을 말하지 않고, 자기부정을 가르치는 기독교를 때려부숴야 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소리의 울림마다 사탕처럼 달콤한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약한 것을 좋음으로 위조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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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하지 않는 무력감은 '선'으로 바뀝니다. 불안한 천박함은 '겸허'로 바뀝니다.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순종'으로 바뀝니다. 약자의 비공격성, 약자가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비겁함 자체, 그가 문 앞에 서서 어쩔 수 없이 서성이기만 하는 것은 여기에서 '인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미덕이라고 까지 불립니다. 복수할 수 없는 것이 복수하고자 하지 않는 것으로 불리고, 심지어는 용서라고 불리기까지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한 '적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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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밀담자와 구석에 있는 화폐 위조자들이 모두 이미 서로 따뜻하게 의존하며 웅크려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들은 가련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련함이 신에 의해 선택받은 영예이며, 마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개를 때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내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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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의 계보학>
- #3 도덕관
- #4 예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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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동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나 감정의 격렬한 방출을 통해 위험한 감정에서 자기를 정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ㅡ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이해했지만ㅡ
>
>쇼펜하우어는 '의지로부터의 해방'을 예술의 총체적 의도라고 가르쳤고, 체념시키는 것을 비극이 갖는 중대한 유용성이라며 경외했다. 그런데 이것은 염세주의자의 시각이며 사악한 시선이다. 우리는 예술가 자신들에게 물어보아햐 한다. "비극적 예술가는 자신의 무엇을 전달하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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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끔찍한 것과 의문스러운 것[24] 앞에서의 공포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 상태 자체가 지극히 소망할 만한 것이다. 이런 상태를 알고 있는 자는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그가 예술가라면 그는 그 상태를 전달하며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강력한 적수 앞에서, 커다란 재난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문자 앞에서 느끼는 용기와 자유ㅡ 이런 승리의 상태가 바로 비극적 예술가가 선택하는 상태이며, 그가 찬미하는 상태이다. 비극 앞에서 우리 영혼 내부의 전사가 자신의 사티로스의 제의를 거행한다. 고통에 익숙한 자, 고통을 찾는 자, 영웅적인 인간은 비극과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찬양한다 ㅡ 오직 그에게만 비극 시인은 그런 가장 달콤한 잔혹의 술(비극)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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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의 황혼>
니체의 예술철학(미학)에서 특기할만한 점이라면 그리스 비극의 지향과 데카당스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당스란,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적인 조형 그 자체를 탐닉하는 예술을 말한다. 즉, 고통으로 가득찬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상태이다. 니체에게 이러한 예술관은 노예도덕을 정당화하는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데카당스 예술에 맞서는 그리스 비극의 정신을 추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아폴론적인 정신(이성)과 디오니소스적인 정신(광기)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실을 반영하는 디오니소스적 광기가 아폴론적 이성에 의해 조화롭게 포장된 것'이 그리스 비극이다. 아폴론적 이성은 디오니소스적 광기가 스스로 파멸로 빠지는 것을 막으며, 디오니소스적 광기는 아폴론적 이성이 현실의 삶을 마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막아서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비극 속 우연성, 한계성, 불합리성 등을 통해 논리적 이성으로는 도저히 건드릴 수 없었던 삶의 생생한 고통을 마주볼 수 있으며, 또한 이것에 도취되어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의 정신을 보다 더 높은 단계로 고양시킬 수 있다. 따라서 삶의 고통에 대한 묘사는 바로 삶의 대한 찬미이며, 이를 보여주는 예술이야말로 자기긍정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만을 중시하는 소크라데스를 거치면서 디오니소스적 광기는 사라져버리고 그리스 비극은 몰락했으며, 이를 계승한 기독교 전통에서 예술은 더욱더 상징화되어 현실의 삶과는 상당히 멀어져버렸다. 따라서 그리스 비극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건강했던 삶을 다시 되돌려놓는 길이며, 니체는 이러한 비극의 모습을 바그너의 초기 음악작품 속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 #5 이분법의 지양
- #6 정의론
>니체는 오버베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져 "그전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고도 했다. 자신을 폭발할지 모르는 기계라고 말한 그는 정말로 8월 초에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 이분법을 떠올린 이후 처음으로 폭발적인 생각들을 떠올렸다. 실바플라나 호숫가에서는 그가 나중에 '차라투스트라 바위'라고 부른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영원 회귀 사상'을 생각해냈다.
>
>《니체의 삶》
- #7 역사적으로 철학하기
- #8 계보학
- #9 형이상학으로 형이상학을 비판
4. 영향력
니체는 20세기 지성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가이며, 그의 사상은 21세기의 오늘날에도 그 사상적 중요성과 적시성으로 인해 여전히 철학적 담론의 중심에 서 있다. 니체의 영향으로 이성 중심의 학문들(모더니즘)은, 감정적이고 실험적인(아방가르드) 시도들의 학문(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모했다. '이성' 중심은 감성이나 표현 중심으로, '주류' 중심은 비주류나 다양성 중심으로, '다수' 중심은 '개인'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들은 수많은 이론과 사조를 만들어내며 꽃을 피웠다. 이는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학·음악·미술·무용·건축·정치학·사회학·신학·심리학/심리치료이론 등 정신사와 문화사 전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니체는 처음에 시인, 철학자 혹은 예술가, 철학자로 이해되었다. 니체 사후에 학계는 니체에 대해 침묵했으나 1940년 전후 하이데거에 의해 니체는 서양 형이상학 전통으로 등재된다. 이후 1960년대 프랑스에서 니체는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19세기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이 때, 니체의 사상은 철학 이외에도 사회학, 신학, 심리학, 문학, 음악 그리고 조형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용되면서 20세기의 철학자로 우뚝 떠올랐다. 1960년대 이후 구조주의의 그림자를 밟은 일군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니체만 아는 니체'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니체가 모르는 니체'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헤겔 이후에 새로운 철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근거였다. 그 답변들이 1980년대 이후 국내 학자들에게도 적극 수용되었다. 하이데거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은 니체와 함께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호출했다. 라캉은 프로이트를,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푸코와 질 들뢰즈 그리고 데리다는 니체를 불러냈다. 이 탈근대 사상가들은 저마다 다른 무기를 통해 유럽 모더니즘의 척추인 기원과 중심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들뢰즈는 니체의 망치를 들고 프로이트를 가격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본주의의 반인간적인 측면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의상을 입고 지구촌 정신사의 무대에 출현하고 있다. 현대 정신사의 최전선이나 역사적 사회적 현장에 니체가 나타나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가 해석되어 나타나는 모습은 매우 다양해서 언뜻 보기에 그의 사상이라 단언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자세히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이성적 권위를 해체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 가운데는 서양 근대문명의 병리현상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자본주의, 인간 왜소화 현상 등 서양 근대이념과 제도, 근대문명을 비판하는 모습도 있고, 권력화되고 세속화된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인간의 노예근성을 철저히 해부했으며, 점차 속물화되고 천민화되는 현대 인간에게서 정신적 깊이와 인간적 품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주창자로 니체를 읽기도 하고, 인간 영혼의 내부를 최초로 심도 있게 해부함으로써 현대 심층심리학의 이론적 원형을 제공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니체를 인간 사유의 한계를 깨뜨리며 사유기호의 자유로운 놀이세계를 열어 놓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또는 우주적 무아(無我)를 주창함으로써 자기 자각을 추구하는 서구적 불교사상으로 읽기도 한다.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니체를 자신들의 지적 선구자로 제시한다. 그러나 니체는 체계적인 철학을 추구하기 보다는 비체계적 관점주의를 선호하였고 모든 전통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였다. 사실 니체가 제시하는 흥미로운 주제들 중 몇몇은, 그들의 관심사와 일견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니체의 사유 철학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불리던 후기구조주의로 불리던 간에 20세기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니체의 반이성주의적 성향을 계승하면서 전통적 진리에 대해 비판하는 니체를 원하였고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강조하는 니체를 원하였다. 그들은 니체철학의 주제인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허무주의, 위버멘쉬 등에 초점을 맞춰 니체의 텍스트들을 해석의 전거(典據) 또는 대상으로 삼았고, 니체를 각자의 철학적 입장을 개발하는데 이용했다. 전통 형이상학의 이항 대립적 사고방식의 가정들에 도전하였고, 차별성과 이질성을 선호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비판적 기획을 개발하는데 니체를 참고하고 니체로부터 영감을 얻어나갔다.
- 음악
- 미술
제1차 세계대전을 초래한 서양문명을 비판하며 합리적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회의를 품고 삶의 개혁을 추진하며 일상의 예술작품을 보여준 반(反)예술운동으로서 다다이즘(dadaism)도 실상 니체의 그늘에 있었다. 바실리 칸딘스키(V. Kandinsky), 파울 클레(P. Klee), 프란츠 마르크(F. Marc), 가브리엘레 뮌터(G. Münter) 등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그룹의 표현주의 작가들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E.L. Kirchner), 에리히 헤켈(E. Heckel) 등 다리파(DieBrücke) 화가들은 그 예술모임의 명칭을 <차라투스트라>에게서 빌려 왔다. 이들의 뒤를 이어 나온 뭉크(E. Munch)는 시대적 불안이나 병리현상 및 그것을 극복하는 빛과 힘, 에너지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딕스(O. Dix)는 전후(戰後) 일상의 어두운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추의 미학을 표현주의적으로 묘사했다.
