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잭 스윙

 


1. 개요
2. 역사
2.1. 뉴 잭 스윙의 기원
2.2. 베이비페이스와 테디 라일리
2.3. 뉴 잭 스윙의 최전성기 (1988~1993)
2.4. 뉴 잭 스윙의 최전성기 이후
2.5. 한국에서의 뉴 잭 스윙
3. 대표 아티스트
4. 춤과 패션


1. 개요


'''New jack swing'''
R&B힙합을 적절히 섞은 컨템퍼러리 R&B 이전의 미국 흑인 음악으로 미국 내에서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드럼 비트만 뺀 것이 바로 '''1990년대 컨템퍼러리 R&B.'''
New jack swing의 여성형 표현으로 New jill swing이 있는데, 이는 Jack & Jill [1]를 응용한 표현이다.

2. 역사



2.1. 뉴 잭 스윙의 기원


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R&B가 등장한다. 프린스, 자넷 잭슨의 1986년 앨범 Control 등이 이 새로운 형태의 R&B의 시작이 되었으며, 기존의 소울/R&B 음악에다가 Funk, 힙합을 더한 것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흑인 음악 시장은 물론이고 미국 음악 시장 전체를 이끌어온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라는 장르가 발생했다.

2.2. 베이비페이스와 테디 라일리


뉴 잭 스윙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테디 라일리(Teddy Riley)[2]는 뉴 잭 스윙의 대명사라고 불리울 정도다. 테디의 음악은 뉴 잭 스윙이 최전성기를 이뤘던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의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컨템퍼러리 R&B 시대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라 불리는 베이비페이스 역시 뉴 잭 스윙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테디 라일리가 뉴 잭 스윙의 태동기를 이끌고 "Dangerous"로 음악성의 정점에 올랐다면 베이비페이스는 우리가 아는 뉴 잭 스윙 곡 대다수를 LA 리드와 함께 작곡했다.

2.3. 뉴 잭 스윙의 최전성기 (1988~1993)


'''1991년 발매한 마이클 잭슨Dangerous는 당시 뉴 잭 스윙이 미국 내에서 얼마나 큰 인기를 끌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1989년 베이비페이스와 테디 라일리가 프로듀싱한 바비 브라운(Bobby Brown)의 앨범을 완전한 뉴 잭 스윙 곡들로 채워, 바비 브라운이 최전성기를 맞기도 했다.[3] 그리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는 가히 뉴 잭 스윙의 최전성기로, 뉴 잭 스윙 음악은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힙합 음악과 컨템퍼러리 R&B, 글램 메탈[4], 얼터너티브 락과 함께 미국 내에서 제일 인기 있는 장르였다.
뉴 잭 스윙 특유의 강렬한 비트는 1993년 바비 브라운의 <bobby> 앨범 이후 유순한 모양으로 바뀌어 컨템퍼러리 R&B의 접목이 가능하다는 걸 대중에게 어필했다. 태생부터 이것저것 섞여 잡종성을 띄는 뉴 잭 스윙은 R&B와 힙합의 접목이 두드러진다. 여심을 녹이는 섹시한 힙합의 대가 퍼렐 윌리엄스가 그 뒤를 따르는 후배 프로듀서이다.

2.4. 뉴 잭 스윙의 최전성기 이후


뉴 잭 스윙은 기존의 1980년대식 흑인 음악에 힙합을 도입하여 느린 템포에서도 흥겨움을 주는 음악이다. 80년대 말 R&B 뮤지션들은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과 힙합을 즐기는 주위의 환경에서 자라났다. 소울 음악이 과거의 리듬 앤 블루스를 대체하였듯이 뉴 잭 스윙이 소울, Funk, 디스코에서 유래한 1980년대식 흑인 음악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 뉴 잭 스윙을 대체한 것이 바로 보이즈 투 멘, TLC, 머라이어 캐리 류의 1990년대식 컨템퍼러리 R&B. 실제로 베이비페이스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는 바비 브라운, 캐런 와잇, 시나 이스턴, 또 자기 자신[5]에게 테디 라일리와는 다른 풍의 뉴 잭 스윙 히트곡을 써 주었는데, 여기서 그 뉴 잭 스윙 비트만 뺀 게 바로 컨템퍼러리 R&B이다... 실제로 TLC와 보이즈 투 멘의 대부분의 히트곡이 베이비페이스LA 리드에 의해서 공동 작곡 및 프로듀싱 되었다.

