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

 


1. 소개
2. 설명
3. 국외 사례
4. 기타


1. 소개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세요'''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祈福信仰
기복신앙이란 복을 기대하는, 즉 본인에게 득이 되는 복(福)을 바라는(祈) 신앙 행태를 말한다. 여기서 '복'이란 재물, 무병장수, 내세의 공덕, 자손의 번창 같은 일체의 인간적 욕심을 포함한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믿음에 기복(起伏, ups and downs)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므로 유의하자. 은근히 이 뜻으로 아는 사람들도 좀 된다.

2. 설명


종교의 가장 원시&원초적인 형태 중 하나로, 현대사회의 고도화된 종교에서조차 이런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다.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같이 고대 인류에 보편적으로 존재한 원시적 신앙뿐만 아니라 현대의 고등 종교들도 기복적 요소는 있다.[1] 기독교의 성경조차 복을 내려준다는 문구가 많고 이러한 신앙들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불교도 기복적 교리가 아예 없지는 않다. 물론 부처는 신보다는 '위대한 스승', '선각자'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물론 무슨 성황당 치성 드리듯이 소원을 비는 것은 정통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기독교의 경우도, 기도라는 것은 '소원 빌기'가 아니라 '초월자와의 대화'이다. 그리스도교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목적이지 현세적 복을 비는 목적은 아니다.
유학 사상의 인문주의 영향으로 중국 고전에서도 기복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선진(先秦)유학에선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괴력난신(怪力亂神)은 입에 담지 않았다. 비록 이런 것들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부정하진 않았지만 초자연적 힘과 존재들에게 빈다 하여 인간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고. 괴력난신을 거론함을 부정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유학자들은 묫자리 찾아서 자손에게 음복을 내려준다는 풍수지리를 허무맹랑한 이설로 보아 배격했고, 유학적 지식이 부족한 여인들이나 백성들이 무당을 찾아감도 금기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교 인문주의는 대다수 민중들에게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으므로, 민중들은 무속이나 불교, 도교를 신앙 하며 정신적인 부분을 의지했다. 유교 엘리트들조차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 윤리와 통치의 수단으로 인정하였다. 송나라 때 신유학(성리학)이 나오면서 유교도 종교적 색채가 강해지자 조상제사가 후대로 갈수록 변질되어 '조상님을 잘 모시면 복 받고, 잘 못 모시면 벌 받는다.'는 단순한 기복이 성했다. 개인이나 집안 차원의 조상제사만이 아니라 공적인 제사의례도 조선 시대에는 매우 중요했다. 사시사철 전국의 명산대천에 제사 지내기가 조선 시대엔 지방관들의 큰 업무이며 예산에서 가장 큰 부담이 될 정도였다
개신교도 16세기 인문주의[2]에 기반한 종교개혁으로 시작한 만큼 기복 행위를 부정적으로 본다. 특히 한국 개신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장로회에서는 초자연적인 계시나 기적에 대해 매우 엄격히 부정은 아니나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3] 그리고 방언, 신유은사, 기적에 집착하는 행태는 개신교 출발시부터 대단히 경계해왔다.[4] 개신교가 기복적, 신비주의적 요소를 띔은 19세기~20세기 초에 들어서 꽤 늦게 일어난 일이다.
서양에선 비슷한 경우로 이솝 우화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목제 신상에 계속 기도를 한 아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아들이 아무 되는 것이 없자 참다 못해서 결국 나무로 된 신상을 도끼로 쪼개버리는데, 그 안에서 돈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이다.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솝우화의 백미 중 하나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아버지의 유산을 아들이 잘 몰랐다는 식으로 이해하거나, 기도하지 말고 직접 움직이라거나, 심지어 기도해봐야 돈은 종교단체에게만 들어갈 뿐이라는 다소 과격한 해석도 가능하다. 2번째, 3번째 해석은 모두 기복신앙에 대한 강한 비판.
기복신앙에 과도하게 빠지면 비는 것에만 열중하여 정작 현실에서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노력을 등한시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매우 좋지 않다. 더 시크릿 열풍이 불 때 이를 비판한 노 시크릿 계열의 서적을 보면 이런 예가 많이 나온다. 즉 빌기보다는 자기가 열심히 행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간과해버린다는 것. 또 자기 자신의 '''이기심'''에만 열중하여, 해당 종교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게 되기도 한다. 심해지면 '''해당 종교를 벗어나도 자기 자신만 잘 되면 된다'''라는 식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3. 국외 사례


