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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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CC 역사상 최고의 가드'''[2][3] 로 평가받는 대전 현대 다이냇/걸리버스 - 전주 KCC 이지스 -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뛰었던 농구선수. 선수번호는 11번으로 KCC 이지스의 영구결번이다. 현재는 서울 삼성 썬더스의 전 코치, 현 감독이다. 그는 역대 KBL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평가를 받을정도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포인트가드가 갖추어야 할 리딩 어시스트 분야에서 독보적이었던것은 물론 뛰어난 득점력과 슛팅력. 그리고 높이와 수비력까지 갖추면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별명으로는 컴퓨터 가드, 상민 오빠, 산소 같은 남자 등이 있다. 원래는 펜티엄급(!) 가드라고 불렸는데, 시간이 지나며 이 칭호가 도저히 칭찬으로 들리지 않게 되자 슬쩍 컴퓨터 가드로 바뀌었다.[4]
훌륭했던 현역 시절과는 달리 감독으로 취임한 첫 시즌은 삼성 역사상 가장 나쁜 성적을 찍으면서 농구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허나 이 성적 부진에 대해서는 선수들의 역량 문제를 지적하는 쪽도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보강이 이루어진 15~16시즌 이후에는 평가가 조금 달라졌다.
6강 PO, 4강 PO 모두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서울 삼성 썬더스는 16-17시즌 챔프전 진출에 성공한다. 07-08 08-09 이상민-강혁-이정석으로 이어지는 '가드왕국'시절 2연속 챔프전 진출 이후로 8시즌만에 이상민 감독 체제에서 다시 챔프전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2. 선수시절 통산 기록
정규 시즌
581경기 9.8점 3.4리바운드 6.2도움 1.5스틸 FG 44.6% 3P 35.4% FT 76.8% PER 18.3
'''플레이오프'''
51경기 10.7점 3.9리바운드 6.0도움 1.6스틸 FG 47.2% 3P 39.4% FT 82.8% PER 20.91
'''챔피언결정전'''
43경기 10.7점 4.5리바운드 5.0도움 1.4스틸 FG 43.0% 3P 34.9% FT 82.4% PER 17.77
3. 감독 통산 기록
4. 선수 시절
5. 선수로서의 특징
5.1.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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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에는 183의 키[5][6] 지만 '''덩크를 꽂아넣을 정도의 운동능력'''을 자랑했고, 전성기가 좀 지난 무렵까지도 이에 근접하는 운동능력을 유지했다.[7] 이런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키에 걸맞지 않는 리바운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동체급 최상의 사이즈'''다 보니 포인트가드 치고 '''힘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민이 운동능력에만 의존한 플레이를 한 건 아니다. 적재적소에 공을 배급하며 팀을 이끄는 포인트 가드의 기본 덕목에 충실한 선수였고, 그래서 전성기가 지나 운동능력을 많이 잃은 삼성 썬더스 시절에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수비리바운드를 잡은 후 바로 달려나가며 앞선으로 던져주는 속공 패스는 특히 올라운드함과 패스 능력이 조화된 이상민의 특기.
동세대 포인트 가드들 중에서는 포스트업을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였다. 자신보다 키가 작고 힘이 약한 상대가 매치업되면 포스트업으로 상대를 눌러버리는 모습도 종종 선보였다. 앞에서 서술했지만 이상민이 현역시절이던 90~2000년대까지 이상민보다 키가 크고 힘이 좋은 국내 포인트 가드는 없었다.[8] 그 키 덕에 언제나 국내리그에서 이상민은 압도적인 피지컬로 상대 1번을 찍어눌렀고, 이상민의 포스트업 플레이는 다른 올라운드 능력 있는 팀내 선수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상대팀이 수비에서 여러 모로 골이 아파지는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
외곽슛은 대학 시절만 해도 좋지 않았으나 현대 입단 이후 점점 발전해서 커리어 중반 이후에는 좋은 건 아니지만 나쁘지는 않은 수준까지는 유지했다. 특히 영 안 들어간다 싶다가 중요 순간에 외곽슛을 터트리며 상대 팀을 울리는 일도 많았고, 3점슛 라인에서 한 발 이상 떨어진 곳에서 뜬금없이 슛을 성공시키는 일도 있었다. 2002 이사안게임 준결승 필리핀전에서 경기 전체로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 대표팀이 뒤지던 마지막 순간에 3점 버저비터로 대표팀을 승리로 이끈 게 이런 일의 예 중 하나.
한편 삼성으로 가기 전 몸이 멀쩡하던 시절에는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탄탄한 몸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자신보다 큰 상대도 제법 수비해 냈으며, 이런 수비력은 특히 조성원과 함께 나왔을 때 조성원 대신 상대의 2번 또는 3번 포지션 선수들을 수비할 때[9] 나 아시아권 대회에서 투 가드로 강 모 선수와 함께 나와 상대 2번 포지션 선수들을 수비할 때 더욱 빛이 났다. 훌륭한 바스켓 센스를 바탕으로 상대 패스의 맥을 끊으며 해내는 스틸도 일품이었다. 또는 힘들기는 하였지만 양경민이나 김영만 같이 3번 포지션 중에 공수에서 극강인 선수들도 잠깐잠깐씩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인 가드 선수들 중에선 최고 수준의 블록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속공 레이업을 하는 상대를 쫒아가 블록해 내는 장면을 종종 연출했고, 김주성 데뷔 이전인 전성기에는 KBL 국내 선수 블록 순위에 서장훈 다음 자리 정도에 들어간 일까지도 있다. 심지어 서장훈이나 김주성을 블록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비록 나이와 부상이 쌓이면서 삼성 이적 후엔 수비에서 한창 때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턴오버를 남발하며, 구멍 소리 듣는 일도 생겨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수비가 뛰어난 편에 속하였으며, 삼성 시절에도 기본은 하였다.
이상민의 전성기인 연세대나 현대 시절엔 자신을 보조할 수 있는 슈팅 가드가 따로 없는 상황에서 볼 운반과 리딩을 전담해야 했다. 연세대는 이상민(포인트 가드), 문경은 김훈 우지원(스몰 포워드), 김택훈 (파워 포워드), 서장훈(센터)인 조합이었고 현대에서도 조성원.[10] 과 추승균 모두 스몰 포워드였다. 그로 인해서 역할이 축소되고 부담이 커졌으나 딱히 볼 운반과 리딩 문제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현대에서는 리딩 부담이 큰 상황에서 공격롤도 연세대 시절보다 커졌음에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삼성 이적 후에는 전성기가 지난 상황이지만 연세대 초반 오성식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된 슈팅 가드였던 강혁과의 조합을 이뤄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상민이 1번, 강혁이 2번을 보는 정석적인 플레이도 잘 하면서 강혁이 1번 이상민이 2번을 소화하는 변칙적인 플레이에도 능한 모습을 보였다. 원래 다재다능한 면모를 갖고 있던 선수였으나 멤버 구성상 억제되왔던 장점들이 드러났던 것이 삼성 시절이었다.
