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77호'''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義城 塔里里 五層石塔


'''소재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오층석탑길 5-3 (탑리)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건축시기'''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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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77호


1. 개요


義城 塔里里 五層石塔.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에 위치한 응회암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9.6m의 큰 석탑으로, 통일신라 전기에 만들어진 탑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오래된 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형태가 상당히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
탑이 위치한 지명이 탑리리로 독특한데, 동네 이름인 탑리리(塔里里) 자체가 이 탑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동네 이름은 동네에 본 탑이 있어 탑리였는데, 행정구역 개편으로 탑리동으로 바뀌었다가 1988년에 있던 지명 변경으로 탑리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이 서 있는 자리에 관해서는 현재 아무런 기록도 전하지 않고 탑 주변에 남아 있는 변변한 유구도 거의 없어서[1] 본래 절터의 이름조차 알 수 없으며, 본 석탑은 탑이 위치한 지명을 따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2]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1962년에 국보 제77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중 하나로 꼽히는데, 탑에서 나타나는 건축 양식은 전탑목탑의 특징이 모두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며 일종의 모전석탑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모전석탑과 석탑의 과도기와 같은 형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한다.
탑의 구조는 1층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몸돌(=탑신)과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대다수의 다른 탑들처럼 5층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은 약간의 밑받침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사라지고 없다.
탑리리 오층석탑을 구조적으로 보면 모전석탑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본 석탑은 한반도 모전석탑 가운데 가장 초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는 형태를 달리하는데, 탑신을 벽돌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지붕돌을 층층이 쌓은 형태로 다듬고 짜맞추어서 처마와 지붕이 층단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놨다. 다만 4층과 5층의 지붕돌은 다른 돌들로 짜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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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탑신의 남쪽면에는 감실이 만들어져 있는데 본래는 그 안에 불상이 모셔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 감실의 테두리는 양각하여 문처럼 조형해놨다.
각 층의 탑신에는 기둥형 장식이 네 모서리에 있고, 탑신의 2층부터는 모서리 뿐만 아니라 각 면의 중앙에도 기둥형 장식을 만들어놨는데, 이 기둥형의 장식들은 목조 건축의 양식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돌을 단순하게 기둥 모양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배흘림기둥으로 조각한 것이다. 배흘림 기법은 건축물의 무게감을 약화시켜서 안정감 있게 보이도록 하는 방식인데, 한반도에선 목조 건축물에 주로 사용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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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상승감이 상당하다.
탑리리 오층석탑은 높이가 약 10m에 달하여 그 자체도 꽤 높은데다가, 위치도 넓은 평야에 있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아 더욱 치솟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각 층의 지붕돌은 장대한 편이라 무게감까지도 상당한데, 배흘림 기법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시각적인 안정감을 준 것이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모전석탑이지만 목조 건축의 양식을 모두 보이고 있는 특이한 사례이자 모전석탑과 석탑의 과도기 형태를 나타낼 뿐더러 원형도 대체로 잘 보존된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높으며, 그 크기도 웅장하여 장중한 미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미적 가치도 높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일찍이 이러한 가치들을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7호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77호


탑리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塼塔)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 탑의 주변으로는 뭉그러진 석등 받침돌과 주춧돌로 보이는 석재들 몇 개 정도 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출처 :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북부 : 탑리 오층석탑[2] 본래 이 탑이 있어서 동네 이름으로 탑리리라는 지명이 되었는데, 이 지명이 다시 탑의 이름에 붙은 셈이다.[3] 한반도에 현전하는 목조 건축물 중 배흘림 기법이 사용된 대표적인 예로는 부석사 무량수전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