니체는 더 나아가 초현실주의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앙드레 브르통(A. Breton)은 자아의 생성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열과 경련의 아름다움을 그려냈고, 몸의 리비도가 정신화되어 세계로 유출되는 과정을 수수께끼 같은 영상적 언어로 표현한 살바도르 달리(S. Dalí)는 아리아드네, 마스크, 기만, 관점주의, 가치전도, 놀이 등 니체적 주제를 변주하며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그려냈다. 조르조 데 키리코(G. de Chirico)는 니체에 의존해 자신의 ‘형이상학적 회화’를 만들어냈으며, 막스 에른스트(M. Ernst)는 가면과 정신을 통해 인간의 이면을 탐구했고, 안드레 마송(A. Masson)은 생성소멸의 과정 속에서 인간 존재의 자각모습을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음악과 연극, 미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행위의 자발성이나 즉흥성, 즉 해프닝을 통해 기존의 인습적 형식예술을 깨뜨리고 비형식적 현실을 찾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플럭서스 운동 역시 니체적 영감을 조형한 것이었다.
- 무용
이와 동시에 우주의 춤에 인간이 참여한다는 ‘운동의 합창’ 개념을 만들고 음악기보법을 최초로 정립한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 그의 제자이자 ‘무(無)음악의 무용’이라는 표현주의 무용을 만든 마리 뷔그만(Mary Wigman), ‘열린 장’의 개념으로 ‘새로운 춤’을 만든 포스트모더니즘 무용의 아버지 커닝엄(Murce Cunningham) 등도 니체적 실험정신의 표현자로 볼 수 있다. 커닝엄은 무용에서 우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춤의 주제, 주인공, 사건을 떠나 ‘춤의 본질’ 자체에 눈을 돌리게 했다. 몸의 긍정이나 자유정신, 자유로운 움직임이나 우연의 강조 등 현대무용의 탄생과정이나 그 전개과정 역시 니체와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서 진행되었던 것이다. 한국 현대무용의 문을 연 최승희 역시 일본의 이시이 바쿠(石井漠)에게서 무용을 배웠는데, 그 역시 니체주의자 마리 뷔그만의 표현주의의 우산 속에 있었다.
- 문학
- 심리학
- 철학
- 한국
그러나 한국에서 니체가 처음 소개된 것은 그보다 훨씬 이른 1909년 박은식이 주필로 있는 <서북학회월보>에서였다. 여기에 실린 작자미상의 ‘윤리총화(倫理叢話)’라는 글에서 ‘니체주의’는 ‘톨스토이주의’와 비교되었는데, 전자는 자애(自愛)를 강조하는 개인주의를, 후자는 타애(他愛)를 강조하는 이타적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1893년 이후 일본의 니체 담론과 1902년 이후 중국의 량치차오(梁啓超)와 왕궈웨이(王國維)의 니체 논의는 모두 사회진화론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이러한 동아시아의 지성사적 논의가 개화, 자강, 애국계몽운동을 하던 지식인들에 의해 대한제국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그 후 니체가 다시 다루어진 것은 1920년 천도교의 월간지 <개벽>의 창간호에서였다. 니체는 1920년대에 김기전, 박달성[28] , 이돈화, 김억, 이대위 등 지성인에 의해 사회진화론, 개인과 사회, 개인(자아)해방과 사회평화 등 사회철학적 물음 속에서 소개되면서 개화, 근대화, 항일운동, 신문화운동과 연관되어 한국의 정신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초기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니체는 민족주의적 의상을 입은 한국적 니체였고, 식민지 시대의 시대적 고민을 넘어서려는 강력한 힘의 철학, 의지의 철학을 표명하는 사회철학자로서 니체였다. 이후 시대를 거듭하며 전원배, 박종홍, 하기락 등에 의해 니체가 체계적으로 소개되고 철학적으로 논의되었다.
1930년대에는 니체사상을 토대로 김오성(본명 김형준)이 문학이란 새로운 능동적 실천적 창조적 인간유형을 창조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보며 ‘네오휴머니즘’의 문예비평사상을 주창했다. 이 당시 문학의 영역에서 니체 수용의 또 하나의 결실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시인그룹 ‘생명파’의 탄생이었다. 서정주·유치환·오장환·윤곤강 등 생명파 시인들은 생명·의지·초극·휴머니즘이라는 공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니체철학의 한국적 시적 변주였던 것이다.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은 이후 김동리의 ‘제3휴머니즘’으로 이어지게 된다. 문학의 본질은 휴머니즘의 발굴에 있다는 김동리의 순수문학론에는 근대성 비판, 자기극복, 인간성의 발굴, 아름다운 삶의 조형 등 니체사상이 깃들어 있는데, 이는 19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문학계의 이념적 지형도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90년대를 지나며 정동호, 이진우와 원광대 김정현 교수를 비롯해 독일에서 니체를 연구한 연구자들이 배출되고, 여러 연구자의 노력으로 세계표준판 <니체비평전집>이 출간되었다. 이러한 연구 흐름 가운데 다양한 니체사상의 주제가 다루어지고 새로운 해석이 나오게 되었으며, 여러 학문영역을 가로지르며 현재까지 니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5. 니체의 평론
5.1. 바그너에 대해서
니체가 작곡한 관현악 합창곡 <생애의 찬가>(Hymnus an das Leben), 1887년 작품.
니체는 10세 때 모테트(Motette, 성서 구절을 다성적으로 다룬 무반주 악곡)를 작곡하는 등 10대 시절부터 짧게 작곡 활동을 했다. 안타깝게도 청년 시절 이후부터는 본업인 저술에 몰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작곡에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바쁜 활동 와중에도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음악 스타일은 슈만과 흡사했다고 전해진다. 음반으로 나와있는 것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니체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여러 면에서 결정적이다. 니체와 바그너 사이에는 여러 공통분모가 있었다. 니체는 10대 시절부터 바그너의 음악을 알고 있었고, 바그너의 곡을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오페라를 그리스 비극으로 돌려놓자고[29] 주장했다는 점에서 둘의 의견은 일치했다.
무엇보다도 바그너와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다. 바그너는 1854년 쇼펜하우어의『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그의 철학에 빠져들었고, 자신의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깊이 반영했다. 무식한(?) 음악쟁이가 무슨 철학이냐는 편견이 강했는지, 과거에는 바그너가 일방적으로 니체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잘못된 견해가 일반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반대에 가깝다.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니었다. 니체는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바그너보다 쇼펜하우어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니체는 바그너와 교류하기 불과 3년 전인 1865년 처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었다. 니체는 바그너와의 토론을 통해 철학에 깊이 빠지게 되어 문헌학자로서가 아닌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니체는 거의 매일같이 바그너 집에 놀러가 거기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바그너와 니체는 31년이나 나이차이가 났는데, 아버지 없이 자랐던 니체는 바그너 부부에게 거의 부모와 같은 정을 느꼈다고 한다. 바그너와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던 니체는 1870년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구상하여 저술하기 시작했고 이를 발전시켜 1872년 자신의 첫 저서인 "비극의 탄생"을 완성하여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 본연의 정신을 살리고 있는 작곡가로 바그너를 지목한다.
하지만 이후 서서히 여러 가지 이유로 니체는 바그너의 예술에 회의를 품게 된다. 바그너 작품들 자체가 내재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불일치에 대해 점차 회의를 가지고 혐오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876년 바그너가 25년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여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의 초연을 보고 나서 바그너에 대한 회의가 심화되었으며, 1882년 바그너의 유작 '파르지팔'의 초연을 보고 바그너가 기독교에 굴복했다고 비판하며 그를 데카당스로 규정하고 바그너로부터의 결별을 생각한다. 1882년 작고하기 수개월 전 베네치아에서 요양하고 있던 바그너와 그의 부인을 마지막으로 만나 담담하게 그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미 그전부터 니체가 심심치 않게 바그너를 비판하는 글을 써오던 차였기 때문에 바그너도 니체와의 결별을 예상하긴 했으나, 그로부터 직접 결별을 선언받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자신의 정적들에게 언론을 통해 가차없는 독설로 비판해왔던 바그너였지만 니체에 대해서는 매독으로 정신적으로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언급한 것 이외에는 니체의 공개적인 비판에 대해서 따로 대응하지는 않았다.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한 뒤부터 1889년 전까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완숙미가 넘칠 시기에 에세이 '바그너의 경우'[30] , '니체 대 바그너' 등 바그너를 공격하는 저서를 여러 권 저술했다. 이에 대해 니체가 정작 바그너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유튜브로 아무때나 수시로 반복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그너의 만년 음악극은 바그너 생전에도 상연된 적이 거의 한두 번밖에 없었기 때문에 바그너의 작품에 대해 오늘날의 기준만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아무튼 바그너로부터 결별하며 그에 대해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은 니체 개인으로서는 뼈아픈 일이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었지만,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가치가 없었고, 그렇기에 잊혔다. 쇼펜하우어를 자신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던 니체로서는 바그너의 말기 오페라에서 신에 대한 인정과 사랑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이후 극심한 정신분열상태가 더욱 심해졌다. 애초부터 바그너와 친해진 연유도 일찍이 쇼펜하우어와 교제하며 그의 사상을 사랑하고 지지했던 바그너를 니체가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즉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이상 니체는 더 이상 바그너와 함께할 이유가 없었던 것.
(참고 -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쇼펜하우어도 깠다. 그는 아무 희망 없는 염세주의 역시 기독교나 형이상학 못지 않게 미워했다.)[31][32]
5.2. 음악 자체에 대해서
음악 자체에 대한 니체의 태도는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음악이 인간 특유의 감성과 낭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으며, 따라서 음악 중에서도 교향곡 등의 순수 기악보다는 즉흥 연주곡, 소나타 등을 더 선호했다. 그가 한때 바그너에게 끌린 이유 역시 바그너의 음악에 들어있는 '''그리스 비극'''으로의 회귀라는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그의 스탠스에도 변화가 어느 정도 오는데, 이는 "비극의 탄생"에 그가 1884년에 붙인, "자기비판에의 시도"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5.3. 문인들에 대해서
문학 쪽에서 본다면 "스탕달을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라 할 정도로 스탕달을 높게 평가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도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무언가를 배운 유일한 심리학자이다 : 그는 내 인생의 가장 멋진 행운 중의 하나이다. 이 심오한 인간이 천박한 독일인을 하찮게 평가한 것을 열 번 지당한 일이었으며, 그는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시베리아 형무소의 수감자들, 사회로의 복귀 가능성을 더 이상 갖지 못하는 중범죄자들을 자신이 예상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게 느꼈다ㅡ 러시아 땅에서 자라는 것 중에서 가장 최고의 재목이자 가장 강하고 가치 있는 재목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이라고 느꼈던 것이다."라면서 격찬했다.