5.2. 단점
포인트 가드 치고는 '''드리블이 높고 불안정'''하다.
이상민이 활약하던 시기의 농구대잔치나 KBL에서는 지금처럼 앞선 압박이 심하지 않아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국제 경기에선 약점을 노출했다. 그렇다고 공 간수를 못해서 마구 털리거나 한 일은 없지만, 가끔 상대 수비수에게 분석당하며 제대로 공략당하면 턴오버를 남발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SK 나이츠와와 대결한 경기. 당시 SK의 로데릭 하니발이 이상민보다 좋은 신체조건으로 압박을 하자 드리블에서 문제를 노출하며 이런 약점을 노출했다. 허재와 매치업 되는 경우에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자기보다 크거나 힘이 좋은 선수에겐 약했다.'''
'''파울관리를 잘 못했다'''. 파울 트러블에 걸려서 고생하거나 퇴장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조성원 때문에 상대 2번 3번을 수비하는 경우가 많은 탓도 있었으나 상대 1번을 상대하면서도 파울트러블에 빠지는 경우도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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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매너가 나쁘고 상대 선수에게 욕설을 하거나 심판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상민 현역 시절 경기장을 찾았을 때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이상민의 쌍욕을 듣는 경우가 흔했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자신의 플랍을 잡아주지 않는 것이나 자신이 파울이 불린 경우에 대한 항의라서 항의의 명분이 없었다는 것.[11]
5.3. 할리우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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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농구에서 할리우드 액션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바로 이상민이다.''' 상대의 파울을 유도해내는 것은 선수의 능력에 해당하지만, 유독 이상민의 경우는 슬쩍 상대가 닿기만 해도 "악"소리와 함께 '''화려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유난히 자주 보였고, 거기에 이상민의 스타성으로 인한 심판보정 효과 의혹과 그런 이상민의 모습까지도 옹호하는 '''극렬 이상민 팬덤'''[12] 으로 인해 빠가 까를 만드는 연쇄효과가 이어지면서, 농구팬 일각에서 할리우드 리라는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이상민과 같은 대학동문이자 인척관계에 있던 석주일 해설자도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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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이상민은 수비시에도 할리우드 액션으로 오펜스 파울을 유도하려 하거나 적극적으로 상대의 볼을 뺏으려다 외려 자기가 파울을 하는 일도 많았고, 그로 인해 파울 트러블에 빠지며 팀을 난관에 빠트리는 일도 많았다.
할리우드 액션과 파울 트러블, 극렬 팬덤[13] 은 이상민의 평가를 깎아먹는 3대 요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능력 면에서, 특히 인기 면에서 이상민 이후 이상민을 잇는 존재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KBL의 한계라면 한계고 문제라면 문제
5.4. 항명 논란
2007-2008 시즌 삼성에서 경기 중 작전 타임 상황에서 안준호 감독에게 '''대놓고 반말을 한적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이 영상을 보자.
사실 경우에 따라서 감독에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문제는 단순 의견 제안이 아니라 반말을 했다는 것이고, 가도 된다는 이유를 설명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감독의 말은 틀렸고 자기 말이 맞다는 식의 우기기에 불과 했다는 것. 단순히 감독의 지시에 반말로 대답을 하고 넘어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14] 이런 점 때문에 이상민이 서장훈 영입 시 KCC의 보호선수 명단에서 빠진 이유로 유력하게 지목된 것이 감독인 허재의 팀 장악에 장애물로 여겨져서 내보냈다는 말도 있었다.안준호: 아 지금 가면 안돼
이상민: 아 되지 왜 안돼?
안준호: 돼? 돼? 돼? 그래?
이상민: 아 된다니까!
정작 이상민 자신이 감독이 되자 작전 타임을 해도 구체적 작전 지시를 안하고 안준호 흉내를 내고 있다. 안준호는 경기전 미리 완벽하게 판을 짜서 그대로 진행하는 타입이라 작전 타임때 구체적 지시를 잘 하지 않은 것인데 이상민은 판짜기가 약하고 준비된 전술이나 패턴을 활용하는 타입이 아닌데 이러고 있다.
후에 안준호 前 감독이 인터뷰했을 때 기자가 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자 상민이는 그렇지(건방진 캐릭터) 않다라고 말했다. 본인도 오픈 마인드로 선수들과 소통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5.5. 여담
웨이트 트레이닝을 처음 한 건 실업팀 입단 후라 밝혔다. 그러다가 무리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허리를 다쳤고 그 후에는 비시즌에는 재활운동 하기만 바빴다고 한다. 비교적 일찍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잃은 건 이 때문인 듯 하다.
김승현, 신기성, 이상민 당대를 호령했던 이 3명의 가드는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김승현은 스피드가 무척 뛰어난 선수인것은 맞으나 신기성에 비해서는 반발자국 느린 편이었고, 신기성은 스피드가 뛰어났지만 높이와 힘에서 이상민에 밀렸고, 이상민은 높이가 뛰어났지만 스피드와 힘을 고루 갖춘 김승현에게 밀리는 형국이었다. 반대로 신기성은 김승현에 비해 힘은 부족했지만 스피드가 더 뛰어나서 속도로 공,수에서 김승현에 앞섰고, 이상민은 신기성에 비해 스피드는 느릴지언정 신장과 탄력면에서 앞섰다. 김승현 역시도 이상민에 비해 높이가 크게 떨어진건 사실이지만 스피드와 힘에서 모두 이상민에 비해 뛰어난 편이었다.
당대 라이벌었던 김승현에게 특히 약했던 이유는 자신의 장점인 큰 신장보다 김승현의 스피드와 힘의 밸런스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확실히 김승현에 비해 키가 큰 것은 사실이고, 절대적인 기준에서도 스피드가 빠르지만 김승현보다는 느렸다. 김승현은 키가 워낙 작아서 잘 안보이는 장점이지만 상당히 하체근력이 뛰어난 편이었고, 되려 5cm이상 키가 큰 이상민 상대로도 골밑에서 엉덩이로 툭툭 밀어내는 포스트업과 아이솔레이션 손쉽게 득점을 따내곤 하였다. 공격시에도 이상민은 드리블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 김승현이 힘으로 강하게 프레싱 하면 애를 먹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반면 김승현에게 강한 신기성에게는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무엇보다 신기성에 비해서 스피드는 느릴지언정 피지컬적으로 거의 압도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신장과 힘 모든 면에서 신기성에 비해 뛰어났다. 특히 신기성은 외곽포가 주무기였는데, 이상민의 신장과 탄력앞에서는 발휘하기 어려웠다.
