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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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전주 KCC 이지스, 안양 KGC인삼공사, 現 창원 LG 세이커스 농구 선수 2번 포지션에서 맹활약하는 선수고, 최근에는 소속팀의 가드 뎁스가 두꺼워 3번 포지션에서 뛰기도 한다. 어찌보면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었던 선수가 재기를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떻게 한순간에 먹튀 오명을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케이스. 하지만, 노력과 함께 그래도 재기에 성공한 농구선수.
2. 선수 시절
부산중앙고를 나와 중앙대학교에 입학했다. 고교 졸업자 신분으로 나왔던 2003년 농구대잔치에서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루며 눈도장을 찍었다. 그 뒤로 선배인 함지훈, 허효진, 박상오, [2] , 동기인 윤호영 등과 함께 맹활약하며, 중앙대의 전성 시대를 열었다. 슈팅 가드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졸업 당시 대어로 주목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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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 지명되어 입단하기는 했는데, 사실 전자랜드 입장에서는 한 해 앞에 비슷한 유형의 슬래셔 정영삼을 뽑는 통에 포지션 중복이 일어났다.[3] 어쩔 수 없는 것이 4순위라 이 해의 알짜였던 하승진, 김민수, 윤호영을 모두 놓친 것. 그래도 일단 활용을 위해 강병현을 포인트가드로 전환시키려고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시즌 초기 강병현의 모습은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초반에 반짝 잘하는 듯 했으나, 이지슛 놓치는 것은 기본이요 자유투는 무려 50%대를 기록하면서... 전자랜드에서의 마지막 경기도 팀은 승리를 거뒀으나 강병현 본인은 노마크 레이업을 실패만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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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과 하승진의 출전 시간 문제로 불화가 빚어진 전주 KCC 이지스에서 서장훈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았고, 마침 전자랜드의 감독은 서장훈의 은사인 최희암이었다. 그래서 서장훈이 전자랜드로 가면서 2:3 트레이드가 성립했는데, 이 카드의 중심이 된 것이 바로 강병현이었다. 강병현은 이 때, 조우현, 정선규와 함께 KCC로 이적하게 되었다. KCC 입장에서는 현금을 주고, 어음을 받았다는 트레이드였는데, 이 트레이드의 어음이 바로 현금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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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에서 맹활약하면서 KCC의 고민 거리였던 가드 문제의 활로를 열어준 것. 추승균이 고군분투하던 외곽의 활로도 강병현이 열어주면서 KCC는 갑자기 전력이 급상승, 하위권에 쳐져있던 KCC는 급기야 2008-09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강병현은 그 뒤로도 꾸준히 KCC의 2번 자리에서 활약하면서, 전태풍과 함께 백코트진을 구성해 KCC의 3년 연속 챔프전 진출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2010-11 시즌 챔프전에서는 5차전 결승골, 6차전 결승골을 잇따라 터트리며 팀 우승의 일익을 담당했다. KCC의 우승을 두번 일궈 낸 강병현은 2010-11 시즌이 끝난 뒤, 상무에 입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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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상무에서 제대했다. 마침 팀이 밑바닥을 달리던 터라, 강병현의 복귀는 팀에 가뭄의 단비가 되었다. 혼자서 23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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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시즌에는 고감도의 3점슛을 쏟아내며, 팀의 선전에 공헌하였다. 경기당 3개 이상의 3점포를 쏟아내며 맹 활약을 하였지만...2014년 들어 허리부상의 여파인지 성공률이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팀 부진을 막지 못하였다. SK와의 원정경기 에서는 김선형에게 인유어 페이스 덩크를 맞기도 했다, 급기야 설 연휴 마지막 날에 치룬 오리온스전 3쿼터에서는 같은 팀 외국인선수 타일러 윌커슨과 말다툼을 벌였으나, 다행히 윌커슨과의 앙금은 금방 풀었다. 100% 내 잘못이다 . 그러나 허재 감독은 그를 벤치에 앉혔고, 팀은 플레이오프 순위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결국 아쉬운 시즌을 마감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5월 15일 김태술이 KGC에서 5년 6억 2천이라는 계약을 한 뒤, 사인 앤 트레이드로 강병현과 장민국의 2:1 트레이드로 KCC로 이적하는 일이 발생하며 KGC로 이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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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태술이 KCC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반면 강병현은 KGC로 오자마자 두 시즌 내내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이 트레이드는 거의 완벽한 KGC의 승리로 거듭나고 있으며, 강병현은 이정현, 박찬희와 출전시간을 고루 분배하면서 출전 시간 동안에 완전히 뽕을 뽑고 있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팀의 주장 양희종과 함께 팀의 케미를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은 덤. 그런데 2016년 2월 8일에 경기 도중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였고, 11일에 수술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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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년간의 기나긴 재활 후 2016-2017시즌 6라운드 원주 동부와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뤘고, 후에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선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3점슛을 꽂는 등의 활약으로 인삼공사의 창단 첫 통합우승에 기여하였다.
