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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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래퍼. 보이그룹 NRG의 멤버이며, '''메인 래퍼'''를 맡고있다.[6][7]
90년대 아이돌 중에서 '''손꼽히는 랩 실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된다.'''[8] 일단 격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특유의 랩 스타일을 잘 소화해내는 것만 봐도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아이돌 래퍼 중 발음이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은지원과 같은 길로 갔었으면 좋은 래퍼가 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노유민과는 팀 합류 이전부터 친구였다.[9][10] 둘이 같이 탈선(...)하고 있는 것을 김 사장이 발견해 데려왔다고 한다. 하모하모의 스케줄이 끝나고 방송국 아래에서 "와! 소방차다!"라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웬 꼬맹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11] 혼내주려고 다가갔는데 반짝반짝한, 가만있어도 빛나는 아이들이 사인해달라기에 뭐하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순진하게 두 눈을 빛내며 "'''가출했어요!"'''(...) 가출한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12] 부모님 말은 안 들어도 자기 말은 들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내 말 들어야 연예인 시켜줄 거야!"하고 얼러서 회사로 데려오고, 당시엔 둘의 나이가 너무 어려 당장 데뷔시키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하모하모의 백댄서로 무대에 올렸다가[13] 개편이 필요했던 하모하모에 합류, NRG의 멤버로 데뷔하게 된다.#
예능 출연이 여느 멤버들에 비해 적은 편이었지만 팬들 사이에서 그의 도른자 기질은 유명하다.(...)[14] 그의 도른자 기질을 보여주는 예시들.
이성진은 카메라가 꺼지면 방송과 반대로 조용해졌지만 문성훈은 방송에선 조용하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굉장히 활발하고 재미있어졌다고. 오히려 사석에서 가장 재미있는 멤버였다고 한다.[15] 또한 감정을 잘 절제하는 멤버였는데, 2000년 팀의 막내 김환성이 사망했을 때 다른 멤버들이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던 와중에도 끝까지 눈물을 감추며 멤버들과 팬들을 챙겼다.
2005년 10월, 스스로 방송 활동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고 판단하여 NRG를 탈퇴했다. 평소 소원이었던 1위를 하며 정점을 찍고 나니 공허함과 허무함이 찾아왔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께 간 기증을 하여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었다고...[16]
다른 멤버들에 비해 예능 출연이 활발하지 않아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음색과 랩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 사운드적으로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NRG 7집 활동 당시 팬들 이외에도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후 가방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디자인과 제작부터 수강생 교육까지 맡고 있었으나 최근 이 사업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양복 원단을 수입하는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고 한다.
2017년 NRG 컴백 이후 NRG의 V앱과 방송에도 나와 꾸준히 교류한 바 있으며 이후 비디오 스타를 통해 정식 합류가 결정되었다.
2018년 완전체 활동 이후로는 방송활동이 없으며, 현재는 기존에 하던 사업 이외에 요식업 사업을 하고 있는게 알려졌고, 본인도 사업에만 집중하길 원해서 별도의 방송활동은 없는 상황이다.
2. 여담
-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으며 9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한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사업차 미국과 한국을 오갔으며 형과 동생은 후에 보스턴에서 유학했다. 만약 문성훈이 NRG로 데뷔하지 않았다면 함께 유학을 했을지도... 인스타그램에서 미국 여권을 사용하는 사진으로 추측하건대 미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 미국에는 워낙 어렸을 때 살았던 터라 영어는 거의 하지 못한다고 한다. 5집 활동 시절 클릭비와 함께 출연했던 용호상박에서 미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우연석[17] 과 신문지 퀴즈 중 영어 파트를 담당 했는데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다만 발음만 남아서 발음은 좋다고...
- 한국으로 온 초기에는 한국어 발음이 좋지 않아 친구들에게 놀림당했다. 문성훈의 랩 실력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부분이 정확한 딕션이라는 점이 아이러니.[18]
- 동생을 많이 아낀다고 한다. 외모도 닮아 NRG 탈퇴 후인 2006년, TV 동물농장 개과천선 코너에 가족들이 출연하였는데 MC들이 배우 같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문성훈의 가족인 것을 밝히지 않고 일반 제보자로 출연했으므로 당연히 문성훈도 언급되지 않았으나 방송 후 문성훈의 동생인 것이 밝혀지며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었다.
