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칠자
1. 역사
중국 도교의 실존 인물들이다.
왕중양과 일곱 제자로 도교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치한다. 왕중양은 북오조(北五祖)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일곱 제자는 보통 도교에서는 북칠진(北七眞) 또는 북칠진자(北七眞子)로 통한다. 구처기가 칭기즈 칸을 만난 것이나, 왕처일 별명 '철각선'은 사실이다.
당연히 2번 항목의 소설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무공 고수는 아니다.
2. 매체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전진교 일곱 도사로 모두 왕중양의 직전 제자이다.
<사조영웅전> 초반엔 천하오절을 제외한 다음의 무림 고수들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굳이 비교하자면 천하오절의 실력은 전진칠자가 특정 진법없이는 힘을 합해봐야 못 당하는 넘사벽이다. 그리고 사통천, 영지상인, 팽련호 등의 작품 내에서 이름난 고수들 역시 전진파의 위명을 알고 있음에도 이들과의 대결을 굳이 꺼리지 않으며 실제 지지 않는다. 신조협려 시대까지 넘어가면 이제 니마성, 소상자, 공손지를 비롯한 어지간한 강적들은 모두 전진칠자를 훌쩍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러 있을 정도다. 정확하게 천하오절들의 제자들인 어초경독, 구양공자나 금륜법왕의 제자인 달이파, 곽도 등과 비슷한 수준.
현문 정종이라 일컫는 전진파 무공에 숙달된 이들인만큼,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단 왕중양의 절기라고 하는 선천공은 아무도 전수받지 못한 듯하다.
가장 강력한 기술은 전진칠자 전원이 합공을 펼칠 때 사용하는 천강북두진이라는 진법으로, 왕중양이 북두칠성의 운행을 보며 떠올린 합동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공격받으면 직접 손을 쓰지 않고 다른 이들이 구해주는 전법을 펼치며, 단순히 합공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음양조화의 원리로 서로의 빈틈을 메우고 공격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특징이 있다. 전진칠자 전원이 이 천강북두진으로 나서자 천하오절 중 일인인 황약사와 하룻밤을 꼬박 싸워도 승패를 가리지 못할 만큼 위력이 강력했다. 이후 사망한 담처단 대신 곽정이 끼어든 천강북두진은 황약사조차 몰아붙여 승산을 확보할 정도였다.[1]
모두 모인 것은 임안부 우가촌에서의 일인데, 양강과 구천장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 황약사가 주백통과 곽정을 죽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천강북두진의 위력으로 매초풍을 제압하고 황약사와 결사전을 벌이다가, 이틈을 타서 양쪽을 모두 죽이려 한 구양봉의 난입으로 담처단이 죽음을 맞게 된다.
이후 마옥이 자연사 하여 전진오자가 되며 사실 역사적 기록으로 따지자면 전진칠자 전원이 <신조협려>의 시기에는 수명상 죽은 사람들이 되지만 계속 등장하게 되었다.
주인공인 양과와 소용녀를 비롯하여 금륜법왕, 니마성, 마광좌, 소상자, 윤극서, 공손지(절정곡 곡주), 이막수 등 그들보다 강한 캐릭터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인지 빛이 바랬다.
곽정이 주최한 영웅대회에 다녀왔다가 자신들의 실력이 부족하게 되었음을 깨닫고 폐관수련에 들어간다. 수련 후에 천강북두진을 개량한 새로운 진법인 칠성취회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때가면 소용녀가 쌍수호박으로 금륜법왕, 니마성, 소상자, 윤극서를 혼자 상대하고 있었다. 이를 본 전진오자는 부끄러움과 탄식을 금치 못한다.
[1] 사실 황약사는 이미 천강북두진과 하룻밤을 겨루고 그 원리를 깨달아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천강북두진으로 황약사를 꺾을 수 없었다. 단 대신 끼어든 곽정의 실력이 칠자들보다 월등히 높아 황약사를 상대로 혼자서도 얼마간은 겨룰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고, 무공이 월등한 곽정을 중심으로 천강북두진의 핵심이 천선에서 천권으로 변화되었기에 황약사가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