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 덴노
1. 소개
일본의 제67대 천황. 63대 레이제이 덴노의 차남으로 이름은 이야사다(居貞).
2. 생애
978년 11월 20일 친왕에 봉해졌다. 986년 7월 16일 형 카잔 덴노가 이치조 덴노에게 양위하자 11세에 성인식을 치르고 같은 날 황태자에 봉해졌다. 1011년 6월 13일, 36세 때에 사촌 이치조 덴노로부터 천황의 자리를 물려받아 동년 10월 16일 즉위하였으나, 5년 후인 1016년 1월 29일, 이치조 덴노의 차남 아츠히라 친왕(고이치죠 덴노)에게 양위를 하였다.
산조 덴노가 재위하던 기간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어서 서로 간에 약간의 마찰도 있었다. 천황의 눈병으로 인해 천황 계승 문제가 발생하자 미치나가는 자신의 외손자인 아츠히라 친왕의 옹립을 추진하였고, 결국 산조 덴노는 아츠히라 친왕을 황태자로 삼고 양위했다[1]
3. 죽음과 작품
동년 2월 13일, 산조 덴노에게 태상천황의 존호가 바쳐졌다. 산조 상황은 1017년 4월 29일 출가하였는데, 법명을 '금강정'이라 하였다. 그러나 출가한 지 며칠 되지 않아 5월 9일 산조인(三條院)에서 42세의 나이로 죽었다. 천황의 명으로 편찬된 <후습유화가집>(後拾遺和歌集), <신고금화가집>(新古今和歌集), <신습유화가집>(新拾遺和歌集) 등에 천황이 지은 노래가 남아 있다.
4. 가족 관계
* 황후: 후지와라노 세이시(藤原娍子, 972~1025 : 후지와라노 나리토키의 딸)
제1황자 : 고이치조인(小一条院) 아쓰아키라 친왕(敦明親王) (994~1051)
제2황자 : 아쓰노리 친왕(敦儀親王) (997~1054)
제3황자 : 아쓰히라 친왕(敦平親王) (999~1049)
제1황녀 : 도시 내친왕(当子内親王) (1001~1023): 이세 신궁의 37대 신관이 됨.)
제2황녀 : 시시 내친왕(禔子内親王) (1003~1048 : 후지와라노 노리미치에게 출가함.)
제4황자 : 고묘쥬인(光明寿院) 모로아키라 친왕 (師明親王) (1005~1085) : 출가하여 법명 세이신(性信)을 받고 닌나지 제2대 주지가 됨)
* 중궁: 후지와라노 겐시 (藤原妍子, 994~1027 :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제2황자 : 아쓰노리 친왕(敦儀親王) (997~1054)
제3황자 : 아쓰히라 친왕(敦平親王) (999~1049)
제1황녀 : 도시 내친왕(当子内親王) (1001~1023): 이세 신궁의 37대 신관이 됨.)
제2황녀 : 시시 내친왕(禔子内親王) (1003~1048 : 후지와라노 노리미치에게 출가함.)
제4황자 : 고묘쥬인(光明寿院) 모로아키라 친왕 (師明親王) (1005~1085) : 출가하여 법명 세이신(性信)을 받고 닌나지 제2대 주지가 됨)
5. 백인일수
'''제68번 산조 덴노(三条天皇)'''
心 にも あらでうき世 に ながらへば恋 しかるべき夜半 の月 かな마음과 달리 덧없는 세상에서 오래 산다면 반드시 그리워질 한 밤중의 달이구나
[1] 1016년 1월 29일 기록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