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포트노이

 

[image]
'''Michael Stephen Portnoy'''
'''출생'''
1967년 4월 20일(57세) 뉴욕
'''국적'''
미국 [image]
'''장르'''
프로그레시브 메탈, 하드록
'''{{{#ffffff 활동
밴드}}}'''
드림 시어터(1985년 ~ 2010년)
Liquid Tension Experiment(1998년 ~ 현재)[1]
Adrenaline Mob(2011년 ~ 2013년)
Flying Colors(2012년 ~ 현재)
The Winery Dogs(2012년 ~ 현재)
Sons of Apollo(2017년 ~ 현재)
'''악기'''
드럼, 보컬
'''직업'''
드러머, 프로듀서
1. 개요
2. 유년 시절과 드림시어터 결성
2.1. 마이크 포트노이 12연작
3. 어마어마한 드럼 셋 업
4. 드림 시어터 탈퇴
4.1. 추측하는 탈퇴 이유
4.2. 팬들의 충격
4.3. 나머지 멤버들의 반응
5. 탈퇴 이후의 활동들
5.1. Adrenaline Mob 결성
5.2. Flying Colors
5.3. The Winery Dogs
5.4. Sons of Apollo
6. 기타


1. 개요


미국의 드러머. 드림 시어터의 전 드러머로 유명하다. 풀 네임은 '''마이클 스티븐 포트노이 (Michael Stephen Portnoy)'''.
드림 시어터 활동 외에도 여러 가지 밴드들을 하였는데, Liquid Tension Experiment, Transatlantic의 멤버로 활동하였고, 어벤지드 세븐폴드, 닐 모스, OSI, 스톤 사워, Fates Warning, 오버킬, G3 Tour 등 레코딩과 라이브 공연을 하였다.
변칙적인 하이햇 활용, 적극적인 손발 콤비네이션의 삽입, 귀신같은 타이밍의 컴퓨터 드러밍 등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메탈 씬의 많은 드러머들에게 영향을 줘온 천재적인 테크니션이며, 37살에 두 번째 연소자로 현대 드러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2010년 9월 포트노이는 드림 시어터를 탈퇴했다. 50이 넘은 지금도 다양한 프로젝트 밴드와 세션 등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 중인 워커홀릭.

2. 유년 시절과 드림시어터 결성


1967년 4월 20일에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뽀글뽀글한 검은 머리를 보고 짐작했겠지만, 유대계이다. 조던 루데스의 말에 따르면 유대계지만 종교 활동은 안 한다고.[3]
그의 아버지가 지역 라디오 방송국의 DJ로 활동하고 있어서 포트노이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LP 컬렉션을 통해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러쉬, , 레드제플린, 더 후, 아이언 메이든, 비틀즈 등에 영향을 받아 드럼을 시작하였다. 고등학교 때 음악이론을 약간 배우고 보스턴의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한 후 그곳에서 존 명과 페트루치를 만나 여가시간을 활용하기 위한 밴드인 마제스티를 결성한다. 데모를 발매한 마제스티는 밴드명을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로 바꾼 뒤 본격적인 메이저 활동을 개시한다. 이후의 행보는 드림 시어터 문서 참조.

2.1. 마이크 포트노이 12연작


포트노이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고생한 경력이 있다. 어느 정도였냐면 보컬인 제임스 라브리에는 "포트노이는 물고기처럼 술을 마셨다." (한국어 '술고래'에 해당하는 영어식 관용적 표현)라고 할 지경이었고 당연히 밴드 내의 큰 문제가 되었다. [4] 그리고 그는 2000년도 5집 투어와 함께 알코올에서 손을 뗀다. #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포트노이는 6집부터 10집까지 각 앨범마다 하나씩 순서대로 The Glass Prison, This Dying Soul, The Root Of All Evil, Repentance, The Shattered Fortress의 5곡을 만든다. 총 55분의 이 대곡들은 메인 테마와 주제가 변주되어 반복되고, 열두 파트로 나뉜 제목[5]과 연관성 있는 가사를 담고 있다. 12연작인 이유는 포트노이가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다녔던 모임 (Alcoholic Anonymous, 줄여서 AA)에서 기인한 듯하다. [6] 포트노이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들어 간 가사가 일품. [7]
밴드 탈퇴 이후에는 Mike Portnoy's Shattered Fortress라는 프로젝트로 12연작을 한 번에 연주하는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3. 어마어마한 드럼 셋 업


보는 이를 얼빠지게 하는 드럼 세트로 유명하다. 앨범을 낼 때마다 새로운 드럼 세트를 사용하는지라[8] 십여 가지가 넘는 세트를 사용해왔다. 포트노이 공식 개인 사이트에서 드럼 셋 업 배치를 확인할 수 있다. #
포트노이만 이런 셋업을 하는 게 아니고, 프로그레시브 사운드의 드러머들이라면 대부분 이런 대규모 셋업을 하고 갈수록 거대해지는 게 예사다. 그 시조새 격인 닐 피어트의 드럼 셋이나,[9] 포트노이의 뒤를 이은 마이크 맨지니의 드럼 셋등 여러 프로그레시브 그룹 드러머들의 드럼 셋을 보면 모르는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지는 게 보통이다.

