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고 캄피오니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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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의 캄피오니.
이니고 캄피오니(Inigo Campioni)는 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제독이였다. 그는 1944년 살로 공화국에 협력을 거부하였다는 죄로 숙청되었다.
2. 생애
2.1. 출생
2.2. 제 1차 세계 대전과 전간기
2.3. 제 2차 세계 대전
3. 죽음
그는 1943년 자신의 본부가 있던 로도스 섬이 독일군에 의해 점령당하는 과정에서 포로로 잡혀 폴란드의 한 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 이후 1944년, 캄피오니는 살로 공화국에 의해 다시 이탈리아로 송환되었다. 캄피오니는 실전경험이 풍부한 노장이였고 부하들의 존경도 받고 있었기에 살로 연합국과 협력한 전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로 공화국 측은 일단 캄피오니를 바로 죽이지 않고 그에게 살로 공화국을 위해 싸워달라고 제안했지만, 캄피오니는 단칼에 거부했다. 그가 이 제안(보다는 협박)을 거부한 이유는 그는 스스로를 이탈리아 왕국의 군인이라 여기고 있었으며, 아직 이탈리아 왕국이 이탈리아 남부에 연합국에 복속된 형태로 잔존해 있었기에 살로 공화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반역 행위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살로 공화국 측은 옮곧은 그의 신념을 꺾고 캄피오니를 전향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결국 캄피오니는 1944년 5월 24일 반역죄[1] 를 명분으로 다른 이탈리아 왕립 해군 지휘관 한 명과 함께 파르마에서 총살되었다. 이후 살로 공화국이 붕괴되고 2차 대전이 끝난 뒤 캄피오니는 살로 공화국에 협력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위해 싸웠다는 점이 인정받으며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는다. 그의 유해는 바리에 묻혔다.
[1] 이게 은근히 웃픈데, 캄피오니가 자신이 살로 공화국에 협력을 거부하면서 주장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탈리아 왕국과 국왕에 대한 반역이라는 명분 때문이였는데 정작 살로 공화국은 같은 논리를 반대로 뒤집은 다음 캄피오니를 사형시켰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