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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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처현을 그린 삽화)
劉處玄
1147년 ~ 1203년
금나라 때의 도사. 전진교의 전진칠자 중 한 사람이자 전진교의 제 4대 조사로 자는 통묘(通妙), 도호는 '''장생자(長生子)'''이다.
산동성 동래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효성있게 모셨으며 부귀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하며 1169년에 왕중양이 동래에 전도하러 왔을 때 그의 제자가 되었다.
왕중양 사후에는 경락에 은거하여 수도하였으며 1188년에는 창양에서 제단을 세우고 기우제를 올리기 위해 초제를 주재하였으며 1198년에는 장종의 부름으로 궁중에 가서 귀빈으로 대접받았으며 그에게서 영허(靈虛)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수산파라 불렸으며 그가 죽은 지 한참 지난 시기인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 때 그는 장생보화명덕진인으로 봉해졌다.
천강북두진으로 황약사와 두 번 대결할 때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신조협려에선 다른 육자들에 비해 활약이 미미하다. 체구가 작고 원숭이 같은 용모를 지녔다 한다. 신조협려에서 옥봉밀장을 소용녀로부터 받아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주백통에게 한 마디 건넨 것 이외에는 제대로 된 대사도 거의 없다.
(유처현을 그린 삽화)
劉處玄
1147년 ~ 1203년
1. 개요
금나라 때의 도사. 전진교의 전진칠자 중 한 사람이자 전진교의 제 4대 조사로 자는 통묘(通妙), 도호는 '''장생자(長生子)'''이다.
산동성 동래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효성있게 모셨으며 부귀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하며 1169년에 왕중양이 동래에 전도하러 왔을 때 그의 제자가 되었다.
왕중양 사후에는 경락에 은거하여 수도하였으며 1188년에는 창양에서 제단을 세우고 기우제를 올리기 위해 초제를 주재하였으며 1198년에는 장종의 부름으로 궁중에 가서 귀빈으로 대접받았으며 그에게서 영허(靈虛)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수산파라 불렸으며 그가 죽은 지 한참 지난 시기인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 때 그는 장생보화명덕진인으로 봉해졌다.
2. 대중매체에서
2.1. 사조영웅전의 유처현
천강북두진으로 황약사와 두 번 대결할 때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2.2. 신조협려의 유처현
신조협려에선 다른 육자들에 비해 활약이 미미하다. 체구가 작고 원숭이 같은 용모를 지녔다 한다. 신조협려에서 옥봉밀장을 소용녀로부터 받아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주백통에게 한 마디 건넨 것 이외에는 제대로 된 대사도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