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헤일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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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밴 헤일런 형제의 이름을 따서 만든 미국의 록 밴드. 헤비메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3] 팝 메탈의 전성기를 연[4] 밴드로 평가받는다. 이글스, 에어로스미스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하드 록의 아이콘이자 전설로 미국 내 음반 판매량이 7천만장이 넘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음악가 10위 안에 들 정도다. 1970년대 말의 하드록/헤비메탈의 분기점에 선 밴드로 이 구분이 애매하긴 하지만, 적어도 밴 헤일런을 기점으로 해서 그 이후에 헤비록을 추구하는 밴드는 대게 헤비메탈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런 기준으로 헤비메탈을 본다면 헤비메탈 밴드중 상당히 많은 앨범을 판매한 밴드들 중 하나로 가장 미국적인 색의 밴드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캐나다를 비롯한 북중미권에서는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으나 락부심이 쩔어주던 1980년대의 한국[5] 에서는 본 조비나 에어로스미스같은 팝 메탈 아티스트들과 함께 말랑말랑한 사랑노래나 부르는 돈벌이 밴드 중 하나 정도로 도매급으로 탈탈 까인 경우가 잦았던지라 'Eruption', 'Jump!'나 'Dreams' 같은 곡 정도를 제하면 어째 큰 인지도가 없다. 대가들도 감히 흉내낼 엄두조차 못내는 밴드가 밴 헤일런인데, 오히려 폼만 잡고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겉멋쟁이들이 과소평가한 특이한 밴드. 신해철이나 김세황, 배철수같은 진짜로 업적이 있는 사람들은 극찬도 모자라서 적당한 말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음악적으로 뛰어났던 밴드.
사실 이는 대중적인 성공이 큰 것이 원인이긴 한데, 이들의 대표곡인 Jump가 이들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 것이 제일 크다. Jump는 신디사이저가 들어가고 기타의 비중이 적은 팝에 매우 가까운 팝 메탈 트랙인데, 정작 이들은 기타 에디 밴 헤일런의 미친 속주를 기반으로 하는 헤비메탈 밴드이다. 따라서 Jump만 듣고 이 밴드를 그저 그런 대중성있는 팝 메탈 밴드라고 여기는 대참사가 벌어진 것.[6]
대중적으로 워낙 큰 성공을 거둔 밴드이다 보니까 오히려 한국에서만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7] 적어도 1984[8] 이전의 5장의 앨범은 들어보고 평가하자. 그리고 이상하게도 밴 헤일런은 몰라도 에디 밴 헤일런의 트레이드 마크격 기타인 '''빨간색/흰색/검은색 줄무늬의 프랑켄스트랫'''을 아는 사람은 많다.
밴 헤일런이 하드록/헤비메탈의 분기점에 위치한다는 얘기는, 밴 헤일런의 기타/드럼 연주를 기점으로 헤비록의 연주스타일이 확연하게 진일보해서 이전의 하드록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데뷔 앨범의 연주곡 'Eruption'은 록 기타 역사상 최초로 태핑 주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해 세상에 알린 트랙으로 평가받는다.[9] . 이렇게 다양하고 혁신적인 주법과 시도들은 당시 록음악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10]
2. 바이오그래피
형(1953년생)인 알렉스 밴 헤일런(드럼), 동생인 에디(에드워드, 1955년생) 밴 헤일런(일렉트릭 기타)을 주축으로 하여 결성되었다.[11] 이 형제의 아버지[12] 는 네덜란드인이며[13] , 어머니는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의 혼혈[14] 이다.[15][16] 형제가 어렸을 적(1962년) 밴 헤일런 일가는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아버지는 형제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켰지만 알렉스와 에디는 그것을 즐기지 않았고 결국 드럼과 기타를 시작하게 된다. 피아노를 다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밴 헤일런 형제의 건반악기 연주 실력 또한 수준급이다.
