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시절
1. 정의
Leeds 시절[1]
특정 인물, 또는 팀, 단체의 '''과거 전성기 시절'''을 뜻하는 신조어이자 속어이다. 황금기, 좋은 시절 등의 단어와도 통한다. 포인트는 과거형이라는 점이며, 이미 지나간 과거의 전성기를 뜻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2] 흑역사의 반대말로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래가 15년이 지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용어이다. 현재는 해당 속어에서 파생된 "리즈 갱신"이라는 단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시초는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팀내 경쟁자였던 앨런 스미스의 과거 전성기 시절을 뜻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한동안 해외축구 팬 사이트에서 널리 사용되다가 2009년 말 경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 널리 퍼졌고, 이후 지속적인 유명세를 타며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연예인의 과거 전성기 시절을 거론할 때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예능 등의 방송에서 자주 사용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전성기 취급을 받는 20대에 대입되면서 '어린 시절', '초기 시절'이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2. 어원
박지성이 잉글랜드의 축구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이하 맨유)에 입단했던 2005년, 박지성의 포지션 경쟁자 중 한 명이지만 삽질을 거듭하던 미드필더[3] 앨런 스미스에 대해 '앨런 스미스는 리즈 유나이티드 FC(이하 리즈)에 있었을 땐 정말 잘했는데 맨유에선 포텐이 터지지 않아서 '''리즈 시절'''부터 좋아했던 팬으로서 안타깝다', "'''앨런 스미스 리즈시절 ㄷㄷㄷ'''"라는 포탈사이트, 축구사이트의 댓글들에서 비롯되어 확산된 단어.
시초는 2005년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한 후 대거 형성, 유입된 악성 박지성 팬들, 속칭 박빠들이 해외 축구 팬덤을 교란하며 어설픈 올드비 행세하는 스노브 행태를 '''비꼬는 의미'''의 댓글로서 확산된 용어였다.
박지성이 2005년 EPL에 진출하기 이전에는 해외축구를 보는 사람이 상당히 드물었지만 소수의 매니아층이 형성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2005년 박지성이 EPL로 진출하면서 대량의 박지성 빠들이 생성, 유입되었다. 악성 박빠들이 수시로 트롤짓을 하기 시작하면서, 해외 축구 팬덤 사이에서 수시로 분탕이 일어났었다. 박빠들은 제한맨(제발 한국인이면 맨유좀응원합시다)를 외치면서 오로지 맨체스터 유나이트를 응원하는 것만이 정의인 맨유 공화국을 건설했고, 맨유의 경쟁팀을 응원하는 자을 전부 적폐로 몰아가면서 기존에 다양한 팀을 응원하고 있던 해축팬들과 수시로 마찰을 빚곤 했다. 예를 들어 박빠들은 AC 밀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한짓을 잊었냐?"며 비난했다. 챔스에서 카카에게 농락당하면서 맨유가 밀란에게 패배하자, 맨유팬으로 리버풀의 우승을 바란다는 드립을 치며 골수 맨유팬까지 분개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라리가를 두고는 레알과 바르샤까지 무시하면서 맨유보다 수준이 아래라는둥 그야말로 무지에 가까운 트롤짓을 광역적으로 해버렸다. 당시 해축 고인물들은 니가 맨유팬으로 리버풀이 우승하길 바란다는건 외국인이 아시아 축구 팬으로 한국이 떨어졌으니 일본이 우승하길 응원하겠다는거랑 뭐가 다르냐?는 식으로 제대로된 반박을 하는데, 문제는 한번의 완벽한 반박은 진짜 고인물들과 고인물 행세를 하는 이들은 박빠를 보면, 대댓글로 복붙하며 비꼬는게 유행한 것. 예를 들어 "너 같은 x가 맨유 팬인데 리버풀 빠는 거지 ㅋㅋ"는 식이였다.
그렇다고 박빠들이 맨유에 충성적인 팬이었냐면 그것도 전혀 아니었다. 위에 나온 것처럼 차라리 리버풀을 응원하겠다는 근본도 없는 드립은 애교고, 맨유 안에서도 박지성을 제외하고 박지성과 포지션을 경쟁자의 위치에 있는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들을 모조리 싸잡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 대상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앨런 스미스, 대런 플레처, 라이언 긱스, 키런 리처드슨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오언 하그리브스, 루이스 나니, 안토니오 발렌시아, 가브리엘 오베르탕, 애슐리 영 박빠들은 초기에 박지성의 포지션 경쟁자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혼자우도라고 욕하며 인터넷을 도배를 하던 시절이 있었을 만큼 많은 트롤짓을 했었다.