전세계 각지의 현지화된 종교들 모두 기복신앙 요소가 있다. 대표적으로 기독교고 불교고 전래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이런 현지화 현상을 보였다. 그러니 기복신앙이 한국적 특성이라 말함은 종교에 대한 무지에 불과하다. 기복은 '''나라와 문화, 종교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동네라면 다 있는 것이지 한국적 특성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보다 비종교인이 많고 세속화된 중국, 일본처럼 비종교적이고 현세적이라는 나라의 기복이 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도교사원이나 관왕묘에서 재복을 빌고, 일본에서는 신사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소엔 비종교인이다. 일본에서는 비종교인조차 신단(가미다나)과 불단을 두고 회사나 가게에는 마네키네코를 두며 오마모리 부적을 챙기며, 때로는 아예 회사 안에 작은 신사를 만들어두기까지 하는데 이 정도면 한국보다 더하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고리야쿠'(ご利益)라 부르며, 사실 일본은 한국 이상으로 기복신앙이 극성을 이루는 국가이다. 그리고 기독교와 불교 모두 포교 과정에서 각 나라나 지역마다 현지인을 배려하기 위해 어느 정도 현지화를 거쳤다.
초기의 가르침에서 포교되며 현지화를 거친 불교의 불보살들이 본래부터 기복신앙이 아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법화경 등 경전에서 불보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문을 외우면 현세에 도움이 된다는 발언이 존재하며, 관세음보살은 특히 본래부터 이런 경향이 강하다. 물론 한국에서 기복신앙이 활발함은 사실인데, 애초에 경전에서부터 기복신앙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으니 다른 나라라고 이런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수행을 중시하는 선불교가 주류인 한국불교에서 이런 기복신앙은 승려들 사이의 갈등을 일으킨다. 수행을 게을리하고 돈을 매개하는 기복신앙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다. 2016년 7월 외국인 승려인 현각 스님은 한국불교의 기복신앙과 돈에 얽힌 파벌싸움을 비판하였으며, 한국불교를 떠난다고 선언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불교는 조선시대 억불 정책으로 탄압받아 산으로 많이 축출되어 명맥을 유지한 영향도 있고, 일제 강점기하 일본승려들의 영향으로 불교 가르침에서 벗어난 이물들이 사찰에 많았는데 해방 후 성철스님 등의 주도로 이런 것들을 현재 많이 청산하였다. 하지만. 근대 이후 교육수준이 높은 그리스도교&불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해당 종교의 가르침은 기복에만 그치지 않는데 열성적으로 기복에만 메달리는 대다수 신자들 그리고 목회자와 사제들에 대한 비판도 많다. 그리스도교나 불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신앙의 본질은 버려두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주교는 기복신앙을 배척한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봉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개신교에서도 역시 복음에 매달리지 않고 토속 샤머니즘에 물든 한국 기복신앙을 비판하기는 마찬가지다. 개신교는 구한말 전래과정에서 마을 무당을 먼저 전도하고 나면 마을 아낙네들이 줄지어 교회에 오는 식으로 포교하여 토속 샤머니즘이 유입되었다. 초기 전래과정에서조차 이런 요소들을 선교사들과 선교사가 속한 교단에서 경계했고, 오늘날에도 한국의 보수 개신교 교단들은 기본적으로 기복신앙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다.

