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

 



1. 개요
2. 유명한 석탑 사진
3. 참고 항목


1. 개요


로 만들어진 . 한국의 대표적인 탑 양식으로 손꼽히며, 돌을 깎아 만든 그냥 석탑이 있는가 하면 돌을 벽돌처럼 만들어 쌓은 모전석탑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한반도에 널려 있으며 거의 대부분이 문화재이다. 초기의 석탑은 미륵사 석탑처럼 목탑을 돌로 옮긴 형태였다가 점차 소형화되면서 석탑만의 독특한 형식을 갖추며, 고려시대에는 특히 기이한 형태의 석탑(이형석탑)들이 많이 등장한다.
한국에는 화강암이 많아 석탑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삼국시대때부터 조선초 무렵까지는 목탑도 많았다.그러나 대부분의 목탑들은 전란으로 인해서 대부분이 망가지거나 불에 타 없어지고 석탑만 많이 남았고, 또한 목탑은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서 승유억불 정책으로 인햇 목탑을 개보수할 돈이 왕창 줄어든것도 한 몫한다. 그리고 이게 양날의 칼인 게, 한국에서 흔한 석재인 화강암은 튼튼해서 잘 버티지만 깎기도 그만큼 힘들다. 불국사의 여러 유산들이 찬탄받는 것은 단순히 멋있어서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유럽에서 흔해 조각에 많이 사용한 대리석은 깎기 쉽기 때문에 기교를 비교적 많이 부릴 수 있지만[1] 비교적 강도가 약하기도 하고 요즘은 산성비 크리를 맞고 있다.
한반도에 남아있는 석탑들은 주로 백제, 신라, 고려시대 것 들인데 백제와 신라 시대의 석탑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데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탑의 지붕 모양이다. 백제는 전체적으로 지붕이 거대하면서도 끝부분이 갈수록 얇아지고 위로 휙휙 들려 있다. 반대로 신라는 지붕이 아담하면서도 뭉툭, 통통(?)하다. 그리고 층수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백제는 주로 5층탑을 기본으로 하되 각 층의 높이를 줄이고 지붕돌을 얇게 했으며, 신라는 3층탑이 기본에 대신 탑이 너무 낮게 보일 것을 감안해 기단을 2중으로 하고 상층 기단부는 높게 축조, 탑신부도 두텁게 해서 왜소해 보일 것을 방지했다. 고구려는 현존하는 석탑은 없지만 평양의 보현사, 평창의 월정사, 남양주의 수종사에 고려시대 팔각다층석탑들이 분포하는데, 이 지역들이 과거 고구려의 점령지였다는 점과 고구려 목탑지의 특성(팔각건물)과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계 석탑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중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게 되면서 경주시 불국사 석가탑 모양과 거의 똑같은 모습의 전형적인 통일신라식 3층 석탑이 한반도 전체로 퍼져 석탑의 양식이 거의 통일되는데, 옛 백제 영역이던 서남부 지역의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이나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 그리고 지금은 북한령인 금강산의 정양사 삼층석탑이 그 예시이다. 물론 항상 똑같이 생긴 표준 양식 석탑만 만든 것은 아니고 어떤 것은 다른 석탑과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런 이형석탑(異形石塔)의 대표격으로 불국사다보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이 있다. 분황사의 계보를 잇는 모전석탑들도 일종의 이형석탑들이다.
신라 중대까지는 다른 장식 없이 깔끔하게 절제된 삼층석탑 위주로 세우지만 하대부터는 석탑에 다양한 조각을 새기는 세련된 정형석탑이 유행한다. 문짝, 인왕상(금강역사상), 사천왕상, 팔부중상, 십이지신상 등. 예를 들어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울산 간월사지 삼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이 다양한 조각이 남아있는 하대 석탑이다.
고려시대 들어서는 각 지방 호족들의 문화가 발달하면서, 표준양식의 보급이 눈에 띄던 신라 때보다 전국에서 독자적인 형식의 석탑들이 많이 건립되었다. 고려 말에는 경천사 10층 석탑처럼 몽골 제국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석탑도 등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로 전반적인 불교 교세가 축소되고 석탑보다는 불상을 중시하는 경향이 생겨 석탑 건립은 저조하고 석탑의 전체적 규모가 축소되었다. 층수는 높아지고 기단부, 탑신석, 옥개석은 낮고 간략화된다.
돌을 벽돌처럼 깎아 만들면 모전석탑이다. 참고로 산업훈장 마지막 등급인 석탑(錫塔) 산업훈장은 돌탑이 아니라 주석탑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은 북한에 있는 주체사상탑이다.(...)