박빠들이 혼자우도라고 그렇게 욕을 하던 호날두가 세계 최고의 윙어로 성장해버리자, 이제 박빠들은 만만한 앨런 스미스를 잡고 집중적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부 고인물들과 박빠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박빠들에게 대댓글로 대항하며 '''앨런 스미스가 (비록 지금은 폼이 떨어졌지만) 리즈 시절이었으면 박지성 씹어먹었다'''고 운운했던 것이 '''리즈 시절'''의 시작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니들이 그리 욕하는 앨런 스미스가 자신의 친정이자 그와 동료들 위주로 꾸려진 맞춤형 팀이었던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에는 쩔었지만 맨유라는 빅클럽으로 이적하고 나서는 아직 팀에 녹아들지 못해 리즈 때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앨런 스미스가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 전도 유망한 선수였던 것은 맞지만, 박지성을 아주 씹어먹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고, 사실 박지성이나 앨런 스미스나 고만고만한 맨유의 로테이션 멤버였다. 그랬기에 박스 대전은 박호 대전보다 훨씬 치열했다. 박빠들이 스미스를 거의 폐급 선수로 맹렬하게 까는 반대 급부로 반(反) 박빠들도 스미스의 리즈 시절 때 포텐셜을 다소 과장했다.
그리고 당시 해축의 고인물들이라고 해도 실제 경기를 접하는 기회는 국내에서 현재 해축팬들에 비하면 정말 소수의 매니아층만 보유하고 있는 NBA보다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NBA의 경우에는 AFKN이나 일본의 케이블 방송국의 전파영역이였던 부산 경남지역이나, 또는 비디오 대여점에서의 불법 복제 영상들이 버젓이 대여되어 당시 조던과 같은 슈퍼스타들의 소수의 경기라도 암암리 볼 수 있었던 것에 비해서, 해축은 이런 기회가 거의 없었다. 즉 그들 대부분은 위닝이나 피파와 같이 당시 인기를 끌던 게임과 전 세계적인 이벤트인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들과 함께 발생이 된거라, EPL의 경우 리버풀, 맨유, 아스날 등 명문팀 서포터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고인물들 중에서 솔직히 리즈 유나이티드처럼 한때 잠시 반짝했다가 몰락한 팀을 눈여겨 본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정작 리즈 시절의 앨런 스미스를 제대로 본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너도 나도 앨런 스미스의 리즈 시절이 후덜덜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자, 디씨인사이드 해외축구 갤러리에서 리즈 시절이라는 말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갖다붙이면서 어설픈 올드비 행세를 하는 행태를 비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리즈와 아무 관련도 없던 사람들을 엮어다가 "호나우두 리즈 시절 봤냐? 정말 쩔었음", "지단 리즈 시절 ㅎㄷㄷ" 이런 식의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이런 댓글들은 호나우두나 지단이 예전에 쩔었다는 내용을 의미하려는 것이 아니라, 리즈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리즈를 갖다 붙이면서 과거에 실제로 리즈 경기를 본적도 없으면서 마치 리즈 유나이티드와 그 시절 앨런 스미스를 잘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것이 포인트였다.
이렇게 리즈에서 뛴 적도 없는 축구 선수들에게 리즈 시절을 갖다 붙이면서 리즈 시절이라는 말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쓰이는 말이 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축구 선수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용되게 되었다. 이렇게 리즈 시절이라는 말은 해외축구계를 넘어 해외축구팬들의 연령대가 관심을 많이 가지는 문화예술 분야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여담으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 라는 드립도 있었는데, 이것 역시 EPL이 최고의 리그, 맨유가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는 식으로 추켜세우며 라리가, 세리아 A 등을 무시했는데, 당시 "라리가에는 레알과 바르샤 말고는 없지 않느냐? 그들도 맨유보다 못함" 이라며 무시하던 시절, AC밀란과의 챔스 4강전에서 얀쿨로프스키-말디니-네스타-오또 라인업에게 지워져버린 루니-호날두를 두고 "그래도 호아킨"이라는 드립이 탄생했다.[4]
이런 류의 인터넷 유행어는 지상파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편이지만, 2012년 4월 3일 1대 100에서 전반전 5단계 문제로 출제되었다. 이후 2016년 4월 16일 '장학퀴즈 학교에 가다' 용인외대부고 편에서도 출제되었다.