4. 기타


가끔 각 민족들의 원시종교를 보다보면 기복은 기복인데 '''신을 협박하여 복을 구하는''' 기묘한 풍습도 있다. 일단 한반도에도 구지가나, 가뭄기우제의 일환으로 용의 형상[5]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조리돌림을 시킨 예가 있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면, 가령 평상시에 행하지 않는 어떤 금기가 있는데 가뭄 등으로 공동체적으로 신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해지는 상황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신에게 '''"이 기도를 안 들어주시면 어떤 어떤 금기를 범하겠습니다. 싫으시죠?"''' 하는 식으로 협박하는 것. 예를 들자면 신성시되는 장소에 더러움과 죽음의 상징인 짐승의 피를 뿌리거나, 치마를 뒤집어 걸어놓는[6] 등 사례가 있다. 물론 이런 금기는 어디까지나 금기이므로 아무 때나 누구나 범하겠다고 협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사례는 멀리 갈 것조차도 없다. 불과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경북 팔공산 갓바위 인근 주민들에겐 비가 안 오면 갓바위에 불을 지르는 풍습이 있었다. 주민들이 갓바위에 불을 지르면, 불상을 수호하는 호법룡이 불을 끄고자 비를 내리리라 여긴 것이다. 이 또한 특별한 때에 신성한 대상을 모욕하거나 협박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던 한 가지 사례이다.
또는 "그동안 저희에게 받아드신 제물이 얼마인데 설마 외면하지 않으시겠죠?"라고 운운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고려시대에 장군 등이 반란군을 진압하려 가면서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 축문에 "그동안 저희 왕께서 재물을 보내어 신을 지극히 위하였으니 감응하시어 반란 도당들을 물리치는 데 힘을 보태주소서"라는 식으로 점잖게, 하지만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히타이트 점토판 중에서는 '''이대로 망하면 당신도 섬기는 사람이 없어지지 않냐. 도와달라.(...)'''하는 기도 문이 남아 있다.
현대 대한민국의 종교가 타 국가에 비해 분쟁이 적은 이유를 기복신앙 때문이라는 썰도 있다. 즉, 현세의 행복과 풍요로움을 위한 종교이기 때문에, 내세나 구원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가치들을 위해 종교 분쟁을 심하게 일으켜 현세의 가치들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종교분쟁이나 박해 등도 파헤쳐보면 결국에는 헤게모니나 이권 다툼이 포함되어 있긴 하나, 최소한 명분상으로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앞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기복신앙적인 풍토에서는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명분을 내세워도 큰 호응을 얻기 힘들기 때문에 종교분쟁이 심각하게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
화물 신앙 역시 기복신앙에 해당한다.
[1] 애초에 고등종교라는 것들은 대체로 체계화된 교리, 경전, 조직 등을 갖췄기에 고등종교로 불리지 딱히 기복신앙이 아니어서 그렇게 불리는 것은 아니다. 원시신앙들도 현세 뿐 아니라 내세와 같은 비기복신앙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경우도 많다.[2] 현대의 '무신론적 인본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인'''문'''주의란 단어로 번역함이 일반적이다.[3] 장 칼뱅은 영적인 계시는 불완전하며, 성경과 비추어 의심이 없을 때에만 비로소 완전하다고 신자들에게 훈계했다. 유일한 본이 되는 성경 해석에 대해서도 마르틴 루터와 비슷하게 엄격한 해석을 강조했는데, 공교롭게 둘 다 당시 엘리트이며 법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4] 다만 그렇다고 하여서 방언이나 신유은사가 비성경적이라거나 무조건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언과 신유은사는 성경에도 나와있는 부분일 뿐더러 나름대로의 유익이 있다. 다만 너무 그런 쪽만 강조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제일 중요한건 방언과 신유은사 보다 성경을 상고하는 것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5] 길고 구불구불한 모양에 착안해서 용과 뱀은 보통 강, 물, 비, 구름, 바다 등과 관련짓는다.[6] 치마를 뒤집어 걸면 하늘에서 보기에는 여자가 음부를 드러내는 흉한 꼴로 보여 분노해 물을 쏟아 붓는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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