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조 덴노

 


'''시호'''
이치조 덴노(一条天皇, 일조 천황)
''''''
야스히토(懐仁)[1]
'''능호'''
노치노무라카미능(後村上陵)
'''생몰'''
980년 7월 15일 ~ 1011년 7월 25일
'''재위'''
986년 8월 1일 ~ 1011년 7월 16일
'''연호'''
에이엔(永延)[2]→에이소(永祚)→쇼랴쿠(正暦)→조토쿠(長徳)→조호(長保)→칸코(寛弘)
'''황거'''
헤이안쿄(平安京)

1. 개요
2. 행적
3. 가계


1. 개요


일본의 제66대 천황. 엔유 덴노의 아들.

2. 행적


태자 시절의 이름은 야스히토 친왕이었다. 그는 엔유 덴노와 후지와라노 아키코의 장남이었으며, 어머니는 후지와라노 카네이에의 딸이었다.
984년 그는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그의 외조부 카네이에가 카잔 덴노로 하여금 퇴위하도록 각본을 짰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치조는 7세에 즉위했다.
덴노의 나이가 어렸기에 외조부였던 후지와라노 카네이에가 섭정을 하였고, 990년 1월 5일에 성인식을 치렀다. 이치죠 덴노의 재위기간은 '''외척인 후지와라 가문에 의한 섭관정치의 전성기'''에 해당했으며, 문화적으로는 많은 작품들이 탄생한 '''국풍문화의 전성기'''였다. 세이 쇼나곤, 무라사키 시키부, 이즈미 시키부, 이세노 다이후, 아카조메에몬 등의 여류 작가들은 이치조 덴노의 후지와라노 테이시 중궁과 후지와라노 쇼시 중궁을 모시던 궁녀들로, 각자 모시던 황후들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 예술의 재능을 발휘했으며[3] 아베노 세이메이아시야 도만이라는 음양사도 이치조 덴노의 치세를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1011년 6월 13일 병으로 인하여 사촌형 이야시다 친왕(산조 덴노)에게 양위하고, 6월 22일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계


  • 제1황후 : 후지와라노 테이시 - 후지와라노 미치타카의 딸.
    • 쇼시 내친왕(脩子内親王)
    • 아츠야스 친왕(敦康親王)
    • 비시 내친왕(媄子内親王)
  • 제2황후 : 조토몬인(上東門院) 후지와라노 쇼시 -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
  • 여어 : 후지와라노 요시코(藤原義子)
  • 여어 : 후지와라노 도모코(藤原元子)
  • 여어 : 후지와라노 나가코(藤原尊子)
  • 궁인 : 미쿠시게도노 궁인(御匣殿)
5명의 배우자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두었다.

[1] 카네히토라는 독음도 존재했다고 한다.[2] 본 연호를 따서 에이엔노미카도(永延帝)라고도 한다.[3] 테이시 중궁 소속이 세이 쇼나곤이었고, 쇼시 중궁 소속이 무라사키 시키부, 이즈미 시키부, 이세노 다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