BBC에서도 세계의 축구 관련 유행어에 관한 기사에서 이에 대해 소개했다. # 한국에서 '리즈시절' 이라는 말은 '전성기'를 의미하지만, 영국에서의 Doing a Leeds(리즈하다)의 의미는 '성공하려고 돈은 열심히 썼는데 쓴 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못해서 망함'이라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는 게 재미있는 부분. 리즈 유나이티드의 흥망을 직접 본 나라(잉글랜드)와 직접 보지 못한 나라(한국)와의 차이를 보여주는 재미난 부분이다.
3. 단어의 속내
박지성 맨유 입성 이후 본래 소수 매니아들의 오락에 불과했던 해외 축구 리그가 보다 대중적인 입지를 갖게 되었다. 중계를 챙겨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던 과거에 비해 케이블만 나오면 얼마든지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인터넷 스포츠 뉴스 란에 해외 축구 관련 카테고리가 따로 개설될 만큼 관심이 확대되었는데 이런 환경의 변화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몇몇 스노브들 사이에서 뉴비들을 배척하기 위한 용도로 아름다웠던 과거를 추억하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님들 리그 평준화 평준화 하는데 진짜 평준화 쩔던 건 과거 세리에 칠공주 시절이죠~ 그땐 정말 누구나가 우승후보 ㅎㄷㄷ.'라든지,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나, '리즈 팬 입장에서 리즈가 하위 리그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게 짠하다.' 등등.
특히 아래 설명하듯 리즈는 팀 자체로도 워낙 드라마틱한 일면을 보여줬기에 올드비들의 과시를 위한 주 소재거리가 된다. 그랬던 것이 박지성의 여파로 맨유 팬이 양산 되면서 개념 없는 몇몇 네티즌들도 골수팬 행세를 하기 위한 도구로 저 리즈의 황금기를 이용하기에 이른다. 당시 맨유 선수였던 앨런 스미스를 주된 타깃으로 삼아 '앨런 스미스는 리즈에 있었을 땐 정말 잘했는데 맨유에선 포텐이 터지지 않아서 리즈 시절부터 좋아했던 팬으로서 안타깝다', '리즈 시절 스미스 포스 ㅎㄷㄷ' 등의 레파토리로 말이다.
사실, 진짜 리즈 유나이티드 팬이라면 당연히 맨유를 엄청 싫어하기 때문에[5] 스미스가 맨유에서 잘하든 못하든 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리즈 시절 스미스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맨유를 인정한다는 듯이 말하면...? 리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축알못 스노비 확정이다.
리즈 시절이라고 해서 리즈 유나이티드를 비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조금 지나친 비약이다. 사실 초반에는 스노비들의 허세를 대표하는 구단 취급을 당해서 많이 까였으나, 어느새 '리즈 시절'이라는 말의 기원이 잊혀져가고 보통명사화되어 버리면서 지금은 리즈 팬들도 반쯤은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올드비 팬들을 위해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리버풀 풋볼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스포츠팬들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그 스포츠에 매력을 처음 느낀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한다고 한다.[6] 단지 올드비 팬들의 허세, 유입 배척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추억하고 기억하는거야 상관없지만 그걸 가지고 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허세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4. 당시의 리즈 유나이티드는 어떤 팀이었나?
리즈의 최전성기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이다.[7]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리그 우승 2회, 준우승 5회를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대항전에서도 1971년 폐지된 인터-시티 페어스컵을 1967-68, 1970-71 시즌 두 차례 우승하였고, 1972-73 시즌 UEFA 컵위너스컵 준우승, 1974–75 시즌 유로피언 컵 준우승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UEFA에서 클럽 성적을 순위로 집계한 것은 1979년부터지만, 같은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경우 요한 크루이프가 이끈 AFC 아약스가 유럽 축구계를 지배하기 직전까지는 리즈가 '''유럽 최강 클럽 자리를 3년간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리그 우승보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2년 연속으로 거둔 노팅엄 포레스트를 두고 "노팅엄 시절이 더 적절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으나 유럽에서의 영향력은 전성기 리즈 유나이티드가 훨씬 컸으며, 애초에 리즈 시절이란 드립 자체가 앨런 스미스를 타깃으로 한 올드비인 척 하는 스노브 행태를 비꼬는 드립이므로 앨런 스미스가 소속된 적이 없는 노팅엄은 적절하지 않다.