2018년 6월 1일 이원대와 함께 기승호, 배병준과의 맞트레이드로 창원 LG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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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시즌에는 슈팅 가드에 조성민으로 인해 전주 KCC 이지스 시절에 맡았던 스몰 포워드를 맡으면서 벤치부터 시작해서 베스트로 출전하면서 예전같지는 않지만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2018-2019 시즌 LG에서 정규리그 3위와 플레이오프 4강을 이끌었다.
특히 2018-2019 시즌 부산 kt 소닉붐과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장전 초반 바스켓카운트를 얻어내면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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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장이 되었다. 조성민의 부상으로 인해 주로 슈팅 가드 역할을 하면서 팀 성적부진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2020년 1월 4일, 서울 SK 나이츠와의 원정경기에서는 3쿼터 중반 리바운드 싸움 과정에서 강병현이 코트에 먼저 넘어졌고 최준용은 공을 잡았는데 분노한 강병현이 최준용을 밀쳐 내며 잠시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2019-2020 시즌 종료 후 FA가 되었지만 조성원 감독의 선임과 함께 자신은 FA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취임식에 함께하면서 새로운 비상을 준비하게 되었다. 2020년 5월 7일 연봉 2억에 창원 LG 세이커스와 2년 재계약 했다.기사
3. 플레이 스타일
기존의 스타급 슈팅 가드들은 힘이나 높이가 모자라다거나 일대일 능력이 안 된다거나 수비나 팀플레이에 대한 감각이 다소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지만 강병현은 고른 능력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포지션 대비 신장도 크며[4] 신장 대비 스피드와 점프력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돌파와 미드레인지 슈팅, 속공 마무리 능력이 주무기이다. 프로 연차가 쌓일수록 장거리포 능력 역시 안정적인 편이다. 더불어 디펜스까지 상당하여 1번부터 4번까지 감당할 정도. 그리고 클러치 타임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 로 팬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드리블이 엉성하고 스킬셋이나 유연함 역시 좋은 편이 아니라서 공격의 안정감이나 위력은 다소 떨어진다. 기복이 심한 편. 거기다 하드웨어와 운동능력이 좋다는 것은 국내선수 기준이고 이것으로 밀어붙인다는 것 이외에는 특출나게 잘한다고 할만한 것이 없어 국가대표 활약상은 미미하다. 하지만 국내 리그에서는 그런 단점은 잘 드러나지 않고 길게 보면 오히려 활용도가 크면서 꾸준하고 안정감이 있다. 08~11년도까지는 김효범, 10~11년도부터는 조성민, 이후로는 김선형, 김민구 등이 있어 은근히 콩라인이지만 데뷔부터 꾸준하게 기량을 유지하여 최상위권까진 아니더라도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는 슈팅 가드다.