반면에 "보바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허무주의자로 단정하고 안 좋은 방향으로 평가했다. 스탕달이 사실주의 문학의 시조격인 인물이고 플로베르 역시 사실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작가임을 감안하면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모파상에 대해서도 호평했고, 대체로 프랑스 문학이나 예술을 좋아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근거로 "나는 오로지 프랑스적 교양만을 믿고 다른 유럽적 '교양'은 전부 오해라고 간주한다."[33] 라든가, "독일이 닿으면 문화가 썩어버린다." 등의 글을 남겼다.
호메로스를 높게 평가했다. "호메로스는 얼마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가! 호메로스의 “소박성”은 오로지 아폴론적 환영에 대한 완전한 승리로 파악되어야만 한다."라고 평했다.[34]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이로 비추어봤을 때 도덕적 기준에 맞춰 숨기고 포장하는 것을 경멸하고 시원시원하게 까발리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35]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위대한 시인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현실을 퍼내어 이용한다ㅡ 그가 나중에 자기의 작품을 더 이상은 견뎌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도록 말이다. 나는 셰익스피어보다 더 가슴을 찢는 비통한 작품을 알지 못한다 : 어릿광대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그 인간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만 했단 말인가! ㅡ 햄릿을 이해했는가?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으려면 깊이가 있어야만 하고, 심연이여야만 하며, 철학자여야만 한다“라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에 대해서는 “그 같은 감미롭고도 열정적인 음악을 찾아 나는 모든 세기의 전 영역을 다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신적인 악의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 없이는 나는 완전성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ㅡ나는 인간과 종족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들이 신과 사티로스의 분리 불가능함을 얼마나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하는지에 의거해서 평가한다.ㅡ 하이네는 독일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는지! 단연 하이네와 내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예술가들이었다고 언젠가는 불릴 것이다ㅡ우리는 범속한 독일인들이 독일어를 가지고해왔던 모든 것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평했다.
6. 오해와 진실
- 니체의 사상은 그 급진적인 성향으로 인해 자주 오해되었다.
>
>― 알베르 카뮈
>둘째, 힘에의 의지를 지배욕이라고 생각하는 것
>셋째, 영겁 회귀를 동일한 것의 진부한 회귀로 생각하는 것
>넷째, 초인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지배자들로 생각하는 것
>
>이런 생각을 독자가 하고 있다면 독자와 니체 사이에 제대로 된 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다.
>
>이 관점하에서는 니체가 허무주의자로, 더 심하게는 파시스트로, 혹은 기껏해야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는 예언자로 보일 것이다.
>
>― 들뢰즈 <니체와 철학> / 니체를 오해하는 4가지 방법
-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온건한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거 없는 주장이다.
> : 즉 신 - 아버지, 신 - 아들, 신 - 악마라고 하는.
> 나의 결론은 신이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신성의 2번째 인격을 창조했다는 것이었다.
> 자기 자신을 사유할 수 있기 위해 그는 자신에 반대되는 것을 생각해내야 했다는 것.
> 말하자면 창조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 그럼으로써 나는 철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
> 유고 17권
- 성차별주의자라는 의혹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
>이 같은 투쟁에 뛰어든 여성들은 양성 간의 싸움에서 우선권이 자신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대체 왜 여성들은 남자의 사랑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그 권리마저 찬탈하려 하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여성을 치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녀들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일까?
>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녀들은 어린아이가 필요하다. 즉, 그녀들에겐 임신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에게 남자란 항상 수단에 불과했다. 거리에 나부끼는 저 ‘여성 해방’의 목소리, 이것은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여성들의 분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임신에 필요한 남자를 얻지 못했다는 상실감의 표현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들의 ‘수단’을 강탈한 같은 여성들에 대한 증오이다.
>
>여성 해방론자들이 적으로 상정한 남성은 그저 수단일 뿐이며, 전술에 불과하다. 그녀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이며, 말이 통하는 고급 창녀이며, 이상주의자라고 내세움으로써 동시대의 같은 여성들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
>고등 교육과 양복 바지, 그리고 참정권은 여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에 필요한 무기일 뿐이지 요구가 아니다. 따라서 남자로부터 해방된 여성들은 여성적인 세계마저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
>이 사람을 보라 中
>
>선악의 저편 中
>
>선악의 저편 中
> --
>선악의 저편 中
- 여동생을 성적으로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니체가 썼다는 '나의 여동생과 나'라는 책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위서 논란 속에 있다. 방대한 문헌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출간하여 현재 정본으로 평가받는 비평판 니체 전집에서는 이 책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 니체가 파시즘과 반유대주의를 옹호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정작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들을 자기 앞에 나타나면 확 쏴버리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싫어했다. 이러한 오해는 니체의 여동생에게서 나왔다.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니체는 나치주의자였다. 그녀는 니체가 죽은 후에 니체의 메모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짜깁기하여 자기 멋대로 책을 만들고는 니체의 이름으로 팔아먹었다. 이 책의 제목은 '힘에의 의지'. 니체가 저술 계획만 세우고 저술을 포기한 책이다. 현재 이 책은 비평판 니체 전집에 포함되지 않는다.
> "산다는 건 원래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곳.
>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 -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7. 명언
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100년만 기다려보자. 아마도 그때까지는 인간을 탁월하게 이해하는 천재가 나타나서 니체라는 이를 무덤에서 발굴할 것이다.[45]
― 니체 서간집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 우상의 황혼 中. [46]
괴물[47]
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48]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e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 <선악의 저편> 中
"더러운 것에 대한 혐오가 지나치면, 스스로를 정화하고 정당화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대의 몸은 그대의 철학보다 더 많은 지혜를 품고 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진리는 추악하다. 진리에 의해서 멸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예술을 가지는 것이다."
(Die Wahrheit ist häßlich. Wir haben die Kunst, damit wir nicht an der Wahrheit zu Grunde gehen.)
삶의 여로를 걷는 우리들은 여행자다.
가장 비참한 여행자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인간이며,
가장 위대한 여행자는 습득한 모든 지혜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스스로 목적지를 선택하는 인간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中
여론을 따르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는 행위에 다름없다.
〈반시대적 고찰〉 中
"젊은이를 타락으로 이끄는 확실한 방법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대신에,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를 존경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개선이란 무언가가 좋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
"기억력이 나쁜 것의 장점은 같은 일을 여러 번, 마치 처음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성숙이란 어릴 때 놀이에 열중하던 진지함을 다시 발견하는 데 있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49]
― 즐거운 지혜 中[50]
8. 읽을만한 글귀
우리가 그려낼 수 있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 언제나 막 시들어가며 향기를 잃기 시작하는 것뿐이다!
아, 언제나 물러가는 폭풍우나 누렇게 변한 감정뿐이다!
아, 언제나 날다가 지쳐버린, 이제는 손으로도 잡을 수 있는 새뿐이다!
우리가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오래 살 수 없고 날 수 없는 것, 지치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것뿐이다!
그대들, 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나의 사상들이여
오직 그대들의 오후만을 위해..
나는 색깔들을, 많은 색과 그만큼 많은 다채로운 애정을,
50가지 정도의 황색, 갈색, 녹색, 적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많은 색으로도 그대들이 아침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표현을 할 수 없다.
나의 고독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꽃과 기적이여,
그대 나의 오래되고 사랑스러운
사악한 사상들이여!
― <선악의 저편>
사람들이 문법과 문법적인 주어를 믿었듯이, 이전에는 '영혼'이라는 것을 믿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제약하는 것이요, '생각한다'는 술어이자 제약되는 것이다ㅡ사유는 하나의 활동이며, 그것에는 반드시 원인으로 하나의 주어가 있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 <선악의 저편>
그대들은 그대들의 내면에서 역사를, 큰 동요를, 지진을, 오랫동안 지속되는 큰 슬픔을, 섬광 같은 행복을 체험했는가? 그대들은 크고 작은 바보들과 함께 바보로 존재한 적이 있는가? 그대들은 선량한 인간들의 광기와 아픔을 정말 체험했는가? 그리고 최악의 인간들의 아픔과 행복을 체험했는가? 그렇다면 내게 도덕에 대해 말해도 좋다. 하지만 그런 적이 없다면 내게 도덕을 말하지 말라!
― 아침놀
많은 것을 보지 말고, 듣지 말며, 자기에게 접근하게 놔두지 말라는 것ㅡ 이런 자기 방어 본능에 대한 관용적 표현은 취향이다. 이것은 가능한 한 부정을 하지말라고 명령한다. 계속 되풀이되는 부정을 필요로 하게 될 만한 곳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분리하라고 명령한다. 아주 작은 방어적 지출이라 하더라도 규칙적이 되고 습관적이 되며 엄청나면서도 전적으로 불필요한 빈곤을 유발시킨다는 합리적 이유에서다.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지출은 지극히 자주 거듭되는 작은 지출들이 모인 것이다.
가시를 갖는다는 것도 일종의 낭비이고, 가시가 아닌 너그러움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을 때에는 가시는 심지어 이중의 사치인 것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와인을 마시는 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젊은 남자들의 공허한 허상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나쁜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좀더 정신적인 본성들을 소유한 사람들 모두에게 알코올을 무조건 금하라고 충고한다.
든든한 식사가 너무 양이 적은 식사보다 소화가 더 잘된다. 위 전체가 활동을 한다는 것은 소화가 잘되기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이다. 누구든 자기 위의 크기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래 질질 끄는 식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간식도 하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라 : 커피는 우울하게 만든다.