국내에서 회자되는 리즈 시절인 1990년대는 제2의 전성기에 해당한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91–92 시즌 한 번 뿐이지만 꾸준히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였고 유럽대항전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진출했던 00/01년 스쿼드를 보면 괜히 리즈 시절이라는 이름이 나오는게 아닐 정도로 스쿼드가 화려하다. 실제로 풋볼 매니저의 전신 챔피언쉽 매니저(CM)가 한국에 소개되는 시점인 이때 리즈는 젊은 선수들로 가득차서 정말 좋은 팀이었다.[8]
그러나 팀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영입을 한 끝에 결국 재정이 파탄나서 비싸게 사들인 선수를 되팔아 살림을 꾸리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리오 퍼디난드, 조나단 우드게이트, 해리 키웰 등 주축 선수를 팔아댄 통에 결국 성적은 내리막길에 들어서 챔피언스리그 4강에도 올랐던 위업이 무색하게 하위 리그로 강등되는 굴욕을 맛보며 몰락했다. 프리미어 리그 재입성은 앞으로도 험난하기만 하다.
2009년까지만 해도 3부 리그까지 강등된 상황이었지만 2010년 1월 FA컵에서 '''옛'''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잡아내며 희망을 알렸고 2010년 6월에 리그 1에서 2위를 차지하며 2부 리그인 풋볼 리그 챔피언십으로 승격했다. 그리고 2010년 12월 초에는 챔피언십 리그에서 4위를 달렸으나 갈수록 순위가 밀려 결국 승격에 실패했다. 이를 시작으로 19-20 시즌까지 9시즌 연속으로 챔피언십에서 승격하지 못하고 있으며, 시즌 초에는 잘나가다 DTD를 시전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19-20 시즌에도 1위를 달리고 있으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또다시 승격이 좌절될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리그가 재개되었고 16년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했다.'''
실제로 피파 온라인 3에서 팀을 리즈 유나이티드로 하고 게임을 하면 해설에서 리즈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위에서도 언급한 노팅엄 포레스트 FC는 진짜로 리즈시절에 후덜덜했었던 팀이었다. 리그 우승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유럽 제패를 두 차례나 이뤄냈고 지금도 영국에서 자국리그 챔피언보다 대륙 최상위 대회 챔피언 경험이 앞선 유럽의 유일한 축구 클럽이다.[9]
5. 그렇다면 실제 앨런 스미스는?
앨런 스미스는 리즈의 유스 출신으로 1998년 18세의 나이에 데뷔해서 2003~04년까지 6시즌을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그리고 리즈에서
출처: 위키피디아
위 기록을 남겼다. 원래 팀내 위치상 마크 비두카와 로비 파울러, 이후 로비 킨이 들어온 시점에서 이들 다음가는 3번째 공격수로 활동했고 때문에 스탯상으로는 그렇게 뛰어나보이지는 않지만, 비두카가 워낙 부상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경기에 출장했고 그리고 리즈가 챔피언스 리그 4강까지 갔던 2000-01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7골을 넣는 맹활약으로 리즈의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리즈의 최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00-01시즌에 제일 잘했던 건 맞다.
6. 관련 항목
[1] BBC에서 이 단어를 소개할 때엔 Leeds season이라고 번역하였다. 전성기를 뜻하는 영어표현은 "Back in one's heyday" 또는 "in one's prime."[2] "현재는 예전만 못하다"라는 전제가 붙는 경우 일반적으로 사용한다.[3] 리즈 유나이티드 FC 시절에는 스트라이커였으나 웨인 루니가 팀에 들어오면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고, 로이 킨의 대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어 미드필더로 전향했다.[4] 당시 호아킨은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서 뛴 적이 없는 선수였기에 터졌던 드립이다.[5] 두 팀은 로즈더비, 즉 라이벌관계이며 지역감정에서 비롯된 더비이기 때문에 과격하기로 유명하다.[6] e스포츠의 예로 들자면 당장 스타크래프트 대회의 추억을 이야기할때 임요환, 장진남, 김동수 등이 활약하던 00년대 초창기, 감동의 골마의 최연성과 양박등이 활약하던 00년대 중반 군웅할거, 택뱅리쌍 등이 활약하던 말기에 팬이었던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시대가 최고였다고 싸워댄다.[7] 뮌헨 참사 이후 강력했던 맨유가 암흑기에 접어들고, 여전히 강력했던 리버풀과 함께 리그 투톱을 달리던 팀이었다. 하지만 돈 레비 감독이 국대감독이 취임하고 후임으로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왔지만 팀 장악에 실패하고 44일만애 폭풍 짤리면서 암흑기가 시작된다.[8] 전술했듯 앨런 스미스가 리즈에서 활약했을 당시 리즈 경기를 직접 봤거나 리즈에 관심을 가진 축구팬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국내에 처음으로 발매된 CM3(01/02)를 통해 알려진 게 더 크다고 볼 수 있다.[9] 단 챔피언스 리그 한정. 대륙 대회 챔피언으로 확장시키면차상위 대회인 유로파리그를 자국 라리가보다 많이 우승한 세비야 FC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