4. 드림 시어터 탈퇴


드림 시어터와 25년간 함께 달리다가 2010년 9월 9일 밴드 탈퇴를 선언했다. (참조)
위의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10] 팀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탈퇴 이유를 말하고 있지만... 팬들은 다른 가설들을 세우고 있다.

4.1. 추측하는 탈퇴 이유


  • 멤버들과 충돌이 있었다?
드림 시어터의 음악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충돌이 있었단 설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본인은 물론이고 페트루치나 다른 멤버들이 뭔가 코멘트를 했을 텐데, 아직 다른 멤버들은 말이 없으니 불확실.
애초에 불화가 있었다면 콘서트나 앨범에서 징조가 보였을 것이다. 멤버들이 프로이므로 뒤로 숨겨두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 편하게 살고 싶어졌다?
드림 시어터의 활동을 결성 초부터 되짚어보면, 결코 밴드 활동이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보컬리스트를 해고하고 라브리에를 구할 때까지 연습만 하던 일, 스타일이 갑자기 변했던 4집, 레이블을 갈아탄 일 등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힘들다는 말을 자주 언급한 것이나, 나는 드럼을 칠 수만 있으면 즐겁다고 언급한 것,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멤버들과 작업하는 게 편했다[11]는 발언 등을 보면 좀 더 확실해진다.

4.2. 팬들의 충격


포트노이의 탈퇴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20여 년간 몸담던 음악인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아닌 새파랗게 젊은 메탈 코어 밴드인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레코딩+투어 멤버로 들어갔기 때문. 물론 작고한 밴드의 전 드러머 The Rev는 포트노이의 열렬한 추종자였고, 포트노이 본인도 A7x 멤버들과의 작업을 즐거워했으므로 문제 될 것은 없다.

4.3. 나머지 멤버들의 반응


라브리에가 인터뷰에서 "포트노이가 떠났는데 슬프지 않나?"라는 질문에 '''"아니, 나 하나도 안 슬퍼. 그러고 싶지도 않고. 포트노이가 떠났어도 드림 시어터엔 네 명이 남아있음. 우리 창작욕 뻗침.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기대감만 가득함. 님들도 기대하삼."'''이라는 경쾌한 반응을 보였고, 포트노이가 이에 대해 밴드 홈페이지에서 자기 페이지가 썩둑 잘려나간 것도 있고 해서 "거 되게 섭섭하다. 상처 받았다."라고 글을 올렸다. 라브리에의 반응은 "그런 의도가 아닙니다. 오해입니다"였고, 포트노이는 "나도 오해한 것 같긴 해. 그런데 왜 내가 보낸 메일 안 읽음? ㅜㅜ". 이와 더불어 포럼에서는 "포트노이 당신 나갔으면 자꾸 찌질하게 매달리지 마라. 관심 끊어."라는 친 DT파와 "야 그래도 DT 이름도 포트노이 아빠[12]가 지어준 거고, 포트노이한테는 의미가 남다른데 그렇게 안면몰수하면 그게 사람이냐?"라는 친 MP파 식으로 싸움판이 벌어지고... 지금은 당사자들이 더 이상의 관련글을 쓰지 않고 멈춘 상태라서 직접적인 싸움판은 그쳐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포트노이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맨지니의 드러밍을 못내 아쉬워하는 듯하다.

5. 탈퇴 이후의 활동들


포트노이가 워낙 록 씬에서 알아주는 워커홀릭이기도 했고, 본인도 DT의 틀에 구속되지 않은 음악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모양이라 꽤나 많은 밴드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탈퇴 후 초창기에는 취미 삼아 드림 시어터의 전 키보디스트 데릭 쉐리니언, 토니 맥칼파인, 빌리 시언과 함께 보컬 없는 인스트루먼트 밴드 활동을 했다. 멤버 하나하나가 드림 시어터의 멤버에 비해도 밀리지 않는 괴물들인 지라 기대는 컸지만 새로운 창작곡보단 드림 시어터의 음악이나 드림 시어터의 가장 유명했던 프로젝트 밴드인 리퀴드 텐션 익스페리먼트의 음악을 주로 연주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CWiKkMYTTk

5.1. Adrenaline Mob 결성


낙동강 오리알이 된 마이크 포트노이를 심포니 X의 보컬인 러셀 앨런이 덥썩 물었다. 러셀 앨런, 마이크 올랜도, 리치 워드, 폴 딜레오에 마이크 포트노이를 합쳐서 Adrenaline Mob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탈퇴한 상태.
일단 디오 옹 재직 시절 블랙 사바스의 곡인 Mob Rules를 커버한 영상이 맛보기로 나와있다.