- 2001년 2월 간경화에서 간암으로 진행되어 생명이 위급했던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간 7~80%를 기증했다.[19] 그로 인해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서 효행 상을 수상하고 2004년 대한간학회에서 임명하는 간의 날 홍보대사로 위촉되었으며, 前 권투선수 홍수환의 추천으로 아테네 올림픽 국내 성화 봉송 주자로 아버지와 함께 선정되었다. 간 기증 후에도 엄청난 주당 재능은 그대로라서 간이 120%로 재생했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으나 사실 아버지를 위해 선뜻 기증을 결정하였지만 막상 수술 직전에는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고[20] 장장 23시간에 달하는 수술을 마쳤으나 간 주변 혈관이 터져 보통보다 더 긴 5박 6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있었으며 몸무게가 15kg이나 빠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회복이 빨랐지만, 본인은 회복이 많이 더뎌서[21] 숙소 생활도 불가능했고, 한동안 응급실도 여러 번 가는 등 오히려 본인이 죽어가는 느낌이었으며 거의 5년 동안 강박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 미국 국적자로 애초에 징집 대상이 아니었겠지만, 한국 국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면제다. 간 이식 공여자는 5급 전시근로역이기 때문.
- 현재에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1. #2. 그래도 NRG 시절엔 팬들 사이에선 미소년으로 불렸다.[22] #1. #2. #3. #4. 도른자 기질은 여전한 듯. 놀람주의
- 강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소심한 편이라고 한다.
- 많은 이들은
과 <대한건아 만세>로 활동하던 삭발 이미지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데[24] 사실은 멤버들 가운데 헤어 스타일 변화가 가장 다양한 멤버이기도 하다. 1집부터 3집 활동 당시에는 머리가 상당히 긴 편이어서 머리를 묶기도 했었고[25] 3집 활동 후반기 쯤부터 두발이 점차 짧아져가다 5집 들어서부터 삭발을 감행한 것. 본인도 짧은 머리를 선호하는 편인지 이후에도 계속 삭발했다 길렀다를 반복하고 있다.
- 마찬가지로 연예계를 은퇴한 아이돌 고지용과는 달리 탈퇴한 뒤에도 여유만만 2011년 10월 10일자에 출연하거나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출연해 결혼 소식을 알리고 5개월 된 아들의 사진을 공개하는 등 방송에 간간이 출연하여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26]
- 입술이 예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어떤 팬은 그의 입술만 모아놓은 짤을 만들기도. 심지어 성형외과 의사도 문성훈의 입꼬리가 특이하다고 말했다.
- 학교에서 수업을 잘 듣지 않았다. 본인 말로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질 못해 '중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하고 결심한 뒤, 수학을 열심히 했는데, 중학교 첫 시험 날 수학 과목에서 딱 한 개를 틀려 그 뒤로 삐뚤어졌다고 한다.# [27]
- 멤버들 말로는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한 학생이 문성훈에게 "네가 NRG야?"라고 물어보자 "난 문성훈인데..."라고 하며 유유히 교무실로 걸어가 조퇴했다고 한다.[28]
- 가수 활동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하셨으나 후에 결국 허락을 하셨다고 한다.
- 절친 노유민과 함께 이태원에서 삐끼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2011년에 일반인 여성과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이혼했다는 사실이 2017년 4월 초순에 밝혀졌는데 네티즌들은 4년 전 일을 떠벌린 기자들에게 비난을 가하는 중. 하지만 원래는 문성훈이 모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스스로 이혼 사실을 알린 것인데 이를 모르는 네티즌들이 많은 듯하다.
인터뷰 1. 인터뷰 2. 인터뷰 3.]
-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스케줄 때문에 시험 기간에만 학교를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문성훈이 등교하는 날에는 그를 보려고 여학생들이 1학년 11반에 줄지어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1학년 11반은 유일한 남학생 반이었다고. 문성훈이 등교하는 날에는 여학생들이 몰려와서 소리 지르곤 했단다. 남학생들은 여자친구를 위해 사인을 받았다고.. 하루 평균 사인을 150개를 했었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 학교 동기들이 가장 걱정했던 건 "얘 잘리는 거 아닌가?" or "교실을 모르면 어쩌지" 라는 생각 뿐이었다고... 어느 날엔 친구들이 몰려와서는 "야 너 또 학교 안 나올 거지?“라고 하니까 "아니야, 이젠 학교 다닐 거야!!"라고 했다고(...) 조용히 있다가 매니저인 박 모 씨[29] 가 차로 데리러 오고 가고 했었다고. #
- 2학년 때 한광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출석일수가 부족해서 인헌고에서 유급시킨다는 설이 나돌았었다. 퇴학설, 자퇴설 등등.. 한광고로 가서는 2학년으로 진급했고, 거기서 성균관대로 진학했다고 한다. 전학을 간 뒤로는 친구들이 NRG가 누군지 몰라서 한동안 연예인인지도 몰랐었다고...
- 레게 힙합 듀오 스토니 스컹크와도 친분이 있는 듯하다. 스토니 스컹크 1집 땡스 투에 문성훈이 언급되어 있다.
