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정종

 

니치렌의 직제자였던 닛코를 원류로 하는 종교. 교조는 니치렌, 소의경전은 법화경(묘법연화경)이다. 일련종과는 다르다. 니치렌의 나머지 제자들이 남아 일련종을 구성했다. 일본의 일련종 및 일련종계 관련 단체는 일련정종을 파문한 적 있다.
원래 일련종은 일본에서 시작된 교단으로, 서민에게 친근하고 현실 속 실천을 강조한 교리를 바탕으로 크게 성장했다. 불교임에도 불구하고 석가모니를 비롯한 전통적 부처가 숭배의 대상으로 강조되지 않는다. 이것은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당시의 불교를 경계하고 법화경의 가르침 그대로를 따르고자 한 교조 니치렌의 방침 때문이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결과 법화경을 제외한 '''다른 불경을 모두 부정'''했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다양한 승려와 그를 외호한 권력자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했다. 법화경의 세부 내용과 관련해서는 법화경 항목 참조.
일련정종이 일련종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은 니치렌을 승려가 아닌 부처로 본다는 점에 있다. 다른 일련종계 종단은 불, 법, 승 삼보 중 불보는 석가모니, 승보는 니치렌으로 보지만 일련정종은 불보를 니치렌, 승보를 직제자인 닛코로 삼았다.[1] 게다가 매우 많은 일련종계 종단[2]이 공통적으로 야마나시현 미노부초에 있는 미노부산(身延山) 쿠온지(久遠寺)라는 절을 총본산으로 인정하지만, 일련정종은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에 있는 타이세키지(大石寺)라는 사찰을 따로 총본산으로 삼아 독립하여, 다른 모든 일련종계 종파들에게 이단으로 파문당하였다. 타이세키지 또한 니치렌의 직제자 닛코(日興)가 개창한, 일련 계열의 종파에서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국내에서는[3]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 권력에 편승해 신사 참배를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등 제국주의를 옹호한 전력으로 인해 질타를 받고 있다.[4] 신도들 중에서 이런 교단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지만, 일련정종의 공식적인 입장은 전쟁에 적극적인 동조였다. 중생에 대한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교단이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 그 이후 한 번의 사과표명도 없었다는 점에서 나오는 비판으로 인해 국내에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5]
전후에는 조직 운영상의 갈등으로 인해 일련정종 내부의 신도 조직이었던 창가학회가 분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창가학회가 일련정종의 신사 참배 방침에 비판적이었던 것을 시작으로 계속 충돌이 있었기에 이러한 분리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참고로 일련정종은 창가학회를 "파문"했다고 표현한다.
2014년, 박원순이 집권한 서울시에서 일련정종에 대한 법인 설립을 허가했다. 이에 독립유공자유족회 등에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자신들이 쫓아낸 창가학회가 독립유공자협회로부터 특별현창을 받은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 특히 지난 시장단에서 계속해서 거부되었던 법인 설립이 박원순이 당선되자마자 빠르게 법인이 허가되었던 정황은 조사가 필요해보인다.
2020년, 한국에서는 거의 듣보잡에 가까웠던 종파 였지만, 9월 8일 불교 종파 ‘일련정종’ 영등포구 포교소서 승려·신도 12명 확진 으로 인해 뉴스 등에서 언급 되며 알려졌다.

[1] 최근에는 법주(일련정종의 교주)를 불보, 법보, 승보 모두로 삼는 법주절대론을 기조로 한다.[2] 니치렌의 제자임을 자처하며 많은 분파가 생겨났다. 이후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은 국가신도 아래 각 종교를 편입하려는 과정에서 '일련종계'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3] 일련정종이 아닌 일반 일련종 역시 구한말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긴 했다. 승려의 한양 도성 출입을 해금하도록 만든 사노 젠레이가 다름아닌 일련종 소속이다.[4] 대표적으로 당시 법주 닛쿄는 "(천황께서) 미국, 영국에 선전포고를 발표하시어 감격하나이다. 제국은 충용무쌍 육해군이 있어 경탄할 전과를 거두었다. 본종 종도는 대전(大戰)에 필승을 기할 것을 위와 같이 훈유한다."는 훈유문을 발표했다.[5] 이 문서에서는 국내에서의 논란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교조의 가르침을 버리고 국가신도에 영합해 신사참배를 옹호했다는 사실은 교리적으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