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데카니사 전투
'''Dodecanese campaign'''
1943년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였고 그 지역은 모두 연합군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는 발칸 반도의 남부에 독일이 점거하고 있던 도데카니사 제도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에 독일은 연합군에게 이양될 이탈리아군 병력과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 도데카니사 제도를 공격하는 작전을 시행한다.
영국 해군 함정들이 다수 손실을 입고 이탈리아군은 독일군에게 항복했으며 독일군의 피해는 1,100여명 수준이었지만 영국군은 4배가 넘는 5,00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이 때문에 처칠은 "또 '''갈리폴리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독일 괴뢰 정부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과 독일군이 도데카니사 제도를 1945년 패망 직전까지 지배했다.
또한 이 전투에서 이탈리아군 지휘관이었던 이니고 캄피오니 제독은 살로 공화국과 독일측에 포로가 되었다. 그는 살로 공화국에서 협력 요청을 받았지만, 그는 추축국과의 협력을 거부하였다. 결국 얼마 뒤 그는 반역죄로 사형당했다.
이 전역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 바로 소설, 영화 나바론의 요새이다.
여담으로 독일군의 유도미사일 Hs293이 투입된 전투이기도 하다. Hs293은 이 전투에서 영국 구축함 한 척을 격침시켰고 한 척에 손상을 입히는 전공을 세운다.
1. 개요
1943년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였고 그 지역은 모두 연합군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는 발칸 반도의 남부에 독일이 점거하고 있던 도데카니사 제도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에 독일은 연합군에게 이양될 이탈리아군 병력과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 도데카니사 제도를 공격하는 작전을 시행한다.
2. 전개
3. 결과
영국 해군 함정들이 다수 손실을 입고 이탈리아군은 독일군에게 항복했으며 독일군의 피해는 1,100여명 수준이었지만 영국군은 4배가 넘는 5,00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이 때문에 처칠은 "또 '''갈리폴리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독일 괴뢰 정부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과 독일군이 도데카니사 제도를 1945년 패망 직전까지 지배했다.
또한 이 전투에서 이탈리아군 지휘관이었던 이니고 캄피오니 제독은 살로 공화국과 독일측에 포로가 되었다. 그는 살로 공화국에서 협력 요청을 받았지만, 그는 추축국과의 협력을 거부하였다. 결국 얼마 뒤 그는 반역죄로 사형당했다.
이 전역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 바로 소설, 영화 나바론의 요새이다.
여담으로 독일군의 유도미사일 Hs293이 투입된 전투이기도 하다. Hs293은 이 전투에서 영국 구축함 한 척을 격침시켰고 한 척에 손상을 입히는 전공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