차는 아침에 마셔야만 건강에 이롭다. 약간만이되 강하게 마셔라; 차는 조금만 약해도 건강에 아주 좋지 않으며, 하루 종일 힘들게 만든다. 차를 마실 때는 누구든 자기의 한도가 있는 법이며, 그것들 사이의 경계는 종종 아주 좁고도 미묘하다. 심한 자극성 기후에서 차는 하루의 시작으로는 권할 만하지 않다 : (마시려면) 차 마시기 한 시간 전에 기름을 뺀 진한 카카오 한 잔을 먼저 마시게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말라 ;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ㅡ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말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ㅡ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ㅡ이것에 대해 나는 이미 한 번 말했었다ㅡ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죄라고.
― <이 사람을 보라>
에피쿠로스는 이미 이런 종류의 선행 형식과 싸운 적이 있었다. 에피쿠로스가 무엇과 싸웠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크레티우스를 읽어보라. 그는 이교도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교'에 맞서 싸웠다. 말하자면 죄 개념에 의한, 벌과 불멸 개념에 의한 영혼의 타락에 맞서 싸웠다.ㅡ 그는 지하적 제의들, 잠복하고 있던 그리스도교 전체와 맞서 싸웠다ㅡ 불멸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진정한 구원이었다.ㅡ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이겼을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전부 에피쿠로스주의자였기에.
그때 바오로가 등장한 것이다. 바오로, 로마의 '세상'에 대한 찬달라적 증오의 육화이자 찬달라적 증오의 천재인 바울, 유대인이며 영원한 유대인의 전형인 바울...... 그가 알아차렸던 것, 그것은 어떻게 유대교 변두리의 작고도 종파적인 그리스도교-운동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불길'을 일으킬 수 있을지, 어떻게 '십자가의 신'이라는 상징을 가지고서 하부에 있는 모든 것, 은밀히-반항하는 모든 것,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아나키적 책동의 유산 전체를 거대한 힘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바오로는 진리에 가차없는 폭압을 가하면서 그 찬달라적 종교들의 매혹 수단이었던 표상들을 자신의 고안물인 '구세주'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단 입안에만 넣은 것이 아니다ㅡ그는 구세주를 미트라의 사제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그 무엇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때가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던 때였다. 그는 '세상'의 가치를 빼앗아버리기 위해서는 불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파악해냈다. 그는 '지옥' 개념이라면 로마를 지배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ㅡ'피안'이 삶을 죽여버린다는 사실을 파악해냈다.
― <안티크리스트>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홀로 가련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를 떠나라. 그리고 차라투스타라에 맞서라! 더 바람직한 것은, 그의 존재를 부끄러워 하라 !
그가 너희를 속였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인식하는 인간은 자신의 적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을 미워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그것은 선생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
너희는 나를 숭배한다. 하지만 어느 날 너희의 숭배가 뒤집히게 되면 어찌할 것인가?
신상에 깔려 죽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너희가 차라투스트라를 믿는다고 말하는가?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뭐 중요하단 말인가 !
너희는 나의 신도다. 하지만 신도가 뭐 중요하단 말인가 !
너희는 너희 자신을 아직도 찾아내지 않고 있었다. 그때 너희는 나를 발견했다.
신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모양이다. 그러니 신앙이란 것이 하나같이 그렇고 그럴 수 밖에.
이제 너희에게 말하니, 나를 버리고 너희를 찾도록 해라.
그리고 너희가 모두 나를 부인할 때에야 나는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신의 탄생
스스로를 믿고 있는 민족은 자기네의 고유한 신 또한 갖는다. 신 안에서 그 민족은 그들을 정상에 위치시키는 조건들, 즉 그들의 덕을 숭배한다. 자신에 대한 기쁨을,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그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존재에 투사한다. 풍요로운 자는 베풀기를 원한다. 긍지에 찬 민족은 희생하기 위해 신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전제들 안에서 종교는 감사하는 형식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감사한다. 이를 위해 신을 필요로 한다.
2. 선하며 악한 신
그런 신은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어야 하며, 친구일 수도 적일 수도 있어야 한다. 그는 선한 점으로나 악한 점으로 인해 반드시 경탄받는다. 신에게는 반자연적인 거세를 가해 한갓 선한 신으로 만드는 것은 여기서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악한 신을 선한 신만큼이나 필요로 한다. 그들 고유의 존재는 관용과 박애 덕분만은 아니니까. 복수와 분노와 질투와 조소와 간계와 폭력을 알지 못하는 신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승리와 파괴의 황홀한 열정조차 알지 못할 그런 신, 누구도 그런 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왜 그런 신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3. 거세, 선한 신과 악마
한 민족이 몰락할 때, 미래에 대한 믿음, 자유에 대한 그들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느낄 때, 복종이 가장 이로우며, 복종한 자의 덕목이 보존 조건이라고 그들이 의식할 때, 그들의 신 또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신은이제 음헌한 위선자가 되고 겁도 많아지고 겸손해져서 '영혼의 평화'를, 더 이상-증오하지-않기를, 관용을, 친구와 적마저도 '사랑'하기를 권할 것이다. 신은 계속해서 도덕화하고, 모든 개인적인 덕의 동굴로 기어 들어가, 모든 이를 위한 신이 되고, 사인(私人)이 되며, 세계인(cosmopolitan,코스모폴리탄)이 된다. 신은 예전에는 한 민족, 한 민족의 강력한 힘, 한 민족의 영혼에서 나오는 공격적인 모든 것과 모든 힘에의 갈망을 표현했었다. 이제 신은 한갓 선한 신일 뿐이다.
가장 남성적인 덕목과 충동들을 제거당한 데카당스의 신은 이제 필연적으로 생리적으로 퇴행한 자들, 약자들의 신이 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약자라고 부르지 않고, '선한 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힌트도 필요없이 역사의 어느 순간에 선한 신과 악한 신이라는 이분법적 허구가 비로소 가능해졌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자기네(피정복자)의 신을 '선 그 자체'로 끌어내리는 피정복자들의 본능이 정복자들의 신의 선한 속성을 삭제해버린다. 이들은 자신의 지배자들에게 그들의 신을 악마로 만들며 복수하는 것이다. 선한 신 그리고 악마, 양자 모두 데카당스의 소산이다.
4. 선한 신의 여행
신 개념이 지친 자들을 위한 지팡이라는 상징으로, 물에 빠진 모든 자를 위한 구조대라는 상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침몰해간다면, 신 개념이 가난한 자들의 신, 죄인의 신, 병자의 신의 전형이 된되면, 그리고 구세주, 구원자라는 술어가 말하자면 신에 대한 술어로 남게 된다면.. 이런 변신은 무엇을 뜻하는가? 신적인 것의 이러한 환원은 무엇을 뜻하는가? 물론ㅡ신의 왕국은 그렇게 해서 좀더 커졌다. 예전에 신은 단지 그의 민족, 그의 선택된 민족만을 가졌을 뿐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민족과 같이 외국으로 나가 사방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어디서든 가만히 눌러 있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마침내 온갖 곳에 본거지를 틀고 위대한 세계인(cosmopolitan)이 되기에 이르도록. 그가 '대다수'를 그리고 지구의 반쪽을 자기편으로 얻기에 이르도록 말이다.
5. 신의 붕괴 (철학자를 만난 신)
창백한 자들 중에서 가장 창백한 자인 형이상학자 제씨들, 이 개념의 백색증 환자들마저 그 신을 지배하게 되었다. 신이 그들이 짓거리에 최면이 걸려 한 마리 거미가, 형이상학자가 되어버릴 때까지 그들은 신의 주변에 오랫동안 그물을 쳤다. 이제 신은 세계를 다시 자기 자신에게서 짜냈으며ㅡ스피노자적으로ㅡ 이제 스스로를 점점 더 얇게 점점 더 창백하게 변모시켜, 그는 '이상'이 되었고, '순수정신'이 되었으며, '절대자'가 되었고, '물자체'가 되었다. 신의 붕괴 : 신이 '물자체'가 되었다.
― <안티크리스트>
여전히 기쁨은 부족하다.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
웃어라, 싱글벙글 웃어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라.
기뻐하면 온갖 잡념을 잊을 수 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도 옅어진다.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할 만큼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즐겁게 살아가라.
ㅡ니체의 말 [51]
위대한 정신들은 회의주의자이다. 정신의 강력함에서, 정신의 힘과 힘의 넘침에서 나오는 자유는 회의를 통해 입증된다. 확신하는 인간은 가치와 무가치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것 전부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확신은 감옥이다. 확신은 충분히 넓게 보지 않고, 발 아래를 보지 않는다. 위대한 것을 원하고, 그것을 위한 수단을 원하는 정신은 필연적으로 회의주의자다. 온갖 종류의 확신으로부터의 자유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강한 힘에 속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들을 묶고 고정시키는 외부의 규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강압이나 좀더 고차적인 의미에서의 노예제가 어떻게 해서 의지박약의 인간을 번성시키는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조건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확신이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확신하는 인간에게 확신은 그를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많은 것을 보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공평하지 않고, 철저히 편파적이며, 모든 가치를 고정적이고 자기에게 필요한 시각으로 보는 것 ㅡ 이것만이 확신하는 인간 종류를 존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는 진실한 인간의 반대이자 적대자이고ㅡ진리의 반대이자 적대자이다.
믿는 자는 '참'과 '거짓'이라는 문제에 대한 양심을 자기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때 정직하면, 그는 즉시 몰락해버릴 것이다. 확신하는 자의 시각의 병적 제약성은 그를 광신자로 만든다ㅡ사보나롤라, 루터, 루소, 로베스피에르,생시몽처럼ㅡ강하고 자유롭게 된 정신의 반대 유형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병든 정신들, 이런 개념의 간질병자의 거창한 태도는 많은 대중에게 효력을 발휘한다. 광신자들은 그림처럼 아릅답게 보인다. 인간은 근거를 듣느니보다 제스처 보기를 더 좋아한다.
