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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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 문무대왕릉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정자이다. 통일신라시대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대에 만들어졌다. 1967년에 사적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2. 역사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동해바다에 장사지낸 뒤, 왜구에게서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었다고 여긴 문무왕을 참배하기 위하여 문무대왕릉이 잘 보이는 바닷가 언덕 위에 이견대를 지었다. 신문왕이 용에게 아이템 만파식적을 받은 곳도 이견대이다.
지금 이견대에 존재하는 이견정(利見亭)은 당연히 신문왕 때 만든 그 건물은 아니고 1970년 발굴로 건물지를 확인한 후 안압지 등에서 확인한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해서 197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역할이 전망대이니만큼 여기서 내려다보는 바닷가 풍경이 꽤 괜찮다.
다만 이견대의 원래 위치는 이곳이 아니라 좀 더 위쪽[1] 이었고, 현재 알려진 이견대는 조선 시대에 역원이 있던 자리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관련 기사
2020년 경주시는 문무대왕릉 주변을 정비하는 사업을 발표했는데 문무대왕릉-이견대-감은사지 간에 보행자 탐방로를 설치하고, 이견대에는 해양역사문화관을 만든다고 한다.#
3. 바깥고리
- 한국어 위키백과 : 이견대
- 한국어 위키백과 : 경주 이견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견대
-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이견대
- 답사여행의 길잡이 2 - 경주 : 이견대
- 대한민국 구석구석 : 경주 이견대
- 두산백과 : 경주 이견대
4. 사적 제159호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건물이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받들어 31대 왕인 신문왕이 681년에 세웠다.
신문왕은 해변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용이 된 아버지가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닐 수 있도록 법당 밑에 동해를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다. 그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견대에서 신문왕이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도 한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한 말인데,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란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발굴조사 때 건물이 있던 자리가 발견됨으로써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오늘날 새롭게 다시 지었다.
※(이견대 → 경주 이견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현재의 이견대에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예전 대본초등학교(2010년 폐교되어 감포초등학교와 통합됨)가 있었던 경주치즈마을이 나오는데 그 뒷산으로 5분 정도 올라가면 400~500 m쯤 되는 넓은 공간에서 신라 시대의 기와 조각과 함께 축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