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전조)
1. 소개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전조(前趙)의 제6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이다. 나라가 멸망했기 때문에 묘호, 시호도 없다.
2. 생애
유희는 유요(劉曜)와 양황후(羊皇后)[1] 의 장남으로 유요가 황제에 즉위하자, 황태자가 되었다.
328년 12월, 아버지 유요가 낙양 북서쪽 금용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주하다가 후조(後趙)의 석륵(石勒)에게 사로잡혔으며, 이때 석륵이 유요에게 항복시키라는 편지를 보내 타이르게 하도록 했는데, 유요는 사직을 널리 유지하고 자신과 바꿀 생각을 하지 말라는 칙령을 내려 석륵은 이를 싫어해 유요는 처형되었다.
329년, 유희는 황제에 즉위하고나서 남수도 장안을 버리고, 진주의 상규로 수도를 옮겼다. 같은 해 8월에는 남양왕인 유윤의 주도로 반격에 나서 후조가 점령한 장안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오히려 대패했다. 이때 아예 전조를 멸하기 위해 반격에 나선 후조의 중산공(中山公) 석호(石虎)에 의해 상규가 점령되었으며, 유희는 황족인 유윤, 전조의 장군, 왕후, 공경, 교위 이하 3천여 명과 함께 포로로 사로잡혀 후조의 수도 양국으로 압송되어 처형당했다.
또한 대성의 관리, 관동의 유민, 진, 옹의 대종족 9천여 명이 양국으로 옮겨지고 다섯 군의 도각 5천여 명이 낙양에서 생매장을 당했다. 이렇게 전조는 완전히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