― <안티크리스트>
나는 비할 바 없이 끔찍한 미증유의 인간이다
; 그렇다고 이것이 내가 비할 바 없이 좋은 일을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이다 : 그래서 나는 파괴자 중의 파괴자인 것이다.
선과 악의 창조자이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파괴자여야만 하며 가치를 파괴해야만 한다.
이렇게 최고악은 최고선에 속한다 : 하지만 이것이 창조적 선이다.
―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도덕주의자라는 내 말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부정을 내포한다.
첫째, 나는 이제껏 최고라고 여겨졌던 인간 유형, 즉 선한 인간, 호의적인 인간, 선행하는 인간을 부정한다.
둘째, 나는 도덕 그 자체로서 행사되고 지배적이 되었던 도덕 유형을 부정한다 - 즉 데카당스 도덕,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교 도덕을.
― 이 사람을 보라
비도덕주의자라는 말을 나는 다른 의미로서도, 즉 내 자신에 대한 표지이자 휘장으로서 선택했다
;나를 전 인류와 구분짓는 이 말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데에 나는 긍지를 느낀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교적 도덕을 자기 밑에 있는 것으로 깨닫지 않았다 ; 그러기 위해서는 높이와 멀리 바라보는 시각과 이제껏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심리적인 깊이와 심연성이 필요하다.
― 이 사람을 보라
나를 특정짓는 또 하나의 것은 싸움이다. 나는 기질상 호전적이다. 공격은 내 본능의 일부이다. 적수일 수 있다는 것, 적수라는 것ㅡ이것은 아마도 강한 본성을 전제할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모든 강한 본성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저항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저항을 찾는다. 복수심과 뒷감정이 필연적으로 약함에 속하는 것처럼 공격적 파토스는 필연적으로 강함에 속한다.
공격자가 어떤 적수를 필요로 하는지는 그의 힘을 측정하는 일종의 척도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좀더 강력한 적수를 찾는다는 데서ㅡ또는 좀더 강력한 문제를 찾는다는 데서 드러난다. 호전적인 철학자는 또한 문제들에 결투를 신청하지만, 그의 과제는 적수들을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전 역량과 유연함과 싸움 기술을 힘껏 발휘하면서 전력을 다해야하는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ㅡ 대등한 적수를 이겨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적과의 대등함ㅡ정직한 결투를 위한 첫 번째 전제, 적을 경멸한다면 싸움을 할 수 없다. 명령을 하거나, 어떤 것을 자기 밑에 있다고 얕잡아보면 싸움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 싸움 방식은 첫째: 나는 승리하고 있는 것들만 공격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승리할 때까지 기다린다. 둘째: 나는 내 우군이 없을 만한 것, 나 홀로 싸우는 것ㅡ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태롭게 하는 것만을 공격한다.
―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고 이들은 마이나데스라고 불렸다. 마이나데스는 '광란하는 여자들'이라는 뜻이다. 표범 등 짐승의 가죽을 걸친 그녀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관을 쓰고, 한 손에는 뱀이나 포도송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디오니소스 숭배의 표지인 지팡이를 든 채 노래하고 춤추면서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 디오니소스 신에 의해서 접신이 되었을 때 이 여자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괴력을 발휘하여 나무를 뿌리채 뽑는가 하면, 야수를 갈갈이 찢어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이 여자들을 거느리고 리디아, 프리기아, 그밖의 동방 여러나라에서 자신을 포교했다.
일반적으로 그녀들은 디오니소스 숭배의 본고장인 트라키아나 프리기아에서 디오니소스 제의가 있을 때 열광적으로 난무하던 여신도들의 신화적 반영이 아닌가 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제의가 행해지는 동안 자신 속에서 신을 느끼면서 일상의 습관이나 금기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합일을 맛보았다.
― <비극의 탄생>
“나는 조금 홀가분해졌다. […] 바그너에게서 등을 돌린 것은 내게는 하나의 운명이었으며 ; 이후에 무언가를 다시 기꺼워하게 된 것은 하나의 승리였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위험하게 바그너적인 짓거리와 하나가 되어 있지는 않았으리라.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강력하게 그것에 저항하지는 않았으리라. 어느 누구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나보다 더 기뻐하지는 않았으리라. […] 내가 도덕주의자라면, 어떤 명칭을 부여하게 될지 알겠는가! 아마도 자기극복이라는 명칭일 것이다.”
― 『바그너의 경우』, 1888년
예술이 있으려면, 어떤 미적 행위와 미적 인식이 있으려면 특정한 생리적 선결 조건이 필수 불가결하다. 도취라는 것이. 도취는 우선 기관 전체의 흥분을 고조시켜야만 한다. 그러기 전에는 예술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양한 기원을 갖는 온갖 종류의 도취는 모두 예술을 발생시키는 힘을 갖추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원적인 성적 흥분의 도취가 특히 그러하다. 온갖 큰 욕구들, 온갖 강한 격정들의 결과로 생겨나는 도취도 마찬가지다. 축제나 경기, 걸작과 승리 밑 극단적인 움직임 전부에 따르는 도취, 잔인함에 따르는 도취, 파괴 시의 도취, 기상적 영향을 받아 생기는 도취, 이를테면 봄날의 도취, 또는 마약의 영향으로 생기는 도취, 의지의 도취, 가득 차고 팽창된 의지의 도취 ㅡ 도취에서 본질적인 것은 힘이 상승하는 느낌과 충만함의 느낌이다. 이런 느낌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물에 주입시키고, 우리로부터 받기를 사물에게 강요하며, 사물을 폭압한다. 이런 과정이 이상화라고 불린다. 여기서 편견 하나를 없애자. 이상화는 보통 믿는 바와는 달리 자질구레하거나 부차적인 것을 빼내버리거나 제해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주요 특징들을 엄청나게 내몰아버리는 일이 오히려 결정적인 것이어서, 그 때문에 다른 특징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충만함으로 인해 만사를 풍요롭게 만든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원하든 사람들은 그것을 부풀려서 보고 절실한 것으로 보며 강하고 힘이 넘쳐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은 사물이 그의 힘을 다시 반영해낼 때까지 사물을 변모시킨다. 사물이 자기의 완전함을 반영하게 될 때까지. 이렇게 완전성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ㅡ 바로 이것이 예술인 것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누구도 인간에게 인간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인간의 부모나 선조도 아니며, 인간 자신도 자신의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가 이러저러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특정환 상황과 특정환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이 없다. 그의 존재의 숙명은 이미 존재했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것의 숙명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는 특정 의도나 특정 의지나 특정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이상' 또는 '행복의 이상' 또는 '도덕성의 이상'을 실현시킬 도구도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넘겨주고자 하는 것은 허무맹란한 일이다. 목적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고안해낸 것이다. 사실 목적이라는 것은 없다.
― <우상의 황혼>
과거에 대해서는 나는 다른 모든 인식자들처럼 아주 관용적으로 대한다. 말하자면 도량 있는 자제력을 가지고서 : 전 세기에 걸친 정신병원-세계를, 즉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적 신앙', '그리스도교적 교회'를 나는 암울한 신중함을 가지고 통과해간다.ㅡ나는 인류에게 그들의 정신병에 대한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조심한다.
하지만 내가 현 시대로, 우리의 시대로 들어서자마자 곧 내 감정은 뒤바뀌고 폭발해버린다.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신학자와 사제와 교황이 하는 모든 말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짓이라는 사실이다ㅡ 그들이 '순진'해서나, '무지'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른 모든 이가 알고 있듯이 사제 또한 '신', '죄인', '구세주'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피안', '최후의 심판', '영혼의 불멸', '영혼' 자체라는 개념들이 말이다 : 이것들은 사제들을 지배자로 만들었고 지배자로 남게 했던 고문 기구들이자, 잔인함의 체계들이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안티크리스트>
’기쁜 소식(복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된 삶이, 영원한 삶이 발견되었다는 것ㅡ이런 삶은 약속되지 않는다. 이런 삶은 거기,너희 안에 이미 있다: 사랑하며 사는 삶으로서. 누구든지 다 신의 자식이다ㅡ예수는 결코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ㅡ신의 자식으로 누구든 다 서로 동등하다.
'복음'이란 바로 아무런 대립자도 더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 하늘나라는 아이들의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신앙은 싸워서 획득한 신앙이 아니다. ㅡ 이 신앙은 거기, 시작부터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정신적인 것으로 아이 같은 천진함이 되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기적에 의해서든 보상이나 약속에 의해서든 입증하지 않는다. '성서'에 의해서는 더욱 아니다 : 신앙 그 자체가 매 순간마다 신앙의 기적이고, 신앙에 대한 보상이나 증거이며 '신의 나라'인 것이다. 이런 신앙은 자신을 공식화하지도 않는다.
첫 사도들은 온통 상징과 불가해성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 존재에 관하여 어떤 것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그네들의 조잡성으로 예수를 번역해버렸다. ㅡ 그들 머리속에서 예수라는 유형은 좀더 잘 알려져있는 형식으로 변형된 후에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다. 선지자, 구세주, 미래의 판관, 도덕의 설교자, 기적을 행하는 자, 세례자 요한ㅡ 예수라는 유형을 오해할 계기는 이처럼 많았다.
그것은 살아 있고, 공식들에는 저항한다...... 인도인 사이에서라면 샹캬 개념을, 중국인 사이에서라면 노자의 개념을 이용했을 것이다ㅡ그러면서 아무런 차이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표현을 자유롭게 해보자면 예수를 '자유정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ㅡ 그에게는 고정된 것은 죄다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 말은 죽이는 것이고, 고정된 것은 모두 죽이는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개념인 '삶'의 경험은 그에게서는 온갖 종류의 말, 공식,법칙, 신앙,교의와 대립한다. 그는 단지 가장 내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쁜 소식을 가져온 자'는 그가 살아왔고, 그가 가르쳤던 대로 죽었다ㅡ '인간을 구원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죽었다. 그가 인류에게 남겨놓은 것은 바로 실천이었다: 재판관과 호위병과 고발자와 온갖 종류의 비방과 조소앞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ㅡ 십자가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태도였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리를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태를 도발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그들안에서 간구하고 괴로워하고 사랑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도적에게 그가 한 말은 복음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 신적인 사람이었구나. '신의 자식'이었구나"라고 그 도적은 말했다. "네가 그것을 느끼면ㅡ구세주가 답하기를ㅡ 그러면 너는 낙원에 있는 것이다. 너 역시 신의 자식인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 노하지 말라. 책임 지우지 말라. 또한 악한자에게도 저항하지 말고ㅡ 그를 사랑하라......