외곽포가 봉쇄되니 당연히 아이솔레이션도 막힐수밖에 없었다.
6. 지도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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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시절'''
2010년 은퇴 후, 2년 동안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삼성의 차기 감독 후보로 점찍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단 2012년 김동광 감독 아래 코치로 임명되어 지도자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2014년 시즌을 치루던 중 김동광 감독이 자진사퇴 되어, 김상식 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6.1. 삼성 썬더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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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설로 회자되는 희대의 실책.''' 2014년 12월 16일 전자랜드와의 홈경기에서 '''4쿼터''' 7분 25초를 남기고 이정석이 범한 패스미스다. 이런 정줄놓은 플레이가 나왔음에도 놀랍게도 75대 66으로 '''삼성이 이겼다.'''
2014-15 시즌부터 삼성의 새로운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코치 연수도 다녀왔기 때문에 감독이 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으나, 예상보다 빨리 감독을 맡게 되어 파격적인 선임이라는 의견이 많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과 신인 드래프트에서 리오 라이온스와 키스 클랜턴, 김준일을 영입하면서 어느 정도 해볼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무너진 팀을 일으키기는 역부족, 사람들의 예상대로 최하위를 전전하고 있다. 가드진의 이정석[15] 과 박재현이 수준 이하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집중력이 결정적인 순간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이상민 입장에서도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특히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100대 46으로 '''54점차 참패'''라는 역대 기록을 남기면서 흑역사를 썼는데 가뜩이나 팀이 최하위에서 좀처럼 올라올 줄을 모르자 이상민 감독의 경기 운용 등에 대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 등을 비롯한 일부 극성팬들 사이에선 '''돌상민'''이라며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데 심지어는 김상준 전 감독을 재평가해야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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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엠스플에서 이 얼굴을 10번이나 틀어줬다고 한다(....).
그래도 유재학 감독에 의하면 첫시즌 성적은 운에 가깝다 했을 정도고 삼성은 1.5군이 출격한 D리그에서도 SK 2군에게 완전 가비지 패배를 했을만큼 신인 김준일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선수진이 처참한 상황이다. [16] 구단 입장에서도 선수 보다 인기가 많은 이상민 감독에게 좀 더 기회를 줄 듯 싶다.
2015-16 시즌 FA로 문태영을 영입한 데 이어 주희정을 트레이드로 영입하였고 이정석, 이동준, 차재영 등 이상민 감독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던 선수들을 내보내면서 다음 시즌에 대한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거기다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추첨 결과 1번픽을 받으며 직전시즌 외국인선수 MVP를 수상했던 리카르도 라틀리프를 선발하면서 확실한 전력보강을 했다.
그리고 오프 시즌에 한 노력들은 올스타 브레이크 돌입 시점에서 21승 17패의 성적을 거두며 3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게 되었으며 실제로 플레이오프 진출과 5할 돌파를 이루어냈다. 앞으로 전략적인 부분만 개선한다면 실력있는 감독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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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16년 2월 25일, 역사가 또다시 반복되었다(...)[17] 게다가 각주의 장민국까지 합치면 전부 연대 출신의 작품이다. ㅎㄷㄷ
2월 25일 안양 KGC와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삼성 선수들이 공수 양면에서 말그대로 최악, 아니 그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96-71, 25점차 대패를 당했다. 시즌 초 대학시절 한 불법 도박으로 인해 정규시즌 출장정지를 당한 후 플옵에 출전하게 된 KGC의 전성현에 대해 이상민 감독은 "우리로서는 나오면 좋을 것 같다. 큰 경기에서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무섭다.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바로 그 전성현에게 3점슛 4개 포함 16득점을 내주며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2월 27일 안양 KGC와의 6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또 다시 86:93으로 패하고 말았다. 1차전 경기력보다는 좋아진 모습이었고 전반까지 삼성이 근소한 우세로 마치면서 잘 경기를 끌고갔지만 이후 3쿼터부터 시작된 인삼공사의 외곽슛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결국 패하고 말았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삼성은 3점슛을 19번 시도해서 고작 3개 성공시켰고 반면 인삼공사는 28번 시도해서 무려 12개를 성공시키면서 외곽슛이 압도적으로 밀리면서 전반이후 더 달아나지도 못한채 속절없이 인삼공사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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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울었다(...).
2월 29일 안양 KGC와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92:88로 승리하면서 감독 데뷔후 첫 플레이오프 승리를 올리는것과 동시에 팀 통산 플레이오프 최다연패인 9연패도 끊어내면서 반격의 소중한 1승도 챙겼다. 하지만 4차전에서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쳤으나 결국 상대팀 이정현의 결승 레이업 득점이 터지면서 패배하였고 감독 데뷔 이후 첫 플레이오프는 1승3패로 아쉽게 6강에서 마무리 되었다.
2016년 10월 3일.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번 지정 때에는 모비스, SK, 전자랜드에 이어 전체 4번 픽을 얻었다. 뒤이어 18일 열린 본 지명에서는 연세대 천기범을 1라운드에, 성기빈을 2라운드에 지명했다. 빅3로 꼽힌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가 모두 앞에서 호명되었기에 그 다음 순번으로 꼽힌 천기범의 지명은 이해가 가지만 성기빈의 경우는 대학리그에서도 거의 출전 시간이 없다시피했던 선수라 대학 후배 챙기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 그 연도에는 2라운드 포워드 인재가 거의 없긴 하다만.....
라틀리프, 크레익, 김준일의 초강력 포스트가 가공할만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어, 1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오리온, 동부와 함께 리그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3점슛 시도가 리그 꼴찌이기 때문에 상위권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를 꼭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임동섭이 2라운드 이후 슛 감각이 올라오면서 상위권에 안착하는데 성공하면서 감독 능력도 긍정적인 쪽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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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6-17시즌 또 역사가 반복되었다. 얼굴을 감싸는 이상민은 덤. 그런데 이런 실책이 나왔음에도 삼성이 경기를 이겼다. 읭??? [18]
2017년 2월 13일 부친상을 당했다. 상주 자격으로 발인인 16일까지 고인의 빈소를 지켜야 하기에 15일 열릴 예정인 오리온스와의 경기는 박훈근코치가 일일 감독대행으로 대신 선수단을 지휘했다.
2월 26일. 모비스에게 승리하면서 직전까지 본인의 감독 통산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던 15~16시즌의 29승을 뛰어 넘은 30승을 달성했다. 정규시즌에선 6라운드의 부진이 아깝긴 하지만 팀 최다승 타이인 34승을 기록하며 3위를 기록했다. 불과 2년전만 해도 '''11승 43패'''를 기록하며 답이 없는 막장 팀이었던 삼성의 재건에 성공한 셈.
