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 행정원장

 



'''중화민국 행정원 원장'''
'''中華民國行政院院長'''
'''Premier of the Republic of China'''
'''현직'''
쑤전창 (30대)
'''취임일'''
2019년 1월 14일
'''정당'''
민주진보당
1. 개요
2. 역사
2.1. 중화민국 국무총리
2.2. 국민정부
2.3. 대만에서
3. 임명과 해임
4. 권한과 책임
5. 역대 행정원장
6. 역대 행정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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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화민국 행정원의 수장. 행정부인 행정원을 통솔하기 때문에 중화민국(대만)의 정부수반으로 간주된다. 한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행정원장이라고 하지만 대만에서는 '행정원 원장'이 정식 직함이고 '행정원장'은 약칭이다. 다른 말로 각규(閣揆)라고도 하는데 각규는 글자 그대로 내각을 헤아리는(통솔하는) 직책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President of the Executive Yuan이나 Premier (of the Republic of China)라고 하는데 후자가 좀 더 많이 보인다.

2. 역사



2.1. 중화민국 국무총리


중화민국의 행정부 수반은 중화민국 건국 직후 창설된 국무총리(國務總理)를 기원으로 하며, 총통이 그를 임명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가 대총통이 되면서 그의 집권 말기인 1914~1916년에는 국무총리가 아닌 정사당국무경(政事堂國務卿)이라는 군주제적인 명칭으로 변경했었다. 그리고 위안스카이가 중화제국 황제를 자칭했을 때에도 국무경이 내각을 통솔하게 했지만, 중화제국이 취소되고 위안스카이가 죽자 직함 이름이 다시 국무총리로 돌아갔다. 장훈복벽 당시에는 청나라 시절의 직함인 내각의정대신(內閣議政大臣)이 다시 복구되어 그에게 내각을 통솔하게 한 적도 있다.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탓에 국무경이든 국무총리든 1년 이상을 재임한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2.2. 국민정부


1928년 북양정부난징에 수립된 국민정부북벌에 의해 와해되면서 국무총리직은 사라진다. 대신 국민정부는 오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가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원을 설치하고, 그 수장인 행정원 원장직을 신설했다.
1946년에 중화민국 헌법이 제정되면서 행정원장은 총통이 지명하면 입법원의 동의를 거쳐 임명하는 것으로 되었다.

2.3. 대만에서


중화민국 헌법에 따르면 국가수반은 총통이고 행정수반은 행정원장이지만, 양자의 권한이 충돌하지 않도록 상세하게 규정된 것은 아니었다.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입지를 가진 장제스가 헌정 초대 총통이 된 후 얼마 못 가 총통의 권한을 엄청나게 강화한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이 시행되고, 국민정부가 대만으로 피난하면서 야당은 물론 국민당 내 장제스 반대세력조차 절멸해버렸다. 그리고 장제스는 대만에서 당과 군대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1인독재를 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원장도 실질적으로는 총통의 의사에 따라 행정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러한 체제는 법적으로 확립된 것이 아니라 장제스 개인의 카리스마와 당 및 군대의 지지로 확립된 것이기에, 총통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행정원장의 권한이 크게 바뀌기도 했다. 장제스 사후 옌자간이 총통 권한대행을 했을 때는 장제스의 후계자인 행정원장 장징궈얼굴마담에 충실했고, 행정원장이 우위에 서서 권력을 행사했다. 한편 리덩후이는 장징궈 사후 부총통으로서 총통 권한대행을 하고 이후 정식 총통에 당선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국민당에서 장제스, 장징궈가 누린 바와 같은 절대적 입지를 갖지 못했고, 이 때문에 타협책으로서 국민당 내 정적이나 다름없었던 외성인 정치인들을 행정원장에 임명했다.(리환, 하오보춘 등) 그러나 리덩후이와 리환은 사사건건 충돌을 빚었고, 하오보춘 역시 리환만큼은 아니어도 충돌이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총통과 행정원장이 충돌하거나 행정원장이 우위를 보였던 시절은 극히 한정적이고 헌정 실시 이후 대부분의 기간에 행정원장은 총통의 국정방침을 충실히 구현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1997년에 헌법 수정에 따라 입법원의 행정원장 인사 동의권이 사라지고 행정원장의 인사권을 전적으로 총통이 갖게 되면서 총통의 행정원장에 대한 우위가 헌법적으로도 확립되었다.

