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고려)

 



'''정주 류씨 3대 배향공신'''
'''양의공 유소'''
'''광숙공 유홍'''
'''정간공 유인저'''
'''천리장성 건설자
유소
'''
'''시호'''
'''양의공(襄懿公)'''
'''삼사'''
'''태위(太尉)'''
'''직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본관'''
정주 류씨
'''이름'''
소(韶)
'''생몰연도'''
? ~ 1038.04
1. 개요
2. 상세
2.1. 초기 커리어
2.2. 흥료국 사태
2.3. 천리장성을 쌓다
2.4. 북벌 시도
2.5. 사망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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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왕조 덕종 경강대왕 대의 문신. 정주 류씨의 시조라고도 전한다. 그를 기점으로 그의 아들, 그의 손자가 모두 시호를 받고 묘정의 배향공신이 되어 최고의 문벌귀족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유소는 현종, 덕종, 정종 3대 임금을 섬겼으며, 현종의 명령으로 조정의 3인자급인 참지정사가 되어 천리장성 축조의 책임자가 되었다. 덕종 대엔 2인자급인 평장사가 되어 북방 외교를 주도한다.

2. 상세



2.1. 초기 커리어


현종 때 등용된 후 중앙의 관직을 거쳤다가 1029년 왕명으로 흥화진 서북쪽 40리에 있던 석성 수리 및 진 설치를 맡으며 변방에서 근무하기 시작한다. 정융진(定戎鎭), 위원진(威遠鎭)을 설치했으며 이 때부터 현종의 눈에 띈 것으로 보인다.

2.2. 흥료국 사태


유소는 1020년대엔 서북면 병마판사(西北面 兵馬判事)[1] 직을 맡고 있었다. 유소는 고려 서북면으로 나가있다가 상을 당해 임시 휴직을 낸 상태였는데, 거란에서 흥료국이 건국되어 반란이 터지자 변방이 혼란스러워질 것을 걱정한 현종은 유소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교지를 내린다.
이에 장례식을 중단하고 병마판사로 돌아온 유소는 유사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판상서이부사(判尙書吏部事)[2] 및 참지정사(叅知政事)[3]로 승진하여 조정의 3인자가 된다.

2.3. 천리장성을 쌓다


이후 현종이 붕어하고 덕종이 즉위하자 중앙으로 돌아와 평장사 벼슬을 지내게 되는데 이 벼슬은 종 2품으로서 당시 수상격이었던 문하시중 다음가는 고위직이었다. 1033년(덕종 2년) 고려는 국경방어를 위한 장성의 축조를 기획하게 되었고, 변방 경험이 많은 유소가 이 일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리장성이다. 조정의 No. 2 대신이 직접 담당할 정도였으니 덕종이 매우 야심차게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유소는 우선 옛 석성(石城)을 수리하고 위원진, 정융진을 두어 국방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수리한 석성들을 바탕으로 축성 계획을 세웠고, 국경 각 지에 산재해 있던 성들을 연결하고 새로 축조하거나 보수하였다.
유소는 1034년 장성 축조의 공으로 추충척경공신(推忠拓境功臣)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4] 상주국[5] 태위[6] 문하시랑평장사(銀靑光祿大夫 上柱國 太尉 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2.4. 북벌 시도


거란이 지속적으로 압록강에 다리를 만들려 하는 등 견제 행위를 멈추지 않자 평장사 유소는 덕종에게 거란을 먼저 침공하자는 제안을 올린다. 유소는 압록강 이북의 성을 파괴하고, 군대를 북진하여 주둔시키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매파였던 왕가도, 이단 등이 열렬히 찬성했다. 덕종 역시 상당한 강경파였기에 꽤나 고민한 것으로 보이는데, 서눌, 황보유의, 최충 등 신하들의 강한 반대로 결국 태묘에서 친 점괘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각하된다.
점괘의 결과는 사실 어쨋든 좋은 핑계이고 실제 이유는 덕종이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이후 유소는 별 다른 기록이 안보이는 것으로 봐선 천리장성 축조에 신경을 쓴 듯하다.

2.5. 사망과 이후


천리장성의 완성은 1044년(정종 10년)에 이루었는데, 유소는 1038년 4월 무진일에 죽어 그 완성을 보진 못하였다. 하지만 현종, 덕종 양대에 걸쳐 국방 및 외교에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낸 덕분에 덕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아들로 유홍이 있었는데, 그는 생전 자신의 직위인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올랐고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 유소의 친손자 유인저도 크게 중용되어 유소, 유홍, 유인저 삼대가 배향공신이 되었다. 유소의 친손녀 명의태후는 숙종의 왕후가 되어 이후의 고려왕가는 유소와 혈연을 가지게 되었다.
[1] 병마판사는 판병마사의 별칭으로 지금의 군단장급 직위이다.[2] 상서성 소속인 이부의 장관.[3] 중서문하성 소속 직위로 서열 3위인 최고위 관직이다.[4] 문산계 품계로서 정 3품 품계.[5] 최고위 훈위. 명예직이다.[6] 정 1품 삼사직. 천자의 스승이라는 명예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