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 영단어 Extreme은 '극한'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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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결성 멤버. 팻 배저-게리 셰론- 누노 베텐코트-케빈 피게이레두
'''Extreme'''
미국 보스턴 출신 4인조 락 밴드이다.
1. 결성
3. 해체
4. 재결성


1. 결성


1985년에 결성, 1995년에 해체가 됐으나 2008년에 재결성하여 활동 중이다. 현 멤버는 보컬 게리 셰론(Gary Cherone), 기타 누노 베텐코트(Nuno Bettencourt)[1], 베이스 팻 배저(Pat Badger), 드럼 케빈 피게이레두(Kevin Figueiredo).
The Dream에서 활동하던 게리 셰론과 폴 기어리(Paul Geary, 前 드러머), Sinful에서 활동하던 누노 베텐코트, In the Pink에서 활동하던 팻 배저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한 라이벌 밴드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셰론과 기어리의 제안으로 베텐코트가 먼저 The Dream에 가담했고, 이후 배저가 함께하며 The Dream에서 Ex-Dream을 거쳐 Extreme으로 이름을 바꿨다.[2]
이 넷은 밴 헤일런의 헤비메탈과 [3]의 진보적인 사운드를 따랐는데, 처음에는 팝 메탈 범주에 속했으나 펑키(Funky)한 리듬을 첨가하면서 점차 개성적인 사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선배 밴드들의 오프닝 밴드로 불려다니다 1989년에 데뷔앨범 <Extreme>을 발매했다. 그리고 그들의 리즈시절이 시작됐다.

2. 리즈 시절


1990년 2집 <Extreme II : Pornograffitti(이하 Pornograffitti)>[4]를 발매했다. 데뷔앨범이 이름 알리기 목적으로 냈다면 2집은 그야말로 그들을 인기밴드 반열에 올린 앨범이었다. 그들의 대표곡인 '''More than Words'''는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고,[5]앨범 자체도 빌보드 200 10위에 올라 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More than Words'가 인기 있었을 때 익스트림을 단순히 발라드만 부르는 밴드로 인식했으나, 실상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 이름 <Pornograffitti>부터가 심상치 않았고, 첫 트랙부터 징그장징징 대는 기타 소리에 식겁했다고 한다.[6] 하지만 밴드의 꽃미남 파트였던 셰론과 베텐코트의 외모에 혹한 여성팬들이 많았다고 한다.
1992년에 낸 3집 <3 sides to Every Story>는 2집보다 앨범 완성도 면에서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때부터 베텐코트가 전면적으로 프로듀싱을 했다. 앨범이 전반적으로 세 테마로 나눠진 컨셉트 앨범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특히 후반 세 트랙의 테마인 'The Truth'에 오케스트라 어레인징이 들어가는 등 실험적인 사운드도 선보였다.

3. 해체


그러나 2,3집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5년 4집 <Waiting For The Punchline>은 그야말로 망했어요. 이는 앨범 뿐만 아니라 밴드 자체도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로 내우외환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메인스트림 판도는 이미 메탈 장르가 쇠하고 얼터너티브 락도 최정점에서 슬슬 내려오던 시대여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기 힘들었다. 또한 밴드 내적으로, 드러머 기어리가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겠다고 음반 제작 중 갑자기 탈퇴를 했고, 뒤를 이어 마이크 맨지니[7]를 영입하여 어찌저찌 앨범작업은 마쳤지만, 베텐코트가 레코드사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1997년에 게리 셰론이 밴 헤일런 보컬로 옮겨가면서 밴드는 급속도로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4. 재결성


해체 후 누노 베텐코트는 자신이 중심이 돼 만든 'Mourning Widows', 'DramaGods'를 이끌었고 게리 셰론은 밴 헤일런에서 보컬로 활동했다. 하지만 셰론은 밴 헤일런의 이전 보컬인 데이비드 리 로스나 새미 해이거와 비교해가며 팬들에게 까이고 말았고 베텐코트가 이끌었던 밴드들은 아무래도 베텐코트가 중심이다보니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8]
원래 DramaGods 이라는 이름 이전에 'Population 1'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법적 문제가 생겨 바꾸게 되었다.
그러다 2008년에 베텐코트, 셰런, 배저 등 익스트림의 원년 멤버와 'DramaGods'에서 드럼을 맡은 케빈 피게이레두가 합류하여 재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8년 12월 13일에 익스트림으로서는 최초의 내한공연을 가졌다.
요즈음 베텐코트가 솔로나 익스트림으로의 활동은 뜸하고 리아나의 백밴드 세션을 맡아주는 중이라 다음 앨범이 나올 확률은 조금 희박한 상황.
아무리 개리 섀런이 밴 헤일런 시절에 까였다고 해도 히트곡이 받쳐주지 못한데다 그 옛날 벤 헤일런 보컬들 리즈시절과 비교해서 까인거고, 원래 보컬 능력 자체는 객관적으로 매우 우수한 축에 속하며 요즘 안습을 자아내는 다 망가진 구닥다리 보컬들에 비하면 2010년대에도 여전히 생생한 가창력을 유지하고 있어 지속적인 공연 투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201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포르노그래피티 앨범 25주년 기념으로 앨범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을 하였다.
2016년 9월 25일 부산 / 2016년 9월 27일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다.

[1] 포르투갈 출신이다. 포르투갈어 발음에 맞춘 표기는 '''누누 베텡코르트''', 하지만 어릴 적에 미국에 이주하여 쭉 살고 있고, 한국에서 이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터라 이렇게 표기한다.[2] 실제 영어 발음으로는 '익스트림'이 맞지만, 예전 이 밴드의 이름인 Ex-Dream을 강조하기 때문인지 '엑스트림'으로 발음하기도 한다.[3] 1992년 웸블리에서 열린 퀸 헌정 공연은 그들의 역대 최고의 퍼포먼스로 평가받기도 한다. # 특히 청중들을 압도하는 셰론의 리딩은 정말 ㅎㄷㄷ.[4] 차기작인 3집 음반과 더불어, 컨셉트 앨범 형식이다. 은근히 많이 간과하는 부분.[5] 여담으로 god의 3집 수록곡인 <돌아와줘>에서 이 곡의 기타리프가 샘플링된 적이 있다.[6] 스트라토바리우스, 심지어 주다스 프리스트의 경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7] 훗날 마이크 포트노이 후임으로 드림 시어터의 새 드러머가 된 그 '마이크 맨지니' 맞다.[8] 베텐코트가 'Mourning Widows', 'Population 1', 'DramaGods'를 이끌던 시절에 자주 공연 및 클리닉 강연으로 내한했다. 한때는 거의 1년에 한 번꼴로 내한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