이 밴드를 거쳐 간 보컬리스트는 데이빗 리 로스(1974~1985, 2006~)[17] , 새미 해거(1985~1996)[18] , 게리 셰론(1996~1999)[19] 이 있으며 베이시스트는 데뷔 때부터 2006년까지 마이클 앤서니였다가 에디 반 헤일런의 아들인 볼프강 반 헤일런으로 교체되었다. 다만 몇십 년 간 밴드를 같이 지켜온 베이시스트를 갈았다고 한 때 욕 좀 먹은 적도 있다[20] ... 아들인 볼프강 반 헤일런의 실력은 안정적인 연주와 부드러운 고음역대의 코러스가 모두 가능한 마이클 안소니보단 약간 떨어지는 편. 마이클 안소니가 탈퇴당한 후 인터뷰에서 노발대발한 적도 있을 정도로 앙금이 있다. 무대매너가 뛰어났던 1대 보컬인 데이빗 리 로스하고도 상당히 껄끄럽게 결별했고 새미 해거 이후 게리 셰론을 넣었으나 세일즈면에서 처참하게 망한 관계로 결국은 새미 해거를 다시 넣네마네 하다가 데이빗 리 로스와 재결합을 했다.
형제의 성을 따와서 밴드명을 만들었는데, 네덜란드계 이름이라 다양한 발음이 있다. 네덜란드식으로는 '판 할렌(혹은 반 할렌)'이라고 하며,[21] 미국식으로는 '밴 헤일런'인데, 이것이 마구 섞여서 '반 헤일런' '밴 할렌' 등등 별의별 표기가 있는것이 특징이다.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 '반 헤일런'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을 정도.
2.1. 데이빗 리 로스 시절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팬들 모두 새미 헤이거 시절(일명 밴 해이거)보다는 데이빗 리 로스 재적시 밴 헤일런을 더 쳐준다.
후임 보컬 새미 헤이거가 데이빗 보다 훨씬 가창력이 있는 능력 충만한 보컬이지만 밴 헤일런 본인의 작곡 능력과 연주 실력도 로스와 함께 할때가 정점이었다. 보컬에 데이빗 리 로스, 기타에 에디 밴 헤일런, 베이스에 마이클 앤서니, 드럼에 알렉스 밴 헤일런이었던 이 초기 라인업은 데뷔 앨범부터 말 그대로 '''미국 음악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라인업은 6개의 앨범을 내놓았는데, 마지막 역작 1984에서는 그 당시 유행하던 팝 메탈 노선을 따라가서 신디사이저 연주가 강조된 ''''Jump''''[22] 등의 곡으로 큰 히트를 치기도 했다. 밴 헤일런을 전혀 몰라도 1984년 빌보드 hot 100 5주 연속 1위를 할 정도로 메가히트 트랙이고, Jump의 도입부 신디사이저 사운드만큼은 각종 방송등의 BGM으로 상당히 많이 삽입되어 이걸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금발 장신에 야성미가 철철 넘치는 보컬 데이빗 리 로스는 워낙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파티광에 돌아이(...)라 쉽게 제어가 되지 않았고 이것이 밴드 활동에 큰 불화의 씨를 낳게 되었다.[23] 결국에는 그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데이빗 리 로스가 탈퇴를 선언하고 새미 헤이거 시대를 열게 된다.
