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마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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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AV 여배우이자 여배우, 스트리퍼. Av여배우는 2006년에 은퇴했으나 2014년엔 영화도 찍고 화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 상세
1977년생 일본의 전설적인 AV 배우. 1995년에 데뷔하여 귀여운 얼굴과 풍만한 가슴 등을 무기로 일본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배우다. 그래서 별명도 ''''아시아의 여신''''
어렸을 때 이름은 Yuki makui 유키 마쿠이였다.
1990년대에 톱 av 아이돌 중 하나였다. 1998년엔 올해의 Av Girl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조폭 출신 아버지의 딸이었고 고교 진학 첫 날에 교사와 싸우는 바람에 퇴학당했다고 한다. 퇴학 후 17세에 골프 캐디로 일했는데 근무 중에 같은 동네 조직폭력배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 이로 인해 생긴 남자 공포증이 생겼고 AV작품을 찍어 내며 이 두려움과 맞섰고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데뷔작은 1995년 4월의 h.m.p 티파니 사의 쇼주큐 사츠교(졸업)이다. 이를 찍는데는 성폭행의 기억으로 인한 감정 상태로 인해 매우 어려움이 따랐다. 이후 1995~1996년 기간에 티파니&코스모스 회사와 독점계약을 맺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꼬마악마(소악마) 풍 미소녀' 이미지로 인기를 끌며 큰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1996년까지 활동하다 은퇴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그 후에 나타났다. 은퇴 이후 공백기를 갖던 중 홍콩으로 불법 비디오가 흘러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비디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홍콩 내에서 하나의 사회현상화 된 것이다. 이를 연구한 논문까지 있을 정도.# 뿐만 아니라 유키 마이코가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미녀상을 제시한 심볼이라는 연구와 논문까지도 나왔다.# 그야말로 센세이션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
홍콩에서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홍콩 나이트 가이드'라는 홍콩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고, 이로써 그녀는 '''av배우 최초의 해외 연예계 진출'''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영화촬영으로 인해 유키 마이코가 홍콩에 방문하게 되자, 여러 신문에 그녀의 방문 소식이 기사로 실렸으며, 거리 곳곳에 그녀의 사진이 붙었고, 그녀를 보기 위해 공항에는 8천 여 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떠도는 루머 중에는 그를 만나려던 팬들 때문에 거리에서 유혈사태까지 일어났을 정도로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홍콩 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2012년 대만의 온라인 뉴스 서비스인 Nownews가 선정한 대만에서 유명한 일본 여배우 목록 Top 10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연예계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대만에서, 유키 마이코는 av여배우 탑 10 목록이 아니라 일본 여배우 전체 탑 10 중 4위를 차지한 것이다. 2012년이 그녀의 전성기가 끝난지 10년도 훨씬 넘긴 시점임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였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렇듯 별명인 ''''아시아의 여신''''이라는 칭호는 이러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높은 인기에 기반해 해외에서 먼저 그렇게 불리기 시작해 붙여진 것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안타까운 점이 있다. 유키 마이코의 전성기인 95~96년은 98년에 김대중 정부에 의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기 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유독 유키 마이코의 인지도가 낮은 동아시아 국가 중 하나다. 유키 마이코의 인지도가 한국에서는 어둠의 루트를 통해 알 만 한 사람들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진 정도였지만, 동시대 유키 마이코의 위상은 중국, 북한 등 당시의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과, 일본과 외교적 특수관계에 놓여있던 한국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 홍콩, 대만 등 약간의 과장을 보태 '''동아시아 자유주의 진영 전반에 가히 '유키 마이코 신드롬'이 불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좀 더 일찍 시작되었더라면 유키 마이코의 국내 인지도 역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그 방증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활동기가 맞물려 국내에서 높은 인지도를 누림과 동시에, 국내진출에까지 성공한 카나자와 분코 등의 사례[1] 가 있기 때문이다. 유키 마이코의 팬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임과 동시에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
96년 av배우의 길에서 은퇴 한 이후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 변신을 꿈꿨으나 그리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지는 못했고, 결국 97년에 다시 av배우로 복귀한다. 미모는 여전했으나 연예계 생활을 위한 다이어트의 영향 때문인지 살이 많이 빠졌고, 이로인해 가슴 사이즈가 확연히 줄어든 모습을 보였다. 피부를 약간 태우고, 살이 빠지면서 몸매가 변한 탓인지 복귀 후로 풍기는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은퇴 이전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이었던 하얗고, 키가 크지 않고, 귀여우면서도 글래머러스한 여성상이었으나, 은퇴 이후 배우가 되기 위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던 것이 이러한 여성상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 때문에 일본 내에서의 인기도 이전과 같지는 못했다. 은퇴 이전에는 귀엽고 짓궂은 소악마풍이라는 일본 내에서의 평가 그대로, 장난꾸러기스러운 발랄하고 명랑한 작품들에 많이 출연했다면, 복귀 후로는 본디지, sm플레이 등을 다룬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다른 동시대 배우들처럼 은퇴와 복귀를 거듭하는 행보를 보인다. 2006년에 이르러야 av여배우를 은퇴하게된다.
본인 스스로를 여전히 av여배우라고 소개하는 유키 마이코이지만, 여전히 영화배우의 길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2014년 나츠미 유이, 노조미 아소, 오키타 안리 등과 함께 홍콩에서 제작한 '3D Naked Ambition'이라는 코미디 영화에 본인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국내에도 개봉했었는데 국내개봉 제목은 '정자왕 3d'. 미래의 목표는 단역이라도 좋으니 헐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헐리우드 내에서도 조금씩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헐리우드에서 원하는 전형적인 동양인 배우상인 '무술을 잘 하는 신비로운 동양인'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예전에 비해 활동이 뜸하기는 하나 화보촬영 등 여전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참고로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1] 그라비아 화보촬영으로 국내에 진출한 바 있으며, 물론 국내 그라비아 시장의 한계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