2. 유명한 석탑 사진



2.1.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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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중 동탑. 1990년대에 복원한 건데 기계로 깎아 너무 매끈한 탓에 이질감이 들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는 대놓고 깠다. 거기다 무게 때문에 금이 가서 지속적으로 보수해야 한다. 문화재 졸속 복원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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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유적 5층 석탑. 본디 왕궁이었던 자리에 절이 세워졌으나 그 절마저 사라지고 탑만 남았다. (국보 제2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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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오층석탑. 실제로 보면 꽤나 크고 아름답다. (국보 제9호)

2.2.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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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모전석탑. 형식은 전탑이나 재질은 석탑이다.(점판암을 일일히 깎아 겉모습을 벽돌처럼 만들어서 쌓았다.) 본래는 7~9층으로 더 컸지만 윗 부분이 날아가고 3층만 남았다. (국보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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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3층 석탑. 문무왕때 건립되었다. 통일신라의 석탑은 3층짜리가 많다. 통일신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커다랗다. (국보 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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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다보탑. 535년(법흥왕 22년)에 불국사가 창건한 후,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으로 불국사가 중건될 때 석가탑과 함께 수축(修築)한 것으로 추정된다.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져 있다. (국보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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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3층 석탑. 석가탑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여기서 발견되었다. 석탑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국보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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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탑신에 팔부중 부조를 새긴 것이 독특하다. (국보 제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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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능지탑지의 능지탑(연화탑).(사진출처:문화재청 능지탑 항목)) 현 모습은 남은 석재 중 일부로 복원한 것으로, 본래는 5층 석탑이었다고 추정된다. 참고로 복원 전 모습은 심히 처참했다(...) 현재는 중생사라는 절에서 관리중. (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

2.3.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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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묘향산의 보현사 석탑과 남양주 수종산의 석탑과 마찬가지로 8각의 고구려계 석탑이다. (국보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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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원형 다층 석탑. 대표적인 고려 시기 이형석탑이다. (보물 제7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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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 10층 석탑.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3] (국보 제86호)

2.4.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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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지 십층석탑.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판박이 수준이다. 이것 역시 대리석 재질이어서 산성비 피해 방지를 위해 유리각으로 덮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어서 문제. 가끔은 해당 문화청 공무원들이 관리에 들어가기는 하나 역시 아주 가끔이라서 아직까지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덮어있다보니 곰팡이가 생기거나 석탑 곳곳에 세월의 흔적인 금이 가 있어서 보수 공사라도 해야할 듯. (국보 제2호)

3. 참고 항목


[1] 원나라티벳불교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경천사 10층 석탑,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지어지기도 했다.[2] 방화된 후에 전소된 숭례문도 복원된 성벽도 너무 기계로 다듬은 나머지 옛날 성벽의 벽돌과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일일히 돌을 깎아 만들어서 어느 정도 울퉁불퉁하긴하나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에는 역사적인 가치로 보여질 정도로 정성이 느껴지는데 시간이 없다보니 기계로 매끈하게 만들어서 그냥 대충 만든 느낌이 강하다.[3] 원래 경천사는 경기도 개성 -정확히는 개풍군- 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일제 시기 이 탑을 불법 반출했다가 각종 비난에 못이겨 임시로 경복궁에 놔두었는데 그 상태에서 광복과 남북 분단을 맞아 결국 원위치로 가지 못하고 있다가 산성비 크리를 방지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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