사족으로 리 로스는 탈퇴 후 한이 맺혔는지 자신의 이름을 딴 'David Lee Roth Band'를 만들었는데 그 멤버가 당대 최고의 테크닉을 구사하던 기타 스티브 바이, 베이스 빌리 시언, 드럼 그렉 비조넷[24] 이라는 가히 슈퍼밴드였다. 인기도 어마어마해서 밴 헤일런의 인기에 버금갔을 수준. 히트곡들 Yankee Rose, Just Like Paradise, Just A Gigolo. 짤렸을지언정 안목과 실력만큼은 확실히 있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웃긴 건 리 로스는 파티광에 완전 놈팽이 이미지이지만 어떤 피곤한 파티가 있었던 간에 그 다음 날 아침엔 변호사나 자산관리사 같은 사람들을 불러 회의하거나 꼭 조깅을 하고, 밴드 합주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일 중독자라는 의외의 면도 있었다. 그도 그럴게 아버지가 유대인 안과 전문의였고 부동산에도 안목이 있던 백만장자였으니 자연스레 보고 배운 게 그런 것일 것이다. 이번엔 빌리 시언이 그런 리 로스의 빡빡한 면에 지쳐 탈퇴를 해버렸을 정도. 반면 리 로스 입장에선 물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알렉스,에디 형제는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에 쩔은데다 공연일정을 제대로 잡지 않아 자신의 솔로 계획은 물론 영화출연등의 스케줄 진행에 방해가 된다며 마지막 활동 때부터 반쯤 갈라선 상태였다.
직업 음악가가 되기 전에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적이 있으며, 현재는 뉴욕시에서 구급차를 운전하며 심폐소생술 면허를 가진 베테랑 구급요원으로 활동중이다.
2.2. 새미 해이거 시절
새미 헤이거(Sammy Hagar)[25] 는 원래부터도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보컬의 가창력과 기교는 물론 대중성 면에서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던 뮤지션이었다. 일단 데이브 리 로스는 무대에서 개성이 강하고 좀더 "헤비메탈적"인 보컬이지만 새미 헤이거는 월등한 가창력에 훨씬 팝적인 멜로디에 적합한 서정적인 보컬이었고 음역대도 더 넓었기 때문이다.[26] [27]
보컬의 교체와 함께 그의 음색에 맞춰 당시의 밴 헤일런은 초기때와 다른, 대중적으로 좀 더 먹히는 팝 메탈 노선을 따랐다. 데이빗 리 로스 시절에 내놓은 마지막 역작 1984에서도 그런 성향을 보이긴 했었지만 헤이거 시절에 본격적으로 바꾼 것. 그리하여 이 시절에 내놓은 앨범 4개도 전부 빌보드 1위를 찍고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새미 헤이거는 밴 헤일런의 라이브에서 자신의 솔로 히트곡 There's Only One Way To Rock 을 연주하며 에디와 함께 기타 배틀을 펼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역시 이때도 불화는 피해 갈 수 없었던지 편집 앨범 제작과 영화 OST 제작에 참여하는 거에 대해 의견 대립이 심해지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헤이거 역시 밴드를 떠나게 된다. [28]
결국 새미 헤이거와 같이 탈퇴당한 마이클 앤소니는 따로 자기들의 밴드인 ChickenFoot을 결성해서 활동하고 있으며 새미 헤이거는 Cabo Wabo Tequila라는 회사를 차려 주류사업에 뛰어들었고 마이클 앤소니 역시 자기 브랜드인 Mad Anthony라는 핫소스, 케첩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대형마트인 트레이더 조 마트 같은데를 찾아보면 나오는 꽤 성공한 브랜드.
2.3. 이후 & 데이브 시즌2
이후 공석이 된 보컬 자리를 익스트림 출신의 개리 셰론을 넣어 보았지만 스타일이 너무 이질적이라 결국 실패한다. 게다가 에디의 건강 악화까지 겹쳐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이후 원래 보컬인 데이브 리 로스를 다시 영입하여 활동 중이다. 2007년 명예의 전당 입성에 이어 2009년 에디가 기타리스트 수상을 하고 2015년 엘렌 쇼, 지미 키멜 쇼에 나가기도 하는 등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20년 10월 6일 에디 밴 헤일런이 암 투병 도중 사망했다.