5.2. Flying Colors


그 외에 닐 모스, 스티브 모스, 데이브 라루, 캐시 맥퍼슨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 밴드인 Flying Colors를 결성했다. 현재는 2집과 라이브 앨범 하나를 발매한 상태. 어쨌거나 DT를 나가도 같이 노는 멤버들 수준이 참 끝내준다.
다만 라이브만 되면 기존의 레코딩 버전보다 좀 더 빠르게 연주하는 것이 라이브 공연의 매력인데, 알다시피 마이크 포트노이의 레코딩 버전과 1~2초 오차를 낼 정도로 매우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매우 정직하게 연주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13]
여담으로 마이크 포트노이는 비틀즈+메탈리카 커버밴드인 비탈리카의 공연에 조이 니콜(Joey Nicol)이라는 가명으로 등장하여 드럼을 치기도 했다.# 이전에도 포트노이와 비탈리카의 친분관계가 있었는데, 비탈리카의 공홈에 DT 공홈이 링크되기도 했었다.
DT를 부당해고와 밴드명 저작권 문제로 고소했다는 루머가 나돌았으나, 정확하게는 소송이 아니라 양측의 법무대리인이 탈퇴 후의 밴드의 일을 정리하기 위해 법적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5.3. The Winery Dogs


현재는 미스터 빅에 있었던 리치 코젠, 빌리 시언과 함께 와이너리 독스를 하고 있다. 밴드 결성은 2012년도이지만 앨범은 2013년에 발매돼, 좀 늦게 나왔다. 마이크 포트노이는 과거 미스터 빅의 빌리 시언, 폴 길버트와 공연도 해본 적이 있었지만, 리치 코젠과는 처음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스타일 교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14] 리치 코젠 본인도 이 밴드에 만족을 하는 모양이다.
아쉽게도 몬스터 드럼 셋이 아닌 일반 드럼 셋을 쓰지만 간간이 나오는 변박과 쫙쫙 쪼개지는 칼박은 어디 안 간다. 음악 장르가 전형적인 하드 락인 지라 드림 시어터 시절 때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일반 드럼 셋으로도 화려한 연주를 한다. "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는 속담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케이스. # 일단 실력이 워낙 넘사벽급이라 포트노이를 드러머로 쓰고 싶은 밴드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5.4. Sons of Apollo


잉베이 말름스틴 밴드에서 활약한 보컬리스트 제프 스캇 소토(Jeff Scott Soto), 상술한 빌리 시언, 건스 앤 로지스의 Chinese Democracy에도 참여한 기타리스트 론 "범블풋" 탈, 그리고 드림 시어터의 전 키보디스트 데렉 쉐레니언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Sons of Apollo를 결성했다. 현재 1집 Psychotic Symphony를 발매 후 투어 중. 페트루치의 기량과 케빈 무어의 그림자에 가려 제 몫을 발휘하지 못했던 쉐레니언의 역량이 돋보이는 음반이다.
마이크 포트노이와 데렉 쉐레니언을 제외하곤 제프 스캇 소토, 빌리 시언, 론 범블 풋 탈만 하더라도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아닌 전통 메탈을 했던 사람들인데 의외로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 본인들의 실력을 과감하게 뽐내고있다.[15]
2018년에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으며, 2020년 1월에 새로운 앨범이 나올 예정이다. 앨범 명은 "MMXX"로, 문자 그대로 2020을 나타내며 신년에 빨리 나오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앨범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선공개 곡으로 Goodbye Divinity가 공개되었다.

