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포

 

1. 개요
2. 과정
3. 결과
4. 사건의 전말 분석
5. 그 외 이야기


1. 개요


2003년에 일본 정부와 전 세계 헤지펀드들이 일본의 외환보유고를 두고 벌인 환율공방전. 일본은행이 이 당시 외환시장에 돈을 퍼부은 게 마치 대포를 쏘는 것 같다고 해서 일은포 사건이라고 불렸다.

2. 과정


  • 2000년대 초반 전쟁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출렁거렸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엔화를 매수하면서 엔화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했다.
  • 엔화 가치 급등을 감지한 전 세계의 헤지펀드 수천 개가 수조 달러의 자금을 동원[1]하여 일본의 외환시장을 털어먹으려고 덤벼들었다. 전세계의 상당수의 헤지펀드들이 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때 환율시장에 개입하여 온 나라를 실컷 털어먹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이 때도 만만하게 본 것이다.[2]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경고성 기자 회견을 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경고 메세지를 무시한 채 총력을 다 해 덤벼들었다. 이로 인해 달러당 117엔 수준이던 엔화는 105엔 수준까지 상승하였다.
  • 깊은 빡침을 느낀 일본 정부는 당시 재무상이었던 다니가키 사다카즈의 지휘 하에 일본은행[3]매분 단위로 10억엔씩 매도-달러 매수를 개시했다. 24시간 내내 거래한다고 하면 시간당 600억엔, 하루에 1조 4400억 엔(!)을 들이붓는 것이었다!!! 이 때 매각할 엔화 자금은 일반적으로는 재무성이 단기 국채를 발행해 조성한 외환자금특별회계(外国為替資金特別会計)[4]를 이용하지만 이 경우에는 자금이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만기가 짧은 미 재무성 채권을 일본은행에 팔아 환율 방어 자금을 충당했다.

3. 결과


'''헤지펀드의 멸망''', 그리고 '''일본 정부의 승리.'''
그렇게 근 1년[5] 동안 30조 엔(!!!), 당시 한화로 300조 원 가량 되는 자금을 투입하여 환율을 방어하는 데 성공한 건 물론이고, 디플레이션까지 완화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결국, 겁도 없이 일본 정부에 덤볐던 헤지펀드들은 대부분 극악의 손실을 기록한 건 기본이었고, 심각한 경우에는 도산을 면치 못했다.

4. 사건의 전말 분석


'''계란으로 바위 치기.'''
처음부터 게임이 될 수 없었다. 이전 영국이나 아시아 신흥국을 무너뜨린 외환시장 공격과 반대로, 일본의 경우는 헤지펀드들이 엔화를 매입하는 공격이었으므로 이에 대항하는 일본의 실탄은 자국 화폐인 엔화였다. 일본 정부는 만기가 빠른 미국 채권을 일본은행에 팔아 엔화를 모은 다음, 달러를 사들여 채권을 국고에 반환하고, 다시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팔아 엔화를 모아 시장에 풀고 전술한 과정대로 채권을 반환하면 되는 사이클대로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해당 포지션에 대한 단일 주체였기 때문에 일사불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은 수조 달러의 자금력으로 덤벼 들었어도, 수백 개가 넘는 조직들이 각자의 방침에 따라 운용했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와해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물론 일본 측 포지션은 시중에 엄청난 규모의 돈을 푸는 꼴이라 높은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킬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일본은 디플레이션으로 신음하던 중이었다. 일본은 장기 디플레이션과 함께 수출 경쟁력을 저해하는 엔고를 타개할 필요가 있었는데, 헤지펀드들이 덤벼들었으니 시기적절하게 시장에 엔화도 풀고 환율도 올릴 수 있어서 더더욱 과감하게 움직였다.
결정적으로 '''이 당시의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아무리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20년을 향하고 있어도 '''잃어버린 10년 이전에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눌러버릴 것으로까지 점쳐졌던, GDP 4조 달러대의 경제 초강대국을 상대로 덤빈 것은 헤지펀드의 실수'''였다. 더구나 일본은 이 때를 기준으로 약 10년 전에 헤지펀드에게 털리면서[6] 학습효과로 인한 경험치가 축적됐기 때문에 헤지펀드의 공세를 초장부터 박살내야 막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를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5. 그 외 이야기


일은포의 외환 개입 자체는 실패했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 재무성에서 목표로 걸었던 1달러당 100엔은 결국 사수했지만 일본이 개입을 중단했다고 얘기했던 2004년 3월 이후 생각만큼 환율이 안정되지 않아서 2004년 11월에는 102엔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한참 공격과 방어가 오가던 그 기간 중 105엔보다 더 낮은 것이다. 20년 그래프를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서 환율 방어는 정부 개입의 효과가 의외로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관련 기사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인 외환 개입은 당연하겠지만 미국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그 때문에 미조구치 젬베이 당시 일본 재무관이 미국 재무부 차관이었던 John B. taylor에게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일본 내부에서는 테일러-미조구치 개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 위키 설명 존 테일러는 일본이 개입할 때마다의 해당 내용을 일본에서 보내는 이메일을 받았고 그걸 블랙베리로 확인했다고. # 일본이 외환 개입을 하는 것을 외국환평형조작(外国為替平衡操作)이라고 하는데, 일은포는 2012년까지의 행했던 작업 중 가장 기간이 길고 큰 규모의 외환 개입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 기록을 일본 재무성에서는 기록으로 남겨놓는데 헤이세이 15년과 16년 기록으로 그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1] 물론, 대부분의 자금은 외부에서 차입한 자금이었다. 성공하면 막대한 수익이 생기지만 실패하면 파산은 말할 것도 없고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끊어야 했으니,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을 아주 만만하게 보고 덤빈 거였다.[2] 대표적으로 큰 피해를 본 게 태국 바트화이다. 한국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3] 일본 외국환법과 일본은행법에 의거해서 일본은행은 재무성의 외환시장 관리 업무를 위탁받게 되어 있다.[4] 실제 한국의 외국환평형기금과 기능이 같다.[5] 2003년 1월부터 방어 시작, 2004년 3월 헤지펀드가 붕괴되면서 성공했다.[6] 고베 대지진조지 소로스의 공격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수출 기업이 줄줄이 적자를 본 사건이 있었다. 이 때 타격을 맞은 기업들이 후지츠나 파이오니아 등 쟁쟁한 거대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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