― <안티크리스트>
어디서든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더구나 자기의 전 역량을 요청하는 위대한 과제를 풀어야 하는 자에게는 선택 영역은 더 제한된다. 풍토는 신진대사에, 그 방해와 촉진이라는 면에서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장소와 풍토 선택에서 실패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과제에서 멀어지게 될 뿐 아니라, 아예 과제가 억류당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 그 과제가 그에게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진대사의 속도는 정신의 발이 움직이느냐 아니면 무기력 하느냐와 정확히 비례한다: '정신' 자체가 진정 신진대사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명민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했던 곳, 위트와 예민함과 악의가 행복을 이루었던 곳, 천재가 거의 필연적으로 자기의 안식처로 삼았던 곳을 모두 모아보자 : 그곳들의 대기는 모두 아주 탁월하게 건조하다. 파리, 프로방스, 플로렌스, 예루살렘, 아테네ㅡ 이 장소들은 무언가를 입증하고 있다: 천재는 건조한 대기와 맑은 하늘을 전제하고ㅡ 신속한 신진대사를 전제하며 거대하고도 어마어마한 양의 힘을 항상 다시 공급할 가능성을 전제한다는 것을.나는 탁월하면서도 자유로운 소질을 갖춘 정신이 풍토를 선택하는 섬세한 본능을 갖지 못해서, 오그라들고 움츠러버리는 전문가나 유머 감각 없는 뚱한 자가 되어버렸던 경우를 하나 목도했었다.
― <이 사람을 보라>
내 작품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도대체 다른 책들을 더 이상은 견뎌낼 수 없게 된다.
배움의 진정한 황홀경을 체험한다: 나는 어떤 새도 이르러보지 못했던 높은 데서 왔고, 어떤 발도 길을 잃어보지 못한 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내 책 중 어느 하나를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고 ㅡ 내가 밤의 휴식마저 설치게 한다고 말했다...... 내 책보다 더 긍지에 차 있으면서 동시에 더 세련된 종류의 책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기법이 바로 독일어로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할 사항으로 남겨져 있었다 : 나라도 예전에는 그 가능성을 혹독하게 배척했었을 것이다. 나 이전에 사람들은 독일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으며ㅡ 언어를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ㅡ 숭고하고도 초인간적인 열정의 거대한 상승과 하락을 표현하는 위대한 리듬 기법, 복합문의 위대한 문체가 나에 의해 비로소 처음 발견되었다 ; <차라투스트라> 3부 마지막 장인 <일곱 개의 봉인>이라는 표제의 송가에 의해 나는 지금까지 시라고 불리어온 것의 위로 천 마일이나 높이 날아올랐다.
― <이 사람을 보라>
아주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오만 가지 배려를 주고받는 우리 현대인은 우리가 제시하는 이런 섬세한 인간성, 그리고 관용과 친절과 상호 신뢰에 있어 이르게 된 의견 합일이 하나의 긍정적인 진보라고 믿어버리고, 이 점으로 인해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신경은 르네상스적 실재성을 견대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말할 나위도 없다. 현대인의 이런 무능은 진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것, 즉 필연적으로 사려로 가득 찬 도덕을 발생시키는 더 약하고 더 유약함과 더 상처받기 쉬운 더 말기적인 소질을 증명해줄 뿐이다.
강렬한 시대와 고상한 문화는 동정과 '이웃 사랑'과 자아와 자의식의 결여를 경멸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ㅡ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적극적인 힘들에 의거해 측정될 수 있다ㅡ이럴 때 르네상스라는 그토록 풍요롭고 그토록 숙명적인 시대는 위대했던 최후의 시대로 드러나고, 우리 현대는 자기에 대한 소심한 염려와 이웃 사랑, 노동과 겸허와 공정성과 과학성이라는 덕을 가지고서ㅡ수집적이고 경제적이며 기계적인ㅡ약한 시대로 드러난다
'평등권' 이론에서 그 표현을 얻는 '평등'은 본질적으로 쇠퇴에 속한다 :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간격, 유형의 다수성,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자 하는 의지, 내가 거리를 두는 파토스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강한 시대의 특성이다. 오늘날에는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긴장과 간격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ㅡ극단적인 것들은 희미해져 결국은 모두 유사하게 되어버린다
― <우상의황혼>
정신적인 문제에 냉혹할 정도로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와 민족 이기주의의 천박한 시대적 헛소리를
자기의 발 아래의 것으로 내려다보는 법을 익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가 그에게 이득을 줄지 손해를 줄지 물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물어볼 용기가 없는 문제들을 선호하는 강건함
금지된 것에 대한 용기
미궁으로 향하는 예정된 운명
일곱 가지 고독에 의한 한 가지 경험
새로운 음악을 위한 새로운 귀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위한 새로운 눈
이제껏 침묵하고 있던 진리들에 대한 새로운 양심
그리고 위대한 양식의 경제성을 추구하려는 의지
그 힘과 열광을 흩어지지 않게 한데 모으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 존경
자신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자유을 가져야 한다.
이런 자들만이 나의 독자이고, 나의 정당한 독자이며, 예정된 독자이다.
― <안티크리스트>
오늘날 도덕적인 문제를 연구하려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광범위한 영역의 연구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모든 종류의 열정들이 하나하나 고찰되고 시대와 민족, 크고 작은 일들이 낱낱이 추적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이성과 가치 평가 전체, 사물들에 대한 조명에 빛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현존재에 색채를 부여하는 모든 것이 아직 그 역사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사랑, 소유욕, 질투, 양심, 경건, 잔혹의 역사가 도대체 어디에 그려져 있는가 ? 심지어 법의 비교사나 아니면 단지 형벌의 비교사조차도 지금까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다. 하루를 구분하는 다양한 방식, 노동과 축제와 휴일을 규범적으로 확정해놓은 결과가 연구된 적이 있는가 ? 음식의 도덕적 영향에 대해 알고 있는가 ? 섭생의 철학이 존재하는가 ? (채식주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소란이 이미 그러한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공동체 생활의 체험, 예를 들어 수도원의 체험이 수집되어 있는가 ? 결혼과 우정의 변증법은 서술되어 있는가 ? 학자, 사업가, 예술가, 수공업자의 윤리에 대해 연구한 사상가는 있는가 ?
지금까지 인간의 실존의 조건으로 고찰되어온 모든 것, 그리고 이러한 고찰에서 나타나는 모든 이성, 정열, 미신 등이 궁극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탐구되었는가 ? 상이한 도덕적 풍토에 따라 인간의 충동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고, 또 아직도 나타날 수 있는 성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장 근면한 연구자에게조차 과도한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이 연구의 관점과 자료를 모두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를 총망라하는 학자들이 계획적으로 공동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풍토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증명하는 연구도 마찬가지다(왜 여기에는 이러한 도덕적인 근본 판단과 주요 가치판단의 태양이 빛나고 저기에는 다른 태양이 빛나는가 ?).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유가 지닌 오류와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판단의 본질을 확증하는 것은 다시금 또 다른 연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연구가 행해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우선 학문이 인간의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근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종류의 영웅주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실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연구와 희생이 그 그늘에 가리게 될 수세기에 걸친 실험이 행해질 차례가 온다. 아직까지 학문은 자신의 거석을 건설하지 못했다. 그것을 위한 시대도 올 것이다.
― <즐거운 학문>
풍습은 이익이 되거나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예전 사람들의 경험을 반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풍습에 대한 감정은 그러한 경험 자체가 아니라 풍습의 오래됨, 신성함, 자명함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은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갖게 되고 풍습을 수정하는 것에 반발한다. 즉 윤리는 새롭고 좀더 나은 풍습의 발생을 저해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것이다.
― 아침놀, '풍습과 풍습에 대한 감정'
기원전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이후 대체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모든 공동체들은 '풍습의 윤리'에서 비롯된 저 가공할 중압속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이단적인 사상과 가치 평가, 그리고 충동이 거듭 출현할 때마다, 이는 무시무시한 현상들을 수반하면서 일어났다. 거의 모든 곳에서 새로운 사상에 길을 열어주면서, 존중되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은 광기다.
그대들은 왜 그것이 광기여야만 했는지 이해하는가? 날씨와 바다의 악마적인 변덕처럼 소리와 몸짓이 전율을 일으키는 불가해한 것, 그 때문에 그러한 날씨와 바다와 유사하게 경외할 만하고 관찰할 가치가 있는 그런 어떤 것을 그대들은 이해하는가? 간질 환자한테서 나타나는 마비 증상과 거품처럼, 전혀 자유의지를 갖지 않은 상태의 징후를 현저하게 보이게 하면서 광인을 이처럼 신성의 가면이자 확성기로 나타나게 하는 어떤 것을? 새로운 사상의 소유자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외경과 두려움을 갖게 하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게 하면서 그를 새로운 사상의 예언자이자 순교자가 되도록 몰아대는 어떤 것을?
