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공

 


'''위(衛)나라 39대 국군
소공
昭公
'''
''''''
희(姬)
''''''
위(衛)
''''''
규(糾) / 주(舟)[1]
'''아버지'''
위도공(衛悼公) 희검(姬黔), 희비(姬費)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42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26년
1. 소개
2. 안습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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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제39대 군주. 위경공의 아들. 그는 신하인 위회공에게 살해당했다.

2. 안습한 생애


위 경공 33년(기원전 432년), 위 경공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규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 소공이다.
그 당시에 진(晉)나라를 3개로 나누어 생긴 삼진(三晉)이 대단히 강성해져 갔고, 위(衛)나라는 그 변화에 따를 힘도 의지도 없어 대단히 약해져 갔다.[2] 결국 위(衛)나라는 위(魏)나라의 신하를 자칭하게 되었다.[3]
위 소공 6년(기원전 426년), 신하인 공자 미(亹)에게 살해 당했고, 그 공자 미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 회공이다.
[1] 세본(世本)에 기록된 이름.[2] 위영공이 죽은 뒤 혼란이 일어나 가뜩이나 약한 국력이 지극히 약해져 결국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약해지고 말았다.[3] 이것 또한 종법 질서가 완전히 붕괴된 것을 의미한다. 전에는 패자나 패자가 되지 못한 강대국의 속국이 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신하를 자칭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