2.5. 한국에서의 뉴 잭 스윙


한국에서 최초로 뉴 잭 스윙을 선보였다고 할만한 사례는 1991년 양준일의 <리베카>가 있다. 하지만 리베카는 도입부가 자넷 잭슨의 뉴 잭 스윙 메가히트곡 Miss You Much를 그대로 복붙한 수준이라 표절 의혹이 있다.[6] 이후 양준일은 1992년 'Dance with me 아가씨'를 통해 또다시 뉴 잭 스윙을 선보였다. 양준일 이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듀스 등이 뉴 잭 스윙을 선보였는데, 이 중 듀스는 가장 뉴 잭 스윙답게 구현하던 그룹으로,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나를 돌아봐'를 통해 뉴 잭 스윙을 선보였다.[7] 이후 힙합그룹 업타운의 '다시 만나줘'라던가 이현도의 프로듀싱이 닿았던 구본승, 유승준, 디베이스 등도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뉴 잭스 윙 장르를 가요와 접목해 선보였었고, YG 소속 지누션의 '말해줘', '내가', SM 소속 신화의 '천일유혼', 박근태가 작곡했던 타샤니의 '경고', 원타임테디가 작곡한 렉시의 'Let Me Dance' 등 90년대에 이러한 느낌의 곡이 많이 있었으며, 2010년대를 지나선 싱어송라이터 크러쉬의 데뷔 앨범에 수록됐던 'Hey Baby', 유성은의 '질투' 등도 이 장르를 조금 접목한 곡이었다.
최근에는 미술, 영상 아티스트이자 힙합 아티스트 집단 살롱 01의 일원인 기린이 2010년 싱글 <Please Stay>를 시작으로 첫 번째 정규앨범 <그대여 이제>를 내면서 90년대 뉴 잭 스윙을 재현해 주목받고 있으며, 2020년 12월 31일에 발매된 박진영의 듀엣곡 나로 바꾸자에서 또다시 뉴 잭 스윙을 선보였다.

3. 대표 아티스트


이 장르의 대표 인물로 베이비페이스, 자넷 잭슨, 바비 브라운, 테디 라일리, 키스 스웻이 있다. 특히 '''테디 라일리와 베이비페이스는 뉴 잭 스윙을 논할 때 빠질 수가 없는 인물이며''' 테디 라일리마이클 잭슨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 Dangerous. 테디 라일리를 따로 언급한 인물들만 해도 will.i.am, 로드니 저킨스 등 흑인 음악에 발을 걸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한때 그를 추종하거나 좋아한 적이 있었다.
이 장르의 대표 아티스트는 위의 5명 외에도 Karyn White, Guy, Bell Biv DeVoe, Ralph Tresvant, Johnny Gill, Wrecks-N-Effect 등이 있다. 머라이어 캐리는 1990년 "Someday"로 뉴 잭 스윙을 시도해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휘트니 휴스턴 역시 1990년에 "I'm Your Baby Tonight"이라는 뉴 잭 스윙 곡으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이 노래는 베이비페이스LA 리드에 의해 작곡 및 프로듀싱되었다.

4. 춤과 패션


이 음악하면 떠오르는 춤으로 토끼춤이 있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패션은 "high top fade 혹은 flat top haircut"이라 불리던 헤어스타일과 어깨뽕이 크게 들어간 자켓과 펑퍼짐한 바지 등이 있다.
[1] 미국판 철수와 영희[2] 뉴 잭 스윙의 전성기가 지나간 1990년대 중반, 당시 유행하던 컨템퍼러리 R&B 음악을 하는 그룹 Blackstreet을 결성하여 대히트를 거뒀다. 1996년 말 빌보드 핫 100에서 4주 연속 1위한 "No Diggity"가 이들의 대표곡이다. 당대 최고 래퍼 닥터 드레가 이 곡에서 피쳐링하며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컨템퍼러리 R&B와 힙합의 결합을 이끌었다.[3] 바비 브라운의 히트곡 일부는 테디가 썼고 대부분은 베이비페이스가 썼다.[4] 1989~1991년[5] 베이비페이스는 프로듀서 뿐만 아니라 솔로 가수로도 성공했다. 같이 프로듀서 및 송라이터로 활동었던 LA 리드와 비교되는 부분.[6] 다만 당시 음반이 발매가 되면, 노래의 표절 여부를 심사하던 공연윤리위원회의 표절 판정 기준은 그 때 당시에도 논란이었다. 심지어 리베카는 1987년 작곡가 이범희가 이명호라는 가수에게 준 <전원의 이별>에 편곡과 양준일이 새로 쓴 가사를 붙인, 한마디로 원곡이 따로 있는 곡인데다가 당시 보수적이었던 윗사람들 눈에 자유분방한 모습을 지닌 양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표절 판정을 내렸다는 시각도 존재한다.[7] 정확하게 말하자면 뉴 잭 스윙 힙합으로, 드럼 비트 위에 랩을 곁들여 힙합 리듬에 화성을 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