3월 30일 3년 재계약에 합의하면서 3년 더 서울 삼성을 이끌게 되었다. 6강에선 전자랜드에게 1승 뒤 2연패로 몰렸다가 뒤집기에 성공하며 8년만의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후 4강에서 오리온에게 5차전 끝에 결승에 가게 되었다. 07-08~08-09시즌 이상민-강혁-이정석으로 이어지는 '가드왕국' 시절 2연속 챔프전 진출 이후로 8시즌 만에 이상민 감독 체제에서 다시 챔프전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한 것인데 2승 4패로 아깝게 준우승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앞서던 경기를 내준 3차전과 외국인 선수 구성에서 우위를 보인 5차전을 놓친 것이 치명적이었다.
2017~18시즌은 FA로 김동욱을 다시 데려왔지만 주희정의 은퇴와 임동섭-김준일의 상무 입대, 3라운드 초반 라틀리프의 부상으로 인해 연말부터 쭉 7위에서 고전하고 있는 중. 그래도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써먹던 이동엽이 서서히 주전으로 안착하고 경기력 기복이 심하던 이관희의 슈팅 능력이 향상되어 기량발전상 유력 후보가 되면서 선수 키우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는 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라틀리프와 베테랑에게 의존하는 건 여전해서 여태까지는 좋았던 평가가 추락할 우려는 있다. 결과적으로 2017~18시즌은 라틀리프의 부상 공백 기간동안 승수 쌓기가 잘 되지 않으며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맞이한 2018~19시즌 라건아가 나가면서 공백이 더욱 심해졌고 이로인해 하위권 후보로 평가받았다. 비시즌 터리픽 12에서의 선전을 기록하면서 기대감을 안긴 채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2014-15시즌 이후 4년만에 다시 최하위로 떨어졌다. 시즌 초반부터 문제가 된 높이 부재는 팀을 발목잡고 있으며, 활동량 없이 어슬렁대는 병장 농구가 판을 치며 팀을 좀먹는 상황. 이러다보니 대체 용병들인 유진 펠프스와 네이트 밀러, 이번 시즌 급성장한 이관희만 뼈빠지게 고생하고 있다. 결국 3년간(2015-16~2017-18시즌)의 성적도 라틀리프빨인 것만 인증해버렸다.
그나마 2019-20 시즌에는 꼴찌를 다툴 전력으로 평가받던걸 7위였지만 시즌이 조기 종료될때까지 6강 싸움으로 이끌었다. 삼성으로써는 잠실실내체육관 특성상 시즌 최후반부에 홈경기가 다수 몰려있기 때문에 조기 종료된게 아쉬울 따름. 이후 2시즌 더 재계약에 성공했다.
2020-21 시즌 현재 전력보다는 나은 성적을 찍고 있다. 중상위권 성적을 거두다가 연패에 빠져서 하위권으로 내려왔지만 중위권 팀들과 승차는 얼마 되지 않으며 삼성보다 확실히 나은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SK 보다도 상위 순위를 오랫동안 유지했다.[19] 이전까지는 단순히 팀 순위나 승률도 그렇지만 무엇을 추구하는지 애매한 전술[20] 과 부족한 임기응변이 문제였는데 이번 시즌 들어서는 임기응변은 여전히 부족하지만[21][22] 통하든 통하지 않든 전술 자체가 없어 보이는 모습은 줄어들었다.
6.2. 감독으로서의 평가
작전 능력 및 선수 기용은 평균 이하, 하지만 체력 관리 능력은 평균 이상의 수준이며 선수 시절과는 다르게 감독 시절 한정으로는, 같은 기업의 축구단 감독 못지않은 덕장으로 많이 평가를 받았었다.[23]
6.2.1. 경기 운영 스타일
감독이 된 이상민의 경기 운영 스타일은 선수 시절 자신이 보여주었던 공격 스타일과 상당히 유사하다. 선수 시절의 이상민은 빠른 속공 전개를 통한 조성원, 조니 맥도웰, 찰스 민렌드, 테렌스 레더 같은 득점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마무리하는 운영에 강점을 보였는데, 감독 2년차인 15~16시즌에 접어들면서 리카르도 라틀리프를 활용한 포스트 장악을 통해 전년도에 비해 +18승을 거두었지만 믿고 쓸 만한 가드가 주희정 밖에 없어서 6강에 그쳐야 했다.[24] 수비적인 부분으로는 삼성의 팀 특성 상 주축 선수들의 연령대가 높고, BQ가 떨어지는 약점 때문에 상대방의 선수 중 가장 외곽슛이 약한 선수에게 새깅 디펜스를 매우 자주 사용한다.[25]
이런 문제는 김태술의 영입으로 해결되었는데, KGC 시절에 포스트가 강할 수록 효율을 냈던 김태술의 플레이가 삼성에 맞아들어가면서 이상민이 원하던 공격 농구를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마이클 크레익을 뽑은 뒤 보조 리딩을 맡긴 것도 대박을 쳤는데, 크레익을 골밑에만 두지 않고 리딩도 분담하게 하면서 김태술의 부담을 줄여주는 등의 이득을 보고 있다.
선수 시절 안준호 감독에게 개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안티를 좀 모았지만, 정작 이상민의 작전 타임 방식은 안준호와 상당히 유사하다. 말 그대로 선수들의 플레이에 일임하는 것. 다만 안준호의 경우 작전 타임에서 디테일한 작전지시를 하지 않는 것은 미리 철저하게 판을 짜서 패턴과 전술을 준비해서 경기 중 작전 타임에 크게 지시할 게 없어서 그런 경우지만 이상민은 전술전략에 약하다. 게다가 이상민은 안준호 때는 작전타임 중에 자기가 감독이라도 되는 양 선수들에게 지시를 했으면서, 정작 자기가 감독이 되자 말을 안 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강압적인 타입은 아니다. 대체로 자율 훈련에 맡기며 휴식도 충분히 보장해 준다. 심지어 16~17 시즌 챔프전 2차전이 끝나고 하루 외박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패배했을 경우 '''인터뷰에서 선수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3가드를 집어넣어 놓고 리바운드가 안된 탓을 한다든가... 3가드로 리바운드 많이 잡으면 그게 신기한 일인데...