3. 특징
굳이 연주 테크닉을 강조하지 않아도 에디 밴 헤일런이 애용하는 기타 사운드 메이킹 자체가 상당히 특이한 편인데, 일반적으로 저음과 고음을 강조하고 중음을 깎아서 세팅을 하는 다른 록 기타리스트들과 달리 중음을 많이 살려서 연주하는 편이다. 그래서 매우 또렷하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사운드가 나온다. 곡 중에서는 대부분 솔로 이외엔 튀는 주법으로 연주하진 않으나 기본적으로 적재적소에 연주가 배치되어 있다는 평. 실제로 장비에도 관심이 많아서, 샤벨의 기타 공방에서 얻은 부품을 조립하여 "프랑켄슈타인 스트랫(줄여서 프랑켄스트랫)"[29] 이라는 기타를 만들어 쓰기도 하였고, 이후 제작 및 튜닝 과정에 대거 참여한 기타들인 "뮤직맨 EVH"[30] , "피베이 볼프강"[31] 등도 명기로 알려져 있다.[32] 또한 그가 직접 주문제작 및 튜닝해서 사용한 앰프인 "5150"[33] 은 최고 품질의 드라이브 사운드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들에게 애용되기도 하였다. 일명 마약 드라이브톤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는 5150을 쓰던 뮤지션들이 다른 앰프를 쓰게 되면 드라이브톤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렇다.
또한 에디 밴 헤일런은 전동드릴을 실제 연주에 쓴 걸로도 유명하고# 한때 폴 길버트와 드릴피킹 원조 논쟁 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에디는 기타 픽업에 전동드릴을 작동하는 음만을 출력하여 사용했을 뿐(그러므로 피킹이 아니다) 폴 길버트가 드릴촉에 피크를 달아 피킹용 도구로 사용한 것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게 병림픽인 이유가, 앞에서 이야기했듯 에디는 "드릴로 연주"한게 아니라 픽업에 드릴의 모터의 작동음을 입력하는 방법으로 일렉트릭 기타라는 악기의 전기적 특성을 활용한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34] 기타의 전기적 특성을 활용한 연주를 하였다는 것만 봐도 에디의 일렉트릭 기타에 대한 이해력와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에디 밴 헤일런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골초로 알려져 있다.''' 기타 헤드에 담배를 꼽아놓고 연주하는 모습이 그의 상징이 될 정도. '''이 담배 때문에라고 할 정도로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었다. 2000년대 초반에 설암 판정을 받아 수술을 하고 설암 수술을 받았다 하던들 금연에 실패하여 다시 담배를 피고 있어서, 2015년경에 후두암 판정을 받았고, 2020년 10월 6일 에디 판 헤일런은 별이 되었다.'''
이 때문에 데이빗 리 로스가 다시 밴 헤일런에 들어갈 때 에디가 금연하지 않으면 같이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강수를 뒀다고 카더라.
4. 음악 샘플
Van Halen을 대표하는 최고의 히트곡, 1984년 발매 싱글 Jump.
헤비메탈의 상징인 일렉트릭 기타를 후방으로 빼고,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전면에 배치한 시도로 충격을 가져다준 곡이다.[35] 데이브는 라이브에서 이 곡을 할 때마다 진짜로 점프를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 점프가 데이빗 리 로스의 화려한 무대매너를 보여주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으니 아이러니... 또한 멤버들 중 제일 유명한 에디 반 헤일런은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정작 이들의 최고 대표곡 jump에서는 일렉트릭 기타가 뒤로 빠진다.[36][37] 이 노래로 인하여 많은 팬들이 이 노래만 듣고 헤비메탈 밴드인 밴 헤일런을 그저 그런 대중적인 팝 메탈 밴드로 오인하는 일이 생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프닝 곡으로도 쓰였다.
Van Halen과 Sammy Hager가 함께하던 90년대의 명곡, 1995년 발매 싱글 Can't Stop Lovin' You.
발라드곡에 태핑주법을 배치한 에디 밴 헤일런의 센스[38] 와 새미 해거의 시원스러운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다.