6. 기타


드림 시어터에 있었을 때 무대 매너를 멤버들 개별적으로 따지자면 포트노이가 제일 좋았다. 스틱 돌리기는 물론이고 관객들과 소통이라든지 특정 멤버가 솔로를 할 때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스틱으로 지목을 해주었다. 드럼 솔로를 할 때도 가끔씩 탐 하나를 들고 나와 관객 한 명을 지목하여 함께 탐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이는 등 관객들이 보기에 멋있고 화려한 모습과 함께 즐기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말 없기로 유명한 존 명은 물론이고 존 페트루치나 조던 루데스도 가끔 표정이나 포즈를 취해주지만 포트노이에 비하면 얌전하다.
또한 팬들과 가장 소통을 잘하던 멤버였다. 자신의 블로그에 드림 시어터 뉴스를 올려주었고, 새 앨범의 힌트를 넌지시 던져주기도 하였다. 팬들의 리플에 일일이 답변을 정성스레 달아주기도 하였지만... 탈퇴 후에는 간혹 뻘글(...)을 올리면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16] 요즘엔 그렇게 활발하게 글을 남기지는 않는 상태.
참고로, 2003년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 10개를 포스트 했는데, 그중에 올드보이가 포함되어 한국 팬들에게 소소한 행복거리가 되었다.
아들인 맥스 포트노이도 드럼을 친다. 2015년 현재 16살이지만 아빠가 희대의 사기 캐릭인 만큼 벌써부터 몬스터 드럼 셋의 절반 정도 크기의 투 베이스 드럼 셋을 쓰는 등 나이에 비해 엄청나며, 몇 년 후 훌륭한 드러머가 되리라 예상한다. 영상 현재 Next To None이라는 밴드에서 정식 1집까지 나온 상태. 페이스북에서 마이크 포트노이를 팔로우하면 아들 밴드 자랑을 자주 한다. 부자가 BABYMETAL 팬으로 유명하다.
지난 20년 간의 밴드 활동과 앨범 작업의 경험을 삼아 이 밴드의 프로듀서를 하고 있다. 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밴드 초창기 때만해도 전형적인 모던 락 느낌이었는데, 포트노이가 프로듀스를 한 후부터 밴드가 드림 시어터화되고 있다.
미국 시간 기준으로 2017년 12월 31일, 존 페트루치의 페이스북에 마이크 포트노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DT 활동과 별개로 서로간의 우정은 유지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인연은 유지되는 것인지, 2020년 존 페트루치의 솔로 앨범의 드럼 녹음에 참여했다.
현재는 고인이된 캐나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러시의 드러머 닐 피어트를 상당히 존경하고 그의 드럼 스타일의 영향을 엄청 받았는데, 그 때문인지 각종 러쉬 관련 커버 공연이나 프로젝트 영상에 드러머로 거의 다 참여하는 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드럼 만큼은 본인이 치겠다는 엄청난 의지를 보여준다.
마이크 포트노이가 뽑은 크라이테리온 콜렉션 베스트 리스트. 인데 데이빗 린치 빠인걸로 보인다.
[1] 2021년 상반기에 새 앨범이 발매될 예정이다.티저[2] 최연소자는 닐 피어트.[3] 참고로 모 메탈 웹사이트에 따르면 포트노이는 유대교도(명목상), 라브리에는 개신교도였다가 이젠 아님, 명은 개신교도, 페트루치는 가톨릭교도, 루디스는 무신론자라는 기사를 냈었다.[4] 알코올중독으로 고생한 밴드가 흔하긴 했지만 거의 모든 멤버가 모범 생같은 사생활을 유지하는 드림 시어터에서는 포트노이의 알코올중독이 가장 심한 문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5] 챕터의 제목들이 모두 R로 시작한다.[6] AA에서는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12-Step 치료 과정을 제시한다.[7] 다만 포트노이가 알코올중독을 소재로 곡을 쓴 것이 이게 처음은 아니다. 3집 Awake의 The Mirror도 술에 관한 노래.[8] 다만 드림 시어터 활동을 시작할 때는 그도 돈 없는 대학생이긴 마찬가지였던 지라 세 가지 일을 하면서 틈틈이 모은 돈으로 커다란 드럼 세트를 완성했다고 한다.[9] 닐 피어트 역시 초창기 때만해도 평범한 드럼 세팅이었지만 밴드의 성공으로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자 드럼 세트를 하나둘씩 늘리기 시작하였다.[10] DT는 공연 많이 뛰기로 유명한 밴드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일하는 (음반 작업 + 투어) 시간이 많고 쉴 수 있는 시간(여기서의 쉬는 시간이란 단순히 여가뿐만이 아니라 '''사이드 프로젝트나 세션 작업 등도 포함하는 것''')이 부족한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11] 하긴 후배들한테 둘러싸여서 쉬엄쉬엄 일하는데 편하지 않을 리가 없다.[12] 10집 제작 시점에서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를 추모하는 곡(The Best of Times)이 앨범에 실리기까지 했는데...[13] 기타와 베이스 같은 다른 세션들은 드럼의 박자를 따라 연주를 하기 때문에 공연 중 좀 빠르게 연주하겠다 하면 드럼이 빠르게 연주하면서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지난 20년간의 포트노이의 행적을 보면...[14] 특히 베이시스트인 빌리 시언과의 교정이 많이 필요했다. 드림 시어터 시절에는 존 명이 백 사운드를 받쳐주는 스타일이었지만, 그에 반해 빌리 시언은 프론트에서 사운드를 잡아주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15] 테크니션일수록 전통 메탈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본인 실력을 곡이 아닌 라이브 때 솔로 플레잉 타임 때 보여주는 경우들이 많다.[16] 단순한 뻘글 수준이 아니라, 논란이 생길만한 어그로성 글도 꽤나 올려서 팬들이 장탄식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