그러나 이상민 감독의 약점이라면 수비 전술과 2번(슈팅 가드) 포지션 배치인데, 삼성의 경기를 보면 선수 개개인의 수비가 평균 수준이거나 그 이하여서 실점 및 턴오버를 범하는 일이 잦아서 경기 운영을 상당히 어렵게 하고 있다. 그나마 골밑에 라틀리프가 버티고 있고 이시준이나 천기범, 이동엽같은 블루워커 선수들을 활용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성적은 뽑아주고 있다. 그리고 2번 포지션에 있어서는 외곽슈팅 능력이 좋은 임동섭을 쓰고 있지만 키가 큰 포워드 자원이라 리딩에선 약점이 있다. 15~16시즌엔 이시준, 이동엽과 군에서 돌아온 이관희가, 16~17시즌엔 천기범을 2번으로 넣는 실험을 하고 있지만 평균 기대치 수준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향후 2번 포지션 육성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적받는 문제점은 스타팅 라인업에 대해 변동이 없다는 것인데, 16~17시즌 기준으로 김태술-임동섭-문태영-김준일-라틀리프가 거의 매경기마다 선발로 출장하고 있다. 이 탓인지 상대방의 전략에 밀려 초반에 상당히 고전하는 편인데, 오히려 삼성은 '''1쿼터를 지고 있을 때의 승률이 더 높다고 한다.''' 단, 플옵 같은 단기전에선 이게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시즌 후반엔 선발 라인업이 어느 정도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문제점은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있고 주전 선수들의 퀄리티가 뛰어나다는 16-17시즌 로스터의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보다 전력이 훨씬 떨어진 19-20시즌에는 개막과 함께 백투백 일정이 잡히자 첫 경기에 주전을 선발로 넣었지만 두 번째 경기에는 김광철, 정희원, 김현수 등 식스맨들을 스타팅에 포함하고 김준일과 이관희 같은 주전들은 벤치로 빼는 등 이 문서에 서술된 장점인 '체력관리'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였다.
6.2.2. 장점과 단점
6.2.2.1. 장점
최대장점은 선수 영입 능력이다. 최종은 프런트가 하지만 이상민 감독이 2015-16시즌 부터 프런트랑 같이 합심해서 명가재건을 위해서 영입 선수를 찾아다녔기 때문에 이상민의 지분도 포함된다.
단신 외국인 선수 영입 능력에서는 평균이상 수준의 능력을 보여준다. 첫번째로 영입했던 론 하워드의 실패이후 대체영입한 에릭 와이즈가 알토란 같은 플레이로 삼성의 플레이오프 연패 탈출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마이클 크레익 역시 후반기에 부진했지만 전반기 삼성을 돌풍의 핵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이었다. 마이클 크레익 같은 경우에는 드래프트 현장에서 농구관계자나 농구 기자들이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으나 이상민 감독이 과감하게 뽑았다. 마키스 커밍스도 있는데, 크레익과 동행을 포기하고 데려온 선수니 만큼 팬들의 우려와 기대가 뒤섞였었다. 그래서 초반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퇴출 유력 선수로 뽑히기도 했었는데, 라틀리프의 부상 이후 포텐을 터트리는데 성공해서 막판 평가에서는 단신 외국인 선수 3위의 평가를 받았다.[26]
주희정의 트레이드, B급 선수 대신 전력을 확실히 향상시킬수 있는 문태영의 영입을 요청한 것도 이에 포함된다. 이 보강이 제대로 통하며 삼성은 15~16시즌 부활에 성공했고, 단기간에 우승을 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들었다.
선수단 체력 관리를 잘 해 주고 무리시키지 않게 하는 것 역시 이상민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이 때문에 16~17 시즌 6라운드에서 처음 3연패를 하기 전까지는 단 한번도 3연패 이상을 하지 않았다.
프리한 운영 스타일 역시 장점이라고 할수있다. 구세대 지도자들처럼 강압적으로 훈련시키는게 아니라 자유로운 방식으로 스스로의 훈련참여를 유도해서 훈련을 시키는 방식인데, 이 점은 이상민을 비판하는 농구팬들도 인정하고 있는 장점이다.하승진이 한국 농구의 문제점을 짚는 영상에서 대표적으로 지적한 게 "감독들의 강압적인 지도 스타일과 권위적 태도"인데, 이를 이야기하면서도 "모든 팀이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팀도 많다'''"고 이야기한 게 의례상 던진 말이 아니라 사실인 이유 중 하나가 이상민 감독일 것이다.[27]
6.2.2.2. 단점
선수단 장악력에 대해서 가장 크게 단점이 지적되고 있다. 개그 소재로 이야기 되고 있지만 상민이형 받아! 같은 상황이 자주 연출 되는 것이 감독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태업을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다. 이상민은 삼성이 아니라 현대, KCC 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말년에 삼성으로 이적해서 기존 삼성 선수단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었다. 그러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이었던 강혁을 밀어내고 코치가 되고 감독이 되면서, 선수단이 이에 대한 반발로 이상민의 지시를 어기고 태업을 했다는 논란이 있다. 실제 이상민 1~2년차때 감독이 지공을 하라고 하면 속공을 하고 빨리 공격을 하라고 하면 가드가 패스 안하고 오래 공을 갖고 있는 등 작전 타임 지시의 정반대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여러번 나왔다. 이건 선수들의 능력과 상관 없는 부분이다.
감독 부임 초기부터 계속 지적되어 온 단점은 '''떨어지는 작전 능력'''인데, 이에 대한 비난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이 삼성이 김상준 시대보다 더 최악의 성적을 찍었던 2014~15년 시즌이었다. 이 시기 거론된 대표적인 삽질이 1라운드 외인인 리오 라이온스와 2픽 신인 김준일의 공존 실패인데, 이 둘에게 처음엔 센터와 파워 포워드 포지션을 맡겼다가 실패하자 나중엔 라이온스에게 스몰 포워드를, 김준일에게 센터를 맡겼다. 허나 그 결과는 수비 구멍의 극대화였고 결국 라이온스가 트레이드되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애초에 포지션이 스윙맨인 리오 라이온스를 단순히 키가 크다는 이유로 지명해서 센터를 시킨다고 센터 역할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증거. 가드진 또한 마찬가지로 기존의 이정석, 이시준을 중용하면서 전임 김동광 감독 시절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김태주나 최수현은 별로 기용하지 않으면서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선수층이 나아지면서 재기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15~16시즌 이후에도 간간히 작전 및 선수 기용에 관해서도 말이 좀 나왔는데, 이호현과 장민국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전자는 부족한 실력에 비해 넘칠 정도로 받은 기회 및 니갱망 모드였고, 후자는 나름 출전하면 쏠쏠한 활약을 보였음에도 경쟁자들 때문에 중용되지 못한 것.[28]
16~17 시즌 들어서 상위권에 오르며 이런 선수 기용의 문제는 어느 정도 사그러들어 보였지만 후반기 들어서 문제점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고 17~18 시즌에 라틀리프가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이 문제점이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토종 핵심 멤버인 임동섭과 김준일이 상무로 간 뒤, 라틀리프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결국 라틀리프의 부상 이탈로 인해 6강권에서 멀어지게 만든 책임이 컸다. 또한 라틀리프의 복귀 이후에도 문제였는데, 라틀리프-커밍스라는 10개구단 외국인 선수중 탑급에 들만한 외국인 선수들을 보유하고 6강권에 충분히 다시 도전할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 미숙등으로 인해 탈락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6.2.3. 종합
위의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보자면 이상민의 감독 능력은 일정 정도의 프런트 지원+자신이 원하는 선수 영입을 통한 리툴링 과정을 통한 전력 상승에 있어서는 중간정도 능력을 보여주지만, 이 반대의 상황에선 전략 부재의 단점이 도드라지는 막장으로 치닫는 상극의 케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라틀리프가 모비스로 이적한 2018-2019시즌 결국 최하위로 쳐지면서 위의 우려들이 현실이 되었다.
