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눌
1. 개요
고려 초기 문관. 이천 서씨 문벌귀족 가문 출신으로, 서신일- 서필 - 서희 - 서눌 - 서정- 서균 -서공 에 걸쳐 칠대(7 대) 동안 재상직에 임명된 당대 최고 가문 중 하나다. 성종, 목종, 현종, 덕종, 정종 5대 임금을 섬긴 노신(老臣)이기도 하다.
2. 상세
성종 문의대왕 대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친 명재상 서희의 아들이다. 최초의 기록은 상서성 소속인 이부[1] 의 차관으로 등장한다. 이후 자신의 딸이 현종 원문대왕과 결혼해 원목왕후[2] 가 되자 권력이 더욱 올라가 중추원의 장관 중추원사(中樞院使)가 되었다.
이후 중추원과 더불어 최고 정부기관인 중서문하성의 차관[3] 이 되었다가 장관[4] 까지 직위가 승진하니, 그야말로 이천 서씨가 가장 권세가 강했을 때였다.
향직 품계 또한 정점을 찍어 1품 2등위인 중대광(重大匡)에서 1품 1등위인 삼중대광(三重大匡)까지 올라갔다. 후에 병을 얻어 퇴직하고 절에서 요양했다. 정종 용혜대왕은 내사령[5] 직을 내려 늙은 신하를 대우해주었고, 1042년 4월, 내사령이 죽자 '천자의 스승'이란 칭호인 태사를 추증하고, 간경공 시호를 주었다. 하지만 정종 문명왕의 추가 시호를 올릴 때 간경 시호가 선택되자 원숙 시호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