오늘 날에도 여전히 천재에게는 한 알의 소금 대신 광기를 일으키는 약초가 주어진다고 거듭 이야기되지만, 이전의 모든 인간들은 광기가 존재하는 곳에는 약간의 천재성과 지혜, 즉 사람들이 서로 속삭이는 것처럼 '신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였다. 아니, 사람들은 속삭이는 것을 넘어 강력한 이러한 사상을 표명했다. "광기를 통해 그리스는 최대의 자산을 갖게 되었다"라고 플라톤은 고대의 인류 전체와 함께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어떤 윤리의 질곡을 부수면서 새로운 법을 부여하려는, 거역하기 어려운 유혹에 사로잡혔던 저 탁월한 모든 인간들에게는 그들이 실제로 미치지 않았을 경우에는 자신을 미치게 하거나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종교적 영역이나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실로 모든 영역의 혁신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시의 운율을 혁신했던 사람들마저 광기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다.
"미치지도 않았고 미친 것처럼 보이게 할 용기도 없을 경우 어떻게 자신을 미치게 할 것인가?" 고대 문명의 중요한 모든 인간들은 이러한 무서운 사상을 따랐다. 이와 관련해 감정을 깨끗하게 하고 생각과 기도를 성스럽게 하는 것 외에 여러 비결들과 식이 요법에 대한 은밀한 가르침이 전해졌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마술사가 되기 위해, 중세 기독교인들이 성자가 되기 위해, 그린란드인들이 안게코크가 되기 위해, 브라질인들이 파헤가 되기 위해 취했던 처방은 본질적으로 같다.
즉 무의미한 단식, 성욕의 지속적인 억제, 사막으로 가거나 산에 오르거나 기둥에 오르는 것, '멀리 호수가 보이는 오래된 버드나무 위에 앉아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황홀경이나 정신의 무질서를 초래할 수 있는 처방들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인간들이 아마 겪었을 가장 쓰라리면서도 황량하기 짝이 없는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을 누가 감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저 고독하고 어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한숨을 누가 감히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아아, 그대 하늘에 있는 자들이여, 광기를 주소서! 마침내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광기를 주소서! 황홀경과 마비, 섬광과 암흑을 주소서! 일찍이 죽어야 할 어떤 사람도 경험한 적 없는 혹한과 뜨거운 열로 나를 겁에 질리게 하소서! 포효하며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형태로 나를 겁에 질리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울부짖고 신음하게 하시고 동물처럼 기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 있게만 하소서! 의심이 나를 파먹어갑니다. 나는 법을 파괴했습니다. 시체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처럼 법이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내가 법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타락한 자입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새로운 정신이 당신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내가 당신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부디 나에게 증명해주소서, 광기만이 나에게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열정은 지나칠 만큼 자주, 그것도 매우 훌륭하게 그 목표에 도달했다.
― 아침놀, 도덕의 역사에서 광기의 중요성
수녀의 순결, 그녀는 그 얼마나 강한 비난의 눈길로 다르게 사는 여인들의 얼굴을 쳐다보는가! 그녀의 눈에 얼마나 많은 복수와 쾌감이 존재하는지! 주제곡은 짧고 변주곡은 수없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쉽게 지루해지지는 않는다. 우월의 도덕은 근본적으로 세련된 잔인성에 대한 쾌감이다.
― 아침놀, '고상한 잔혹함'
첫째, 충동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회들을 피하면서 가능한한 오랫동안 불만족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충동을 약화하고 시들게 할 수 있다.
둘째, 충동을 만족시킬 때 자신에게 엄격한 규칙을 부과할 수 있다. 이렇게 충동 자체에 규칙을 부과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시간을 정하고 제한함으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충동에 의해 교란되지 않는 시간들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를 통해 첫 번째 방법으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의도적으로 충동을 거칠고 자유분방하게 만족시키면서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역겨움을 통해 충동을 이겨내는 힘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경우 죽을 때까지 말을 몰아대다가 결국 자신의 목마저 부러뜨리고 마는 기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방법에서는 그 기수처럼 되는 것이 보통이다.
넷째, 지적인 책략이 있다. 매우 고통스러운 생각을 만족 전체와 확고하게 결부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약간 연습한 후에는 충동을 만족시키려는 생각 그 자체가 늘 즉시 고통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다섯째, 무언가 특히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을 자신에게 부과하거나 의도적으로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에 몸을 맡기는 방식으로 생각과 육체적인 힘의 움직임을 다른 길로 유도함으로써 많은 힘의 방향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여섯째, 육체와 정신의 조직 전체를 약화시킴으로써 개별적인 격렬한 충동을 약화한다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예를들어 고행자처럼 자신의 감각을 철저히 굶기고, 이와 동시에 자신의 육체와, 종종 자신의 지성도 함께 굶김으로써 육체와 정신을 쓸모없게 만드는 사람의 방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어떤 격렬한 충동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우리의 권능 밖에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이 방법으로 효과를 거두는가 못 거두는가 하는 것 역시 우리의 권능 밖에 존재한다. 오히려 이 과정 전체에서 우리의 지성이 우리를 괴롭히는 격렬한 충동의 경쟁자인 다른 충동의 맹목적 도구일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것이 안식에 대한 충동이든지, 치욕이나 다른 나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랑이든지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충동의 격렬함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사실은 다른 충동에 대해 어떤 충동이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충동의 격렬함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충동과 똑같이 격렬하거나 훨씬 더 격렬한 다른 충동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리의 지성이 어느 쪽이든 편을 들어야만 하는 투쟁이 임박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 아침놀, '충동을 극복하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
가련한 인류.- 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육체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자들.- 단지 위, 내장, 심장의 고동, 신경, 담즙, 정액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ㅡ즉 저 모든 불쾌감, 무기력, 과도한 긴장,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계(육체)의 우연성 전체! ㅡ 파스칼과 같은 기독교인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이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 신인가 악마인가, 선인가 악인가, 구원인가 저주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이 모든 것을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오, 얼마나 불행한 해석가인가!
― 아침놀, ‘가련한 인류, 육체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자들'
광인이 있었다.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나는 신을 찾고 있다! 나는 신을 찾고 있다!'라고 외쳤다는 광인. 그 광인이 시장에 등장했을 때 신을 믿지않는 사람들이 모여있었기에 그 광인은 웃음을 자아냈다. 광인은 비웃는 사람들에게 달려가 노려보며 말했다.
" 신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대답하지. 우리가 신을 죽였다. 그대들과 내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신을 죽일수 있었지? 어떻게 이 피를 닦아낼수 있을까? 무엇으로 이 피를 닦아낼 수 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때어냈을 때.. 그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거지?'
" 어디로 가는거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거지? 모든 태양들로 부터 멀어지는건가? 우리는 계속 추락하고 있는걸까? 뒤로,옆으로,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위와 아래라는것이 이제 있기는 한걸까? 무(無)속을 끝없이 방황하기만 하는걸까? 빈공간의 숨을 느끼지 못해? 추위를 느끼지 못해? 밤이, 계속된 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 이제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만 하는 것 아니야?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아? 신도 썩어! 신은 죽었어! 되돌아 갈 수도 없어! 우리가 신을 죽였어! "
"최악의 살인자인 우리를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가장 신성한, 가장 힘있는 존재가 우리들의 칼에 죽었어. 누가 이 피를 닦아내지? 무슨 물로 이 피를 씻어내지? "
광인은 말을 멈추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조용히 광인을 쳐다보았다. 광인은 등불을 바닥에 던졌다. 산산조각이 나고 불은 꺼졌다.
' 너무도 이른 시간에 왔구나.' 광인은 속으로 말했다. ' 아직 내 시간은 오지 않았어. 이 사실이 아직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어. 천둥과 번개는 시간이 필요해. 별 빛이 사람들에게 닿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이 사실이 그들에게는 아직 가장 먼 별보다도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 자신이 저지른 일인데도 말이야! '
― <즐거운 학문>
사람이란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철학자가 '최종적이며 고유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일까? 모든 동굴 뒤에 한층 더 깊은 동굴이 있지 않을까? 표면적인 세계를 넘어선 곳에 좀더 광대하고 낯설고 풍요로운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근거의 배후에, 모든 '근거를 마련하려는 작업' 아래 하나의 심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의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철학은 전경의 철학이다.
철학자가 여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주위를 살펴본다는 것은 ,그리고 그가 여기에서 더 이상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고 삽을 내던져버린 것은 무엇인가 자의적인 것이 있다. 거기에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 모든 철학은 또한 하나의 철학을 숨기고 있다. 모든 생각도 하나의 은신처이고, 모든 말도 하나의 가면이다.
― <선악의 저편> 中
모든 심원한 사상가는 오해되는 것보다 이해되는 것을 더 두려워 한다. 왜 그대는 그것을 나처럼 그다지도 힘들게 생각하려 하는가?
― <선악의 저편> 中
칸트는 추론한다. 1. 어떤 조건들 아래에서만 타당한 주장들이 있다. 2. 이 조건은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순수 이성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렇다. 그러한 주장들의 진리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그 근거를 가져온단 말인가? 그 믿음은 후험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경험 이전의 선험적 데이터 역시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필연성과 보편성은 결코 경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들이 경험없이 있다는 것은 무엇에 의해 명백하단 말인가? 그것은 결코 인식이 아니다! 규제적 신조(믿음)인 것이다. 선천적 종합판단이라는 것이 있다면, 순수이성에 의한 사물 인식인 형이상학도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 <유고1888년 초~1889년 1월 초>
비판은 한 번도 이상 자체로 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어디서 이상에 대한 대립이 생기는 것인지, 왜 이상은 아직도 도달되지 않는지 혹은 왜 이상은 일의 대소를 불문하고 입증되지 않는지라는 문제로만 향할 뿐이다.