그나마 2019-2020시즌 코로나-19로 인한 조기종료로 7위를 기록했지만 시즌 전 꼴찌전력이라고 평가받던걸 6강 경쟁권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해 삼성과 2021-2022시즌까지 2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사실 이 재계약에 대해서 팬들의 호불호가 있다.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3위 이후 3년 재계약을 받았으나 김준일과 임동섭의 상무 입대 시즌이었고 주희정과 이시준이 은퇴를 했지만 김태술의 건재와 과거 삼성 레전드였던 김동욱을 재영입한 점에 이어 문태영과 라건아를 보유하고도 플레이오프 탈락을 당한 7위 이후 2018-2019 시즌 전력약화와 외국인 선발실패로 인해 또 한번 꼴찌를 당하더니 2019-2020 시즌 불운의 7위라지만 사실상 플레이오프조차 어려운 성적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평이 있다.
삼성 골수 팬들은 김상준 이후 암흑기라며 분통을 터트렸고 이미 차기 감독으로 문경은 감독 또는 유재학 감독 그리고 유도훈 감독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는데 또 실패했다. 주희정 고려대 감독도 계속해서 루머에 있는데 이상한 재계약이라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추가로 남매인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임근배 감독 또한 이동엽의 아버지로 유명한 이호근 감독의 후임으로 2015-2016 시즌 처음 부임해서 3년간 WKBL 파이널에 오르면서 재계약을 받았으나 여농 최강인 우리은행을 넘지 못하면서 WKBL 통합우승에 실패했고 2018-2019 시즌에는 우리 위비를 WKBL 플레이오프에서 복수했으나 정작 KB 스타즈의 창단 첫 WKBL 통합우승을 허용하며서 2년간 WKBL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고 2019-2020 시즌 6개 구단 체제 첫 꼴찌를 당한 이후 이상한 2년 재계약을 했다. 임근배 감독은 창피한 재계약이라 고개를 떨구었다.
이 정도면 삼성 남매 농구단 모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어보인다. 이상민 감독이 삼성 블루밍스 감독이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만 보인다.
7. 기타
응답하라 1994의 여주인공 성나정이 이상민의 열혈팬으로 나온다.[29] 여담으로 극중 성동일에게 영 좋지 않은 곳을 사진 칼빵 당했다(...). 이상민 의문의 거세 1분 30초 부분이다.
1999년 KBL이 추진한 프로젝트 앨범에 참여했는데 여행스케치의 멤버 조병석이 작곡한 '진심' 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뮤직비디오에도 직접 나왔다. 여기에 이상민의 아역으로 나온 사람이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의 김시래이다.
팬들의 스펙트럼 자체가 넓어서 전성기가 훨씬 지나 삼성으로 이적한 뒤에 A브랜드로 농구화가 바뀌자 '이상민 농구화 주세요' 요구가 빗발쳤다는 A브랜드 관계자의 인터뷰가 있었을 정도에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으며 이는 '''9년 연속 올스타전 투표 1위'''라는 기록으로 증명된다[30] . 앞으로 한국농구에 저 정도 인기를 누릴 선수가 또 나올지는 의문이다.[31]
농구화에 있어서도 한국농구와 팬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 유일한 선수이다. 본문 첫 번째 사진을 비롯 대부분의 사진에서 착용한 농구화는 96/97시즌 N사의 제이슨 키드의 나이키 시그내처 모델인 '줌 플라이트 5'이며 이상민 선수의 착용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유명해졌고 특히 흰색과 파란색 모델을 많이 신고 경기를 했다. 무엇보다 처음 출시이후에는 큰 인기를 끌지못하다가 이상민 선수의 꾸준한 착용과 2001/02에 데뷔한 김승현 선수 까지 '줌 플라이트 5' 신으면서 당시 엘리트 가드의 농구화를 대변하는 모델로 상징되었다. 여담으로 2013년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지드래곤이 정형돈과 데프콘의 녹음실에 방문한 방영분에서 당시 착용한 모델 역시 다른 색상의 '줌 플라이트 5' 이다..이후 삼성으로 이적 후 에는 A사의 길버트 아레나스의 '길 제로' 를 착용했는데 꾸준히 로우컷을 선호하는듯 하다.
극성팬 중에 일명 '''이상민 아저씨'''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는데, 삼성의 홈, 원정 경기를 가리지 않고 이상민을 응원하시는 분이 있다.[32] 이상민이 대전 현대-전주 KCC-서울 삼성을 거치면 이에 따라서 팬심을 옮기는 정성을 보여준다. 항상 로얄석[33] 에서 이상민을 응원하며, 구단차원에서 해당 팬에게 특별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진정한 팬은 특별대우를 받지 않는다."'''라며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이상민이 심판 판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면 그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반응하여 심판들에게 욕을 한 사발 시전하기도 한다(...). 감독이 된 후에도 열렬히 응원 중인데, 이게 이상민 팬덤 관점에서 보면 '열정적인 팬'이지만, 다른 팬들 시점에서보면 상당한 민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농구판 보문산 호루라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농구 팬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인사다.
할리우드 액션인 플라핑의 경우에도 이상민은 유독 짜증을 심하게 내는 편이고, 항상 똥 씹은 듯한 짜증난 얼굴로 팬들이나 일반인들을 대한다는 카더라통신이 있다. 경기 후 자기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그려 비싼 액자에 담아 전달해주는 여성 팬한테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쓰레기 들듯 액자 귀퉁이 들고 시크하게 걸어갔다고. 나이 들고서 올스타전에서는 장내 진행자가 '제발 덩크 한 번만 보여주세요'라고 애원하다시피해도 신경을 안 썼다는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때 온라인 게임인 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을 했다고 한다. 렐름은 미드가드. 원정 경기 때는 노트북까지 써서 틈틈이 게임을 했다고. 당시 한국 서버를 운영 중이었던 Buff Entertainment를 수차례 방문하기도 할 정도였다.