레이 찰스의 1962년 곡 ''Can't Stop Loving You''를 오마쥬한 곡이다.[39]
[1] 위 사진은 전성기 시절 라인업인 에디 밴 헤일런 (기타), 마이클 앤소니 (베이스), 데이빗 리 로스 (보컬), 알렉스 밴 헤일런 (드럼)이다.[2] 후두암으로 2020년 사망.[3] 이들이 헤비메탈을 시작했을 때는 무려 1970년대 후반이다.[4] 1984년 Jump가 빌보드 5주 1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본 조비, 에어로스미스 등의 팝 메탈 밴드가 대성했다. 정작 밴 헤일런은 전체적으로 팝 메탈보다는 헤비메탈에 가깝다는 평이 많다.[5] 진짜다. 한때 메탈리카, 헬로윈, 아이언 메이든, 핑크 플로이드 정도 아니면 록 좀 듣는다는 친구들하고 말도 섞기 힘든 시절이 80년대였다.[6] 그런데 정작 여기서 키보드를 맡은 멤버가 에디 밴 헤일런이다(...)[7] 예를 들어, 밴 헤일런의 제3대 보컬인 게리 셰론이 소속된 밴드 익스트림의 내한 공연 소개지에는 "마약과 섹스"를 추구하는 밴드라고 쓰여 있어 기존의 밴 헤일런 팬들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술되어있지만 에디가 골초긴 해도 마약과는 전혀 상관 없는 밴드이며 섹스를 주제로 한 노래도 몇 곡 없다(...). 근데 선생과 제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다룬 노래는 있다. Hot For Teacher라고...하지만 이 곡 역시도 실제라기보다도 십대 남자 청소년들이 여교사에 품는 연애 감정이라는 클리셰를 다루는 내용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력한 의견으로는 우리나라 정서에 먹히는 전형적인 뽕끼 좀 들어간 발라드 트랙이 없어서라는 평이 있었다. 새미 해이거 가입 이전엔 보컬 무대매너빨 밴드라는 소리도 나와서 Ratt과 동급으로 두기도 했다고...[8] 이전과 스타일이 달라지긴 했지만 1984도 꽤 명작이다.[9] 예전에는 밴 헤일런이 고안한 테크닉으로도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태핑 주법은 바이올린등의 현악기에서 간혹 사용되고 있었고 재즈 등에서도 이미 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양념으로 사용되던 테크닉을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인 하나의 주법으로 널리 알린 곡은 Eruption인 것으로 평가받는다[10] 밴 헤일런의 기타연주를 지미 헨드릭스에 이은 제 2차 록기타의 혁명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참고로 제 3차 록기타의 혁명은 잉베이 말름스틴이라고.[11] 결성 당시의 이름은 매머드. 당시엔 에디가 드럼이고 알렉스가 기타였으나 서로 포지션을 바꿨다. 참고로 동생이 열심히 드럼 키트 대금을 갚고 있는 판국에 형은 기타가 금세 싫증이 나서 드럼을 치고 있었다고...[12] 클라리넷, 색소폰,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다루었다.[13] van은 영어의 from과 대응하는 단어로 출신지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반 고흐라든가.[14]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15] 비슷한 케이스의 인도네시아인 혼혈 네덜란드 록 뮤지션으로 퀸 음악과 비슷한 오페라틱 록을 하는 발렌시아가 있다.[16] 그리고 밴 헤일런 가족들 종교는 모두 로마 가톨릭. 원래 살았던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헌이 남부 지방처럼 가톨릭을 고수한 지역이었기 때문.[17] 밴 헤일런 형제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밴드 초기에 금전적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고.[18]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가입 이전에도 솔로 하드록 보컬리스트로 활동하였으며, 솔로곡인 "I Can't Drive 55"도 유명하다. 