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솔리드)

 

<colbgcolor=#595959><colcolor=#FFFFFF> '''이준
Lee Jun'''
'''출생'''
1972년 3월 23일 (52세)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국적'''

'''학력'''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신문방송학 / 학사)
'''소속 그룹'''
솔리드
'''포지션'''
'''래퍼'''
'''데뷔'''
1993년 솔리드 정규 1집 <Give Me A Chance>
1. 개요
2. 활동 내역
3. 그 외

[clearfix]

1. 개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래퍼. 3인조 보이그룹 솔리드의 멤버이며, 래퍼를 맡고 있다.

2. 활동 내역


80년대 후반 흑인음악이 미국에서 득세하면서 랩메이킹 장르의 한국화는 국내에서 은근한 이슈였다. 다만 그때까지는 흑인음악에서 랩 자체의 점유율도 뉴 잭 스윙이나 R&B에 밀려 미국에서 지금보다 상당히 낮았으며, 히트할 수 있는 대중가요는 성인가요나 팝, 클래식, 일본가요를 지향하기 일쑤였다. 이문세나 유재하가 막 등장한 시점이니 말이다. 또, 진지하게 대중가요를 하려는 사람들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하드락이나 헤비메탈 같은 백인음악에 경도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백두산, 부활, 김종서처럼. 흑인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은 삼표음악이라는[1] 은근한 경멸을 받곤 했다.
헌데 은근슬쩍 박남정이나 철이와 미애의 신철처럼 흑인춤과 흑인 댄스와 랩이 나타나기 시작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충격적인 메가 히트 이후로 랩은 핫이슈로 부상한다. 헌데 대부분의 가수들의 랩은 수박 겉핥기식 빠르게 말하기에 불과했다.[2] 이준은 반면 미국 본토에서 나타나 대부분의 가수와는 차원이 다른 랩을 보여주었다. 물론 교포 출신인 이준은 한국말 작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의 본실력은 영어 랩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으나 한국 힙합과 랩의 발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공헌을 했다. 아예 본격적인 힙합 장르 활동도 가능한 능력이 있는 가수였지만, 한국어 작사 실력이 부족하고 영어 랩으로 한국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수였다.
솔리드의 비주얼 담당이었고, 귀티나는 외모와 중저음의 랩 보이스로 소녀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3] 포켓볼 8번이 달린 지팡이는 그의 상징물.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춤인데[4] 다행히 솔리드 중 댄스가 과격한 게 없어서 티가 별로 안 났다.
솔리드 및 소울타운으로써의 활동 이외에도 룰라 6집, 업타운 4집, 김진표 3집, 신나라판 2000 대한민국, 이현도의 'The New Classik' 등의 앨범에 참여했다. 솔리드가 뜨기 전에 015B와 비슷한 시기에 조용필의 단발머리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두 그룹이 미용실에서 만나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솔리드는 '이 밤의 끝을 잡고'로 후속곡을 바꾸었고 대신 이준이 015B 버전 단발머리의 랩 피처링을 맡게 된다.

3. 그 외


  • 무한도전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2014년엔 음악과는 전혀 관련이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하면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 2018년에 재결성할 때 과거의 잘생긴 모습이 상당히 유지되었다. 몇년 전부터 1일1식을 해왔다고 한다.
  • 첫째는 딸, 둘째로는 이란성 쌍둥이 아들, 딸이 태어났다.

[1] 연탄의 상표인 삼표.[2] 95년도에 엄청 히트 쳤던 R.ef의 고요 속의 외침에서도 랩 부분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 국어책 읽기가 그당시 대부분이 생각했던 랩이었다. 96년도 솔리드의 명곡 천생연분에서 이준의 랩 파트를 들어보면 그런 국어책 읽기에 불과했던 다른 랩들과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비슷한 레벨이라고 볼 수 있는 건 1년 후 (97년도) 나온 NRG의 '할 수 있어' 에서 문성훈의 랩.[3] 물론 간지 넘친다고 남자팬들도 꽤 많았다[4] 다른 둘에 비해 무대에서 삑사리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