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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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游錫堃 / You Shyi-kun
- 생년월일: 1948년 4월 25일 (76세)
- 출생지: 타이베이
1. 개요
중화민국(대만)의 정치인. 당적은 민주진보당.
2000년대 천수이볜 총통 시절에 행정원장(국무총리격)을 비롯한 요직을 역임했으며, 이후에도 민진당의 유력 원로 인사로 활동해 왔다.[1]
2020년 2월부로 대만 입법원장(국회의장격)으로 선출되었다.
2. 생애
1948년 객가 집안에서 출생했다.
1977년 '당외'[2] 인사로 활동하던 린이슝의 선거 본부에서 간사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투신했다. 1979년 민주, 독립 성향의 잡지 <메이리다오>에 동참했고, 연말 메이리다오 사건에도 연루되었다.
이후 1981~1989년 사이에 이란 현에서 비국민당 재야 후보로 대만성 의회에 출마, 당선되었다. 1986년 민진당 창당에도 동참했다. 리덩후이의 총통 집권기이자 대만의 민주화가 현실화된 1989~1997년에는 이란현의 현장(도지사격)으로 당선, 재임했다. 특히 1998년 12월부터 민진당의 비서장(당 주석 비서실장역)으로 활동해 2000년 천수이볜의 당선, 민진당의 첫 집권에도 공헌했다.
2000년 천수이볜이 총통에 취임하자 행정원 부원장(부총리격)으로 임명되었고, 얼마 안되어 총통부 비서장(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장격)이 되어 천수이볜을 보좌했다. 2002년에는 행정원장으로 승진, 임명되어 3년 동안 내각 수반으로 재직했다.
행정원장직을 떠난지 1년 후인 2006년에는 민진당 주석(당 대표)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천수이볜이 선거자금 부정 폭로로 정치적 곤경에 빠지면서, 큰 활약은 하지 못했다.
2008년 국민당의 마잉주가 집권해 민진당이 야당으로 되돌아간 후에는 야인 생활이 이어졌다. 2014년 지방 선거에서 신베이 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국민당의 주리룬에게 패하기도 했다.
2016년 차이잉원의 당선으로 민진당이 재집권하면서, 다시금 정치 활동을 본격화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대만 정부 대표로 파견되기도 했다. 2020년 1월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입법의원 총선거에 민진당 비례대표로 출마, 당선되었다. 그리고 1달 후인 2020년 2월 입법원장에 선출되어 15년만에 다시 정부의 3부 요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5월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 취임식에 참석, 입법원장 자격으로 국새를 전달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3. 기타
민진당의 여러 지도급 인사들처럼, 대만 독립을 열렬히 지지하는 인물이다. 행정원장 시절인 2004년 중국의 군사 위협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장하면서 "중국이 타이베이에 미사일 100발을 쏘면, 대만도 상하이 등에 50발의 미사일을 발사해 보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3] 이 발언은 중국은 물론, 대만 정치권 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고, 대만 국방부는 "중국의 비군사 표적에 대한 보복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하였다.
4. 선거 이력
[1] 2000년대 천수이볜의 집권기에는 뤼슈롄 전 부총통, 셰창팅 전 행정원장, 쑤전창 현 행정원장 등과 함께 민진당의 4대 실세로 불렸다. 이들을 가리켜 '4대 천왕'이라고 불렀을 정도.[2] '국민당 외부'라는 뜻인데, 대만 민주화 이전의 재야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다. 1949년 대만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후 국민당이 유일 합법 정당으로 군림하고, 다른 정당의 설립이 금지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1986년 민주진보당의 출범, 1987년의 계엄령 해제를 통해 비로소 종식되었다.[3] 현재 대만은 독자 개발한 슝펑 대함 미사일을 개량한 순항미사일을 개발, 배치하여 대만해협 너머의 중국 동남부 지역을 공격할 수 있다. 보다 사거리가 연장된 탄도미사일까지 개발, 보유 중이라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