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
1. 개요
前 농구선수로 선수 시절을 모두 전주 KCC에서만 보낸 선수였으나 안타깝게도 부상 등으로 인해 커리어를 쌓지 못한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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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시절에는 탄력이 좋고 3점슛도 갖춘 포워드로 대학시절 4년간 주전과 식스맨을 넘나들며 활약했으나, 정작 4학년때 동기 허효진[1] 과 후배 윤호영 등에 밀려 벤치로 밀리는 바람에 2006 KBL 드래프트에서 모든 팀들의 외면을 받아버리지만 다행히 주전들의 노쇠화로 리빌딩에 들어갔던 전주 KCC 이지스와 수련선수로 계약하게 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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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중반까지는 엔트리에 조차 끼지 못할 정도의 취급을 받았지만, 훈련 시 성실한 태도 및 향상된 기량을 보여주며 팀 선배인 이상민과 추승균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시즌 막판 5경기에는 아예 선발 주전멤버로 출장하여 평균 11.2득점을 올렸고, 이 활약 덕분에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며 짧은 출전시간에도 과감한 공격과 집요한 대인수비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상민이 삼성으로 이적하고 서장훈이 FA 계약으로 새로 합류한 2007-08 시즌에는 정훈 등을 제치고 팀의 핵심인 식스맨 자리를 차지했고, 특히 외국인 선수가 1명만 뛸수 있는 2쿼터에는 토종 빅맨 서장훈과 함께 주전 3번으로 출장해 평균 '''4.6득점-1.4리바-0.7어시'''를 기록하며 전시즌 꼴찌팀 전주 KCC가 07-08 시즌 정규리그 2위에 오르는데 공헌한다.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한 수련선수에서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환골탈태하며 너무도 당연하게 '''07-08 시즌 기량발전상'''을 차지했고, 바로 다음 시즌에는 하승진-강병현이 합류한 뒤에도 여전히 팀의 중심 식스맨으로 활약해 챔피언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시즌을 마친 뒤에는 상무에 입대해 2010 세계 군인농구선수권 대회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우승을 따내는 등 우승청부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제대 후 복귀한 2011-12 시즌에는 정민수와 김태홍 등 젊은 포워드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데다 발목 부상까지 겹치며 군 입대전보다 그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고 회복도 불가능해지면서 임의탈퇴가 결정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만다.
은퇴한 뒤에는 현재 모교 삼일상고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