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비아 항공 870편 추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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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굴리엘모에서 팔레르모로 가던 이타비아 항공 870편 DC-9기가 격추 혹은 폭탄 테러로 추락한 사건.
2. 사고 진행
사고기는 하와이안 항공에서 쓰던 기체로 1972년 2월, 이타비아 항공에 오게 되었다.
2.1. 실종
이타비아 항공 870편은 1시간 57분의 지연 끝에 이륙하게 된다. 그러나 오후 8시 37분, 마지막 교신 후 870편은 실종되었다.
오후 9시, 이탈리아 공군소속의 F-104가 사라진 870편을 찾으러 출격하였으나 시계가 좋지 못해 소득 없이 돌아왔다.
추락 이후 해당 해엽에 시신과 잔해가 발견되었고 81명중 생존자는 없었다.
3. 사고 원인
이탈리아 정부는 수년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원인 보고서, 성명을 발표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008년 6월, 로마 검찰은 프랑스 공군의 전투기에 의해 격추 된것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동년 7월 7일, 프랑스 대통령에게 손해배상이 청구 되었다.
또한 이탈리아 공군의 고위 장교들의 위증, 직권 남용, 문서 위조로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4명의 장교가 반역죄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2004년 재판에서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기각되었고 2007년 1월 10일 종결되었다.
3.1. 폭탄 테러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이탈리아는 극좌와 극우의 대립으로 인해 혼란기가 있었다. 비행이 3시간 가량 지연 되었는데 비행기 뒤에 있던 화장실에 있던 폭탄을 팔레르모 국제공항에서 터트리기위해 타이머를 설정 하였으나 지연이 되어 운항중 터진것으로 일부는 추측한다.
1990년 사법 조사를 지원하는 기술위원회는 DC-9 폭파 테스트 때 잔해가 870편의 잔해의 변형과 일치하는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폭탄 테러 가설은 모순이 존재한다. 먼저 회수된 화장실의 잔해가 멀쩡했던것, 113분의 지연 시간동안 폭탄이 설치된 경로, 그 어떤 테러 조직도 870편을 폭파 했다고 밝히지 않을 것을 모순이 있다.
3.2. 미사일 격추
사건 초기, 이탈리아의 언론은 NATO군이 리비아 전투기와 공중전중 발사한 미사일이 870편을 실수로 격추 하였다는 기사를 작성하였다. 공식 보고서에서는 사고 21일 후, 리비아 군의 MiG-23전투기가 조종사의 시신과 함깨 이탈리아의 한 산맥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1999년, 한 조사관이 NATO의 요청에 의해 이탈리아 군과 비밀 요원에 의해 수사가 방해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3.3. 음모론
870편의 잔해를 수색하던 프랑스 선박에 미국 관리가 접근한 이후 레이더의 자료가 삭제되고 여러 이탈리아 장군들이 사고 20여년 후, 기소된 일이 있었다.
4. 기타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 13편에 방영되었으며 여기선 화장실 폭탄 테러를 원인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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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편의 잔해는 유스티카 추모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박물관에는 동체뿐만 아니라 기내 물건들도 전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