한화 이글스 출신의 MBC SPORTS+ 정민철 해설위원과 친해서 정민철 은퇴 경기에서 23인의 지인에 선정되어 생애 처음으로 야구 그라운드를 밟았다고 한다.[34]
과거 삼성에서 뛰던 시절 작전타임 도중 이규섭과 함께 안준호 감독에게 대들다시피하며 작전에 간섭하던 일들은 수 년이 지난 후에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단순히 작전지시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면 베테랑으로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로 넘어갔겠지만, 지나치게 불손하게 행동했던 것이 문제.[35] 안준호 감독이 삼성을 KBL 우승으로 이끈 감독이기에 이때 일을 매우 불쾌히 여기는 팬들이 많다.해당 영상 참고
농구에 대한 안목을 의심케 하는 농알못 발언을 몇 차례 한 적 있는데, '''"나라면 드래프트 1순위로 카이리 어빙 대신 지머 프레뎃[36] 을 뽑겠다."'''[37][38][39] 라든가, NCAA 디비전1 소속인 하버드대 농구팀을 '''"동아리 수준의 클럽"'''이라고 평가하는 등 해외농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제레미 린이 하버드 대학교 출신이다. [40]
2016년 11월 2일 오리온과의 홈경기에서 3쿼터 종료 1분 14초 정도를 남기고 마이클 크레익이 오리온의 김동욱을 상대로 2번째 U파울을 범해서 퇴장을 당했는데, 이에 이상민 감독은 "난 그런 규정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데?"라며 항의를 했다. 참고로 해당 시즌 KBL 경기규칙 37조에 U파울을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파울'의 한 유형으로 정의하고 있고 37.2.3조에 "선수가 2개의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파울을 받으면 경기 잔여 시간 동안 실격퇴장이 된다."라고 적혀있다. 즉 '''이상민 감독이 규정 숙지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7.1. 상민이형 받아!
2010년대 유재학 - 전준범 사건과 허재의 불낙, 신명호는 놔두라고! 이후 새롭게 조명받는 짤방 시리즈이다.
[1] 서울 삼성 썬더스 공식 프로필[2] KCC 에서는 11번이 영구결번이 되어있다.[3] 삼성 역사상은 좀 무린게 당장 김현준과 주희정, 강혁이 있다.[4] 인텔 펜티엄 시리즈같은 것들도 여전히 펜티엄이니 낡은 CPU만 의미하진 않는다고 우길 수는 있지만, 애초에 1990년대에 붙여진 별명이라 초기 펜티엄이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시즌 조기종료에 따른 플레이오프 미개최[5] 현역 때는 185cm로 표기되기도 하였다.[6] 지금 기준으로도 포인트 가드로서는 작은 키가 아니며, 그 시절의 포인트 가드 중에서는 가장 큰 선수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이상민 정도의 키는 슈팅 가드에 많았던 키였으니까... 보통 그 시절의 포인트 가드들은 170(유도훈 )~180 정도(신기성, 김승기등등)였으니... 조금 앞 세대이기도 하지만 포워드였던 김현준과 이충희만 하더라도 이상민과 키가 같았다.[7] 몸이 말을 안 듣던 은퇴하기 불과 몇 년 전이던 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경기 전 몸푸는 시간에 덩크를 심심치 않게 시전하였다.[8] 물론 키가 큰 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포인트 가드 중에 키 190이 넘는 봉하민과 은희석 같은 선수가 있긴 하였지만 기본 기량 자체가 애초에 이상민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결국 이들은 어정쩡한 트윈가드를 전전하게 된다. 은희석은 조금 후배다 보니 아주 동세대도 아니고 봉하민은 수비 전문 선수 이미지가 강했다.[9] 심지어 우지원이나 문경은 등 자신보다 7~8cm나 크면서 수비가 약한 상대편 3번 포지션[10] 조성원은 신장이 작아서 슈팅 가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신장이 작을 뿐 전형적인 스몰 포워드였다. 조성원 자신도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은 스몰 포워드지 가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번 밝히곤 했다. 이당시 현대에서는 보조리딩 역할을 가끔 추승균이 할때는 있었으나 조성원의 가담은 거의 없었다.[11] 이미지가 좋아서 아무래도 좀 희석이 된 감이 있다. 이와 반대로 서장훈은 이미지때문에 악의적인 파울을 당해도 오히려 언론에게 매너나쁘다고 엄청 까였다. 물론 서장훈은 나중에 예능으로 좋아졌지만...[12] 보통 '이응사' 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팬클럽을 지칭한다. [13] 후술할 이상민 아저씨와 '이응사'로 대표되는 여성팬들.[14] 유도훈과 이현호의 작전타임때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감독의 지시에 대답을 반말로 한것이고 서로간에 막역한 사이라는게 알려지면서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15] 앞에서 서술한 2014년 12월 16일의 '''나 이제 선수 아니야'''사건이 뇌리에 너무 깊게 박혀있다. 올해의 실수 1위에 뽑혔을 정도...[16] 그러나 삼성의 선수진은 전임 감독들인 김동광 김상식 시절보다 이상민때에 월등히 좋아진 멤버 구성이다. 위에서도 나오듯이 외국인 1픽, 신인 2픽이 가세했는데 성적은 더 나빠졌다. 이거보다 훨씬 심각했던 멤버로도 김동광은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17] 사실 이거 전에 2탄으로 2015년 11월 11일 창원 LG와의 원정경기 '''4쿼터''' 8분3초를 남기고 장민국이 패스미스를 저지른 적이 있다.[18] 2017 준결승 3차전에서는 4쿼터 5:10를 남기고 리카르도 라틀리프도 시전했다. 이상민 시리즈[19] 다만 부상선수들이 복귀한 이후 SK 순위가 더 높아졌다.[20] 인터뷰에서는 빠른 농구를 하겠다면서 느린 선수들을 기용한다던가 가드 3명을 기용하는 등 스몰라인업을 돌리면서 리바운드를 문제삼는 다던가[21] 지금도 중위권을 유지하다가 연패에 빠지자 급격히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 상황에서 대형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등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기라도 한다.[22] KBL 감독들 중에 준비해온 전술이 통하지 않을때 임기응변을 잘 발휘하는 감독은 몇 명 없다.[23] 감독 한정으로 보면 서정원과 비슷한 면이 있다. 덕장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선수 영입과 구성에서는 좋은 면을 보였으며 작전 능력면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면도 공통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이상민의 경우 선수 시절의 단락에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선수 시절에는 감독으로의 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정작 이상민은 선수 시절에 경기장 내에서 욕설을 가장 많이 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 김주성과 함께 상대 선수들에게 욕을 하거나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것은 물론이고 플라핑으로도 악명이 높았을 정도. 어느 정도였냐면, 안준호 감독한데 반말을 하면서 항명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이 감독으로의 이미지는 상당히 잘 쌓았다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24] 이 당시 삼성의 가드진 수준이 얼마나 심각했냐면 포워드인 임동섭과 문태영이 리딩을 볼 때도 있었다.[25] 대표적인 사례가 2016-17 시즌 플레이오프. 