- 활동 기간대가 비슷했고[30] 5집과 6집때 고수했던 삭발머리와 미국 교포 출신 공통점 때문인지 스티브 유랑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31] 그래서인지 3인조로 복귀한 영상의 일부 댓글에선 헷갈려서 유승준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1] 멤버인 노유민과는 불과 3일 차이로 NRG 활동 시절 생일 파티를 함께 하곤 했다.[2] 최근 사진을 보면 더 쪘을 것으로 예상된다.[3] 결혼한 지 2년 만에 이혼했다고 한다. 다만, 서로 악감정은 없다고. 아들은 전 부인이 양육권을 가져가게 되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보러 간다고 한다.[4] 노유민과 동창으로 데뷔 전부터 친구였다.[5] 연예활동으로 인한 출석 부족 문제로 2학년 때 한광고로 전학해 졸업했다.[6] 랩이 없는 곡에서는 노래를 한두 소절 맡기도 하지만 대부분 랩만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첫 파트가 랩이기 때문.[7]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나 <사랑만들기> 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노래도 꽤 잘하는 편이다.[8] 문성훈을 '''90년대 기준으로 최고로 랩 잘하는 아이돌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9] 참고로 한 잡지 인터뷰에서 문성훈이 ''''언제든 힘들 때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로 노유민을 꼽았다.[10] 한 번은 문성훈의 집에서 둘이 자던 도중 강도가 들어 노유민의 얼굴이 칼에 베였다고 한다.#[11] 재결합 후에 한 V앱에서 밝히기로는 정확히는 담배를 피우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12] 김태형은 후에 한 방송에서 그들을 집에 돌려보내기 위해 노유민과 문성훈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그들의 부모님은 가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13] 하모하모의 '빠삐용' 뮤직비디오에 잠깐이지만 노유민과 함께 짤막하게 등장한다.[14] 본인은 예능 출연을 하고 싶어했으나 소속사에서 말렸다고. [15] 이를 두고 천명훈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기도(...)[16] 문성훈 본인의 말로는 항상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젠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에 연예계로 돌아올 생각은 없는 듯. 본인 스스로도 가수보다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적성에 맞는 듯하다고 말...했으나 후에 인터뷰에서 복귀할 생각이 있음을 밝혔다.[17] 청소년기에 6년 동안 유학했다.[18] 그냥 언어 능력 중 발음을 타고난 것일지도...[19] 삼형제가 모두 검사받았으나 형은 지방 간이었고 동생은 간 모양이 기형이라 이식이 불가능한 반면, 문성훈의 간은 너무 크고 좋았다고...[20] 실제로 수술 전날 도망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21] 수술 전에 공여자가 회복이 더 늦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다고...[22] 비디오 스타에서도 보면 전효성이 '와...! 진짜 잘생겼다' 하면서 놀란다 [23] 여담으로 당시 NRG 멤버들은 모두 흡연자였다. [24] 여담이지만 삭발했던 시절에 마치 스티브 유를 닮았다는 평이 많다. 말도 랩도 모두 닮았기 때문. 둘 다 삭발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미소년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5집 때부터는 스티브 유를 따라하는 식의 전략을 펼쳤다고 한다.[25] 일명 분수 머리. 3집 활동 당시. 여담으로 분수 머리를 만드는 시간만 무려 40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문성훈 본인이 원래 헤어 스타일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고 한다.
문성훈 헤어 스타일 변천사.[26] 고지용도 2016년 말부터 2019년 중순까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지만 이는 연예계 복귀 차원의 방송 활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27] 학교 시험 날 지각해놓고 하는 말이 "선생님, 시험지는 필요없구요. 답안지랑 사인펜 하나만 주세요"(...)[28] 의외로 학교에서 존재감이 큰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기 때문. 후에 출석일수가 모자라 전학을 갔는데, 늘 뛰어다녀서 다른 학생들은 문성훈이 NRG의 멤버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29] TS엔터테인먼트 사장인 박계은이다.[30]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31] 다만 스티브 유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미국인이고 문성훈은 위에 언급했지만 미국에 있다가 어렸을 때 한국에 와 한국에서 완전히 정착해서 사실상 한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문성훈 헤어 스타일 변천사.[26] 고지용도 2016년 말부터 2019년 중순까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지만 이는 연예계 복귀 차원의 방송 활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27] 학교 시험 날 지각해놓고 하는 말이 "선생님, 시험지는 필요없구요. 답안지랑 사인펜 하나만 주세요"(...)[28] 의외로 학교에서 존재감이 큰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기 때문. 후에 출석일수가 모자라 전학을 갔는데, 늘 뛰어다녀서 다른 학생들은 문성훈이 NRG의 멤버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29] TS엔터테인먼트 사장인 박계은이다.[30]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31] 다만 스티브 유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온 미국인이고 문성훈은 위에 언급했지만 미국에 있다가 어렸을 때 한국에 와 한국에서 완전히 정착해서 사실상 한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