어니볼 기타 스트링 회사의 엔도서로, 기타 스트링 뒷면에 이름이 박혀있기도 하다. 이 시절 발매된 곡들의 리듬 기타 부분은 거의 새미 해거가 연주하기도 하였다. [19] 유명한 팝 메탈 밴드인 익스트림의 보컬리스트.[20] 허나 매우 유쾌한 사람으로 알려진 마이클 안소니는 사실 반 헤일런을 마치 자기 것인 듯 인터뷰하는 모습이 종종 나왔기에 비슷하게 처신한 새미 해이거와 같이 탈퇴당했다는 것이 정설. 정확히는 데이빗 리 로스의 복귀를 반대하며 나왔다.[21] 사실은 '판 할러' 정도로 소리난다. 두번째 이하 음절이 중설모음으로 약화되는데다 끝에 '-en'식으로 철자된 단어의 'n'은 묵음이기 때문.[22] 신성우의 히트곡 '''내일을 향해서'''가 이 곡을 표절한 걸로 의심받았다.# 여담이지만 이 노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프닝 곡으로 쓰였다. 8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다.[23] 또한 밴드 초기에 데이브 리 로스의 집안에서 큰 지원을 했기 때문에 데이브가 자기 멋대로 운영하려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특히 에디가 마이클 잭슨 앨범에 참여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24] 재즈 아티스트의 세션 드러머로 데뷔했지만 애초 세션 플레이어여서 헤비메탈도 문제 없이 하고 있었다.[25] 여담이지만 해이거는 아마추어 복싱선수 출신이다. 그래서 라이브공연 영상을 보면 공연 도중 섀도 복싱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26] 블랙사바스에서 똘끼 넘치는 오지 오스본의 후임으로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로니 제임스 디오 가 가입한 경우와 비슷하다[27] 단순 보컬이 아닌 솔로 아티스트 한 명을 통째로 데려오는 셈이라 에디와 같이 서로 니가 보컬해라 걍 내가 기타 치겠다며 일대 각축전을 벌였다고 한다.[28] 헤이거 본인은 해고당했다고 호소했지만 밴 헤일런 형제는 그가 어디까지나 헤이거 본인의 의사로 탈퇴한거라고 주장한다. [29] 이후 슈퍼스트랫이라는 개념에 한 몫 하게 된다.[30] 훗날 이 기타는 EVH와 더불어 최고의 록 기타 모델로 평가받는 뮤직맨 AXIS의 베이스 모델이 된다.[31] 뮤직맨 EVH를 변형한 기타[32] 요새는 자기 사이트에서 직접 EVH 이름으로 판매도 하는 것 같다.[33] 2000년대에는 라이센스가 끊겨서 6505+라는 모델명으로 생산됨.[34] 드릴의 회전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음높이를 조절했다고 한다(…).[35] 사실 여기서 사용하는 신디사이저는 Oberheim사의 OB-8이다.[36] 마치 도어즈의 제일 유명한 멤버 짐 모리슨의 비중이 그들의 대표곡인 Light my fire에서 비교적 적은 것과 유사하다. 애초에 이 노래는 짐 모리슨이 작곡하지 않기도 했지만.[37] 그러나, 이 노래의 신디사이저를 연주하는 사람은 뮤직비디오 영상에도 나오지만 다름아닌 에디다. 에디가 기타만 아니라 피아노까지 칠 수 있을만큼 여러 악기를 잘 다루기 때문.[38] 전주 부분에 기타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이 태핑주법을 이용한 것이다. 그외에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정확히는 탭 하모닉스를 쓴 건데, 태핑은 손가락으로 지판을 찍어 눌러 소리를 내는 주법이고(중간에 왼손 태핑을 하며 볼륨노브를 이용한 볼륨주법에서 태핑이 나오긴 하지만) , 이 곡에서는 왼손으로 지판을 짚고 오른손으로 해당 스트링을 때려 하모닉스를 내는데, 때리는 위치에 따라 다른 배음이 나오는 것을 노린 것.[39] 해당 곡의 원곡자는 Don Gibson이다. 노래 중간에 "Hey Ray, what you said is true"라는 가사가 삽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