박찬희와 오데리언 바셋을 상대로 새깅을 시전하여 성공했다. 그러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양희종이 미쳐버리면서 실패로 돌아갔다.[26] 같은 시즌 전자랜드의 유도훈 감독이 희대의 버거셀이라는 실책을 했었던걸 생각하면 분명한 장점이다.[27] 2018-19 시즌후 전태풍이 FA로 시장에 나와서 주변 동료들의 추천을 받았을때도 SK 감독 문경은과 함께 추천받았던 감독이 이상민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감독은 활동시기가 거의 완전히 같으며, 그 때문인지 두 감독 다 프리한 운영 스타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28] 장민국은 이해할만한게 같은 포지션에 임동섭이라는 2순위로 입단해서 삼성이 애지중지 키워온 선수가 있었고, 더군다나 문태영도 있었다. 장민국이 4번으로 가기에는 키만 4번일 뿐이지 다른부분은 4번이 아니기에 부족한점이 많았고 이때문에 중용이 잘 안되었던 것이다.[29] 다만 이건 일종의 설정 오류인데, 연세대 시절의 이상민은 인기가 없진 않았으나, 특별히 많지도 않았다. 연세대 인기 부동의 원탑은 이상민 보다 월등히 잘생겼던 우지원이다.[30] 동시대 프로 농구선수였던 현주엽이 옥탑방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기 순위 부동의 1위로 이상민을 뽑았으며 이상민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의 인기순위 다툼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31]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선수인 마이클 조던도 NBA에서 9번 올스타전 1위를 차지했다.[32] 대전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아저씨이다.[33] 경기장마다 임시구조물로 되어있는 선수단과 가장 가까운 좌석.[34] 홍대부고에 다니던 이상민이 대전고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정민철이 '홍대부고 얼짱이 누구냐?' 라고 묻자, 불쑥 나간게 이상민이다. 정민철 본인을 대전고 얼짱이라고 소개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나중에는 문경은, 서장훈과 같이 나이트도 갔다고 한다. [35] KCC 시절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그 때 감독이 '''허재'''였던지라 허재가 크게 화를 낼 때 잠잠해졌던 일이 있다.[36] 10순위.[37] 이후 어빙은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 가드로 대성한 반면, NCAA 최고의 득점 기계였던 프레뎃은 NBA 적응에 실패하고 몰락한다. 훗날 이상민이 고백하길, 어빙의 경기는 '''1번 밖에''' 안 본 상태에서 그런 발언을 한 거라고 해명했다.[38] 몇 년 후 삼성 감독을 하고 있을 때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이 얘기를 전해 듣고는 '''"우리 감독님이 술이 많이 취하셨었나보다ㅋㅋ"'''라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이상민·프레뎃, 5년 만에 만난 묘한 인연?[39] 차라리 야오밍처럼 중국리그 출신이라 물음표가 붙은 것도 아니고, 그렉 오든과 케빈 듀란트처럼 그래도 어느 정도 고민해볼만한 여지가 있던 것도 아니고, 프레뎃과 어빙의 드래프트 전 가치를 생각하면 농구에 대한 최소한의 안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수준인데, 어빙은 사이즈와 기술, 운동능력을 겸비한 득점형 포인트 가드인데다가 고작 1학년만 마쳐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였고 프레뎃은 어빙보다 훨씬 PG소화력이 떨어지는 슈팅 가드에 더 가까운 데다가 키도 어빙보다 1인치 작고 운동능력은 비교도 안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대학 4년을 꽉 채우면서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완성형 선수였다는 것인데, 미치지 않고서야 이 선수를 어빙 대신 뽑을리가 없다. 농구팬들이라면 다 아는 이치를 이상민 혼자 몰랐다는 건데, KBL역사상 최고의 가드 중 한 명인 이상민이 진짜 농구의 농자로 모르는 농알못일리는 없고, 진짜 NCAA에 대해 하나도 몰랐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그가 대학농구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치면 프레뎃이 당시 "올해의 대학선수상"을 휩쓸었던 것만 보고 한국에서처럼 생각해 "아 대학 최고의 선수니 최고의 유망주겠지?"라고 지레짐작했을 수도 있다. 모든 유망주들이 최소 2,3년을 대학에서 보내던 과거엔 이런 추정이 타당했지만, 현재 잠재력이 뛰어난 대학선수들은 대부분 1년, 많아야 2년만 뛰고 프로 진출한다. 즉, 이 상들을 받는 선수들은 1. 듀란트나 앤서니 데이비스처럼 저학년인데도 미친듯이 잘하거나, 2. 프로에서 상위픽 될 재능이 아니어서 대학 4년을 꽉 채우고, 이 과정에서 쌓인 경험과 기술로 대학선수상을 받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당연히 2의 경우 프로에서 성장폭이 그만큼 극적으로 줄어들고, 애초에 잠재력 자체가 1학년만 마치고 프로 간 선수들보다 적기 때문에 기대치가 현저히 적어서 절대 1,2픽으로 뽑히지 않는다. 2005-06시즌에 올해의 대학 선수상을 거의 휩쓴 JJ 레딕도 11픽으로 뽑혔고, 프로에서 롤플레이어로 자리잡을 거란 기대 그대로 현재 훌륭한 롤플레이어로 자리잡았다. 프레뎃 역시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대학 스타였는데 레딕과 반대로 쓸만한 롤플레이어로조차 자리잡지 못해서 현재 NBA에서 퇴출되어 중국에서 뛰고 있다.[40]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운동장학금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하버드 농구부의 수준이 다른 대학 농구부보다 수준이 낮은 것은 맞다. 다만 제레미 린처럼 농구부 활동을 한 경우 입학 전형에서 특별활동으로 취급되어 가산점을 받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입학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건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한계 때문에 엘리트 선수들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어서 하버드 출신 선수들은 역대 4명에 불과하며, 심지어 린 이전에 NBA 무대를 밟은 선수는 1954년에 데뷔한 선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동아리 수준이라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실제 린의 경우도 그렇고 하버드 출신 선수들이 NBA는 아니더라도 다른 프로리그에서 활약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 미국의 교육부 장관 아니 던컨의 경우도 하버드 농구부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 호주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뛰었었다. 사실 아이비리그 농구부 출신들이 전업선수로 가는 경우가 적은 건 아이비리그에 입학할 정도면 공부 쪽으로 손꼽히는 인재들이기 때문에 굳이 가능성이 희박한 프로 도전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크다. 하버드 농구부가 동네북인 건 건 괴물들이 판치는 NCAA에서나 동네북이지 이 학교는 미국 전역에서 농구 엘리트들이 모이는 '''디비전 1''' 소속의 학교다. 린 역시 고등학교 시절 북부 캘리포니아의 2부 리그(디비전 2)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적이 있는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