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왕가

 


'''위(魏)씨 가문 15대 종주
위(魏)나라 8대 국군
6대 왕
위왕 가
魏王 假
'''
''''''
희(姬)
''''''
위(魏)
''''''
가(假)
'''아버지'''
위경민왕(魏景閔王) 위증(魏增), 위오(魏午)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25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227년 ~ 기원전 225년
1. 개요
2. 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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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魏)나라의 제8대 군주이자, 마지막 .[1] 위경민왕의 아들. 마지막 왕이라서, 시호가 남지 않았다.

2. 치세


위왕 가 원년(기원전 227년), 연나라의 태자 단(太子 丹)이 형가(荊軻)를 보내 진시황을 암살하게 했으나 실패했다.[2]
위왕 가 2년(기원전 226년), 진나라가 점령한 옛 한나라 땅인 신정(新鄭)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금방 진압되었다.
위왕 가 3년(기원전 225년) 3월, 진나라의 장수 왕분이 대량(大梁)을 포위해서 결국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위왕 가가 진나라에 항복을 하니, 위나라가 멸망하였다. 위나라가 건국된지 179년 만의 일이었다. 진시황은 거기에 군현을 설치했다.
멸망 이후 진나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병으로 죽었다. 망국의 서러움에 대한 화병이라는 서술도 있다.
재위할 때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있어 뭘 해 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맥없이 픽픽 쓰러진 열국들에 비해 유일하게 그래도 한번 싸워라도 보고 죽은 군주이다.[3] 상술된 연나라 태자 단처럼 행동이 비교적 과감했다는 것에서 생년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위왕 가는 젊은 나이에 즉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1] 후일 초한동란기에 다시 세워진 때를 따지면 위표(魏豹)가 마지막 왕이다.[2] 이것이 왜 적혔냐면, 전국시대 정국에서 중요한 사건이라 그렇다.[3] 조나라의 저항은 장군 이목, 초나라의 마지막 저항은 장군 항연이 중심이지 왕들은 오히려 트롤링을 일삼았다. 연나라도 태자 단이 저항했고 왕 희는 별로 한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