― <유고1888년 초~1889년 1월 초>
존재자를 가정하는 것은 사유하고 추론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하다. 논리학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공식만을 취급한다. 따라서 존재자라는 가정은 실재에 대한 증명력을 여전히 갖지 않으리라. '존재자'란 우리의 광학에 속한다. 주체, 실체, 이성 등의 날조된 세계는 필요하다. 조정하고 단순화하고 위조하고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힘이 우리안에 있다
― <유고> 中
역사와 민속학적 연구가 알고 있는 모든 가치 목록, 모든 '너는 해야만 한다'는 말에는 어떤 경우에도 심리학적 탐구나 해석보다도, 먼저 생리학적 탐구나 해석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의학이 비판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러한 혹은 저러한 가치 목록과 '도덕'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 <도덕의 계보학>
상이한 도덕적 풍토에 따라 인간의 충동이 각기 다르게 나타났고, 또 아직도 나타날 수 있는 성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장 근면한 연구자에게조차 과도한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이 연구의 관점과 자료를 모두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를 총망라하는 학자들이 계획적으로 공동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풍토가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증명하는 연구도 마찬가지다(왜 여기에는 이러한 도덕적인 근본 판단과 주요 가치판단의 태양이 빛나고 저기에는 다른 태양이 빛나는가 ?).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이유가 지닌 오류와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판단의 본질을 확증하는 것은 다시금 또 다른 연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연구가 행해진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문제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우선 학문이 인간의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근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든 종류의 영웅주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실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연구와 희생이 그 그늘에 가리게 될 수세기에 걸친 실험이 행해질 차례가 온다. 아직까지 학문은 자신의 거석을 건설하지 못했다. 그것을 위한 시대도 올 것이다.
― <즐거운 학문>
"생각된다 ; 따라서 생각하는 어떤 것이 있다" : 데카르트의 논변은 이렇게 귀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실체 개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미리 '선험적 참'이라고 설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된다면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에 행위자를 덧붙이는 우리의 문법적 습관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하다.
요약하면 여기서는 이미 논리적-형이상학적 요청이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요청은 확인되고 있을 뿐만이 아니다. 데카르트가 취한 방식으로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어떤 것에 이르지 않고, 아주 강한 어떤 믿음의 사실에만 이를 뿐이다. 저 문장을 "생각된다. 그러므로 생각된 것이 있다"는 면제로 환원시켜 보면, 단순한 동어 반복만을 우리는 얻을 뿐이다.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바로 그것, 즉 '생각된 것의 실재성'은 건드려지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형식으로는 생각된 것의 '가상성'은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데카르트가 원했던 것은 생각된 것이 단지 가상적 실재성뿐 아니라, 실재성 그 자체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 <유고1887년 가을 ~ 1888년 3월>
보라, 우리의 주위가 얼마나 풍만한가를! 이와 같이 넘쳐흐르는 자연 속에 먼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Übermensch)'을 이야기하라고 가르친다'''. 신이란 하나의 억측에 불과하다. 나는 이 억측이 그대들이 창조하려는 의지를 넘어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하나의 신을 창조할 수 있었는가 - 그렇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간구하노라. 모든 신에 대해 침묵을 지켜라. '''그대들은 능히 초인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 中
나는 나의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나의 이름에는 엄청난 사실이 추억으로 연상이 될 것이다. 즉 세상에서 전대미문의 대위기와 가장 심원한 양심의 갈등, 그리고 이제까지 신뢰되고 요구되었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역하며 만들어졌던 결정에 대한 추억 말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다이너마이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 속에는 어떤 종교의 창시자와 같은 사고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천민의 관심사이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는 무리들과의 접촉 뒤에는 손을 닦고 싶다.
나는 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이며 이것이 또한 나를 탁월한 파괴자로 만든다.
― 이 사람을 보라 中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철학자들이 '도덕에 논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불렀고, 알고자 안간힘을 썼던 것은, '적절한 조명에 비추어 봤을 때', 그저 당시 지배적인 도덕에 대한 '맹신'의 배운 형태이며, 그것의 새로운 '표현 방식'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확고한 도덕이라는 하나의 구체 내부의 '사실문제(matter-of-fact)'에 불과하며, 그것의 궁극적인 동기에서, 이러한 도덕에 대한 '그것의 정당함에 대한 의문'의 어떤 종류의 부정이다──또한, 이러한 맹신에 대한 검증, 분석, 의심, 그리고 해부하려는 행동들과 정반대의 것이다…
― 선악을 넘어서 中
이제 나를 떠나보내고 자신을 찾으라. 그리고 그대들이 나를 모두 부정했을 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가리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묘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추종자들에게 한 말임.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군.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라 갔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날라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이제 잠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뭘 하자는 건가. 바다 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제 나는 신을 사랑하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 테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사랑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로부터 얼마간을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래야 인간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들로 하여금 애걸하도록 하게."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자선을 베풀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렇게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오."
"그들은 은둔자를 불신하며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믿지 않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속의 한 마리 곰, 새들 속의 한 마리 새로 머물고자 하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신은 인간을 죽임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자신을 '정의'로 정의한다. 니체는 정의라는 진리를 죽임으로써 정의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진리의 말살은 곧 진리.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신을 죽인다. 하지만 니체는 외친다.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우리는 신을 죽인 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 즉 삶의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신은 이미 죽었다. 신이 된 우리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우리는 풀 수 없다. 우리는 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들 외친다. 하지만 우리가 죽인 신이 만들었던 영원불멸의 시스템은 행복과 슬픔, 분노, 공포, 모든 감정 느낌을 허무하게 만든다.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힘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9. 저서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 니체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 항목 참조.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 <도덕의 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 : 도덕적 개념의 형성사를 다룬 책. 그래서 책 제목이 <도덕적 개념의 족보>이다.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노예도덕의 계보>라고 해도 된다.
- <메가라의 테오그니스> Theognis von Megara : 테오그니스가 친서민적 시인이라는 학계의 주류적인 해석에 반대하며, 테오그니스를 귀족주의자로 해석하는 논문이다. 니체가 쓴 최초의 논문으로 라틴어로 씌여졌다. 읽고 싶으면 영어 라틴어 합본을 보자.[52]
-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 : 장르가 다양하다. 미학, 철학, 문헌학 책. 원래 문헌학 책으로 씌여졌는데, 문헌학자 사이에서 엄청나게 까였다. 해당 서적 출판을 계기로 학자 집단에서 따돌림당하게 된다. 사실 니체가 다른 문헌학자들을 왕따시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Über Wahrheit und Lüge im außermoralischen Sinn : 니체 저술 중 가장 짧고 쉬운 논문이다. 분량도 3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며 어느 정도 철학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며, 니체의 초기 사상이 가장 명료하게 결집된 텍스트이다.
- <선악의 저편>[53] Jenseits von Gut und Böse - 차라투스트라의 해설서. 차라투스트라는 꽤 난해하지만, 이것은 그것과 비교하면 덜 난해하다. 이 책은 아홉 장으로 나뉘어 기술되었는데, 첫 장에서 실체론을 비판하며 시작된다.
- <아침놀> Morgenröte [54] : 많은 잠언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 <안티 크리스트> Der Antichrist: 반쯤 제곧내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기독교는 비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비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니체는 이 책에서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며 기독교를 비판한다. 니체가 주장하길, 기독교는 무능하며 고통을 많이 받는 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데 반해 불교는 실증적인 종교라고 하며, 그 이유로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실존하지 않는 개념을 만들고 현실의 고통을 절대악과 인간의 불완전성의 결과로 여기며 현실을 부정하는데 반해, 불교는 실존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며 고통 또한 삶의 일부로 인정한다는 점을 든다.
- <우상의 황혼> Götzen-Dämmerung oder Wie man mit dem Hammer philosophirt : 소크라테스와 칸트를 집중적으로 비평하는 서적으로, 책 제목이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55] 패러디다.
-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 니체의 자서전. 본인의 다른 저술에 대한 해설이 많이 씌여져 있기에 다른 저술들을 읽고 이해하지 못했을 때 참고 삼아 읽어도 재미있다. 우상의 황혼과 같이 책 제목이 다음 성경 구절의 패러디이다.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자주색 옷을 입은 채로 나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라! 이 사람이다!' 하였다." <요한복음> 19:5
- <즐거운 지혜> Die fröhliche Wissenschaft[56] [57]
- <테오그니스 선집의 역사>
- Der Wille zur Macht : 니체의 저서 목록에서 제명되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
- My Sister and I : 미국에서 영어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니체의 자서전이라고는 하는데 위작이다. 위에 나온 <짜라뚜짜는 이렇게 말했다>의 권미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은 1960년대에 학자들에 의해 가짜라고 확실히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선 니체가 시카고,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함께 디트로이트를 언급하며 그곳에서 강연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디트로이트의 폭발적인 발전은 헨리 포드가 디트로이트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1903년 이후이다. 니체는 1900년에 죽었고, 죽기 10년 전에 정신병이 도져서 뭘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9.1. 읽는 순서
흔히 니체의 저서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잘 알려져 있으나, 니체 철학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저 산문시를 읽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니체의 삶과 철학, 저서를 친절히 설명해 주는 '이 사람을 보라'를 읽고, 그 다음 '우상의 황혼', '도덕의 계보', '선악의 저편', '안티크리스트'를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우상의 황혼은 니체의 철학을 요약해 보여주기 때문에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그 후 '비극의 탄생'을 읽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을 읽은 다음, 마지막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것이 좋다.
또한 이 저서들과 같은 시기에 쓰인 유고를 함께 보는 것이 좋다. 유고에는 니체가 출간한 저서들의 발생과정 및 숨겨진 의도와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1885~1888년 사이에 쓰인 유고(책세상판 전집 기준 19~21번)는 '힘에의 의지'를 기획하기 위한 글 모음이기 때문에 니체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면 이 유고를 읽어야 한다.[58]
10. 한국어판 전집에 대해
니체 전집은 휘문출판사판(1969년), 청하출판사판(1982년), 책세상판(2000년) 총 세가지가 있다. 원고의 방대함과 치밀함은 책세상판이 높지만 번역 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청하판은 80년대에 나왔고 중역이 많지만 그럼에도 니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책세상판과 달리 중요한 서문/평이 실려있으며 번역의 질이 우수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니체의 말년작인 선악의 피안(청하 '선악을 넘어서')가 그렇다. 책세상판도 일부 단권으로 된 책은 서문이 달려있으며(ex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의 뒤에 해설이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