3. 임명과 해임


행정원장에 대한 인사권은 전적으로 총통에게 있다. 1997년까지는 총통이 지명하면 입법원의 동의를 거쳐 임명되었는데 오랫동안 국민당 일당독재를 구축해온 역사로 인해 임명 동의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인사권이 전적으로 총통에게 있는 지금도 행정원이 입법원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는 관습은 어느 정도 있다. 예를 들어 행정원장 임명에 입법원의 동의가 필요했던 1995년에 사법원(대만의 헌법재판소 격)에서 행정원은 입법원의 신임을 받아야 한다는 헌법해석이 내려진 이래로, 관례적으로 입법원 선거를 치르고 나면 새 입법원의 원내 구성과 상관없이 행정원장과 그 이하 내각 구성원은 총통에게 사직서를 제출한다.
한편 입법원은 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행정원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발의할 수 있다. 결의안은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될 수 있고, 통과되면 행정원장은 10일 이내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하며, 동시에 총통이 내각불신임결의 10일 이내에 의회해산을 단행해야 한다. 불신임제도는 1997년에 입법원의 행정원장 임명 동의권이 사라짐과 동시에 생긴 것으로, 1999년, 2012년, 2013년에 불신임결의가 제출되었지만 한번도 통과되었던 적이 없다. 대만 역사상 여소야대가 이루어졌던 적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2005년에 이루어진 헌법 수정에서 총통 임기 4년, 입법원 임기 3년이었던 것을 모두 4년으로 맞추고 총통 선거와 입법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면서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대만 역사상 여소야대였던 적은 천수이볜 정부 시절의 8년뿐인데 이 때에도 총통 탄핵안이 제출되었지 행정원장 불신임안은 제출된 적이 없다.

4. 권한과 책임


  • 행정원 회의(行政院會議)[1] 주재
  • 총통에 대한 행정원 부원장, 정무위원(장관) 임명 제청권
  • 입법원에 대해 행정 정책 및 결과에 대한 보고서 제출
  • 입법원의 행정원의 정책 관련 질의에 대한 출석 및 답변
  • 입법원을 통과한 법안에 대한 서명.[2]
  • 총통의 재가를 얻어 입법원을 통과한 법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3]
그 외에도 행정원장은 부총통에 이어 총통 권한대행 제2순위이다. 총통과 부총통직이 모두 공석인 경우에는 그가 최장 3개월간 총통 권한대행이 된다.
국민당 독재 시절의 유산으로 인해 대만의 행정원장은 내각제 국가의 수상보다는 한국의 국무총리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4]. 그러나 한국에서는 헌법에서 대통령이 정부수반이라고 명시되어 있고[5] 국무총리의 국무위원(장관)에 대한 임명제청권이 실질적으로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데 비해, 대만의 행정원장은 헌법에 행정부의 장으로 명시되어 있고, 장관 임명 제청권도 비교적 잘 행사되는 편이다. 물론 총통이 행정원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장관도 총통이 임명하기에 총통의 의사를 거스르는 인물이 장관에 임명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지만, 한국과 달리 총통이 직접 장관 인선을 하는 일은 없다. 실질적으로 장관급 인사에 대한 인선을 행정원장 차원에서 진행하고 총통은 이를 추인하는 데 머무른다.
대만에서는 행정원장의 교체를 개각으로 보며, 정권의 시기구분 방법으로 당시 행정원장의 이름을 딴 내각 이름을 붙인다.

5. 역대 행정원장




6. 역대 행정원 부원장



[1] 한국의 국무회의에 해당한다. 한국 국무회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통령(총통)이 의장이 아니라는 점이다.[2] 법안은 총통이 서명하고 공포하지만 이것이 효력을 가지려면 행정원장이 반드시 서명해야 한다.[3] 입법원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무시 가능.[4] 반대로 한국의 국무총리를 대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부총통+행정원장이라 하면 되겠지만 실제 권한은 행정원장이 국무총리보다 크다.[5] 대한민국 헌법 66조 4항: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