다만 풀타임을 출장했을 때 성적은 준수하지만 시즌을 끝까지 소화하는 적이 매우 적은 '''유리몸'''이란 점은 아쉽다. 게다가 부상 이후 장점이던 돌파능력이 많이 줄어서 스팟업 슈터의 롤로 제한이 되어 버렸다. 원래 3점 기복이 있다는 평가가 있으므로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기 위해선 득점루트를 늘리기 위한 전략을 많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4. 시즌별 성적
5. 여담
- 농구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SNS 스타다. 부인 박가원 사이에서 낳은 아들 둘(강유준, 강유하)도 인스타 사진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유명해진 케이스. 강병현 인스타그램을 알겠지만 주로 가족 사진 위주로 올리는 인스타 인기스타고, 부인 박가원 인스타그램에는 훨씬 자주 사진이 업로드 된다. 워낙 잘생긴 외모에 운동선수라 몸과 비율이 좋아서 사진이 예쁘게 찍힌다. 부인 박가원도 미스코리아 출신의 탤런트. 강병현은 29의 나이에 요즘치곤 꽤 일찍 결혼했고, 첫째 아들과 찍힌 사진들이 인스타에 업로드 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7년 12월 기준 강병현 인스타 팔로워가 9.3만명이고 부인이 22.3만명이다. 강병현보다 훨씬 TV에 노출이 자주 되어 인지도가 훨씬 높으면서도 가족 모두 유명하다는 공통점을 가진 추성훈의 경우 31만명의 팔로워가 있는 것을 보면 둘의 인기는 TV 출연은 많이 없었지만 상당히 높은 셈. 박가원이 종편 예능등에 출연하곤 하지만 그 활동이 많은 편은 아니다. 스포츠 계에서 결혼하지 않은 선수들이 경기 후나 비시즌에 여자를 만나고 다니느라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례도 엄청나게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강병현은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모범적으로 가정적인 선수로 꼽힌다. 인스타 스타라고 해서 다른 방송활동이 잦다던가 농구선수로서 생활에 지장을 준다던가 하는 경우는 아니기 때문에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강병현의 인기가 높다.
- 2017년 5월 13일에 사직 야구장에서 모습을 보였다. 농구를 제외하면 야구를 제일 좋아하고, 손아섭, 강민호, 장원준, 유희관과 친분이 있다고 밝혔다. 근데 정작 시구,시타는 현주엽 감독과 함께 라이벌인 LG 트윈스에서 해 빈축을 샀다. 농구계의 최용수라 보면 된다. 실제로 최용수는 롯데와 LG 모두의 팬이다.
- 화끈한 선수지만 소통의 대가다. KGC 인삼공사 시절 부상으로 인해 슬럼프 시기 SNS를 올렸는데 일부 극성 팬들은 그의 SNS를 테러까지 했다. 그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극복하며 다시 SNS를 통해 배구에 밀린 인기회복에 농구로서 보여준 대표 예제다. 이렇게 보면 호불호가 뚜렷하지만 솔직한 상남자 스타일. 00년대 데뷔했던 선수 중 허재 스타일에 가깝다.
- 같은 연고 출신의 1년 선배인 김영환과는 아마에서도 같은 모교 출신이 아니면서 KBL에서 단 1번도 같은 팀에 없었는데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친하다.
5.1. 오! 마이 베이비 출연
2016년 6월 10일 자신의 아들 유준이와 함께 오! 마이 베이비에 출연 확정이 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현역 운동선수의 출연으로는 오! 마이 베이비에서는 첫 번째이고 슈퍼맨이 돌아왔다까지 포함하면 추성훈과 이동국 가족에 이어 세 번째 출연이다. 그러나 가을 개편으로 8월 20일 자로 종영되었다(...).
6. 관련 문서
[1] '''2007년 미스코리아 선'''출신 방송인.[2] 이들 4명이 같은 연도에 졸업했지만 함지훈과 정병국만이 03학번이다. 박상오는 00학번으로 중도에 농구를 포기하고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가 전역 후 농구를 재개했고, 허효진은 02학번으로 부상 치료를 위해 중간에 1년 휴학했다.[3] 전자랜드가 운이 없는 것이 정영삼을 뽑을 때도 그들이 가진 로터리픽이 또 4번에(...) 걸리는 통에 팀 사정 상 가장 필요했던 가드 김태술이나 포워드 양희종을 모두 놓쳤다.[4] 원래 키가 170 조금 넘을 정도로 작았다가 중학교 때 키가 20센치 정도 크면서도 포지션을 그대로 가져갔는데 이게 대박이 터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